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자 요한의 메시지와 삶의 목표

(마가복음 1:2-8(참고, 마 3:1-4; 눅 3:1-18)

I. 때와 시대적 배경

예수께서 봉사 활동 시작하기 6개월 전, AD 27 봄 유월절 계절. 누가복음에서는 Tiberius 15(AD 27 가을~28 )이라고 하고 있다.

당시 시대상은 혁명 전야, 폭동 전야 분위기이었다. 로마 총독이 통치를 시작하고 이교 관행들을 도입하여 수많은 유대인 애국자들이 반대하다가 피를 흘렸다. 백성들은 강력한 통치자의 등장을 열망하고 있었다.

II. 요한의 출현

요한의 선지자성 눅7:28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11:9 “선지자보다 큰 자

요한이름의 뜻-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III. 메시야 등장 예언 인용

A.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1:1)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기쁜 메시지(소식)이다. 마가는 복음의 시작을 침례자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을 예고한 구약의 예언으로부터 시작한다.

B. 구약성경의 메시야 등장 예언 인용

1. 이사야의 예언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말라기 3:1, 출애굽기 23:20과 이사야 40:3을 하나로 결합시킨 예언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NKJV선지자 이사야”(1:2)라고 하지 않고 선지자들이라고 표기하고 있어 사본들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1:2-3).

2.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before Your face-NKJV) 보내노니 - 말라기 3:1과 출애굽기 23:20에 나온다. “나의 사자Malachi이지만 여기서는 고유명사로 사용하지 않고 나의 사자라고 하여 일반명사로 사용하면서 그 일차적인 침례자 요한에게 적용시키고 있다. 여호와께서 침례자 요한에게 그 사자(언약의 사자-예수 그리스도)”(3:1)의 강림을 알리며 주의 앞에서 길을예비한 사자가 되게 하셨다. 흠정역 (NKJV)이 말 3:1당신의 얼굴 앞에(before Your face)”와 사 40:3주의 길(the way of the LORD)“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 되심을 말해주고 있다.

이사야 40:3Ebed Yahweh (42:1-9; 49:1-13; 50:4-11; 52:13-53:12)의 도입부에 속한다.

IV. 2 엘리야 요한의 메시지 (은혜의 왕국 임박 선포)와 삶

A. “광야의 외치는 소리

1. 광야- 유대 광야로 사해 서편과 팔레스타인 중앙 산맥 끝자락 암석 불모지대 및 요단 골짜기 저지대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3:3)

광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 인도 받는 곳, 가나안을 위하여 준비하는 곳이었다. 광야는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고독하고 쓸쓸한 곳이었지만 하나님을 만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요한은 자신이 사 40:3에 나타난 그 소리(메시지)이었다(1:23). 요한은 이 광야에서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요한의 침례는 죄 용서를 위한 회개의 침례이었다. 회개는 빗나간 삶을 힘의 원천 하나님께 되돌아가는 것,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일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B. 침례자 요한의 메시지1 (회개의 침례) 1:4-5

침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1:4-5).

회개- metanoeo 마음의 변화, 달리 생각하는 것, 목적의 변화를 뜻한다.

참된 회심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일이다. 자기의 내면에 누적되어 온 죄악을 슬퍼하며 고백하여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모습을 똑바로 인정하는 첫 단계이다

. 그리고 상처를 주고 해악을 끼친 사람에게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고 더 나가서는 하나님에게 고백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하여 주의 길을 예비할 한 사자로 요한을 부르셨다. 요한은 단호하게 죄를 견책하는 메시지를 전하였다. 누가는 그의 사명과 사업에 대하여 이렇게 하였다.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1:17).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요한이 침례 베푸는 자리에 왔을 때에 요한은 저들에게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7-12).

요한의 음성은 마치 나팔 소리처럼 크게 울렸다. 그의 사명은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58:1)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학문을 배우지 않았다. 하나님과 천연계가 그의 스승이었다. 자신의 음성을 고대 선지자들의 음성처럼 담대하게 외치고 타락한 민족에게 회개를 명할 수 있는 그러한 자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기별을 듣기 위하여 광야로 나갔다. 불학 무식한 어부들과 영세민들이 주위의 여러 지방과 가깝고 먼 여러 지역에서 모여들었다. 로마 군사들이 헤롯왕의 병사를 떠나 그의 기별을 들으러 왔다. 군대 지휘관들이 긴 칼을 옆에 차고 폭동과 반역의 기미가 엿보일 때에 그것을 진압하기 위하여 그 자리에 와서 지켜보고 있었다. 탐욕으로 가득 찬 세리들이 사방에 있는 여러 지역에서 모여들었으며 거룩한 척하는 제사장들이 산헤드린에서 왔다. 모든 자들이 마치 홀린 사람들처럼 그의 기별을 들었으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냉담하고 무감각한 그 시대의 희롱자들이 빈정거리며 저들의 죄에 대한 감각으로 마음에 깊은 찔림을 받은 채 돌아갔다.

침례 요한은 비천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공개적으로 죄를 견책하였다. 그는 왕들과 귀족들이 기별을 듣거나 거부하거나 간에 저들에게 진리를 선포하였다. 그는 개인적으로 말하였으며 노골적으로 말하였다. 또한 그는 산헤드린의 바리새인들이 순결하고자 자원하는 순종의 의를 따르지 않고 저들의 신앙이 외식으로 가득 찬 것임을 견책하였다. 그는 헤롯왕이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에 관하여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14:4)고 말하였다. 또한 요한은 그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각자의 행실을 따라 심판하실 때에 있을 장래의 천벌에 대하여 말하였다.

세리들도 침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3:12)라고 물었을 때 그가 세금을 버리고 세무소를 떠나라고 말하였는가? 아니다. 그는 저들에게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3:13)고 말하였다. 만약 저들이 그 때까지도 세리들이었다면 진리의 정확한 비중과 균형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들은 부정직과 압박을 위주로 하는 그런 일들을 개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3:14).

C. 메시지에 향한 반향 -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

당시에 유대교로 개종하는 이방인들에게 침례가 베풀어졌다. 요한의 침례는 이방인 같이 되어 버린 유대인들이 죄를 자복하는 내적 회개를 증명하는 외적 정결의식이었다. 그것은 파멸과 갱신이라는 깊은 종말론적 함의가 담겨있었다.

D. 침례자 요한의 삶 1:6

요한은 약대 털을 입고 허리에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1:6).

소박하게 살아가는 광야가 자기가 살아야 할 곳이다. 죄악의 문명적인 삶을 거부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들의 나갈 방향이다. 메신저는 전할 메시지를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다. 계시와 섭리의 교훈을 얻기 위하여 격리된 광야의 고독은 의심과 불신과 부정이 판을 치는 사회를 피하는 길이다.

1. 요한의 의상은 엘리야의 의상의 닮은꼴로 옛날 선지자의 개혁을 회상케 하는 표가 되었다. 요한이 옛 선지자들의 후계자임을 나타낸다(소망, 102),

2. 요한의 단순한 복장은 그 당시에 있었던 낭비와 왕궁에서 입었던 부드러운 옷”(11:8)에 대한 견책, 사악한 세상에 대한 견책, 화려한 사치 풍조에 대한 견책이 되었고 그의 의상은 이 세상의 악에 항거하는 그의 기별에 부합되었다.

3. 그의 음식은 메뚜기(11:22)와 야생 석청이었다(19:10). 메뚜기는 그의 의상과 음식은 간소함과 검소함이 묻어난다. 그리스도인은 사치와 흥청대는 삶을 배척한다.

4. 침례 요한은 나실인으로 살며 절제하는 삶이었다. 그는 광야에서 단순성, 자기부정 및 절제교육을 받았다(광야 교육).

5. 메뚜기 정체

요한이 메뚜기[헬라어 아크리스(akris)의 복수 아크리데스(akrides)]와 석청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을 의미하는지 혹은 이것이 그가 먹었던 음식들 중 주된 것이었음을 말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메뚜기와 석청은 단순히 광야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음식을 대표하며, 이 표현은 그가 사람들과 내왕이 드문 고독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았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증표가 된다.

곤충 메뚜기는 중동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음식 중 하나였다. 어떤 종류의 메뚜기들은 정결한 음식이어서(11:22) 유대인들이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초기 기독교 시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널리 퍼진 명확한 전승에는 아크리스라는 단어는 곤충이 아닌 야생 콩 캐롭을 두고 한 단어이었다.

팔레스타인을 포함하여 지중해 연안 지방에서 캐롭 나무(Ceratonia siliqua)는 광범위하게 경작되기도 하였다. 늦봄에 익는 열매는 리마콩과 비슷한 평평한 모양의 깍지 속에 들어 있으며 깍지의 길이는 약 15~23센티미터이다. 깍지와 콩은 날로 또는 요리해서 먹을 수 있고 가루로 빻아 빵을 만들기도 한다. 말려서 꽤 오랫동안 보관할 수도 있다. 특별히 맛있지는 않지만 캐롭은 영양가가 높고 오랫동안 근동 지역의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주식이 되었다. 탕자가 돼지에게 먹였던 쥐엄 열매가 캐롭 깍지였다(15:16 주석). 게다가 영어에서 캐롭 콩은 성 요한의 빵으로 불리기도 한다. 캐롭 깍지를 가축의 사료로 공급하는 영국의 곡물 상인들은 그것을 “locusts”라고도 부른다.

침례자 요한이 먹었던 메뚜기”(locusts)가 캐롭 나무 열매일 것이라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a. 곤충 메뚜기는 양분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다. 하스팅의 종교와 윤리 백과사전(Encyclopaedia of Religion and Ethics)“Locust” 항목에는, “곤충 메뚜기는 비록 꿀(석청)과 함께 먹는다 해도 사람의 생명을 지탱하기에는 영양가가 너무 낮고 불충분하다.”라고 되어 있다. 요한이 메뚜기를 주로 먹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그 메뚜기가 곤충 메뚜기이기보다는 캐롭 나무 열매였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 캐롭 콩이 근동의 여러 지역에서 지금까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식품이 되어오고 있다.

b. 요한이 먹었던 음식이 곤충 메뚜기가 아니라고 본 최초의 무리는 수리아의 유대계 그리스도인인 에비온파 사람들(Ebionites)이었다. 엣세네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다소 검소하고 채식 생활을 하였다.

c. 헬라 교부들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나오는 아크리스(akris)를 메뚜기 곤충으로 보지 않았다. 크리소스톰의 설교로 잘못 알려진 스가랴의 예언에 대한 설교’(AD 4세기)에는, 엘리야와 침례자 요한을 다음과 같이 비교한 것이 나온다. “한 사람은 산 속에서, 다른 사람은 광야에서 일생을 보냈으며, 한 사람은 까마귀가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고, 다른 사람은 식물메뚜기(아크리다스 보타논[akridas botano-n])를 먹었다.”

d. 캐롭 나무의 열매에 붙여진 성 요한의 빵이라는 이름이 성지에서 돌아온 중세 시대의 순례자들에 의해 유럽의 여러 나라의 언어에 도입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옥스포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에 의하면 성 요한의 빵”(St. John’s bread)1591년판 영어·스페인 사전에서 캐롭”(carob)과 동의어로 나타난다.

e. T. K. 체네(T. K. Cheyne) 같은 탁월한 성경학자는 침례자 요한의 음식이 캐롭 콩과 석청으로 이루어졌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f. 엘렌 화잇은 요한이 채식주의자였다고 한다(교회증언, , 62; CH 72).

E. 침례자 요한의 메시지2 (능력 많으신 이 등장 예고) 1:7-8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시리라”(1:7-8)

오시는 메시야에게 민중들의 마음을 돌리게 하는 일이 요한의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구름처럼 몰려오는 민중들에게 자신을 비하시키며 메시야를 높였다.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것은 도덕적인 가치이다. 사랑과 순결이 하나님께서 가장 귀중히 여기시는 속성이다. 요한이, 산헤드린이 파견한 사자들 앞에서나 백성들 앞에서나, 자신의 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영예를 구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예수를 약속하신 분으로서 가리켰을 때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위대하였다. 그리스도의 봉사를 보고 느낀 그의 이기심 없는 기쁨은 일찍이 사람이 나타낸 것 중에서 가장 숭고한 형태의 기쁨을 보여 준다.”(소망, 219).

요한의 메시지를 불순종하는 백성들을 책망하고 경고하며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일이었다. , 종말론적 심판의 날에 대비하여 준비하도록 윤리적 회개 및 삶의 변화로 이끄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11:9-14

V. 3엘리야가 전해야 할 기별-영광의 왕국 임박 선포

A. 하나님의 어린양(7:14; 14:1-6)

B. 하나님의 계명(14:12)

C. 예수의 믿음 (14:12)

침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갖고 나아가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정의로운 자의 지혜를 향해 백성들을 돌이켰다. 그는 그리스도의 두 번째 나타나심을 위해 길을 예비하고자 백성들 앞에 제시해야 할 신성한 진리를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이 말세에 살고 있는 이들을 대표하였다.”(3증언, 61-62)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여기에 선지자는 사업의 특성에 대해서 진술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길을 예비하고자 하는 자들은 요한이 그리스도의 초림을 위해 길을 예비하고자 엘리야의 심령으로 왔던 것처럼 충성스러운 엘리야로 대표되어 있다. 개혁의 대주제가 뒤흔들어서 대중의 마음을 휘저어야 한다.”(3증언, 62)

침례 요한이 한 것과 같은 그러한 사업과 사명을 이 마지막 날에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택하신 기구들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에게 기별들을 주셨으며 모든 사람들이 당신께서 보내시는 권고와 경고의 말씀에 유의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공중 봉사에 앞서서 보내진 기별은 회개하라. 서기관들이여, 회개하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여 천국이 가까왔느니라”(3:2)는 것이었다. 우리들이 전해야 할 기별은 평안하다 안전하다”(살전 5:3)는 성질의 기별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고대하는 백성으로서 우리들에게 해야 할 사업이 있고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4:12)고 전해야 할 기별이 있다. 우리들은 표준을 높여야 하며 셋째 천사의 기별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들이 전해야 할 기별 역시 침례 요한의 기별처럼 단도직입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는 죄악 때문에 왕들을 견책하였다. 그는 헤롯왕의 간음죄를 견책하였다. 비록 그의 생명이 위기에 처해 있었을지라도 진리는 그의 입술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시대에 이루어야 할 우리들의 사업은 충성되게 수행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홍수 때에 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것으로 상징되었다. 고대 세계 주민들의 죄악상은 분명히 표현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6:5)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쾌락과 방종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는 인간들에 대하여 싫증을 느끼셨다. 저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권고를 구하지 않았으며 당신의 뜻을 행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저들은 계속적으로 저들 자신의 마음의 상상력을 따랐으며 하나님의 견책하심이 저들에게 임하였으며 이 지상에는 강포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6:6, 12, 13).

이 지구 역사상 바로 이 때에 수행해야 할 특별한 의무들이 있으며 전해야 할 특별한 견책들이 있다. 주님께서는 견책과 경고의 기별이 없이 당신의 교회를 버려두시지 않으실 것이다. 죄들은 유행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죄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증한 것들이다. 죄들은 겉 보기에 윤기가 흐르며 핑계거리를 제공하고 변명을 일삼는다. 거짓된 이론들과 거짓된 생각들을 이끌어들여 하나님의 백성의 정신을 혼란시키고 무엇이 올바른 원칙인지 깨닫지 못하도록 저들의 감각을 무디게 하는 자들에게 우정의 뜻을 표한다. 이리하여 들은 바 권고들과 견책들에 대하여 양심은 무감각하게 된다. 회개를 명하는 빛이 주어졌으나 인간적인 계획과 인간적인 발명들로 말미암아 그 빛은 불신과 반대의 어두운 구름 속으로 완전히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생동하는 열성이다. 목사들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이 다소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저들이 가진 바 재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저들이 하는 말을 가장 간결하고 가장 단순한 언어로 구사한다면, 그리고 저들이 겸손한 정신과 신중성으로 겸비하게 행하며 하늘의 지혜를 구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한다면, 만약 저들이 그리스도를 위한 사랑과 주님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을 위한 사랑을 지배적인 동기로 삼는다면, 우수한 능력과 재능을 가진 인물들까지라도 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저들이 증거하는 진리의 단순성 가운데 아름다운 매력이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이 일찍이 알지 못했던 가장 위대한 교사이시다.

침례 요한은 랍비의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 그러나 왕들과 귀족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로마의 병사들과 지휘관들 및 궁전의 모든 예의범절을 배운 자들, 교활하고 타산적인 세리들, 세상의 명망이 높은 인물들, 이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들었다. 저들은 그의 단순한 말을 신뢰하였고 저들은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3:14)라고 그에게 물어보았다.

열성이 필요함

그리스도께서 하늘 구름을 타시고 재림하시기 직전인 이 시대에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의 큰 날에 설 백성을 준비시킬 열렬한 인물들을 부르신다. 책들을 연구하기 위하여 다년간 세월을 보낸 사람들은 저들의 생애 가운데 이 마지막 때에 가장 긴요한 열렬한 봉사의 정신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저들은 단순하고 정직한 증언을 전하지 않는다. 목사들과 학생들 중에는 하나님의 영의 주입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있다. 전심을 기울인 사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적인 열렬한 호소는 죄에 대한 각성을 일으킬 것이다. 학식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과 그분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의지하기보다 책에서 배운 지식을 더욱 의지하기 때문에 이 사업을 수행함에는 학자들이 필요치 않다. 오직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아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을 전파할 것이다.

경고의 기별이 하나님께서 견책하시려는 자들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고 생각하는 자가 있는가? 견책을 받은 자들이 분노하여 하나님의 사자에게 대적하려 들는지 모르나 저들이 대적하는 것은 그 사자에게가 아니라 견책과 경고를 주신 그리스도에게 대적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저들 자신의 그릇된 행동 과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이나 명분을 위태롭게 할 때에 저들이 견책의 음성을 듣지 않아서 될 것인가? 만약 그릇되게 행하는 자가 다만 그 영향을 그 자신에게만 미치고 사업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오직 그 자신만이 경고의 기별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 과정이 진리의 사업에 절대적인 피해를 입히고 영혼들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피해가 입혀진 범위가 큰 만큼 거기에 비례하여 광범위한 경고를 요구하신다. 증언의 말씀들은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분명한 견책과 경고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리자들을 통하여 이를 것인데 이 말씀들은 인간적인 수단에서 비롯된 말씀들이 아니요 저들에게 사업을 맡기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다. 만약 세상의 법정에서 소송 문제가 제기되어 하나님께서 그 재판이 성립되도록 용납하신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런 일에 솔선하여 나선 사람은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것을 막론하고 그 동기를 살피신다. 나는 주님께서 우리 형제들에게 정직하도록 가르치심으로 이 문제에 대하여 타협하지 말도록 기도하는 바이다. 하나님의 사업은 그런 일에 관여된 사람들로 말미암아 멍이 들고 손상을 입게 되므로 그런 일에서 하루 속히 손을 떼면 뗄수록 결과는 더욱 좋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단호한 충성심을 가진 사람들을 요구하신다. 당신께서는 위기의 때에 두 마음을 가진 자를 쓰실 수 없으시다. 주님께서는 그릇된 일에 저들의 손을 얹고 이것은 주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원하신다. ”(2기별, 150-153).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