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가지 거짓 이야기
만 가지 거짓 이야기
마르코 폴로는 13세기 중엽 이탈리의 상업도시 베니스에서 태어났다. 베니스 상인이었던 부친 니콜로는 아들이 출생하기도 전에 동방무역을 위해 고향을 떠났다가, 아들이 10대 중반 되던 때에 돌아왔다. 이때 잠시 베니스에 머물다가 국제무역 차 떠나는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마르코는 9,000km를 걸어 3년 만에 중국에 도착한다. 마르코는 열심히 노력해서 4개 언어를 익힌다. 이 언어 소통 능력 때문에 원나라 황제에게 발탁되어 중국 전역을 돌면서 몽골과 베트남 상황까지 보고하는 왕의 참모 역할을 한다. 그가 매료됐던 세계는 다름 아닌 몽골제국, 특히 쿠빌라이 칸(Qubilai Khan)이 지배하고 있던 중국이었다.
20년이 지난 후 마르코 폴로는 중국 남부의 천주(泉州) 항을 출발해 인도양을 가로질러 1294년 다시 조국으로 돌아간다. 고향에 돌아와 몇 년 뒤 마르코 폴로는 지중해에서 벌어진 제노아와의 해전에 참전하다가 포로가 돼 감옥에 수감되는 신세가 됐다.
몇 년의 수감생활 중 그가 중국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수감자들에게 들려준다. 그의 신기하고 재미있는 중국 이야기는 소문이 나서 여러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는 수감 중 피사 출신의 작가 루스티켈로(Rustichello)를 만나 자신의 경험담을 구술하였으며 루스티켈로가 이를 받아 적어서 출판된 책이 그 유명한 ‘동방견문록(Travels of Marco Polo)’ 이다. 책이 출판된 후 사람들은 너무나 재미있고 신기한 이 이야기들을 믿을 수가 없어서 실제 여행기가 아닌 거짓말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방견문록’ 책에 ‘만 가지 거짓 이야기“라는 부제목을 달았다.
‘동방견문록’은 마르코 폴로의 여행을 기초로 해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기행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기행문이 아닌 地理書이자 博物誌이고, 동시에 여러 민족의 생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적은 것이지만, 13세기 후반 유럽 이외의 다른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서술이라는 특성도 배어 있다. 당시 유럽인들이 전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딱딱한 ‘사실’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마르코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많은 ‘일화’들을 수집하여 독자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여 그 파급력이 더 커지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 중에는 바그다드 이슬람 칼리프가 기독교도들을 멸할 계책으로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산을 옮기지 못하면 처형시키겠다고 하여 위기에 처하였을 때 외눈박이 믿음이 돈독한 구두 수선공의 이적으로 살아났다는 삽화적 이야기, 환락의 정원을 꾸며놓고 젊은이들을 유인한 뒤 자신의 명령에 따라 목숨까지 던지는 무서운 암살단을 조직했던 ‘산상의 노인’에 관한 이야기, 쿠빌라이 칸의 장엄하고 화려한 도시와 궁전들, 낯선 여행자들에게 기꺼이 아내와 딸을 내주어 동침케 하는 풍습을 지닌 지방들에 관한 이야기, 성 토마스(St. Thomas)의 유해가 묻혀 있다고 하는 인도의 마아바르(Maabar) 해안에 관한 서술 등 사실과 허구가 교묘히 혼합된, 믿을 수도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놀라운 이야기들도 들어 있다.
그래서 ‘동방견문록’은 그가 실제로 여행해서 체험한 것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교묘하게 짜집기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런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르코 폴로가 실제로 동방여행을 했고, 이 글이 그의 여행을 기초로 해서 작성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마르코 폴로의 임종이 다가왔다. 신부는 사람이 임종할 때 드리는 終傅聖事를 하는 중에 그에게 “나도 너의 책을 다 읽었다. 모두 다 거짓말이로구나. 네가 그렇게 하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느냐?”라고 하면서 고해, 참회하도록 요청하였다. 그러자 마르코 폴로는 한숨을 크게 내 쉬면서 “신부님, 중국이야기는 모두 사실입니다. 제가 본 것의 절반도 이야기 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신부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마르코 폴로의 중국 이야기를 만 가지 거짓 이야기로 보아 믿지 못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아우구스투스는 “내 머리로 이해되는 것은 신이 아니다. 그것은 우상이다.”고 하였다. 믿는다는 것은 기록된 말씀을 수용하고 그 약속을 붙잡는 손과 같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고 물었다. 어떤 사람들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분이 행하신 일들,- 계시와 영감을 받은 예언자의 예언들, 하나님의 기사이적들을 인간적 이성으로 재단하고 상식의 대패질을 하여 이해하고자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우둔한 지능으로 다 알 수 없는 것들을 역설적인 진리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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