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 주 남부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뉴멕시코와 콜로라도 주로 향하는 666번 도로가 있다. 666이라는 숫자 때문에 운전자들이 이 도로를 가급적이면 피하는 경우들이 있다. 운전자들이 이 도로에서 운전을 하더라도 아주 조심히 하기 마련이다. 운전을 조심스럽게 하는 일은 소망스럽지만 666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조심 운전을 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알고 있거나 미신적 마인드 셋 때문일 것이다. 666을 게마트리아 방식, 즉 유대교 신비주의자들이 쓰는 암호표기법에 따라 히브리어와 숫자의 음으로 배열하여 해석하는 것은 예언적 문맥을 무시한 기법에 불과하다.
아버지의 명에 따라 에르푸르트 법과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505년 7월 2일 마르틴 루터는 아서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가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껴 엎드리면서 성 안나(Anna)"에게 "도와준다면 수도원에 들어가겠나이다"고 도움을 요청하였다고 전해지나, 그 후 그는 법학을 포기하고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들어갔다. 루터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으며, 그 두려움이 그를 서원을 강요하게 하여 수도원에 들어가도록 하였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런 두려움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떠는 단계의 신앙에서는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미신적인 공포감에 짓눌려 살고 있다. 그래서 일어나지도 않았고 또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을 염려하며 무서워한다. 또한 순간적으로 방심하는 중 사고를 당한 경우 또 다른 사고가 날까 두려워하여 그 자리에 주차하거나 그 곳을 지나가는 일을 꺼리기도 한다.
공포감은 인간의 활동을 위축시킨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이 두려움 때문에 사업을 하지 못하고 결국은 지닌 것 마저 빼앗기고 만다. 하나의 근심이나 두려움이 마음에 도사리고 있으면 그것은 곧 다른 근심이나 공포를 불러온다. 그리고 그 다음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다른 두려움을 예기하게 되어 있어 그 인간은 결국 공포의 속박에서 탈출하지 못한다. 욥도 한 때는 이런 공포에 속박 아래 놓여 있었다. 어떤 사람은 누가 자기를 죽이고자 항상 뒤좇고 있다는 망상 속에서 살고 있다.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 3:25).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갈파하였다. 공포 그자체는 고통이며 형벌이다. 이 시대에는 세계 경제 붕괴라는 공포감이 온 세계를 사슬에 매여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제가 위축되고, 사업이 안 되고, 일자리 창출은 답보상태이고...등등을 되 내이면서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하는 일을 부풀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정권투쟁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 경제적 약자들을 과대하게 부추기는 교묘한 전략들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두려움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이다.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히 13:5).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다”(딤후 1:7).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여기 공포감의 속박 아래 한 평생을 좇기면서 살아간 가련한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다.
윈체스터의 신비한 집(Winchester Mystery House) 이야기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San Jose) 남부에는 웅장하고도 신기한 모양의 대저택이 있다. 4층 높이의 이 고택은 1884년부터 1922년까지 무려 38년 동안이나 쉬지 않고 증축이 이루어졌다.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은 윈체스터 연발 소총을 발명한 윌리엄 윈체스터의 며느리이자 윌리엄 워트 윈체스터의 아내인 사라 윈체스터이다. 남북전쟁 당시 윈체스터 리플이란 무기는 서부를 개척한 총이란 이름까지 붙을 정도로 많이 사용되었다. 덕분에 윈체스터 가(家)는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윈체스터 부부 사이에 태어난 딸 애니가 태어 난지 40일 만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어 남편 윌리엄 워트 윈체스터도 44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 만다. 사라 윈체스터는 유산으로 2천만 달러를 상속받았지만 홀로 남아 행복하지 않았다. 사라는 혼자서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고, '남편의 소총에 죽은 원혼들이 주변에 맴 돈다'고 생각했다. 저주 받은 집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점쟁이가 사라에게 집에서 밤낮 없이 계속하여 망치질 등 건축하는 소리가 끊어져서는 안 된다고 하는 점괘를 내렸다. 공포에 휩싸인 사라는 그 점괘에 따라 액땜을 하기로 하고 38년 후인 1922년 9월 5일 그녀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매일 밤낮으로 저택의 확장 공사를 해 갔다. 원혼들을 따돌리고 피하기 위하여 숨겨진 방과 비밀 통로를 만들어가면서 거대한 미로와 같은 복잡한 구조가 생겨난 것이다. 근거도 없는 점괘에 따라 평생토록 죽음의 공포에 좇기면서 살아간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다. 38년간의 공사 끝에 대저택은 160개의 방, 수백 개의 문, 10,000개가 넘는 창문, 52개의 천정 채광창, 47개의 벽난로, 부엌 6개, 3개의 엘리베이터, 등등 거대한 모습으로 확장되어갔다. 이러한 연거푸 건설 공사비는 약 550만 달러였다고 추정되고 있다. 저택은 기본적인 설계에 계획 자체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증축을 반복하다보니 집안 내부는 복잡해져서 가이드의 안내 없이는 집 내부를 견학하기도 힘들 정도다. 문의 크기도 다 다르고 계단을 따라 가다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벽이 나오기도 한다. 계단의 끝에 천장이 나오기도 하고, 방문을 열면 바로 앞에 벽이 등장하기도 한다. 창문이 바닥에 있는 곳도 있고, 난쟁이들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작은 문도 있다. 어떤 방은 사라를 괴롭히기 위해서 찾아온 귀신들을 접대하는 방이라고 불리는데 13개의 문과 창문이 있다. 또한 온통 거울로 둘러싸인 방도 있는데 원혼들을 헷갈리게 하기 위해 그와 같이 지었다고 한다. 사라 윈체스터는 매일 밤 같은 방에서 자는 법이 없었고, 잠자리를 옮겼는데 이 역시 영들을 혼동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의 보디가드 수는 100명이 넘었고, 집안 곳곳에 경보기도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어떤 계단은 7계단 내려가면 11계단 올라가게 되어있는 계단도 있는데, 이런 형태의 계단을 왜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공사는 계속 되었고,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과 함께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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