I. 성경을 관통하는 큰 강

그리스도교는 피의 종교이다. 피는 속죄와 생명을 상징한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22). 구약성경을 관통하는 큰 강은 속죄의 강이다. 신약성경은 이 속죄의 맥락을 이어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아벨의 속죄 제물, 아브라함의 여호와 이레 사건에 나오는 속죄양, 출애굽의 신호탄이 된 유월절양, 성막과 성전에서 매일 드리는 수없는 속죄양과 매년 한 차례 드린 대속죄일 제물 의식에 나오는 속죄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그림자이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묻자 아브라함이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22:7-8)고 대답하였다. 이삭의 질문에 대한 신약 최초의 응답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라는 침례요한의 선포에 나온다.

속죄는 사실상 성경의 다른 모든 교리와 연결되는 기초적인 교리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부활과 승천, 중보와 재림의 중심에 있다. 속죄란 죄와, 우리의 절실하고 근본적인 구원의 필요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전제로 한다.

. 속죄의 의미

A. 죄를 덮음(covering)

속죄(atonement)는 히브리어 “kippurim"의 역어이다. Kippurim은 동사 ”kappar" (to cover, to forgive)의 명사형으로 문자적으로 덮음(covering)을 뜻한다. 구약성서에서 kapparkippurim은 희생제도에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다. 희생제도에서 희생제물의 피가 상징적으로 죄의 속함이 되었다.

인간은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존재이다. 희생제물의 피가 죄를 덮어 주었다. 구속의 경륜에서 피의 역할은 크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17:11). 희생제물을 통한 속죄는 하나님께서 죄를 기꺼이 용서하고자 하는 의도를 들어내 보이고 있다. 구약성서는 대속적인 희생제물로 죄를 덮고자 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죄인은 하나님께서 죄를 덮어주시기를 받고자, , 용서 받고자 하여 하나님께 나아갔다.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구약성경의 모형에서 피의 역할 원형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신약성경 기자들은 그리스도의 보혈이 구속의 활성적 요인이 되고 있다는 시각을 자주 지적하고 있다. , “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20:28),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1:7),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1:20), “영원한 언약의 피”(13:20),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벧전 1:2),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요일 5:8), “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요일 5:6),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1:5) 등이다.

B. 용서

구약성경은 “kappar”를 용서의 의미로도 사용하고 있다.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78:38). 여기서 사하사에는 ‘kappar’ 동사를 사용하고 있어 하님이 죄를 덮으신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죄를 덮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고 죄인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교제하고자 하는데 그 진정한 의미가 있다. 따라서 단순히 죄를 덮어 둔다는 점에 국한되는 일이 아닌, 죄에 대한 대가가 지불되어 죄를 덮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C. 속죄소(Mercy Seat)

1. 법궤 덮개(뚜껑)

구약성경에서 kappar법궤 위 속죄소(시은소)”(16:2), 즉 법궤 뚜껑(lid) 위의 속죄소(mercy seat)를 지칭하고 있다. 히브리서는 hilasterion속죄소”(9:5)로 번역하고 있다.

순금으로 된 언약궤의 덮개인 시은소는 율법 위에 놓여 있다. 이는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춘 것”(85:10)으로 보인다. 공의를 지닌 법과 긍휼이 있는 시은소는 모두 사람을 취급하시는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을 나타낸다. 공의 없는 자비는 약한 감상주의로 전락하고, 도덕적 질서를 파괴한다. 반면에 자비 없는 공의는 도덕적인 가혹성으로 전락한다.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사랑은 구속의 경륜의 지반이 되어 있다.

시은소 위에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세기나(shekinah)라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2. Christ

구약성경에서 고대 속죄소가 이스라엘에게 적용되었듯이, 신약성경에서 신자들의 속죄소는 예수 그리스도가 된다. 구약성경에서 속죄소에 뿌려진 피(16:14, 19)를 통하여 용서가 보증되었듯이 신약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하나님의 용서가 신자들에게 보증된다(참고, 3:25의 화목제물). 속죄소에 뿌려진 피와 십자가상에서 흘린 보혈은 통회한 범법자의 심령을 위한 형벌의 지불이 된다.

. 속죄(atonement) 어휘의 용례

A.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희생제물

속죄는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희생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죄를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주신 것은 죄를 덮고 죄 값을 지불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갈바리의 십자가상에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 대가를 치루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주님께서는 큰 기만자의 손아귀에서 포로 된 사람들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셨는데 이 큰 기만자야말로 하나님의 정부를 대항하여 꾸민 거짓말을 가지고 인류를 타락하게 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영원한 왕국의 충성된 신하로 부름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주장(主張)을 상실케 한 자였다. 우리 구세주께서 우리를 위한 속전을 지불하셨다. 아무도 사단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다”(1기별, 309).

과거 모든 희생 제물들과 상징적인 성소의 모든 봉사 의식들이 우리 인류를 위한 구세주의 희생을 예표했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너무나도 기이하고 놀라운 것이다. 바로 이 희생이 요구되었다. 인간의 영원한 복리를 확보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고난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될 때에 우리의 심령은 감동된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요구를 만족시키며 당신의 율법의 고결한 신성성에 일치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완전한 구원을 성취하실 것을 친히 약조하셨다”(1기별, 309).

히브리서는 구약성경의 계속적 희생과 그리스도의 단회적(once for all) 희생을 대비하고 있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 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10:11-14).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희생은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속죄, 용서 및 화목이 된다.

B. 완전한 회복의 과정

영어의 atonementat-one-ment의 합성어로 하나 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속죄는 죄인이 용서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종국적으로는 영생에 참여한 완전한 과정을 뜻한다.

구약에서의 희생제도 표상에서 먼저 (1) 매일 속죄가 있고, 그 다음에 (2) 연례적 속죄가 있었듯이, 그 원형에서도 먼저 그리스도의 갈보리에서의 희생의 속죄가 있고, 그 다음에 하늘성소에서의 십자가 속죄의 적용인 중보 사역 단계가 있다. 십자가상에서의 속죄 희생의 축복이 되는 다음 단계인 하늘성소에서의 중보 속죄의 필요 요건이 된다.

속죄 과정에는 희생(sacrifice)과 중보(mediation)이라는 2대 분야로 구성 및 전개로 되어 있다. 2대 분야는 종국적인 회복을 지향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고 하늘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고 계신다.

C. 속죄 의미 요약

속죄는 먼저 좁은 의미에서 속죄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이루신 희생을 의미하고, 그 다음에 하늘성소에서 행하시는 중보로 확장 포함하며, 종국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시 완전한 회복까지도 전망하고 있는 과정이다.

, 속죄는 희생제물(sacrifice) - 중보(mediation) - 회복(restoration)의 전개 과정이다. 속죄는 이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인격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 속죄의 필요성

속죄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에는 상반된 견해들이 제기되어 왔다.

A. 속죄의 필요성에 대한 제 견해들

1. 그리스도의 죽음은 속죄가 아니다. 따라서 속죄는 필요 없다. 나님의 공의가 충족될 필요가 없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에는 사법적 요소가 없다. 이런 시각을 지닌 자들은 소지니파(Socinians), 자유주의 신학자들 등이다.

2. 그리스도의 죽음은 속죄였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 없었다. 하나님은 법적 요건을 이완시키거나 율법을 바꾸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세 Duns Scotus 唯名論者, H. Grotius, Arminians 등의 지론이다.

3. 그리스도의 죽음은 속죄였다. 그리고 그것은 가설적으로 필요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런 방식으로 구원을 작정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길도 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방법을 정하였으니 필요하다. 이는 Athanasius, Augustine, Aquinas, Thomas Godwin, John Ball, Thomas Blake 등의 시각이다.

4. 그리스도의 죽음은 속죄였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Iraeneus, Anselmus 등이 이런 입장에 서 있었다. 예컨대, 하나님은 자기의 명예를 절대로 탈취 당할 수 없기 때문에 속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았다.

5. 그리스도의 죽음은 속죄였다. 그리고 그것은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작정의 결과에 따라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결과적 절대필요론). 이는 Reformed Theology, John Murray 등의 주장이다. 이 견해는 공의 만족과 대속론 강조가 있지만 예정론과 밀착된 문제점이 있다.

6. 그리스도의 죽음은 속죄였다. 그것은 성소에서의 제사장의 중보 활동을 위하여 절대 필요하였다. 이 견해는 성소 모형론에 토대를 두고 있다. 십자가의 죽음은 희생제물로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의 중보 사업의 기초가 된다. 범법으로 인한 죄책 처리를 위한 대속과 공의 만족은 절대로 필요하다. 속죄는 사람의 회복, 루스벨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적 정복과 승리와 미래적인 회복까지도 포함한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우리의 죄가 용서 받는 기술적인 길만이 아니라 그것은 범죄의 치유와 영적 건강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치유책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 위에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성품에도 있게 할 하늘이 정한 방편이다 (6BC 1074).

B. 속죄가 필요한 근거

1. 하나님의 의

속죄는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의로우심 때문에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더럽히는 것을 간과하실 수 없다.범죄를 처리하지 않고는 죄책을 해결할 수 없다.

34:7

14:18

2. 하나님의 신실성(veracity)

속죄의 필요성은 하나님의 신실성에 의하여 결정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불순종의 결과는 사망이라고 작정하셨다.

2:17

18:4

6:23

3. 죄의 성질

죄는 단지 도덕적 약함이 아닌 하나님의 법을 범한 것이다. 그리하여 죄는 죄책으로 이어진다. 죄책은 인간을 하나님의 법에 대한 부채자로 만든다. 그리하여 대리적 속죄가 필요하다.

요일 3:4

2:25-27

4. 생명의 회복

생명이 회복될 수 있기 위하여서 속죄가 필요하다. 이 회복은 도덕적 원칙(3:21)을 통하여 되는 것이 아니고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인격을 통하여 되는 것이다.

10:10

11:28-30

5. 그리스도의 희생

그리스도의 희생- 바로 이 사건 속에 속죄의 필요성이 담겨 있다. 죄된 인간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희생 없이 가능하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그 쓰라린 고통 중에 남겨두고 부끄러운 죽음을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 객관적 속죄와 주관적 속죄

그리스도의 희생의 참 뜻과 그 목적을 보다 더 잘 포착하기 위하여서는 성경에 나오는 대로 속죄의 주관적인 면과 객관적인 면을 모두 고찰하여야 한다.

A. 주관적인 면--속죄는 하나님의 사랑의 현현이다. 죄된 인간의 마음을 부수고 사랑의 불을 켜도록 고안되었다.

B. 객관적인 면--속죄는 죄에 대한 심판,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으로 죄에 대한 지불, 속죄(화해) 및 죄의 제거가 다 포함되어 있다.

.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로서의 속죄

A. 속죄는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계시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한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1:2). 아들은 통한 말씀은 그리스도의 삶, 고난, 죽으심이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품성, 및 본성의 최고의 계시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사도 바울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사도 요한도 마찬가지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8).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15:9).

B. 속죄는 아들의 사랑의 계시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사랑의 계시이다.

갈보리는 아들의 사랑의 계시임과 동시에 아버지의 사랑의 계시로 보아야 올바로 이해될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이들의 자기희생을 결정하는 일을 주도하시고 아들의 고난에 참여하셨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8-19).

아버지께서는 골고다에서 구경꾼으로만 서 계셨던 것이 아니다.

그 짙은 어두움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가리워졌다. 그분은 어두움으로 장막을 만드시고 그분의 영광을 인간의 눈으로부터 감추셨다. 하나님과 그의 거룩한 천사들은 십자가 곁에 계셨다. 아버지께서는 아들과 함께 계셨으나 그분의 임재는 나타나지 않았다. 만일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속에서 번쩍였다면 모든 관중들은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또 그리스도께서는 그 무서운 시간에 아버지의 임재하심에서 오는 위로를 받지 못했다. 그분은 홀로 포도즙틀을 밟으셨으며 백성 가운데 그분과 함께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짙은 어두움으로 인간으로서의 당신의 아들이 당하는 마지막 고민을 가리우셨다. 고통 중에 있는 그리스도를 본 모든 사람들은 그분의 신성을 확신했다. ”(소망, 753-75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C. 속죄의 기능

그리스도의 삶, 고난, 및 죽으심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는 죄인의 마음에 사랑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도록 고안되었다. 죄의 형벌과 권능으로부터 구원하시고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참된 사랑의 소식을 듣고 죄인의 마음은 감동을 받고 회개의 반응을 하게 되어 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15:13).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2:14)

위의 성경절들은 갈보리의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가 죄인의 마음에 도덕적 감화를 주는 점을 확실히 강조하고 있다.

D. 이 견해의 한계

1. 죄인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사랑의 계시는 속죄의 한 국면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이끄시는 권능과 도덕적 김화력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것은 속죄의 한 국면에 불과한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덕적 감화 기능은 십자가 속죄의 기본적인 동인(cause)으로 보기보다는 그 결과(effect)로 보아야 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기본적인 목적은 객관적인 죄와 죄책의 실재 문제를 다루는 데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전 15:3).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2.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뿐만 아니라 공의(justice)도 보여 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 값의 지불이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가 사람들에게 나타났지만 그 자비가 공의를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성품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타락한 인류에게 알맞게 일점 일획이라도 변경할 수는 없는 것이다. ”(소망, 762)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자비에 못지 않게 그분의 공의에도 표현되어 있다. 공의는 그분의 보좌의 초석이며 그분의 사랑의 열매이다. 진리와 공의로부터 자비를 분리시키려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의 의가 평화의 적이 된다는 것을 밝혀 보려고 애써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는 이것들이 서로 분리될 수 없도록 단단히 결합되어 있으므로 전자는 후자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85:10).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의 자비를 손상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죄는 용서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율법은 의로우며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셨다. 율법에 대한 사단의 비난은 반박을 당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그분의 사랑의 명백한 증거를 주셨다.”(소망, 762).

십자가의 사랑의 계시와 인간의 반응은 인간의 불순종에 대한 형벌 지불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십자가가 단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면 그토록 잔인한 희생의 방법이 꼭 필요하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사랑이 죽음을 통하여서만 현현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랑과 공의의 양면의 현현이다.

3. 구원이 단지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를 통하여서만 오는 것이라면 자연인이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내재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속죄의 가치와 기능을 인간의 반응에 관련된 도덕적 감화로 국한시키는 일은 인간 본성의 타락성을 가리키는 성경 메시지와 (3:23) 죄의 삯으로부터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구원의 필요성을 의식케 하는 메시지(6:23)에 반한다. 구원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속상(expiation)으로 가능하지 단지 신적 사랑의 계시라는 것을 통하여 되는 것이 아니다.

. 죄인을 위한 대리적 희생(substitutionary sacrifice, 대속사)으로서의 속죄

A. 대리 희생

성경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이 단지 한 친구의 동정적인 고통 정도로만 보고 있지 않다. 그것은 죄인을 위한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적인 고통이다. 이 대리적 희생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속죄제(sin offering)

(1) 구약성경

a. 희생제도--구약성경에서 성소의 제물은 죄에 대한 대리적 속죄의 성격과 그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속죄 제물은 그 본질상 대리적 희생물이다(16:15).

매일 드리는 봉사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개인들을 위하여 수행하는 봉사였다. 회개하는 죄인은 자기의 제물을 성막 문으로 가져와서 그 희생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의 죄들을 고백하였다. 이 상징적 행위에 의하여 죄는 그에게서 흠없는 제물에게 옮겨졌다. 그는 자기의 손으로 그 짐승을 죽였고 제사장은 그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 죄인이 범한 신성한 율법이 들어있는 법궤 앞 휘장에 뿌렸다. 이 의식에 의하여 그 죄는 피를 통하여 상징적으로 성소에 옮겨졌다. 어떤 경우에는 피를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고, 모세가 아론의 아들들에게 명령하여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10:17)고 말한 것처럼 그 고기는 그때에 제사장이 먹어야 하였다. 이 두 의식은 다같이 죄가 회개하는 죄인에게서 성소로 옮겨짐을 상징하였다. 이런 것은 연중 매일 진행되는 봉사였다 ”(화잇주석, 16:1-28).

그분은 우리의 슬픔을 지셨고, 그분은 우리의 죄 때문에 비애(悲哀)에 처하게 되셨다. 그분께서는 친히 속죄제물이 되셔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있게 하셨다”(4증언 374).”(화잇주석, 4).

b. 죄 전가--참회하여 고백한 이스라엘의 죄가 죄인을 대신하여 죽은 희생 동물에게 전가되었다. 동물의 이 대리적 성격은 대신 죽은 생명의 피를 통하여 속죄를 한다.

c. 피의 속죄--“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17:11).

하나님의 아들의 피는 희생 제물의 피로서 표상되었고, 하나님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뚜렷하고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그 아들의 피를 흘림으로써만이 속죄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피는 거룩하였다(사인즈 1880. 7. 15).”(화잇주석, 17:11).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9:22).

d. 대리 수난--“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3:5)

(2) 신약성경

a. 표상적 희생제도의 성취--신약성경은 반복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구약성경의 대리적 희생제물의 원형으로서 그 성취가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5:2).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9).

b. 둘째 아담 그리스도의 대리와 대표--둘째 아담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고 대표하여 죽으셨다. 어떤 사람은 첫 아담을 대신하여 우리를 대표한다고 하지만 성경 본문을 그렇지 않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딤전 2:6).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9:2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3:13)

c. 속전(ransom) 사상--속전 개념은 무엇보다도 더욱 그리스도의 대속사의 강력한 논증이 된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d. 화목제물 사상--로마서 3:23-26에 나오는 화목제물 사상은 대속론적으로 풀어야 한다.

2. 우리 죄를 지심

(1) 우리의 죄의 전가(imputation)

그리스도의 대리적 희생은 우리의 죄가 그에게 담당시킨 것이 된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laid upon Christ)”(53:6).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그리스도의 대리적 희생은 그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것(bearing)을 의미한다.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53:12).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9:28).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도덕적으로 죄책이 있는 존재가 되어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고 하거나 그의 인성이 죄의 영향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대리자요 보증인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우리 모두의 죄가 놓여졌다. 우리를 율법의 정죄에서 구속하시려고 그분은 범죄자로 헤아림을 받으셨다. 아담의 모든 자손의 죄가 그분의 마음을 눌렀다. 불법으로 인하여 생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하심 곧 그분의 무서운 진노가 당신의 아들의 영혼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소망, 753).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벧전 2:22).

(2) 짊어지신 것-죄의 형벌

죄는 불법이다(요일 3:4).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케 하며 사망의 처벌이라는 법적인 결과를 당하여야 한다(6:23). 인간은 이 법적 요구를 충족할 수 없다.

율법은 의, 즉 의로운 생애, 완전한 품성을 요구하지만 인류는 그 요구에 미칠 수 없다. 인류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으로서 지상에 오셔서 거룩한 생애를 사시고 완전한 품성을 계발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받고자 하는 모든 자들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신다. 그분의 생명은 사람들의 생명을 대신하신다. ”(소망, 762).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는 불변적이다.

그러자 사단은 또 다른 속임수를 내놓을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가 그분의 공의를 파괴시켰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율법을 폐기시켰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만일 율법을 변경시키거나 폐기시킬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율법을 폐기할 수 있다면 범죄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이 세상은 사단의 지배 하에 있게 될 것이다. 율법은 결코 변함이 없으며 인류는 이 교훈을 순종함으로써만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확립하신 바로 그 방법을 사단은 율법을 파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소망, 762-763)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짊어지셨다는 것은 우리가 처벌 받아야 하는 법적인 의무를 짊어지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객관적인 죄에 대한 책임인 처벌을 짊어지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벧전 3:18).

(3) 둘째 사망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은 우리가 장차 당할 둘째 사망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신 것이다. , 죄 값의 지불이다.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영원한 분리를 딤당한 것이다. 신자들이라도 첫째 사망을 피할 길이 없으며, 그 첫째 사망은 복된 소망을 기다리는 죽음의 수면이어서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가 아니다.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2:9).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8:52).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22:13). 여기서 바깥 어두움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를 뜻한다.

우리의 대리자요 보증인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우리 모두의 죄가 놓여졌다. 우리를 율법의 정죄에서 구속하시려고 그분은 범죄자로 헤아림을 받으셨다. 아담의 모든 자손의 죄가 그분의 마음을 눌렀다. 불법으로 인하여 생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하심 곧 그분의 무서운 진노가 당신의 아들의 영혼을 전율하게 만들었다”(소망, 753).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히 미워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자기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범죄한 인류를 위하여 자비가 더 이상 탄원하지 않게 될 때에 죄인이 느끼게 될 고민을 느끼셨다. 그분이 마신 잔을 그처럼 쓰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것은 인류의 대속자인 그분에게 아버지의 진노가 쏟아지게 만든 죄에 대한 의식이었다.”(소망, 753)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범한 자를 하늘에 데려가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가 받을 충분하고 최종적인 형벌이 되는 둘째 사망을 당해야 한다.”(1증언, 533).

“With His life Christ has purchased every human being. He died a cruel death to save human beings from eternal death. ”(SD, 230).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히 미워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자기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범죄한 인류를 위하여 자비가 더 이상 탄원하지 않게 될 때에 죄인이 느끼게 될 고민을 느끼셨다. 그분이 마신 잔을 그처럼 쓰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것은 인류의 대속자인 그분에게 아버지의 진노가 쏟아지게 만든 죄에 대한 의식이었다.”(소망, 753).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7:46)는 아버지와의 영원한 분리와 관련된 표현이다.

  3. 전치사 hyper(for)와 anti (in place of)의 용례에 나타난 대리적 희생

hyper panton에서 hyper 에는 “~대신에(in place of, instead of)” 의미가 담겨 있다(고후 5:14; 15:13). anti pollon 에서 anti 는 마찬가지로 “~대신에(in place of)” 또는 “~위하여(in behalf of)”를 뜻한다(10:45).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antilutron)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딤전 2:6).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hyper panton) 속전(antilutron)이 된다. 이 본문에서 hyper(for)와 anti(in place of)가 동의어적이다.여기서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 점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유익을 위할 뿐만 아니라 죄인을 대신하여 고통을 당하시고 죽음을 당하였다는 사실이다. 

4. 대속론에 대한 비판 논리와 그 문제점

그리스도의 대속론을 배척하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1) Vincent Tayler(1887-1926)의 비판--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설명하는 중에 대속적 전치사 anti (instead, in place of)를 사용하지 않고,hyper (on behalf of, for the sake of)를 사용하고 있다. 디모데전서 2:6은 바울이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Vincent의 견해는 두 전치사 용례가 상호교환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2) C. H. Dodd--하나님의 사랑과 진노는 조화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자기의 진노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피를 요구하는 일은 가혹하고 무자비하다. 하나님을 이 무자비한 만족을 위한 무고한 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분으로 묘사하므로 그를 유죄자로 보게 한다. 속죄의 대상은 인간과 그의 죄이지 하나님과 그의 진노가 아니다. Hilasterion은 속죄를 뜻하는 expiation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진노를 인간의 분노에 대입하여 해석한 소치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은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3) 죄책 전가의 부도덕성--무죄한 분이 악인을 위하여 잔인한 고통을 당하는 일은 무리하고 비법적인 일이다. 개인적인 용서는 대치 개념을 배척한다. 그래서 속죄의 필요성을 배척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자원하여 죄책의 전가를 받은 일을 용납하는 것은 무리 비법이 아니다. 죄 값은 사망이다. 그 사망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속죄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 선 심오한 의미가 들어 있다.

위와 같은 대속론 비판 논리는 하나님의 율법과 공의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한 성부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자원하는 희생 제의를 몹시 주저하였다. 그러면서도 인간 구원을 위하여 성부와 성자 사이의 평화의 의논에서 합의한 사항으로 사랑의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계시로서 속죄

A. 죄에 대한 심판

성경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자주 하나님의 진노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계시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당신의 아들의 죽음을 요구한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3:36).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1:18).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5:9-10).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5:6)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10-2:).

B. 하나님의 진노

성경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비이성적이고 변덕적인 정서적 분출과는 다르다.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함의 반응이며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사법적인 법관의 진노이다(5:6). 하나님의 진노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불쾌이며 정죄이다.

C. 죄의 대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도덕적인 완전성의 비타협적인 심판을 나타낸다.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 대까지 보응하리라”(34:7; 참고 민 14:18).

구원은 공의를 이완 시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도래한다. 죄 용서는 십자가상에서 하신 심판 없이 가능하지 않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심판의 처벌을 당신 자신이 지신 것이다. 사랑과 공의는 하나님 안에서 공존한다. 만일에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정죄)가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의 도덕성도 견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는 단지 잔인하고 공의롭지 못한 비합리적인 하나님의 전시에 불과할 것이다.

D. 정죄에서 칭의로

그리스도의 속죄는 죄인에 행사하는 심판에 있어서 변화를 유발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죄인은 정죄와 영멸의 상태에서부터 칭의와 화목의 신분으로 변화가 있게 된다.

.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킨 그리스도의 속죄

A. 형벌의 지불

그리스도의 희생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범법행위에 대한 율법의 형벌을 지불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공의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이완시키는 것으로 죄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의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의로운 요구를 충족시킴으로 죄를 용서하신다.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의 만족 기능을 묘사하는 expiation, ransom, redemption, purchase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여러 가지 언어 군을 통한 그리스도의 사역을 묘사하는 내용을 참고하라.)

B.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지불된 값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죄의 멍에에서 해방시키고자 값을 지불하셨다. 그 값이 사단에게 지불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지불한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는 인간을 하나님의 공의로부터 속량한다. 대가의 지불 없는, , 하나님의 공의 만족 없이 죄를 용서하는 일은 죄를 심각성을 극소화시킨다. 죄인을 죄의 형벌(3:13)과 죄의 권세(2:14)에서 구속하고자 한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으심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 준다. 하나님의 통치의 도덕적 완전성과 그의 의의 절대성은 이 같이 죄의 심각성을 전제로 하고 이에 대한 공의의 충족 여하를 통하여 확인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다함이 없는 주제이다. 그 의미는 부요하다. 그 부요한 의미를 성서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 및 사법적 배경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메타포로 묘사한 것은 죄의 대가성 및 심각성을 설명하고자 한 의도가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거룩함과 공의는 인간의 불순종을 간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랑의 공의로 동기화 된 사건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 화목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로서 십자가 속죄

. 그리스도의 중보 기능을 위한 자격 요건이 되는 십자가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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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