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9월 네브래스카 주 상원의원인 Erni Chambers는 오마하 더글러스(Omaha’s Douglas) 카운티 법정에 하나님을 고소하는 고소장을 접수하였다. 이 희한한 의 이유는 피고가 되는 하나님이 두려운 홍수, 엄청난 지진, 무시무시한 허리케인과 토네이도, 지독한 기근과 가뭄 같은 천재지변을 일으켜 대량파괴와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여 왔으며, 가공스런 테러, 대량 학살 전쟁, 악성 역질, 선천적 기형 탄생 등을 일으켜 무고한 생명을 처참하게 죽였으며 고통당하게 한 장본인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상원의원의 소송사건은 황당한 바보짓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느 보험회사가 약정서에서 자연재해를 신의 행위들(acts of God)’로 기술하고 있다면 그럴듯한 명분을 갖춘 셈이 된다. 의학이나 생명과학에서 세균이나 유전자 이론을, 물리학에서 현상 세계에서 원인과 결과의 상관관계를 상세하게 파헤치고 있어 합리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현대 인간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성적 인간들이 비합리적인 고통을 당하는 사건들에 직면하여서는 그건 자기 죄 아니면 부모 죄 때문이야하는 식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직격탄을 날리거나 또는 그건 신의 소행 탓이야하는 신비적인 설명에 호소하기도 한다.

우리는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볼 때 곤혹스러워 하기 십상이다. 혹자는 인간이 고통을 자초하여 질병, 재난 및 죽음이 오는 것이니 그러한 것들은 개인적인 악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만났다. 이때 제자들이 질문하였다.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 죄의 결과입니까? 그 부모의 죄의 결과입니까?” (9:1-2, NLT).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이런 고정관념이 섞인 질문에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그의 죄나 그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보일 수 있도록 하심이니라고 대답하셨다(9:3, NIV). 이 대답은 고통이 죄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는 인습적 사고에 제동 장치를 거신 말씀이다. 또한 인간이 당하고 있는 고통이나 연약성과 죄 사이에 직접적인 연계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내포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하다.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세상이다.

2005년 크리스마스 때 인도양의 무서운 해일이 일어나 아체에서 휴양을 즐기던 서양 사람들을 포함해 85000명이 졸지에 목숨을 잃었을 때에 어떤 큰 교회의 목사가, 그것은 모슬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지난 3월 서울 대형교회 J 목사가 일본 참상을 두고 우상을 섬긴 탓으로 심판 받은 것이라는 말을 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이런 식의 코멘트는 재난을 당한 사람을 두고 그 면전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그 일을 당한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분통이 터지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인간을 보고 하나님의 권능이 보이게 하는 일에 참여하는 태도, , 긍정적인 말을 하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돕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지 않는가. 예수께서는 맹인의 눈을 고쳐 주심으로 고통의 원인에 집착하는 제자들의 병든 눈도 뜨게 하셨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을 추구하는 것 이것에 눈을 뜨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과제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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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