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旅程

구원 : 2021. 8. 15. 12:48

용서의 旅程

 

용서의 상호성

용서는 일방적인가? 요셉의 이야기 가운데는 용서가 상호적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용서는 한 공동체를 치유하는 役事이다. 이 치유의 역사는 긴 여정이 걸렸다. 요셉의 용서는 어느 한 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17세 때로부터 30세 총리가 되고 형제들을 만나는 39세까지 최소한도 22년의 과정을 거치고 형제들의 내적 치유까지는 17년이 더 걸리는 39년에 걸친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야곱이 애굽에 내려 왔을 때 130, 그 때 직전에야 아들들이 아버지에게 요셉에 해코지한 자기들의 비행의 진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였다. 죽을 때 나이가 147세이었다. 형들은 이미 용서 받았고 잘못을 고백했지만 아버지가 임종하자 다시금 요셉의 보복을 두려워 해 종으로 삼아달라고 빌었다. 이 일을 통하여 그들은 용서 받았음에도 최소한도 17년간을 전전긍긍하면서 지낸 것을 암시하고 있는 사건이다.

 

요셉은 언제 용서했을까? 17세 팔려가면서 신앙 결심했을 때이었는가? 보디발의 집에서 10년간 그리고 애굽 감옥생활(고난의 학교)을 합하여 13년 동안이었을까? 요셉은 어릴 때 아버지의 편애로 생긴 정신적-영적인 결점의 멍울들이 깎이고 다듬어져 가는 영적으로 점점 순화, 성숙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30세 총리되었을 때 용서하였을까? 아마도 이 때 형들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추정된다. 이 때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지난날 쓰라림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요셉의 마음에 여러 해 묶은 어둠과 원한의 과거 해방되어야만 찬란한 미래가 열리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형들이 39세 양식 구입하러 왔을 때, 이미 요셉이 형들을 용서했다면 왜 형들을 1, 2, 3차 시험을 해서 확인해야 했나? 가해자들의 진실성과 확실성(42), 회개와 자복(42:21), 정직성(43:22), 이타심과 형제우애 그리고 진정한 효도(44장 유다의 호소), 5배나 맛있는 음식을 더 준 그릇에 사용된 은잔 시험을 통하여 형들의 질시와 곤궁에 빠진 베냐민을 구출하고자 하는 의지 등 삶의 변화를 확인해야 했던 것은 분명하다. 형들의 성품은 역경을 통하여 변화되어 갔다(PP 225). 그러나 이 것이 그 이유의 전부이었을까?

 

요셉의 구원론적 깨달음

요셉은 고난의 학교를 거치면서 배우고 깨달은 점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45:5, 7-8).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50:20-21).

 

요셉은 무엇보다도 자기가 애굽으로 팔려간 것을 두고 구원론적 시각에서 하나님의 선교적 파송으로 보았다. 이 파송은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 왔다. 그리하여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건을 두고 하나님의 구원으로 역사한 점들을 선언하였다(45:5, 7-9; 50:20, 24-25).

1) 4가지 - 45:5

(1) 당신들이 이 곳에 팔았다고 근심하지 말라.

(2) 한탄하지 말라.

(3)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냈다

(4) 45:7 요셉 파송 목적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 들의 후손들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냈다.

희망의 메시지 파송 목적: 생명 구원; 생명보존(she'arit, 남은자); 후손 생 명 구원 및 보존

2) 3가지 창 50:20, 24-25

(5) 하나님이 해()를 선으로 바꾸어 많은 백성의 생명 구원

(6) 하나님이 미래 돌보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

(7) 하나님의 돌보심 재확인하고 자기 해골을 가지고 가라하면서 출애굽을 내다보 았다.

 

요셉이 홀로 개인적으로 용서하는 것으로는 무엇인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시간의 앙금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어둠을 세척해 내는 일에는 길고 긴 여정이 필요하였다. 용서란 상호적이라는 사회성을 지녀 그 앙금들을 세척해 내는 일에는 길고 긴 시간의 과정이 필요했으리라. 창세기 42장부터 44장까지는 요셉이 형들을 시험하는 기사가 이어지고 있는 한 묶음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임종 후 무릎을 꿇고 종을 자청하는 형들의 속마음을 펼쳐 보인 탄원 기사가 실린 창세기 50장에 이르기까지 17년 여 동안의 이면에 전전긍긍해 온 형들의 실상을 비추어 주고 있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용서는 어느 한 순간의 일이 아닌 길고 긴 용서의 여정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창세기 본론의 끝 부분(42-50)용서의 여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어느 한 개인이 해악을 끼친 가해자를 용서하였다고 할지라도 가해자들의 내적 진정한 변화는 100%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진정한 용서는 상호적이고 심층적이다. 용서는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용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와 가해자들과 사이에 공동체 내 형제 관계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서 가해자들의 내면에 쌓인 무서운 정신적 암 덩어리 같은 멍울을 치유해 나가는 긴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도 이어지는 창세기의 메시지

창세기는 용서의 어려움과 그것을 달성해 가는 과정을 말하고 있는 이야기로 대미를 맺고 있다. 인간의 종말론적 역사의 마침도 창세전에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예언되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먼저 인간의 용서를 위한 하나님의 희생제물의 드림이 있을 연후에 인간의 반응이 가능하다. 요셉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약적 표상이 된다는 점에서 역사의 끝자락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점에 비추어 세천사의 메시지가 담고 있는 하나님의 용서의 메시지, 곧 구원의 메시지까지도 표상하고 있다.

 

성경 상 인간의 용서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반응이다. 인간이 용서 받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가 선행된 결과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용서하면서, 또한 용서를 구하면서 신앙 공동체 내에서 관계를 회복하고, 피차 치유 받으면서 천성을 향하는 순례자들이다. 교회는 용서 공동체이다. 그것이 구원의 길, 의롭게 되는 길이다.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