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차서(The Order of Salvation)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은 구원의 차서(ordo salutis)에서 교회가 구원에 선행된다. 이는 교회가 구원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은 대체적으로 그 순서를 바꾸어 구원을 교회 앞에 둔다.

 

구원의 차서 이슈가 본격적으로 제기 된 것은 종교개혁 시대부터이다. 18세기에 이르러서 루터교 신학자 Franz BuddeusJacob Carpov가 이 이슈를 구원론의 주제로 다루었다. 루터교 신학자들은 칭의가 중생에 선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와는 달리 칼뱅신학은 중생이 칭의에 선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물론 개혁파 신학자들 중에는 중생보다 칭의를 앞세운 자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혁파 신학자들은 중생을 선행하는 구원의 차서(ordo salutis)를 교리화 시켰다. 이 주류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 결과 모든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탄생하는 것으로 보는 전적타락론과 이중 예정론에 따라 구원 받을 자들이 예정되어 있다는 시각에서 중생이 구원에 있어서 선행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은혜에 응답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중생이 선행되지 않고는 회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생이 없으면 회심할 수 없다. 회심의 두 요소인 회개와 믿음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은 이에 관련하여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30). 이 본문에서는 칭의-성화 순서로 나온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이 본문에서도 칭의-성화 순서로 나온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 6:11). 씻음과 거룩함-칭의 순서로 나온다.

 

위에서 잠시 살펴보았듯이 기본적 성경 본문들에 있어서 회심과 중생의 시간적 순서가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시간적 순서가 아니다. 에릭슨은 회심과 중생의 관계를 두고 동시적으로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회심이 중생에 선행한다는 성경적 증거(2:38; 16:31)를 강조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믿는 사람을 중생시킨다는 것이다.

 

구원의 차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다. 바울은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2:20-21).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셨다. 바울은 자신을 실제로 십자가에 달린 것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에 영적으로 동참하였다. 바울은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신 갈보리의 십자가에서의 구원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을 위하여 사시고 죽으셨다. 그리스도인은 이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자이다. 인간이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할 때 중생시키신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일에 대한 반응이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의 공로로 오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은혜의 선물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특별한 부르심을 통하여 나오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은혜에 따라 회개하고 믿는 사람들을 중생시키신다. 이런 점에 비추어 구원의 논리적 순서를 특별 부르심-회심- 중생으로 보는 것은 논리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다채로워서 중생의 사역이 강하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고 회개와 믿음이 강하게 작동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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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