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광야 시험

하나님 : 2014. 6. 9. 11:19

5. 광야 시험

1:12, 13 (4:1-11; 4:1-13)

I. 시험

영적인 큰 감격과 결단이 있은 다음에 반드시 그 반동의 시간이 온다. 마태는 그 때 (then-tote)를 사용하여 수침 후 곧 이어서 오는 사상의 변화나 새로운 국면, 즉 반동의 시간을 시사한다. 마태복음에는 이 단어가 90여회가 나온다. 마가는 6, 누가는 14회 사용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첫 아담이 실패한 곳에서 승리하셨다. 그는 둘째 아담으로서 전 인류를 대표하여 사단의 시험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도 승리할 수 있는 길을 닦으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시험에서 면제 되지 않는다. 특히 사단은 그리스도인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A. 광야 -- 정확한 장소는 알수 없다. 전통적으로는 여리고 서북쪽에 솟은 암석지대로 유대의 사해 사이의 길이가 50km, 너비가 25km 지대에 속한다. 예수께서 가신 광야는 짐승들이 살고 있는 지대였다(1:13). 그러나 재림교회 성경주석은 예수가 여리고 동쪽에 있는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은 점(참조 마 3:1 주석), 40일이 지난 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은 시험받은 광야가 먼 거리에 있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서 사해 동쪽에 위치한 아바림 산지의 느보산 부근에 있는 광야 지역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느보산의 높은 봉우리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가나안 온 땅을 보여 주셨을 것으로 추정한다(34:1~4; 부조와 선지자, 471), 또한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준 곳도 같은 장소일 것으로 본다(4:8).

죄가 편만한 세상은 광야와 같다. 광야는 자기 혼자서 있으면서 명상과 기도를 하여야 할 곳이다. 행동을 중단하고 생각해야 하는 곳이다. 충고자가 없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다. 광야는 하나님과 단독 인터뷰하는 곳이다. 광야에서 영혼의 해부학 시간을 갖는다. 광야는 자기 영혼의 얼굴을 보는 거울이다.

광야로 간 목적은 아버지와 함께 하면서 홀로 있어 자기 앞에 놓인 사명을 목상()하고 금식과 기도로 걸어가야 할 피 묻은 길을 준비하고자함에 있다.

B. 성령의 인도와 시험

1. “

성령께서 모는 곳으로 가야 한다. 시험을 자초하기 위하여 간 것이 아니다. 마가복음 1:12에서 성령께서 예수를 몰아내셨다(ekballō)고 하고 있다. “ek-ballo”추방하다,” “내쫒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령이 , euthus”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다. 마가복음에는 급박성을 나타내는 이 40회 이상 나온다. 은 행동을 급히 서둘러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을 엿보게 한다. 광야로 급박하게 가시는 예수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이 단어는 성령께서 강압적으로 내쫒은 것이나 가기 싫은 것을 억지로 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성령에 충만한 예수께서 자발적으로 급박하게 가신 것을 말하고 있다. 광야에 홀로 있지 않고 성령과 함께 계신 것이다.

2. 시험

시험을 받으러(peirazo) 가셨다는 것은 죄를 짓도록 유혹 받는다는 to be tempted 뜻과 시험한다, to test, to attempt)”의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마귀는 인간을 죄를 범하도록 유혹하지만, 하나님은 두 번 째 의미에서처럼 연단하고 강화시키는데 초점을 두신다. “peirazo”는 쓰여 지기 위한 검사 받는 것과도 같다. 페이라조는 남자다움의 확인도 된다. 시험은 인간을 벌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영광을 주기 위한 것이다. 충성과 순종 여부를 확인하는 시험이다. 만일 시험이라는 말을 단순히 사람을 죄 가운데로 유혹하는 것이라면 성령께서 예수를 공격하는 것이 된다. 예수는 시험을 자초하거나 의도적으로 마귀의 시험의 땅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3-15)

“4천 년간 인류는 체력과 정신적 능력, 그리고 도덕적 가치가 퇴보되어 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퇴보된 인류의 연약함을 취하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만 그는 인류를 쇠퇴의 깊은 구렁에서 구출하실 수 있으셨다”(소망, 117). 예수께서는 죄에 굴복될 수 있는 연약성을 지녔다. 그는 모든 인간이 당할 시험을 당하여 투쟁하신 것이다(DA 49). 연약성과 시험에의 굴복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4:15; DA 686).

하나님께서는 시험으로부터 피할 길을 예비하여 두셨다. 각 사람의 마음에는 예수의 광야 시험이 반복되고 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이 투쟁이 그들 자신의 생애와 특별한 관계가 없는 것처럼 바라본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에 거의 관심이 없다. 그러나 모든 인류의 마음 가운데서 이 투쟁이 되풀이 된다. 그 누구도 사단의 공격을 받음 없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악의 대열을 떠날 수 없다.”(소망, 116)

만일 우리가 어떤 점으로든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것보다 더 혹심한 투쟁을 당한다면 그는 우리를 도우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구주께서는 온갖 연약성을 지닌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시험에 굴복할 가능성을 가진 인성을 취하셨다. 우리는 그가 당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도 질 것이 없다.”(소망, 117)

3. 시험하는 자 사단

마태는 시험하는 자를 마귀, Devil(slander, 참소자)”로 말하고 있다. 이 마귀는 헬라어로 diabolos(through+ballo)비방하는 자이다. 마가는 히브리어 Satan(adversary, 대적하는 자 3:1-2)을 사용하고 있다. 마귀는 항상 우리가 아주 약할 때 공격한. 이는 그때가 넘어지기 쉬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능력을 약하게 함으로 시험하는 자의 간계에 대한 우리의 방어력은 약해진다.

C. 금식--영적인 지각을 촉구하는 금식이다. 의식적 금식이나 자기 공로를 부각시키고자한 금식이 아니다. 당대 금식은 어떤 음식도 섭취하지 않는 금식이 아니었다. 누가는 예수께서 아무것도 먹지 않으셨다고 하셨다(4:2). 40일 금식은 모세도 엘리야도(?) 하였다(34:28; 비교, 왕상 19:8). 예수의 40일 금식은 하나님의 권능이 수반된 금식이다. 40--준비기간, 인내와 완성의 기간

II. 3대 시험

마가복음에는 예수께서 사단으로부터 시험을 받았다고 되어 있으나 마태복음 4장이나 누가복음 4장에는 3대 시험이 구체적으로 열거되어 있다. 3대 시험의 순서는 마태복음의 순서에 따라 살펴본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신적인 능력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는 우리가 당할 수밖에 없는 시험을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믿음과 순종의 모본을 남겨 주시기 위해 오셨다. 이 경우에서나 또는 그 후 그의 지상 생애의 어떤 때에서도 그는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이적을 행하지 않으셨다. 그의 놀라운 사업들은 모두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소망, 119).

A. 사단의 시험 방법--if~,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사단은 불신과 의심을 유발한다. 사단은 인격적 존재로 빛의 천사로 가장하여. 하와에게 그랬던 것처럼 의심 유발케 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어든말을 하므로 먼저 의심을 유발한다. 그리고 100%의 진실을 가정하면서 하나님 아들이라는 신분을 추겨 세워 교만한 마음을 유발코자 하고 있다. 이미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로 오신 그리스도에게 사단은 백성들이 대망하는 신 18:15에 나오는 나와 같은 선지자의 출현이라면 메시야성을 스스로 증명하도록 촉구한다. ,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주었듯이 돌을 떡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예수의 답변은 기록되었으되, It is written~”이다. 승리의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믿음은 성경 지식의 증가와 함께 자란다. 시험당할 때마다 그의 싸움의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사단은 그리스도에게서 그의 신성의 표적으로 이적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모든 이적보다도 더 큰 표적,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는 사단이 논박할 수 없는 표적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시는 한 유혹자가 이길 수 없었다(소망, 120). 

B. 3회전

1. 식욕 시험-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물질적 시험이었다, 생리적 욕구, 식욕은 에덴에서부터 사용된 사단의 시험이다. 떡은 생명에 대한 물질주의적 철학, 곧 인간의 생명은 자신의 소유가 된 풍부한 물질에 달려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오직 떡으로만 산다고 가정하는 철학을 나타낸다. 사단은 인간의 육체적 본성에 대한 시험이 더 손쉽게 즉각적인 성공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두 번째로, 그는 육체적으로 쇠퇴하고 약한 곳에 유혹을 집중하는데, 육체적 본성과 감각을 통해서 전 존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파멸을 피하기 위해서, 육체적 본성은 끊임없이 마음과 의지와 이성이라는 더 높은 힘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 육체는, 마음과 영혼이 계발되고 성품이 형성되는 매개체이다(치료봉사, 130).

(1) 마귀의 저의- (flesh)이 이성을 제압케 하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기갈과 고통에 방치하시는 것은 잔인성을 들어낸다. 예수께서 기갈이 극심하였을 때 마귀는 신적 능력을 사용하여 그 기갈을 충족시키라고 촉구하였다. 경제적-정치적 왕국 건설을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으라고 암시하고 있다.

주님께서 당하신 첫 큰 시험에서 배울 모든 교훈 중에서 식욕과 정욕을 지배하는데 관계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각 시대를 통하여 육체적 본성에 호소하는 시험이 인류를 부패시키고 타락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다. 사단은 부절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매우 귀중한 선물로 주신 정신적·도덕적 능력을 파괴하기 위하여 활동한다. 이렇게 하여 사람이 영원한 가치가 있는 사물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관능적인 방종을 통하여 사단은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닮은 모든 흔적들을 지워 버리려고 한다.”(, 122)

(2) 예수의 대응8:2-3 인용 문맥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8:2-3). 예수께서 5000명을 먹이셨을 때 사람들은 모세가 예언한 그 선지자로 알고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6:14, 15). 그러나 에수께서는 대중의 요청을 거절하셨다.

의혹과 교만을 부추기는 사단의 시험 앞에서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물질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다. 예수의 답변은 물질주의 철학의 종언을 선언하신 것이다. 예수는 어린 시절부터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했으며 그것들과 매우 친숙해 있었다(시대의 소망, 70). 바로 거기에 시험에 대처하는 비결이 있었다. 세상을 이기게 하는 것은 믿음이며(요일 5:4), 믿음은 말씀 연구를 통하여 계발된다(10:17). 마귀에게 준 그리스도의 대답은 어떤 형태를 막론하고 생명에 관한 물질주의적 철학을 정죄한 것이다.

아내가 팔목이 부러져 집안일을 모두 챙겨야 하고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여야 하는 경험을 통하여 배운 바가 많다. 먼저 사람이 먹기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왜 그리도 빨리 식사시간은 빨리 다가오는지, 무슨 요리를 준비해야 하는지 등에 골몰하다가 느낀 소감이다.

거친 밥을 먹고, 냉수 마시고, 팔꿈치를 구부려 그것을 베고 자지만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다. ()롭지 못한 부()와 귀()는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은 것이다.” (飯疎食飮水하고 曲肱而枕之라도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於我與浮雲이니라.) 이는  安貧樂道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낙도는 심신이 편안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의로써 살아야 한다. 불의가 낙도를 파괴하는 유혹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공자는 불의로 얻은 부와 귀라면 천하고 부끄러운 것이라고 한다. 명예를 얻었음에도 부귀와 영달을 구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양심도 팔고 남에게 아부를 하여 비참하게 부귀를 얻는다.

안빈낙도의 사례- 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현재회야 일단식 일표음 재누항 인불감기우 회야불개기락 현재회야) "어질도다, 안회여! 한 그릇 밥을 먹고, 한 쪽박의 물을 마시며 누추한 거리에 산다면, 남들은 그 괴로움을 견뎌낼 수가 없을 것이다. 안회는 그 즐거움을 잃지 않는구나. 어질도다. 안회여! 陋巷(누항):누추한 거리의 길목一簞食(일단식):한 그릇의 밥(반찬도 없는).( 一瓢飮(일표음):한 쪽박의 물. -일단식. 일표음은 가난한 살림을 상징하는 말).

참 양식 --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4:34)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6:51).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15:16)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23:12)

2. 참람 솔로몬 행각과 제일 높은 왕실 행각이 서로 만나는 모서리에서 있는 성전 꼭대기에서 힌논의 골짜기130m 가량 되는 절벽을 뛰어 내리라는 시험을 받았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마귀는 하나님 말씀을 이용하여 시험하였다. 마치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논리를 펴서 시험한다. 사단은 유혹은 할 수 있으나 죄를 짓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그는 예수를 밀쳐 떨어뜨릴 수 없음을 알고 예수께 뛰어 내리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어 예수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한 것이다. 시험에 동의하지 않는 한 사단은 정복할 수 없다.

시온산에 세워진 성전 꼭대기(남쪽 망대)에서 뛰어 내리라, 유대나라에서는 메시야가 오면 성전 지붕에 와서 설 것이라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었다.

(1) 마귀의 저의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라.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린다면 하나님의 보호가 있을 것이라는 논리를 주장하면서 단번에 군중의 박수갈채를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명성을 들어내고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일을 해보라. 표적과 기사를 창출하여 보라. 인간의 기대에 부응하여 영웅적인 삶을 살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기대하여 그 능력을 시험해 보라는 참람죄로 유도하고 있다. 대중의 인정을 받는 길을 따르라. 하나님을 등쳐먹는 일을 성경 약속으로 제시한 사단이 91:11, 12에서 부분적으로 말씀을 삭제하고 왜곡한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91:11)에서 인간이 걸어가야 할 모든 길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사단은 자기 논리를 하나님 뜻으로 왜곡 포장하여 광휘 찬란한 메시야상을 펼쳐 하나님을 시험케 한 것이다.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사시는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씀이니라 하고”(23:36).

(2) 예수의 대응-6:16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문맥에 나오는 구약 배경에는 맛사의 시험 사건이 나온다. 17:2, 7. 곤고로운 땅에서 사는 것이 하나님 뜻이냐고 풍기면서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면 그럴 수 없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순종보다는 자기 뜻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논리로 하나님을 재단하거나 시험치 말고, 비록 맛사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방식인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며 순종하면서 살아야 한다.

3. 세상 사랑--종교적 시험, 사단은 예수를 높은 산 위에 세워놓고 이 세상 왕국들의 모든 화려한 영광의 전경(全景)을 그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햇빛이 전각들이 있는 성들과 대리석 궁전들과 비옥한 전답과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포도원들을 비추었다. 마귀는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가 넘겨받은 것이므로 내가 주고자 하는 자에게 주노라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이 다 네 것이 되리라고 제의하였다.

(1) 높은 산- 모세가 가나안을 보았던 느보산(2,644ft)이라는 주장과 예루살렘 근처의 산이라는 주장이 있다. “높은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

(2) 마귀의 저의-타협한다면 세상 영화를 약속하겠다고 시험한다. 권력 추구에의 갈급을 부추기고 있다.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잠겨 있는 권력과 지위를 추구하게 하고 있다. 잠시 신앙을 팔아치워 하나님을 포기하면 세상을 얻게 하여 주겠다는 것이다. 마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권을 승인하는 조건으로 이 세상 나라를 주겠다고 제의한다. 하나님을 세상과 대치(교환)하라는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을 생각나지 않게 하거나 더 나아가서 결별하면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성실을 희생하고 양심을 무시하며 이기심에 빠지도록 요구한다.

(3) 예수 대응-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6:10-13.

번영신학은 대부분 거짓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하나님을 등진 , 명예, 출세, 자기 성취는 모두 거짓이다.

C. 시험의 전개 과정

마귀는 식욕, 즉 육신의 약점을 이용하는 시험, 명예를 자극하는 정신적인 약점을 이용하는 시험, 그리고 메시야의 사역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종교적, 영적 약점을 이용한 시험을 전개하였다. 이는 요한일서 2:16의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과 유사하다. 이런 시험들은 아담과 하와의 원초적 시험의 특성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창세기 3:6 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를 얻을 만한 것과 근접하여 보인다. 시험은 물질적 시험으로부터 정신적 시험으로 나가고 마지막에는 영적 시험으로 확장 발전된다는 것이다.

엘렌 화잇은 이렇게 그 전개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심히 무거운 죄 짐을 지시고 식욕과 세상에 대한 사랑과 참람으로 인도하는 과시를 사랑하는 시험에 대항하셨다. 이 시험들은 아담과 하와를 정복하였고, 우리들을 쉽게 정복하는 것들이다”(소망, 116-117). (참고, CS 209, 식욕-참람-세상사랑).

III. 시험의 특성

1. 3가지 시험이 모두 당대 유대인들의 메시야관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녔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만나를 줄 것이고, 메시야가 성전 지붕에 나타나고, 세상 정복자로 오실 것으로 신봉하고 있었다. 이는 십자가 없는 면류관을 추구하는 신앙관에 토대를 둔 이해에 불과하다.

2. 개인적으로 수침 시 하늘의 인정을 의심케 하는 마귀의 역사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3. 승리의 비결(시험의 지반)--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에 있다. 신자는 독자적으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한다(Trusting in God, not independence but Dependent to God,). 자율적으로 사는(Autonomy) 대신 하나님의 통치(Theonomy)를 받는 길을 택하여야 한다. 하나님께 굴복(Surrender)하며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여야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당한 모든 시험을 모두 당하셨다. 그 지반이 같기에 오늘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험을 다 당하신 것이다.

 

4. 시험의 결과와 예수의 결단:

(1) 그리스도는 면류관보다 십자가를 선택하기로 하였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단하였다.

(2) 그리스도의 승리는 기록된 말씀의 권능과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 하는데 있다.

(3) 그리스도는 불신을 정복하는 방법으로 이적을 사용하지 않고 말씀을 따르기로 하셨다.

(4) 그리스도는 사단의 교육을 거절하고 그를 정복될 대상으로 보았다.

우리와 하나같이 되시어 우리의 곤궁함과 연약함을 지니신 자로서 예수께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였고 은밀한 기도처에서 하늘의 능력을 구하셨는 바 이는 의무와 시련에 견딜 힘을 얻기 위해서였다. 예수께서는 죄의 세상에서 영혼의 투쟁과 고통을 견디셨다. 하나님과 교통하시는 중에 예수께서는 당신을 누르던 슬픔의 짐을 벗으실 수가 있었다. 그는 여기서 위안과 기쁨을 얻으셨다.”(소망, 363).

예수께서는 당신의 인성이 신성과 인성을 연결시킬 하늘의 전류로 충전되기까지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 탄원하셨다. 예수께서는 끊임없는 교통을 통하여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받으셨는데 이는 그가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예수의 이 경험은 우리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소망, 363).

“.예수께서는 사람이 당신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가질 수 없는 어떤 특성을 나타내시거나 어떤 능력을 행사하지 않으셨다. 그의 완전한 인성은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 복종한다면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소망, 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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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