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퍼슨의 몬첼로를 되돌아보며
제퍼슨의 몬티첼로를 되돌아보며
엊그제 미국 독립 기념일 244주년을 보내면서 1997년과 1978년 여름에(7월 경) 버지니아 주를 방문한 일이 생각났다. 버지니아는 울창한 숲의 주라고 할 만하였다. 리치몬드에 있는 고색이 창연하나 유서 깊은 버지니아대학교를 찾아 교정을 걷기도 했으며 허술한 도서관 열람실을 이용하기도 했다. 샬러츠빌 남동쪽에 위치한 미국 역사기념물 몬티첼로(Monticello)를 방문한 일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이 팔라디오 양식 기초로 1768년과 1809년 사이에 설계, 건축된 신고전주의 건축물이다. 1987년 몬티첼로는 버지니아대학교와 함께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우리 일행은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의 저택과 552에이커의 광활한 농장을 둘러보고 놀랐다. 제퍼슨의 세심한 배려가 담긴 건물과 그 시설들이었으며 농장이었다. 그의 사후에는 거액의 부체($107,000)로 인하여 노예들을 경매장에서 팔아야 했을 뿐만 아니라, 제퍼슨의 작품들, 가구, 농장 시설들, 더 나가서는 저택과 농장을 매각해야 했다. 1911년 연방정부가 저택과 농장 및 여러 시설들을 재매입, 복원하여 미국의 역사기념물로, 그리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제퍼슨은 총명한 지성, 시대의 선각자, 세상적인 명예 및 거대 농장주 부호이었다. 그는 ‘음악가, 설계사, 측량사, 천문학자, 박물학자, 법률가이자 정치가’로 알려지리만큼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독립선언서의 기초자,’ ‘버지니아 종교자유법의 제안자,’ ‘버지니아 대학의 창설자’로 불후의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는 버지니아의회 의원, 대륙회의 대표, 주지사, 프랑스 전권공사, 국무장관, 부통령,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정치 이력의 소유자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서보다 빛나는 점은 그가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이념적 바탕을 마련한 철학자이었으며 교육자로서의 업적일 것이다.
미국 이념의 창안자
제퍼슨은 미국 건국이념을 세운 5인의 정치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독립혁명기의 시대적 여망을 독립선언서에 담았다. 아마도 그는 그 초안을 마련하였을 만큼 뛰어난 지성의 사람이었다. 그는 독립선언서에서 미국의 분리 독립을 정당화했으며,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라는 신권적, 자연법적인 사상을 독립 이념으로 삼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런 눈부신 기여로 그는 아직도 미국의 건국의 토대를 마련한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격동의 혁명기를 이끈 정치 주역이면서도 18년간 미국철학회 회장으로, 계몽주의의 이상에 불타면서도 실용주의자로 활동했다. 또한 그는 유럽의 고전문화에 밝았으면서도, 서부와 아메리칸 인디언 및 그 토착문화를 선양했다. 그러나 정작 제퍼슨은 자기 시대의 아들이었다. 그가 자유와 천부인권의 사도를 자임하였지만, 150여명의 많은 노예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사후에는 흑인 노예와 사이에 자녀들 두어 화제가 되리만큼 그는 대단히 다면적이고 복잡한 인물이었다.
독립기념일에 잠든 사람
제퍼슨은 7월 4일과 운명을 같이하였다. 1776년 7월 4일 제퍼슨이 기초한 독립선언이 채택된 날이다. 1776년 7월 4일 당시 영국의 식민지 상태에 있었던 13개 주가 서로 모여 필라델피아 인디펜던스 홀에서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 이후 7월4일은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은 미국의 연방 기념일로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토마스 제퍼슨은 젊은 시절 초대 부통령 및 제2대 대통령이었던 존 애덤스(John Adams, 1735-1826)와는 우정이 두터운 친구 사이었다. 그러나 후에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면서 이들 관계는 소원하여졌다. 제퍼슨이 제3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선임자 애덤스와 만나지도 않으리만큼 멀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마지막 생애 14년 동안에는 화해하였고 150여 통의 우정적 서한을 주고받는 사이로 복원되었다.
존 애덤스가 91세 나이로 마지막 남긴 말은 ‘토마스 제퍼슨이 아직 살아 있겠지’이었다. 제퍼슨이 이 말을 들었더라면, 아마도 그는 늘 하던 식으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또 잘못 집었군요”라고 응수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 제퍼슨은 83세 나이로 몬티첼로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어 가는 시간대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제퍼슨은 애덤스가 숨을 거두기 몇 시간 전에 친지와 가족들에게 에워 쌓여 마지막 숨을 쉬고 있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오늘이 7월 4일 맞지요?”이었다. 그날 두 사람은 모두 같은 날 숨을 거두었다. 이 날은 독립선언 50주년 기념일이 되는 1826년 7월 4일이었다. 미국의 역사적 절정을 이룬 미 독립 사건의 주역이 바로 그 독립기념일에 숨을 거두었다는 것은 마치 아름다운 석양의 낙조 광경을 보는 듯 멋있는 임종으로 다가온다.
진정한 독립일
대속죄일은 유대인들이 독립기념일 같은 날이었다. 그들에게 Tishri 10일(7번째 달 10일)은 1년 중 가장 엄숙한 날이었다. 이 날에는 대제사장은 지나간 해 동안 고백한 모든 죄를 지상 성막-성소에서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의식을 주도적으로 거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셨다.
“이 날에 너희를 爲하여 贖罪하여 너희를 淨潔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罪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淨潔하리라”(레 16:30).
죄의 권세로부터 진정한 해방되어 자유를 얻는 회개와 고백하는 욤 키푸르(Yom Kippur) 날이야 말로 고백자의 진정한 독립기념일이 될 것이다. 종말적 의미가 함축적으로 표상화 된 대속죄일 시간대를 보내는 그리스도인들은 회심 이래 고백하여 온 죄를 도말하는 하늘의 행사를 의식하면서 죄에서 해방 독립하는 날을 진정으로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 살아가는 동안 제퍼슨과도 같은 탁월한 지성과 기여가 있었다 하여도, 절대자 앞에서 죄로부터 참 자유를 얻지 못한다면 인생을 바로 산 것이 아닐 것이다.
(사진- 제퍼슨의 몬티첼로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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