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우스주의와 초기 재림신도 지도자들
아리우스주의와 초기 재림신도 지도자들
리비아 출신 아리우스(c. 250~c. 336)는 안디옥 Lucien 문하생이었으며, 알렉산드리아교회 감독으로 철학적인 신 개념을 기초로 하여 유일신 사상을 전개하였다. 하나님은 한 분으로 나눠질 수 없는 본질을 가졌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신성은 성부의 신성과 동일할 수 없는 차별성을 지닌 것으로 추론하였다. 하나님의 절대 통치권 옹립에 토대를 둔 그의 기독론은 Thalia 저술에 잘 나타났다.
Thalia의 그리스도론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 성부 하나님은 성자를 창조하시기 전에 홀로(Monad) 존재하셨다. 즉, 아버지가 아니신 때 가 있었다. 두 개체인 한 쌍(Dyad)이 후에 아버지가 되셨다.
* 말씀은 항상 하나님과 함께 계신 것이 아니었다.
* 아버지는 아들에 선재하시었다. 성자 하나님은 낳기(begetting)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 다. 성자는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리스도는 무 존재(non-being)로부터 나왔다.
* 그리스도는 다른 만물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피조적 존재(creature)이다.
* 성자가 성부와 함께 영원하다면 유일신론에 금이 간다고 보았다.
* 만물이 창조되고 만들어진 것처럼 아들도 하나님의 의지에 의하여 존재의 시작이 있게 된 피조된 존재이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하게 되었다. 모든 존재가 본질상 하나님과 다른 것처럼 말씀도 아버지와 다르다 (heteroousios).
* 그리스도는 시작이 없으신 성부와는 동등하지 않는 하나님이 낳으신 분이다.
* 성부는 인간을 직접 창조한 것이 아니고 시간 속에서 또는 시간 이전에 먼저 로고스를 창 조한 후 이 로고스가 인간을 창조하였다. 아버지는 이 세상을 직접 창조하지 않았고 아들 이 창조하셨다. 아버지는 낳으신 분(Begetter)이고, 아들은 낳 아지신 분(begotten)이 다.
* 성자의 상징-말씀, 아들, 지혜, 권능, 빛
그리스도를 나타낸 이런 상징들이 아버지에게 적용되는 경우와는 사뭇 차이가 있다. 아 버지로부터 파생된 것과 아버지가 지니신 것과는 구별하여야 한다.
* Triad--성부, 성자, 성령은 본질상 달라(heteroousios) 분리되었고(separated), 소원되 었으며(estranged), 연계되지 않았으며(disconnected), 상호 참여가 없으시다.
* 따라서 삼위에게 돌리는 영광에는 차서와 위계가 있게 마련이다.
아다나시우스(ca. 296-373)는 황제의 정치적 후원을 받은 아리우스의 빗나간 기독론을 끈질기게 배척하면서 대항한 알렉산드리아 감독(328-373)이었다. 그는 다섯 차례나 감독직에서 추방당하였으며, 20여 년간을 망명 생활을 하였다. 그는 체계적인 신학자이라기보다는 목양자적 모습이었다. 그는 Against the Heathen(c. 318), On the Incarnation(c. 318), Against the Arians(c. 335) 등을 저술하였다. 아리우스를 따르던 무리들은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 배척을 받았다. 그가 사망한 이후에도 아리우스 논쟁은 계속되어 나갔다. 그러나 그의 신학적 유산은 콘스탄티노플 회의(381)에서 최후의 승리를 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아다나시우스는 그리스도의 본성을 성부 하나님의 본성과 동일 본체, 즉 homoousia 로 보았다. 이 homoousia는 homo와 ousia의 합성어로, homo는 ‘동일한,’ousia는 실체(substantia)를 뜻한다. ousia는 같은 계층에 속한 구성원으로서 공통적으로 지닌 동일성, 내적 특성으로 성자의 ousia는 성부와 성자의 신성 및 공동 영원성을 지녔다고 보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연합과 성부-성자 사이의 동일본질(homousios)론을 강조하였다. 그는 그리스스도교의 진리를 철학적 구도 안에서 이해하는 것을 배척하고 성경을 중심으로 전개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본질을 구원론적 차원에서 접근하였다. 구원과 창조의 근원은 같다. 구원에는 창조의 권능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본질이 성부와 동일 본질이 아니라는 아리안주의는 인간의 구원이 불가능하다고 보아 아리안주의를 배척하였다. 만일 그리스도가 성부의 본질보다 낮은 본체의 하나님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초기 재림신도 지도자들은 모두 아리우스주의자들이었을까?
재림교회 선구자들을 두고 가끔 半 아리안주의(semi-Arianism)자들이었다고 하는 비평이 있어 왔다.
Michael W. Campbell은 2014년 10월호 Ministry지에서 1846년부터 1863년까지 재림운동에 참여한 제칠일 안식일 준수 51명 목회자들의 신앙적 출신 배경을 조사 게재하였다(p. 6). 계열별로 보면 교단 무연계 출신들이 47%로 압도적 있으며 그 다음 27%가 감리교회-감독교회 출신들, 18%는 침례교회 출신들이었다. 그 외에 4%가 크리스천 커넥션교회 출신들, 2%는 제칠일침례교 출신들, 2%는 회중교회 출신들로 나온다. 이에 비추어 보면 재림교회 초기 형성기의 지도자들은 사회경제적, 종교적 배경에 있어서 다양성을 띈 교파출신들로 된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 양상이었다. 동 기간 중 크리스천 커넥션교회 츨신 Joseph Bates와 James White은 재림교회 조직 형성에 크게 기여한 지도자들이었다. 크리스천 커넥션교회는 삼위일체를 신봉치 않는 아리안주의적 신앙노선을 따르고 있었다. 비록 베이츠와 화잇의 지도에 따라 半 아리안주의가 풍미하였지만 지도자들 구성 면모를 보면 삼위일체 산앙을 하는 비중이 더 많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재림교회 선구자들이 半 아리안주의(semi-Arianism) 사상의 영향을 심대하게 받을 수는 있었지만, 위에서 기술하였듯이 재림교회 지도자들 구성 비례로 비추어 보면 삼위일체 교리 신봉자들의 수가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다만 反삼위일체적 주장을 펼친 주도적 선구자들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신앙이 흔들렸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아리안주의나 반 아리안 주의적 신앙노선을 배척한 분이 엘렌 화잇 여사이다. 화잇 여사는 1898년에 출판한 <시대의 소망>에서 이를 분명케 하는 진술을 하였다.
먼저 나사로를 부활시킨 사건을 다루면서 그리스도의 신성의 파생 사상과는 대척을 이루는 진술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에게는 최초부터 있고 빌려오지 않고 다른 곳에서 파생(派生)되지 않은 생명이 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요일 5:12)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믿는 자에게 영생에 대한 보증이다.”(소망, 530).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묘사하면서도 동일한 메시지를 펼치고 있다.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을 부르신다고 말하는 힘있는 천사의 음성이 그리스도의 무덤에 들렸을 때에 구주께서는 자기 속에 있던 생명으로 무덤에서 나오셨다. 그 때 다음과 같은 그분의 말씀이 진실임이 밝혀졌다.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소망, 785)
“그 천사의 음성이 “당신의 아버지께서 부르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을 때 “나는 생명을 다시 얻기 위하여 생명을 버리노라” “이 성전을 헐라 사흘만에 다시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던 그분이 무덤에서 나오시되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생명으로 살아 나오셨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제 빌려받은 요셉의 무덤을 향하여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다. 그분의 신성 안에 죽음의 사슬을 깨뜨릴 능력을 갖고 계셨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자기 속에 갖고 계신다고 선언하신다. ”(화잇주석, 막 16: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이 말씀은 신성을 가지신 분만 사용하실 수 있는 말씀이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뜻과 능력으로 살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받는 자들이요, 그 생명을 의지하고 있는 자들이다.
사람이 아무리 유능하고 재간이 있고 그들의 능력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그들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분으로부터 생명을 재충전 받고 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그분만이 빛가운데 계시고, 생명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나는 생명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 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다“(원고 131, 1897).(화잇주석, 막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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