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

 

I. 들어가는 말

히브리서에는 성소상징주의를 두드러지게 활용하고 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점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 왔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생명을 희생 제물로 드리신 십자가와 그의 부활을 강조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 하늘에서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신 일과 중보자로 봉사하시는 점에는 관심의 결여나 미약을 보여주어 왔다.

십자가, 부활, 대제사장으로서 중보 활동하신 3대 사건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의 축대가 된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지상에서 일어난 구속사의 핵이 되는 과거적인 사건이다. 대제사장으로 활동하시는 일은 천상성소에서의 현재적 구속활동에 속하는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은 연속선상에 있다.

천상성소에서의 현재 진행형 사건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배경에는 19세기 재림운동의 선구자들의 말씀 연구의 기여가 있다.

구약 성소봉사는 매일 번제단에서 희생 제물을 드리고 제사장의 성소 첫 칸에서 피의 의식 행사로 이어지는 일이 한 해가 지나도록 내내 이어진다. 그러다가 민력으로 한 해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대제사상의 대속죄일 봉사로 그 대미를 내리는 지성소 봉사와 피 묻은 휘장 교체, 아사셀 추방 등 구속의 경륜이 배어있는 정교한 일련의 종교의식으로 성소 제의의 대미를 맞는다.

재림운동의 선구자들은 레위기, 다니엘서, 히브리서, 및 요한계시록 연구를 통하여 독특한 성소 신학적 시스템을 개발, 구축하여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활동을 역사의 종말 전망과 결합시켰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천상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고 있을 뿐만 아니라, 레위기 제16장에서 보여주듯이 1년 내내 이어진 성소 제의를 총 정리하는 대속죄일 제사라는 표상에서 수직적으로 일치하는 하늘 지성소에서의 마지막 봉사에 진입하신 것으로 보았다. 초기 재림교회 선구자들에게는 이 천상성소의 빛이야 말로 1844년의 대 실망을 푸는 열쇠가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 큰 재림운동을 지도하셨다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의 위치와 현재의 의무를 가르쳐 줌으로 완전한 진리의 체계가 상호 연결되고 조화되어 있다는 것을 밝히 보여 주었다”(GC 423).

재림교회에 있어서 천상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봉사 교리는 1844년 대 실망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짜 맞춘 지나간 날의 유물이 아니다. “하늘 성소에서 사람을 위하여 진행되는 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은 구원의 경륜에 있어서 십자가상에서의 그분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이다”(GC 489). 이 교리는 다른 교리들에 빛을 비추어 준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어서 우리에게 믿음의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게 한다(10:22).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intercession)하심이니라”(7:25).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시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5:7). 그는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게 되었다”(2:18). 그리하여 우리는 대제사장의 중보의 공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4:16).

성소교리는 우리 자신에 관하여 새로운 시각을 얻게 한다. , 이 중보자를 통하여 비록 연약성을 지녔고 더 나가서는 반역까지 하는 우리 인성을 지닌 존재가 하나님께 중요한 존재로 부각되고 최고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 대제사장께서 인성을 영원히 취하시므로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의 관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는 대제사장의 중보 옹호 받는 백성이 된 것이다.

더 나가서는 이 성소교리는 선과 악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우주적 대쟁투라는 역사관의 새로운 전망을 열어 보여주고 있다. 하늘성소는 이 대쟁투의 거룩한 사령탑이 된다. 결국에는 악이 패퇴당하고 선이 승리하므로 하나님이 만유의 주가 되시어 만유 안에 계시게 된다(고전 15:28). 성소에서 내리신 심판으로 구속 받은 백성과 재창조된 세계가 이루어진다.

 

II. 성소교리의 자료

성소 주제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레위기, 다니엘, 히브리서, 및 요한계시록은 성소 주제를 가장 분명하게 다루고 있다. 초기 재림신도들은 이 책들로부터 하늘성소에 초점을 둔 연구를 계속하여 나갔다.

이 네 책들은 그 강조점에 따라 두 개씩 짝을 이루고 있다. 레위기와 히브리서는 성소와 관련하여 제사장의 기능, 즉 제사장의 중보와 중재(intercession)에 그 기본적인 초점을 두고 있다. 반면에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은 성소에서의 거룩한 활동, 즉 심판을 세상 종말에 관련시키는 일에 역점을 두고 있다.

레위기서는 구약시대 여러 종류의 제의를 보여주고 있다. 날마다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조석으로 희생제물들이 드려진다(6:8-13). 그리고 개인적으로 드리는 몇 제사 유형들이 나오는 바 이 제사들은 각 개인의 고백, 감사, 및 헌신을 보여준다(1-7). 이 모든 제의들의 클라이맥스가 되는 대속죄일에 관한 자세한 묘사가 레위기 제16장에 나온다.

히브리서는 이 제의들과 갈보리에서의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을 비교하고 대비하여 그 뚜렷한 차이점들을 부각시키고 있다(9:1-10:22).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을 위하여 단번에(once for all) 죽으심으로 반복적으로 드려진 옛 이스라엘 제의가 결코 이룰 수 없었던 것을 성취하셨다고 강조한다. 히브리서는 구약제사제도의 표상이 나타내는 십자가에서 시작된 종말론적인 대속죄일 심판 시간대에 관하여는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갈보리에서 드리신 제물의 충분성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하늘 성소의 심판 사건의 시간대에 관하여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초기 재림신도들에게 성소 이해의 관건이 되는 것은 특히 다니엘 7-9장의 시간 예언들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초림을 넘어서 하늘성소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에 집중하였다.

엘렌 화잇은 저술을 통하여 하늘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활동을 많이 다루었다(GC 409-432, 479-491, 582-678). 그는 이 저술들에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1844년 사건에 담긴 경륜과 최후적 사건들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재림교회 선구자들은 이 자료들로부터 성소교리를 도출하지 않았다. 엘렌 화잇의 자료들은 초기 선구자들이 성경 연구를 통하여 밝혀낸 하늘성소 교리에 관한 진리를 확인하고 보충하는 역할을 하였다.

 

III. 하늘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의 두 국면

A. 그리스도의 중재사역

구약시대의 제사제도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그 목적은 먼저 그 시대에 믿음의 구원의 길을 제시한 것이고, 하나님 백성의 교육용으로 죄의 가공할 특성과 하나님이 그 죄를 끝내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아무리 수많은 제물을 공여한다고 해서 효험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죄는 동물 제물을 드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도덕적, 영적 탈선이며 위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서기자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10:4)고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제거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high priest)이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희생제물(sacrifice, victim)이 되신다. 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며(1:29), “우리의 유월절 양”(고전 5:7)이 되고, 그의 피가 모든 인간의 죄를 속하는 하나님이 지정하신 분이 된다(3:21-25).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구약 성소제도에서 모든 제의가 그 참된 의미를 드러낸다. 지상 성소는 하늘에 있는 참 것의 그림자”(9:24)이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이...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다”(8:1-2). 하늘성소는 인간이 깨달을 수 있는 그 이상으로 영원한 보좌의 영광으로 충만한 실재이다(PP 357). 레위제사직과 아론의 대제사장직은 신성과 인성을 지니시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으로 계신 분의 예표였다(5:1-10). 구약 희생 동물들이 흠 없는 것으로 선별되어 드려진 것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를 표상한 것으로 우리는 그의 피로 구속 받은 것이다(벧전 1:18-19).

갈보리 십자가에서 드려진 희생제물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은총을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이 되어 계속적으로 적용하고 활성화 시키시는 일을 수행하시고 있다. 하늘성소 첫째 칸에서의 대제사장, 즉 중보자로서의 활동은 갈보리의 십자가가 그 토대를 두고 그 축복을 펼치신다는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십자가 희생제물과 대제사장직의 수행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대제사장이 갈보리에서 드리신 희생제물의 공로와 은총의 축복을 하늘성소에서 계속 적용하시며 펼치시는 축복 내용은 넓다. 그 일부를 여기 열거키로 한다.

* 그리스도께서 각 시대 교회들을 보살피시고 지시하신다(1:12-20).

*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시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구 주의 취임식이 끝났다는 하늘의 통고였다”(AA 39).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강림으로 신약 교회가 탄생하였다(16:7 참고).

* 그리스도께서 사단과의 대쟁투에서 선과 정의의 세력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계신다(19:11-16).

*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경배를 받으신다(5:11-14).

* 그리스도께서 우주를 보존 유지하고 계신다(1:3; 3:21).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인류가 향유하고 있는 모든 축복은 그의 희생제물의 효험에 토대를 둔 중보의 활동으로 계속 흘러나온다. 히브리서는 이 외에 특히 두 가지 축복을 강조하고 있다.

* 그리스도의 중보와 중재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방해 받지 않고 나갈 수 있게 되었 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철저하게 죄를 옮기신다.

구약시대 성소봉사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 자유스럽게 나갈 수 없는 제한을 받았다. 제사장 신분이 되어야 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나갈 수 있었다(9:1-7).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1년에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9:1-7). 그러나 하늘성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 누구나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1:3) 대제사장의 중보를 통하여 믿음으로 은혜의 보좌에 담대하게 나갈 수 있게 되어 있다(4:14-16; 7:19; 10:19-22; 12:18-24). 이리하여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대제사장들보다 더 큰 축복의 특권을 향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중간에 막힌 장벽들 없이 신자가 하나님께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특권을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katapetasma) 안에 들어가나니”(6:19)라고 표현하고 있다. 바울은 휘장”(카타페타스마)이란 단어를 하늘 성소 구조에 관한 전문적인 용어로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하늘의 것과 지상의 것을 구분하기 위한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휘장 안에라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휘장 안에라는 표현이 성막입구 휘장(38:18; 39:19), 성소 입구 휘장(26:37; 40:5),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27:21; 16:2)이 있고 그 회수는 6회 나온다. 히브리서 6:19에 나오는 휘장 안에라는 표현을 두고 지성소 휘장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전 성소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기 때문에 휘장 안에를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누구나 직접으로 자유스럽게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포괄적인 의미로 보아야 한다.

신약시대에는 더 이상 구약시대처럼 불완전한 동물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다. 동물 희생제물을 반복적으로 의식은 비유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었다”(9:9). 구약 제사제도는 죄를 종국적으로 끝내지 못하였다. 제물을 반복적으로 드린다는 그 자체가 의식의 불완전성을 증거한다(10:1-4 참조).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이 지정하신 예수 그리스도 희생 제물은 구약의 제사제도가 다 할 수 없는 것을 이루신 것이다. 그래서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9:14)라고 한다.

갈보리의 희생제물이 가져온 결과는 변함없는 상수이다. 우리를 위하여 희생제물로 죽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중재하시는 일로 이어 우리의 구원의 확신을 주시고 있다. 이는 영원한 역사적인 실재로 세상의 그 어떤 사건들과는 달리 불변적 권능을 시현하고 있다. “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intercession)하심이니라”(7:25).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with a true heart in full assurance of faith) 하나님께 나아가자”(10:22). 여기서 온전한 믿음의 확증은 죄에서 영혼을 정결케 하고 죄를 이기고 살아갈 은혜를 나눠 주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다. 이 확증은 인간 안에서 나오는 것이거나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하셨고 또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 갈 수 있는 권능과 세상에 증거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하신다.

 

B. 그리스도의 천상 지성소에서의 마지막 봉사

2300주야 예언기간과 지성소에서 행하시는 마지막 봉사와 서로 얽혀 있다. 2300주야 예언기간 끝은 하나님 백성에게 최종 심판을 이해하는 모퉁이 돌 역할을 한다. 이 예언기간을 풀어내는 일에 있어서는 문맥에 담겨있는 -원칙, 정결의 의미, 레위기 대속죄일 제의와의 관련성 같은 주석적 접근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일-년 원칙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원칙(year-day principle)이란 묵시문학적 예언적 기간에 나오는 예언기간 1일을 1년으로 풀이하는 원칙이다. 묵시문학적 예언에 나오는 예언적 기간은 문자적 기간이 아니다. 이런 접근방식을 할 수 있는 사례들을 보기로 한다.

* 요한계시록 11:9, 11에 나오는 “3일 반단기간을 문자적으로 풀면 무의미하여진다.

* 구약성경 자체가 상징적 기사에서 이 원칙을 교차적 사용을 하여 인정하고 있다(: 29:27, 7->7; 14:34; 4:6; 9:24-27).

* 이 원칙이 다니엘 8-9에 맞물려 있다.

*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260일 예언기간 해석의 기초가 되어 있다(7:25; 12:14; 13:5).

* 이런 문맥적 배경에서 2300일도 2300년으로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예언해석이 된다.

 

이런 여러 점을 감안하면 그리스도의 지성소 마지막 심판의 내용을 다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1. 심판하시는 일

심판은 하나님이 이 죄악의 역사 과정에 개입하시어 그것을 바르게 잡아 끝내시는 역사의 제어장치이다. 성경에는 다가오는 심판의 메시지가 확고하다(12:14; 16:8-11; 24:25; 9:27 ). 알곡 그리스도인들에게 심판의 메시지는 엄숙하지만, 구원을 보증을 전제로 하고 있어 무서운 것이 아니다. 심판이 두려워하는 존재는 작은뿔과 그의 허구적인 구원질서에 따르는 부하들이고 빛을 받고도 순종하지 않는 가라지 같은 짝퉁신자들이다.

하늘성소로부터 나오는 이 거룩한 심판은 두 국면으로 전개 된다. 그 하나는 지상의 하나님의 백성들에 집중되는 국면이고, 다른 하나는 선과 악의 대쟁투를 성공적으로 끝장내는 온 우주를 포괄한 국면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각 개인의 구원을 드러내는 일 이상이다. 무의 원칙 악의 정체를 들추어내어 우주를 회복시킨다.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이 심판대 앞에서는 무익한 말까지도 다루어진다(12:36). 마지막 심판 때에는 누가 하나님 편인지를 가려낸다(GC 479-491). 최후 심판은 조사심판-언도심판(22:11)-집행심판으로 이어진다.

 

2. 정결케 하시는 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8:14). 여기 본문에 나오는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niṣadaq"로 차다크(ṣadaq)의 수동태로 여러 가지로 번역할 수 있다. 그 기초적 의미는 바르게 하다,” “의롭게 하다,” “정결케 하다,” “옹호하다,” “회복하다의 뜻을 담고 있다. 다니엘 8:11-14은 제 7장의 하늘법정기사가 평행적 인 점을 감안하여 해석해야 한다. 여기에서 작은뿔의 하나님 대적, 성소오염, 성도박해 및 지상적 대체물 고안 등을 심판, 정화시키는 일은 당연하다. 따라서 의미론적으로도 정결 개념이 심판과 맥락을 함께 한다. 욥기 4:17 에서도 의(sadaq)와 정결(taher)이 동의어적으로 사용되어 있다. 따라서 단 8:14의 번역 정결함을 입으리라는 맞는 번역이다.

작은뿔과 그 추종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천상에서의 중보 사역이 왜곡 찬탈당하여 하늘성소가 오염되었다. 참회자들의 죄 고백이 전이되어 표상적으로도 하늘성소가 오염되었다. 여기에 천상성소의 정결이 필요하다. 또한 의인의 죄가 죄책의 기록으로부터 도말되는 것은 이 성소 정결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표상적 성소 봉사에서 원수의 손에 의하여 성소가 더러워진 것과 신도들의 죄가 하늘성소로 옮겨져 하늘성소가 더러워진 것을 정결케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9:23). 정결한 백성을 찾고 있는 시대이다.

 

3. 옹호하시는 일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보자가 되시어 중재하시고 희생제물을 드린다. 중보자는 쌍방을 화해시키는 일을 한다. 죄인을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일을 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mesites)가 되신다(딤전 2:5). 그는 더 좋은 제물인 자기 생명을 바치어 새언약의 중보자가 되시는(8:6: 9:15; 12:24) 자격을 지니셨다. 그는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대변해 말할 수 있으며, 사람이기에 사람들을 이해하며 그들을 위해 동정심을 가지고 하늘 아버지 앞에서 간구(intercession)하실 수 있다. 이 간구(entugchano)는 십자가 앞에 나와 회개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옹호, 애원, 간구하시는 그리스도의 중보활동이다. 이 땅에서 믿음 때문에 고난과 박해를 당한 신자들이 하나님께 신원해 달라고 애원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종들의 간구를 마침내 신원하여 주신다(7:22). 이 신원하시는 일이 옹호의 맥락에서 나오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심판대에서 대제사장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하여 간청하고 옹호하시는 그리스도의 중보활동 때문에 심판을 염려하고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변호하시기 때문이다. 자기들을 옹호하시는 심판관=변호사를 모신 자가 어떻게 심판을 두려워하겠는가?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2-24).

 

IV. 마치는 말

하늘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에 관한 교리는 재림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독특한 지주가 되는 교리 중 하나이다. 재림신도로서 굳건한 신앙 정체성은 이 교리의 이해와 수용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교리가 다른 여러 교리들과 맥락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마귀는 이 교리를 무너뜨리면 재림교회가 무너진다고 보아 그 공격에 열을 올려 왔다. 교단 내에 혜성처럼 빛났던 인사들이 교단을 대적하다가 운석으로 사라지는 일들이 이 교리를 중심으로 일어나 왔다. 신학적 내지 어 특정의 선입관을 버리고 정직한 마음으로 계시를 받아 기록된 말씀에 나와 있는 메시지 그대로 기도하면서 연구하고 나간다면 의문이 풀릴 것이다. 그리고 믿음의 충만한 확증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체험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교회적으로 부흥과 개혁, 선교의 비전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게 할 것이다. “하늘 성소에서 사람을 위하여 진행되는 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은 구원의 경륜에 있어서 십자가상에서의 그분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이다”(GC 489). 갈보리의 십자가 희생제물 되신 그리고 하늘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 사건을 한 짝으로 이해하고 나가는 신학이 바르게 된 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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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