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에서

윤리 : 2015. 3. 30. 16:52

I. 知不可而爲之者

(지불가이위지자) (論語 憲問)

안 될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을 두고 문지기가 평한 말이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석문 근처에서 묵을 때 문지기가 자로에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물었다. 자로가 대답했다. “공씨(孔氏) 댁에서 옵니다.” 그러자 문지기가 말했다. “바로 그 안 될 줄 알면서도 행하는 자 말이오?” 문지기의 말은 단지 그 한 사람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당시 사람들이 공자를 평가하는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각 나라가 전국 통일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시대에 공자가 부국강병책으로 내놓은 처방은 없고 시대착오적이고 현실성이 없어보이는 도덕과 윤리문제, 즉 사람의 도리인 를 제시하였다. 인이나 예가 지닌 이상이야 좋지만 당장의 현실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상이 아닌가. ‘삶의 어려움을 누그러뜨려주지도 못하고, 죽음의 두려움을 위로해주지도 못하는 자기 탐구와 자기 개혁의 힘든길이 인이나 예가 아니던가.

그 힘든 길을 가는 사람이 공자였다. 안될 줄 알면서도 행하는 사람이 공자였고, 아무리 바빠도 지켜야 할 것이 사람의 도리였다. 윤리, 도덕 이슈가 사람을 사람 되게 하여 경제, 정치 등 온 갖 문제들의 근본적인 처방이 된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나 오늘이나 공자를 매우 생뚱맞은 사람으로 보는 문지기 같은 사고 체계가 현실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풍토이다.

 

II. 博學而約取 厚積而薄發

(박학이약취 후적이박발) (소동파 稼說),

 

널리 배우고, 간략히 취하며, 두텁게 쌓되(많이 배우되) 적게 펼치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너무 아는 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을 꿰뚫어 보고 동서양의 사상을 아우르고 있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현학적으로 제시하는 시대에는 잘 맞지 않는 바보 철학과도 같은 말이다.

 

III.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숨기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해 숨긴다. 그 가운데 정직함이 있는 것이다.) (논어, 자로)

 

葉公(섭공)이 어느 때, 공자를 향해서 "우리 영내에 궁이라는 정직한 사람의 아버지가 양을 훔쳤는데, 아들이 자진해서 관청에 신고했다고 소개하였다. 공자는 "내 친구가 정직한 자라면, 그런 짓은 안할 것이다"고 하면서 위와 같이 말을 했다고 한다. 가족 간의 애정과 연대감의 중요성을 함축하고 있다. 정직한 사람이라도 부자지간은 천륜이므로 서로 감싸 주는 건 당연한 이치란 것이다. 이런 이유로 법적으로도 부모와 자식 간의 범인 은닉죄는 천륜으로 보아 성립하지 않는다. 가까운 집안 식구나 가까이 지내는 사람에게 비록 허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푸는 방법을 폭로와 정죄로 끌고 가는 일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죄나 허물을 용납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부모는 돌아서야 하며 모범을 보여야하고 자식은 눈물의 호소와 간청을 올리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을 바탕에 깔고 있다. 또한 자기의 삶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리어져 있는 허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잘못, 교만한 마음, 안에서 타오르는 분노, 탐심, 시기심과 질투, 추한 상상 등에 허우적거려 왔는가?

 

IV.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 ''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 자왈 기 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 (논어 衛靈公)

 

한 마디 말로 한 평생을 마칠(죽을 終身) 때까지 그것을() 지켜 행(실천 )할 만한 훌륭한 가치가 있는(可以) ()이 있습니까(有乎)?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한 것은 바로 '(, 용서, 관용과 동정심)'이니라!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마음(처지,입장)을 잘 헤아려 배려하고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해주기를 바라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V. 川上之嘆(천상지탄)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자재천상왈 서자여사부 불사주야) (논어, 子罕)

(여기서 는 어조사로 문장 끝에서 ~구려, ~구나의 뜻, 무릇, 대체로)

 

(공자께서 흐르는 냇물을 바라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는구나.)

흐르는 냇물을 보며 세월의 흐름, 단절 없는 우주의 운행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동진의 학자들은 "서자(逝者)“를 세월의 흐름을 말하며, 시대가 쇠퇴해서 도()가 일어나지 않자, 공자가 근심한 것"이라고 여겼다. ()나라의 정이와 주희는 서자를 "천지화생(天地化生)의 기틀과 천체건행(天體健行)의 운행이 밤낮으로 쉬지 않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다산 정약용은 "우리들의 생명(生命)이 간단(間斷)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환기시킨 말"이라고 해석하였다. 조선말기(朝鮮末期)의 이유원(李裕元)은 공자(孔子)의 천상지탄을 두고 "삶의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풀이하였다.

 

VI. 蝸角之爭(와각지쟁)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 :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로 다투는가,

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 : 부싯돌 불빛 같은 찰나에 이 몸 맡기고 있을 뿐인데.

隨富隨貧且歡樂(수부수빈차환락) : 부유하면 부유한대로,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즐겁게 살지니,

不開口笑是癡人(불개구소시치인) : 입 벌려 웃지 않으면 이 또한 어리석은 사람이리라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 A.D.772~846)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 때문에 다투는가(蝸牛角上爭何事)"하고 읊은 시다. 蝸角之爭은 명분도 없는 부질없는 싸움이나 별 성과가 없는 전쟁을 비유한 것이다. 전국시대 위()나라 혜왕(惠王)이 제나라 위왕(威王)과 맹약을 했으나 위왕이 배반하자 혜왕은 노여워하여 자객을 보내 그를 찔러 죽이려고 했다. 이를 두고 공손영의 군사정벌론, 계자(季子)의 전쟁불가론 등 의견이 분분한 중에 혜왕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때 혜시(惠施)가 현인 대진인(戴晉人)을 천거하여 혜왕과 만나게 했다. 대진인이 달팽이를 아느냐고 묻자 혜왕은 그렇다고 했다. 대진인은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

달팽이의 왼쪽 뿔에 있는 나라는 촉씨(觸氏)와 오른쪽 뿔에 있는 나라는 만씨(蠻氏)가 서로 영토를 놓고 싸워서 주검이 몇 만이나 되게 즐비했고 도망가는 군대를 쫓아갔다가 십오 일이 지난 뒤에야 돌아온다고 하며 부질없는 싸움을 그만 두는 것이 좋겠다고 진언하였다. 이 말을 들은에 대꾸하는 혜왕에게 무한한 공간에서 노닐게 할 줄 알면서, 이 유한한 땅을 돌이켜본다면 이 나라 따위는 있을까 말까 할 만큼 아주 하찮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혜왕에게 대진인은 위나라나 제나라도 겨우 촉씨와 만씨처럼 별 볼일 없는 그런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쐐기를 박았다. 결국 전쟁은 없던 일로 되어 버렸다. 와각지쟁은 부싯돌이 번쩍하는 것은 찰나 인생 길에서 사소한 문제로 싸우고자 하는 두 뿔 같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갈파한 것이다.

 

VII. 望嶽 (태산을 바라보고)

岱宗夫如何 대종부여하 태산은 그 (모양이) 어떠한가.

齊魯靑未了 제노청미료 제나라와 노나라에 걸친 그 푸름이 끝이 없구나.

造化鍾神秀 조화종신수 조물주는 신령스럽고 빼어난 것 모두 모아놓았고

陰陽割昏曉 음양할혼효 남과 북으로 밤낮이 나뉠 정도

盪胸生曾雲 탕흉생증운 층층이 솟아오르는 구름은 가슴을 씻어내고

決眥入歸鳥 결자입귀조 크게 눈뜨고 산에 돌아드는 새를 보네

會當凌絶頂 회당능절정 반드시 태산 정상에 올라

一覽衆山小 일람중소산 주변의 작은 산 굽어보리라

 

이 작품은 두보가 현 산동성과 하북성 일대를 만유하다가 대륙 동부의 최대의 산인 태산에 올라 바라보고 지은 것이다. 앞의 두 구절에서는 제와 노 지방까지 뻗어 있는 태산의 산세와 하늘과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푸르름의 장관을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 두 구절에서는 정상에 올라 아래로 펼쳐진 여러 산들을 굽어보는 상황을 상상하고 있다. 능동적이고 주관적인 필치로 대상에 사실적 묘사를 하고 있다. 이 시는 입산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사실은 시인의 커다란 포부를 담고 있으며, 과거에 좌절한 두보가 대도의 문학 으로써 정상에 올라 소인배들을 내려다보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보인다. 삶의 목표 설정과 그에 향한 굳은 의지 같은 것을 엿보게 한다.

 

VIII.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불환인지불기지 환불지인야) (논어, 學而篇)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

 

IX. 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辯 辯者不善 知者不博 博者不知

(신언불미 미언불신 선자 불변 변자불선 지자불박 박자불지) (老子, 道德經 81)

 

신의가 있는 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가식적인 아름다운 말은 진실하지 못하며, 착한 사람은 말을 잘하지 못하고 말 재주가 좋은 사람은 착하지 못하며,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만 하지 않고 박식하기만 한 사람은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X. 冷風雪猛刮 寒鴻何處去 雪斷暮云中

(냉풍설맹괄 한홍하처거 설단모운중)

차거운 눈보라 휘날리는데

추운날 기러기 어디로 날라 가는가

눈보라 그쳤는데 기러기 울음소리 석양 속에 사라지네.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