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타락 결과 그리고 구원의 서광

 

사단은 하늘에서 쫓겨난 후에도 하나님의 정부를 반역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그는 새로 창조된 처음 인간 아담 하와를 유혹하여 그들을 반역의 대열에 이끌어 냈다. 완전한 세계에 살면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창조주로부터 공급받은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행복의 근원이신 분께 불만족을 느끼고 불신을 가질 수 있었는가에 대하여는 루스벨 경우에 비추어 고찰하여야 한다.

아담 안에 죄를 지을만한 요소가 없었다. 또한 에덴동산은 죄를 지을 환경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담이 자유의지를 지닌 피조적 존재라는 사실은 실족할 개연성 까지도 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하나님(1:17)께서는 악에게 시험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1:13)은 인간들을 죄악에 빠뜨리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구원의 복음으로 가변적 존재이고 시험을 받아 넘어진 인간을 위하여 첫 복음을 약속하셨다.

 

I. 사단의 시험

A. 유혹자의 방법

(1) 유혹자의 정체 - 뱀은 사탄의 도구 agent, 문자적 뱀이다. 뱀의 특성은 간교 (arum)으로 지혜로움,’ ‘영리함을 뜻한다. 뱀은 이 특성을 악용하여 간교롭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타락사건에 나오는 뱀을 문자적인 동물인 뱀으로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뱀이 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타락 유인자 뱀을 사단에 대한 은유적 표현, 탐심의 상징, 또는 사단이 가장한 형태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창세기 3:1의 평이한 묘사, 창세기 3:14-15에 선언된 형벌 및 고후 11:3, 12:9 등과 같은 문자적 타락사건을 소개하는 성경절들에 모순된다.

뱀이 말을 하였다는 것은 뱀의 말이 아닌 사단의 권세에 의하여 야기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사단이 뱀을 매개체로 이용했다(PP 53). 뱀의 속임수는 결국 사탄의 음성이었다. 발람의 나귀가 말을 한 것도 이와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의 하나이다. 하와의 관심을 끌만큼 뱀은 찬탄의 대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문자적인 옛 뱀은 마귀, 사단의 상징이었다(12:9). 뱀의 교활성, 유독성은 마귀의 본성과 활동의 상징이 됨직하다.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곁에 가까이 오자 아름다운 뱀을 가장한 사단은 하나님께서 나무 실과를 먹는 것을 금지하신 것에 관해 의심케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은 의심을 유발(“참으로 really”) 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사탄은 과장법을 사용하여 동산의 모든 나무를 포함시켰다. 이 과장법은 하나님의 말씀 즉, 가르침과 하나님의 품성(거룩성)을 왜곡시켜 가혹하고 불공정한 분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탄은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관대하심을 금지와 압제의 하나님으로 보게 하였다. 악은 세상에 들어 있는 원칙이 아니고 인간의 선택과 행위의 산물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사탄은 여자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여 환심을 샀다(PP 53).

사탄의 유혹의 세 단계는 하와의 마음속에 의심의 씨 심는 단계, 하나님 말씀 부정하는 단계, 그리고 하나님의 의지에 불순종하게 한 단계로 나온다.

(2) 하와의 대답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3:3).

3SG 35 - “not to eat, neither to touch it, lest they die.”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2:17) 인용(1864) -> 2:17의 말씀을 죽을까 하노라,” 축소형, 확신 결여가 묻어 있는 대답이다. (A. J. Ferch‘overstated, added the clause’로 설명)

RH 1874. 2.24 너희는 그것을 먹지 말라 창 3:3

화잇 여사의 두 가지 진술은 하나님께서 두 가지 방식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한다.

하와가 나무 실과를 먹게 되면 죽으리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을 시인하자 사단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사항에 대하여 도전하며 말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 그는 하나님이 놀라운 새로운 체험, 곧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막으신다고 암시함으로써 호기심을 일으켰다(3:4, 5). 즉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이 뿌리를 내렸다. 하와는 그 과실이 제공할 것이라는 위대한 가능성에 매혹되었다. 유혹은 그의 성결한 마음을 여지없이 흔들어 버렸다. 그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라고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자기 위치에 불만족하게 된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라는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3:6).

 

B. 타락의 단계

변장한 참소자의 등장-> 사랑스러운 매체 사용-> 불경스런 호기심 활용-> 의심하는 말-> 자만에 호소-> 공개적인 행동

이런 단계들은 하나님 말씀을 불신케 하는 저의가 깔려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상치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사탕에게서 온 것이다.

 

C. 유혹의 성질

첫 범죄의 성질의 형식적 측면은 선악과 열매를 먹는 일로 구성되었다. 칼 바르트는 타락 사건 기사를 초역사로 보았다. 인간의 타락 사건의 역사성을 부인하고 신비적인 것이나 우화적인 것으로 설명이 있지만, 창세기는 타락사건의 문자적인 실화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요한복음 8:44, 고린도후서 11:3, 및 요한계시록 12:9은 이런 문자적 사실성을 증거하고 있다.

첫 범죄의 본질적 측면은 하나님을 반대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것, 신과 대등한 신분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단은 첫 인간에게 의심과 불신, 그리고 자만을 일으켜다. 하와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경고를 불신하였다. 그래서 자기에게 허용되지 않은 지식을 탐하였다, 첫 범죄는 그들의 궁극적인 관심을 하나님께 두지 않고 거룩치 못한 만족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 둔 것에서 야기되었다. 자기 자신을 판단의 중심 원리로 삼았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자신의 판단력을 신뢰함으로써 하와는 하나님께 대한 의뢰심을 끊어버렸다. 내적인 자기(self) 본위의 외적 발로가 그들로 하여금 죄 가운데 전락케 하였다. 그러므로 인류의 타락은 그 가장 주요한 특징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붕괴였다. 이러한 불신은 불순종으로 이끌었고, 그 결과로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으며, 결국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분리가 생겼다.

 

D. 선악과

요한은 이러한 타락 사건의 본질적 측면을 세 가지로 요약하였다(요일 2:16). 첫 죄를 설명하고 있는 창세기 3:6은 이 세 가지 요소를 담고 있다. , 먹음직하고(육신의 정욕), 나무를 보니 보암직하고(안목의 정욕), 지혜롭게 할 만하더라(이생의 자랑)이다.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이라는 표현은 감성적, 육신적, 세속적인 것들로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에 관한 지식으로 충분하도록 하셨다. 선을 알기 위하여 악을 안다면 그것은 비극의 홍수문을 열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악을 알자마자 선악판별의 능력이 훼손되게 장치하셨다. 인간이 악을 알게 되면 정신적, 영적인 예민한 힘이 둔화된다. 사람의 욕망이라는 것은 충족되는 순간 황량한 무덤이 되어 간다. 이런 점에서 욕망 그 자체는 자기 파멸의 길을 재촉할 뿐이다.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되리라는 사단의 약속은 이제 인간이 죄의 결과에 대하여 어떤 것을 알게 된 그 점에서만 성취되었다.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는 사탄을 시사하고 있다.

1. 선악과의 목적은 먼저 악에 관한 지식은 인간의 사랑, 감사, 충성과 순종을 시험하는 역할에 있(CS 65; PP 53, 56). 그것을 먹지 않으므로 사랑, 감사, 순종 그리고 선을 배우고, 그것을 먹으므로 불순종과 악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악과가 선악에 관한 실천적인 지식을 부여한다고 보는 입장은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뱀의 말과 부조화 되는 설명이 된다. 하나님은 악에 관한 실천적인 지식이 없으시다. 이런 점에 비추어 선악과는 특수지식을 전달하는 비범한 힘을 지닌 것은 아니다. 선악과 열매에는 독성도 없었다.

사단은 하나님께 불순종을 뜻하는 선악과를 아담에게 먹이려고 유혹했을 때 사망의 씨앗을 심었다. 주님의 큰 동산 안에 유독성 식물이란 단 한 그루도 심은 것이 없었다. ”(2기별, 288).

2. 또한 인간이 순종과 충성의 시험을 받게 한 목적은 인간의 품성을 발전시키고자 함이었다. 인간은 시험 없이는 성장이 없는 존재이다. 인간의 품성은 올바른 선택을 통하여 발전한다. 좋은 선택이 좋은 품성을 구축케 한다. 예수께서도 고난의 시험을 통하여 순종을 배워 사명 완수, 목표 도달이라는 완전을 이루셨다(5:8). 무죄하시고 완전하신 예수님이셨지만 순종을 통하여 품성을 발전시키면서 그 사명을 이루셔야 했다.

우리의 시조는 죄가 없고 정결하게 지음을 받았으나 악을 행할 가능성이 배제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창조하실 때 그들에게서 당신의 요구를 거부하는 능력을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그렇게 할 경우 품성의 발달이 있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의 봉사도 자원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하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선택의 능력 곧 순종하든지 또는 순종하기를 거절하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축복을 온전히 받게 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과 충성에 대해 시험을 받아야 했다. 에덴 동산 가운데에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2:9-17) 하셨다. ”(교육, 23).

3.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금지명령을 주신 하나님의 진정한 동기는 인간의 행복에 있었다. 하나님의 법은 인간에게 행복의 울타리 역할을 하게 하였다. 사탄은 이 금지 명령을 하나님이 동등하게 되는 것을 막고자 주신 것이라고 암시하여 인간이 금지 명령을 어기면 신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유혹하였다(PP 54).

"선에 대한 지식은 흡족하게 저희에게 주셨으나 악에 대한 지식 곧 죄와 그 결과에 대하여, 힘든 일과 고민과 실망과 비탄, 아픔과 죽음, 이런 것들에 대하여는 저희를 사랑하시므로 저희에게 알리지 아니하셨다.“(교육 25).

 

우리의 시조를 죄인으로 만들고 이 세상에 악에 관한 지식을 가져 온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의심, 그분의 말씀에 대한 불신, 그리고 그분의 권위에 대한 도전 때문이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모든 종류의 거짓과 오류의 문이 열린 것이다.”(교육, 25)

 

에덴동산에만 선악과가 있는 게 아니다. 현대 선악과도 있다. 현대 선악과 열매는 도처에 널려 있다. 예컨대, 최면술을 통한 정신치료는 현대 선악과를 따먹는 것과 같다. “정신 치료의 과학을 다루어오면서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만지지 말라고 금하신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고 있었던 것이다” (2기별, 350). “우리 기관을 통하여 이런 특성의 인쇄물이 나가도록 허용하는 것은 선악과를 고용자의 손에 두어 세상에 그것을 전하는 것이다” (3보감, 166).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처럼,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오류의 기만적인 부스러기를 먹으며 살아간다” (3보감, 271).

오류를 진리 속에 혼합시킨 것들도 이런 현대 선악과 열매에 속한다.

엘렌 화잇은 선악과와 안식일이 모두 충성의 시금석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

하와가 에덴에서 시험을 당한 것처럼 사람이면 누구나 다 시험을 받는다. 선악과가 에덴 동산 중앙에 위치해 있었던 것과 꼭 같이 안식일 계명은 십계명의 중앙에 있다. 선악과 열매에 대하여 그것을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까 하노라”(3:3)는 제한을 하셨다.”(화잇주석, 20:8-11)

그 밖에도 갖가지 성적 탈선을 조장하거나 유인하는 행위들은 현대 선악과 열매에 속한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을 무너뜨리게 하면서 선과 악의 지식을 부추기며 불멸을 추구하게 하였다.

 

E. 선택의 자유

생명과와 선악과의 이슈 해심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는 점에 있다.

선택의 자유는 인간 안에 창조주가 입력하여 둔 매우 위험한 능력이다. 인간은 그것을 마음대로 활용하여 심지어는 자기를 파멸 시킬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들을 파멸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인간 창조는 위험한 창조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선택의 자유를 지닌 인간을 창조하셨다. 인간 됨(being human)이란 선택의 자유를 행사한다는 것, , 시도하고, 결정하고, 도전한다는 것에 매달려 있다.

"인간 품성(형성)에 있어서 그토록 중요한 하나의 요인이 되는 의지는 타락 시에 사단의 장악 하에 들어갔다."(5T 515).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께 의지를 바친 후 하나님으로부터 의지를 다시 받아야 한다"(MB 62).

인간이 지닌 선택의 자유가 불완전하게 된 것이다. 지성인 사회에서도 인격 장애자가 비일비재하고 정신이 멍든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인간 세계의 상황이다.

.인간의 행위가 선택의 자유 -자유의지- 에 토대를 둘 때 비로소 도덕적 행위가 된다. 그래야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선택의 자유는 심판의 대전제 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 이유의 전부가 될 수 없다. 더 중요한 이유는 선택의 자유를 통하여 인간의 품성이 그 차원을 높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의 자유는 영원을 향하여 한 없이 발달하여 갈 가능성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生老病死 (Birth, Aging, Disease, Death) 이해

 

B --------> C --------> D

 

탄생(Birth)은 만남과 섭리의 결실로 아름다운 축복이다. 산다는 것은 죽음을 향한 여정으로 노화과정(Aging)이다. (Disease)은 시련으로 극복의 과제이다. 죽음(Death)은 살아온 삶의 내용을 완성시킨 것으로 바꿀 수 없게 하는 마감이다. B에서 D까지는 선택(Choice)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선택은 무엇을(What), 어떻게(How), (Why)의 물음에 대답하는 일이다. 선택 여하에 따라서 인생의 운명이 판가름된다. 결국 인생이란 B ->A -> (C) ->D -> D로 이어진다. CCenter 역할을 한다. 센터 역할에 있어서 또 다른 B(The Book=The Bible)가 주어져 있다. 이 책에는 무엇을, 어떻게, 왜를 선택(C)할 정보가 담겨 있다.

BC는 성경에 향한 선택도 된다. 결국 인생은 BBACCDD이런가!!!

 

II. 첫 죄의 결과들

에덴 이란 말은 평원큰 기쁨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범한 결과 슬픔이 되어버렸다. 아담과 하와가 입었던 본래 입었던 옷은 하나님의 옷(104:1-2)을 닮았다. 그러나 무죄한 자만이 입을 수 있는 이 빛과 영광의 옷은 사라져 버렸다. 남은 것은 벌거벗음(erom)과 수치스러움이었다(3:7). 그리하여 첫 조상은 무화과나무 옷으로 자기들의 부끄러움을 가렸다.

죄의 영향. 죄의 즉각적이고 장기적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 또한 죄를 제거하고 인간 본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범죄 전 에덴동산에는 완전한 조화 관계로 차 있었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환경 사이의 관계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 어떠한 인위적 작위도 없었다. 이 관계의 조화는 하나의 조건을 전제로 하였다. 선악과가 그것이다. 선악과는 절대적 금기 사항이다. 절대적 금기가 깨지는 날 낙원은 무너진다. 인간이 하나님만 가진 절대 자유를 탐한 결과 유아독존의 의식의 포로가 되었다. 공적인 것을 사유화시킨 것이,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삼았을 때에 관계는 깨지고 분열이 시작되었다. 에덴의 분열과 조화관계의 파괴 비극은 오늘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재현되고 있다.

 

A. 하나님의 선언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선언하였다. 범죄한 인간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선언은 구속적인 축복도 들어 있다.

1. 여자에게--해산의 고통

범죄 전 생명의 잉태는 창조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기에 축복이 된다. 그런데 죄로 인하여 이 축복이 극한 고통을 수반하게 되었다. 남자들은 해산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산모는 해산을 위하여 신발을 벗는 경우 저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절박성을 갖는다고 한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어머니에게 단말마적 고통을 주며 태어났다. 모두가 어머니에게 감사하여야 한다.

또한 아내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원하고(teshuqah, 열망, 갈망)’(3:16)는 죄와 심판의 문맥에서는 남편을 소유하고 조정하고, 지배하려는 것으로 이해된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며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로 창조되었는데 죄로 인하여 결혼관계가 욕구하고 지배하는 관계로 바뀌었다. 결혼관계가 투쟁과 학대, 지배와 속임수로 대치된 것이다.

2. 남자에게--생존경쟁의 고통

하와가 선악과 열매를 건네며 먹으라고 하자 아담은 슬퍼하며 하와에게 죽을 것이라고 응하였다. 하와는 먹으면 생기가 북돋아진다고 하면서 죽지 않는다고 남편을 설득했다. 아담은 자기의 분신인 하와와 이별을 견디지 못하여 여자가 당할 운명을 같이 하기로 결심했다(PP 56).

아담에게 내린 저주는환경과 연곤되어 나온다. 저주 받은 땅에서 노동해야 했다. 범죄 전 노동 역시 창조 명령으로 축복이 된다. 그런데 이 역시 죄의 결과로 고통을 수반한다. 종신 수고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남자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면서 생존을 위한 수고를 하여야 한다. 가족의 생존을 위하여 허리가 휘도록 일하여야 한다. 일 벌레가 되어야 한다.

3. 모두에게--죽음의 고통

인간은 그렇게 수고하다가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삶의 여정이 죽음의 여행길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을 즉각적 사형으로 처리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장례식장에 가서 유족들의 슬픔을 보면서 인생고의 현장을 체험하여 왔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하여 수많은 종교와 철학이 등장하였다.

4. 땅에게--가시덤불과 엉겅퀴의 고통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18).

땅은 인간 삶의 현장이다. 삶의 현장은 가시덤불이며 엉겅퀴로 차 버렸다. 가시밭 길 인생이 된 것이다. ""은 빈 들판(open field)을 의미한다. “채소는 허브(herb) 또는 식물들(plants)이다. 변해 버린 환경, 깨진 균형에서 인간의 식단의 변화가 이러 났다. 인간은 생명과 안에 들어 있는 성분을 찾아 각종 식물과 허브를 구하여 왔다. 한의학의 시작이라고나 할까?

지구촌은 바야흐로 공해와 오염의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차 있다. 도처에 고통스런 것들로 차 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신문은 날마다 인생고의 여러 단면들과 이 고통스러운 세상을 소개하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다.

5. 뱀에게 - 어떤 동물보다 더 저주가 선포되었다(3:14). 뱀이 전에는 배로 다니지 않고 날개로 나를 때 금빛 찬란한 눈부신 모습이었다(PP 53). 뱀은 흑을 먹어야 했다. 이는 뱀이 죽음의 존재로 전락되었다는 뜻이다.

 

B. 첫 죄의 즉각적인 결과들

1. 인간 본성의 변화(타락성)와 영적 쇄잔

창조 시의 인간의 본성은 순결무구하였고 거룩하였으며 죄된 성향과 욕망이 없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다. 그의 본성은 하나님의 뜻과 조화되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애정은 순결하였고 그의 식욕과 감정은 이성(理性)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그분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가운데 거룩하고 행복하였다. 사람이 그의 창조주의 손으로 지음을 받았을 때 신장이 컸으며 완전히 균형이 잡혀 있었다. 그의 용모(容貌)는 건강한 혈색을 띠어 불그스레하였으며 생기와 기쁨의 빛으로 빛났다. 아담의 키는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키보다 훨씬 컸다. 하와는 아담보다 조금 키가 작았으나 그의 자태는 고상하였으며 아름다움으로 충만하였다. 이 무구(無垢)한 부부는 아무런 인조 의복을 입지 않았으며 그들은 천사들처럼 빛과 영광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이 빛의 두루마기가 계속 그들을 둘렀다” (부조, 45).

 

그러나 첫 죄의 결과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인간 본성에 변화를 초래하였다. 죄로 인하여 인간의 지적, 도덕적, 신체적 능력에 영향을 끼쳐 본성이 타락, 부패하였다. 타락 이래로 인간은 죄성을 타고난 존재가 되었다(2:3). 本質上(φύσις nature, 자연) 震怒子女이었더니에서 보 듯 본성이 태어나면서부터 불순종의 상태로 전락되었다.

 

순진무구 상실--눈을 번쩍 뜨게 하는 경험은 아담과 하와에게 수치감만을 가져다주었을 뿐이다(3:7). 그들 수치심으로 자기들의 부끄러움을 덮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자기들을 숨기고자 하였다.

책임전가--하나님이 그들의 죄에 대하여 아담과 하와에게 질문하셨을 때 자신의 과오를 시인하는 대신에 그들은 잘못을 전가하려고 노력하였다.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3:7)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하와,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하나님이 자기의 죄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죄 때문에 자기 아내와 자기 창조주에 대해 그가 유지하고 있던 관계가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하와도 뱀을 비난하였다(3:13). 죄는 excuse 될 수 없다. 용서 받아야 excuse 가 된다. 책임을 전가하고 회피하는 일은 변명하는(excuse) 것이 되었다.

 

자유의 상실--인간이 죄에 빠졌을 때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

두려움--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 숨었다(3:10).

기타 인간은 죄의 노예가 되고, 자기 기만적이 되었으며, 평화를 상실하였다. 인간의 삶은 불안이 지배하게 되었다.

 

2. 하나님과의 분리

첫 인간은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의 길이 단절되었다. 사단이 약속한 것처럼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기는커녕 그들은 두려워하게 되었고 숨고자 도망갔다(3:8-10; 59:2). 하나님과의 분리는 하나님 면전에서 분리이며, 생명과 축복으로부터 분리였다(2:1, 5, 12; 4:18).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다(12:8; 9:15).

인간은 죄책과 형벌을 져야하는 존재가 되었다.

 

죄가 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파괴된 고리를 연결시키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치셨다. 첫째 아담과의 관계에서 인류가 그에게서 받은 것이란 죄책(guilt)과 사형 선고(the sentence of death)밖엔 없다”(자녀, 475).

 

3. 타인과의 관계

죄로 인하여 인간은 책임을 전가하는 존재로 전락하였다. 또한 피차가 경쟁자가 되었고, 동정심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권위를 배격하고 사랑을 상실하였다.

 

4. 죽음

범죄한 삶의 여정은 죽음의 여행길이 되었다. 첫 범죄로 인간은 육체적, 영적 죽음에의 존재가 되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2:17). 죽을 수 없는 상태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전락하였다. 건강하고 원기 왕성한 신체와 정신이 모두 약해 갔다. 그리고 영원한 죽음을 당하여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의 율법은 불변적이다. 죄는 율법을 범한 불법이다. 죄 값은 사망이다. 어떠한 범죄도 사망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 그분은 범죄자들을 에덴의 본향으로부터 추방하시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단절하심으로써 당신의 판정을 실행하셨다(3:23, 24). 또한 그들에게 영생의 관원이 되는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것을 금지하셨다. 이렇게 해서 아담과 하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3:22)

5. 환경의 변화

에덴은 평원,’ ‘큰 기쁨의 뜻을 지녔으나 이제 슬픔의 장소로 바뀌었다.

하나님은 사단의 매개물인 뱀을 저주하여 배로 기어 다닐 것을 명하셨고, 이것은 타락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이 될 것이었다(3:14). 하나님은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3:16). 또한 아담은 하나님 대신에 자기 아내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아 그는 고생하며 힘겹게 일해야 했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7-19).

3. 인간의 죄의 보편성 - 원죄 이슈

역사는 아담의 후손들이 그의 죄된 본성을 나누어 갖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윗은 기도드릴 때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143:2, 14:3 참조)라고 말했다.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왕상 8:46). 또한 솔로몬은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뇨"(20:9),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7:27)고 말하였다. 신약 성경도 마찬가지로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바울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고전 15:22)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곳에서 그는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고 말한다.

인간 마음의 부패는 전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빛 가운데서 욥은 외쳤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14:4). 다윗은 말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1:5). 또한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7, 8)고 기술하고 있다. 그는 회심 이전에는 신자들도 다른 나머지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2:3)였다고 지적했다.

죄 때문에 그의 후손들은 선천적으로 불순종의 성향을 타고난다(Because of sin his posterity was born with inherent propensities of disobedience)”(5BC 1128; 화잇주석, 1:1-3,14).

아담의 죄와 각 인간의 죄의 상관성 전모에 대하여는 여러 전가이론들이 있으나 우리는 죄의 오묘한 점을 다 알 수 없다. 바울이 죄는 보편을 두고 내린 진술은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epi ho, ἑπί ᾧ)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하였으므로 죽는다(5:12). “epi ho” 를 문자적으로 (아담) 안에서(in whom)” 모두가 죄를 범하였다고 보아 원죄론을 전개하는 이론이 있어 왔지만, “epi ho”를 모두가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because)” 로 번역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담의 죄는 독특하다. 죄와 사망의 두 세력이 전면적으로 인간 세상을 장악하였다. 죄가 보편적이어서 사망도 보편적이다.

비록 어린아이로서 우리가 모방을 통하여 죄된 행실을 습득한다고 할지라도, 위의 구절들은 우리가 우리의 근본적인 죄성을 타고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인간의 죄의 보편성은 우리의 본성이 선이 아닌 악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점에서 명백하다.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의 교리는 이중 예정론 교리의 기초가 되어 있고, 인간의 선택의 자유가 상실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문제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위에 인용한 죄가 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파괴된 고리를 연결시키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치셨다. 첫째 아담과의 관계에서 인류가 그에게서 받은 것이란 죄책(guilt)과 사형 선고(sentence of death)밖엔 없다”(자녀, 475)는 통찰에 비추어 이른바 마음의 자연적 타락성 (the natural depravity of the heart)"(In Heavenly Place 195, 196)에 기초한 보편적 타락성을 수긍한다. Ellen White 은 부분적으로나마 아우구스투스적 및 칼뱅주의적 타락론을 수용하고 있는 셈이다.

 

III. 조사심판 첫 예증

1. 4가지 심문 사항이 나온다(9-13).

(1) 네가 어디 있느냐? 내가 벗었으므로 숨었나이다.

(2) (남자에게)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3)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실과를 먹었느냐? 하나님이 주신 여자가 주므로 먹었나이다.

(4) (여자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뱀이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2. 조사 전 과정 상황

(1) 죄인을 찾으심(8-9)

(2) 조사심판 진행(죄를 査實하심)(10, 11)

(3) 책임 전가와 책임 소재를 밝히심 (하와 아담 )(12-14)

(4) 복음을 선언하심 (15)

(5) 형벌 선언 (-> 하와->아담)(15-19)

(6) ()의 가죽 옷을 입히심 (옹호와 회복)(21)

(7) 생명나무로 나가는 길을 여심(성소제도) (23, 24)

 

3. 구약성경상의 재림 전 심판 몇 사례들의 예증

(1) 가인에 대한 심판, 4장 가인이 분명하게 이해할 때 까지 조사 과정 진행

(2) 소돔 고모라 심판, 18-19, 현장 확인 조사 선행,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18:21).

(3) 아간 심판, 7--조사과정 선행

(4)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조사심판, 9장 특히 심판은 성소에서 시작한다(6).

성경의 심판은 성소에서 베풀어지고 있다.

 

IV. 하나님의 첫 복음의 약속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3:15).

1. 우주적 대쟁투 관점 - 하나님과 원수마귀 사이

1SM 254 - “에덴에서 하신 예언 가운데 원수라고 언급하신 것은 단순히 사단과 생명의 왕에게만 국한해서 말씀하신 뜻이 아니었다. 이것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것이었다. 사단과 그의 천사들은 모든 인류의 증오심을 느낄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3:15).”(1기별, 254)

2. 초자연적 증오감(적대감)

원수 사탄의 끝없는 적대감 계속 이어진다. ‘원수(ebah אֵיבָה)’증오,’ ‘적대,’ ‘적의를 뜻한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생긴 증오심은 초자연적인 것이었다.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이 증오심은 일면 자연적인 것이었고 다른 면에서 볼 때 인성과 신성을 겸하신 주님께 초자연적인 것이기도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의 거주자로 나타나셨을 때처럼 증오의 감정이 극도로 악화됐던 적은 결코 없었다. 이 지상에 산 인간으로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과 같이 그처럼 완전한 증오심을 가지고 죄를 미워한 자가 과거에 전혀 없었다. 주님께서는 거룩한 천사들에게 작용했던 죄의 기만적이며 미혹적인 세력을 이미 보셨으며 당신의 모든 능력을 다하여 죄를 대적하셨다.”(1기별, 254).

3. “네 후손여자의 후손”(seed, zera)

네 후손은 사단의 후손즉 그의 추종자들(8:44; 13:10; 요일 3:10)이다. “여자의 후손은 다윗의 메시아인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16:20; 2:14; 12:1~6, 11; 3:16, 19). 시편 110:1, 6은 창 3:15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부서트릴 것을 예언하고 있다. 따라서 후손은 집합적이 아닌 특정한 인격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4. 자비와 구원의 메시지

고난당하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을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52:12-53:12). 순교자 저스틴과 이레니우스 교부들은 창 3:15을 성경의 첫 복음(protoevangelium)’으로 칭하였다.

사단이 그처럼 극렬한 증오심으로 발악한 원인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사단은 그의 타락한 무리들을 거느리고 가장 치열한 전쟁을 벌이기로 결심하였는데 이는 하늘 아버지의 완전하신 대표자이시며 당신의 품성과 실행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사단의 오전(誤傳)을 논박하신 주님께서 세상에 계셨기 때문이었다. 사단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속성을 마치 하나님의 속성처럼 비난하였다. 그러나 지금 사단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도 멸망받지 않고 회개함으로 당신께 나오는 모든 자들이 영생하기를 바라시는 동정과 자비심이 많으신 하늘 아버지의 품성을 나타내신 하나님을 보았다.”(1기별, 254)

이 복음의 약속은 아담과 하와의 생명을 위하여 무죄한 어린양이 생명의 피를 흘려야 했으며, 죄인의 벌거벗음을 가려주기 위하여 그의 가죽을 주는 것으로 이어졌다. 레위 제사제도에 따르면 양을 가져온 죄인이 양을 죽였다(1:5). 아담이 양을 죽였을 것으로 상정된다. 하나님은 그 가죽 옷을 입혀주었다. 어린양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범죄를 속하기 위하여 그의 생명을 내놓아야 할 것이었으며 그의 의()만이 인간을 덮어주기에 충분할 것이었다. 첫 조상에게 입혀준 양 가죽 옷은 구원의 옷을 상징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동산 밖으로 추방하였다. 그러나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3:24). “두었다(shakan)‘는 말은 "쉐키나"와 어원이 같다. 따라서 에덴동산 동편에 장막을 쳤다는 것이다. 그룹들(케루빔)은 성막 언약궤 위에 있었다(25:18; 26:1, 31). 이 케루빔 천사는 성막 지성소 휘장에도 장식으로 새겨져 있었다(26:1; 36:8, 35). 케루빔과 에덴동산의 동쪽에 거룩한 임재의 상징인 화염검은 향후 출애굽 시 성소 모델의 원형처럼 기억되어 그 맥이 이어진 것이다. 에덴의 이 축소판 성소는 노아 홍수 직전까지 하늘 성소의 전신이 된 것이다. 첫 인간은 이 에덴 성소를 찾아 죄를 고백하며 구원의 대속자의 죽으심으로 의롭게 되는 축복에 감사하며 헌신했다.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