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불멸인가 죽은자의 부활인가?”

 

구약성경이 인간 사후 영혼불멸을 가르치고 있는가, 아니면 몸의 부활을 가르치고 있는가에 관한 논의가 분분하다. 영혼불멸론 사상은 고대 이집트 사람들 피라미드 건축이래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동안 신봉되어 어 왔다. 조상 제사제도라는 것도 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영혼불멸 사상과 몸의 부활 신앙은 논리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

 

I. 영혼불멸론 교리의 역사적 발전 과정

1. 사단은 영혼불멸론의 창시자이다.

뱀은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죽지 않는다는 거짓말을 하였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3:4). 그의 이 거짓말에는 영혼불멸론과 강신술이 담겨 있다.

2. 그리스 철학은 영혼불멸론의 학문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영혼불멸론의 근거가 성경에 나와 있을 것으로 신봉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상상에 불과하다. 영혼불멸론은 그리스도교 이전 그리스 철학의 소산물이다. Plato(c. 427-c. 347 BC) 철학 이후의 철학은 그의 철학의 반복에 불과하다고 할 만큼의 명성을 얻었다. 플라톤은 서구 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하나가 된다. 그는 대화록인 Phaidon에서 인간 영혼이 Idea의 세계로부터 현상계로 왔으며 인간 사후에는 육체 없이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고 다른 육체에 환생으로 이어지다가 실재계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육체를 떠나 영원히 존재하여 미래의 삶을 갖는다는 사상을 설파하였다.

플라톤은 영혼의 초자연성을 통하여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케 하는 영혼불멸론 사상을 공화국(The Republic)에서도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며(imortal), 영속적이다(imperishable)"라고 펼치고 있다.

이러한 영혼불멸사상은 동양의 조상숭배 사상이나 윤회전생론의 기조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의 영혼불멸론은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보는 점에서 그 차별성이 있다. 죽음이라는 것을 유폐된 육체의 감옥에서 영혼이 해방되는 친구처럼 보았기 때문에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태연스럽게 마실 수 있었다. 유대인들이 이 그리스 사상을 전수 받아 히브리 종교사상의 일환으로 삼았던 것이다.

3. 바울은 이와 같은 그리스 철학 사상을 배척하였다. 그래서 그는 육체 감옥론 사상과는 반대되는 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 그는 인간의 몸이 성령이 내주하는 성전이 되며, 몸을 거룩하게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시는 보혈로 매입되었으며, 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고전 3:16; 6:19-20). 그리고 바울은 죽음을 친구가 아닌 인간의 원수가 되며 이 죽음의 원수가 이김에 삼켜지는 때가 올 것을 확신하고 있다(고전 15:26, 54-55). 그리스도인은 마침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길을 바라고 있다(고전 15:44).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쾌락주의자들처럼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고전 15:32; 22:13; 참고, 12:19),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한다”(고전 6:13)는 모토에 따라 살지 않고, 몸은 주를 위하여 존재하고 몸 성전을 더럽히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전 3:17-18).

 

II. “영혼불멸인가 몸의 부활인가?

영혼 불멸론 교리는 1950년대 이후 계속하여 주요한 신학적 이슈로 부각되어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도 수반되어 나타났다.

1. Oscar Cullmann 의 강의

프랑스 칼뱅주의 신학자 Oscar Cullmann 당대 유럽의 주요 두 대학교, 즉 스위스 바젤대학교 및 프랑스파리대학교(Sorbonne)에서 신학부장으로 동시에 가르치는 이례적인 학자였다. 그는 당대 독일과 유럽 신학계를 석권한 바르트에 필적하는 신학자이었다.

무신론자 Ingersoll이 하버드대학교에서 1954-55년에 걸쳐 영혼불멸론 문제를 비평적으로 다루는 강좌를 하고 있었던 때, 동 대학교는 오스카 쿨만을 청빙하여 영혼불멸문제 에 관한 특별강의를 하도록 하였다.

1955426일에 쿨만은 Andover Chapel에서 영혼불멸인가 몸의 부활인가? 신약성경의 증거(Immortality of Soul, or Resurrection of the Body? The Witness of the New Testament)"의 제목으로 강의하였다. 훗날 "몸의 부활인가"를 "죽은 자의 부활인가"로 바꾸어 달았다동 강좌의 세 가지 요점은 다음과 같다.

사도 바울은 몸의 부활을 가르쳤다(고전 15)

플라톤은 영혼의 자연적 불멸을 가르쳤다.

위 두 이론은 상반되는 것으로 그 조화가 불가능하다. 어느 하나를 수용하면 다른 하나를 배척하여야 한다.

 

쿨만은 강좌의 결론에서 바울이 아테네에서 전한 몸의 부활(17;18)과 아레오바고에서의 철학자들과의 변론 과정을 소개하였다. 바울이 몸의 부활을 전할 때 까지는 비웃거나 기롱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이 몸의 부활 신학을 전할 때 아테네 철인들은 몸의 부활과 영혼불멸은 상호간 조화되지 않는다고 보아 더 이상 바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바울의 아테네 설교는 미완성 교향곡처럼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1958년 영국 런던에서 감리교 출판사 Epworth Press는 쿨만의 강의 내용을 책자로 출판하였다(60 ). 1965년에 미국에서도 출판되었다. 책이 출판된 3년 후에 그의 강의 내용이 신학계의 화두로 등장하였다. 쿨만의 몸의 부활 문제에 대하여서는 수강자들과 독자들의 일반적인 환호를 받았다. 쿨만의 책 서문은 당대의 비평적 반응 양상을 소개하고 있다. 학문의 세계에서 반대 논리가 예의를 갖춘 비평의 형태를 취하는 통상적인 관행과는 달리, 동시에 영혼불멸론자들은 쿨만을 통렬한 적대적 비평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반대자들은 아무도 신약성경으로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철학적, 심리적, 감정적 적개심의 표출로 대응하여, 쿨만의 몸의 부활론을 생선을 달라하는 아이에게 뱀을 주는 행태 내지 독액을 품는 짓으로 몰아세운 것이다. 이는 재림교회가 몸의 부활을 주장하는 일 등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선포하여 갈 때 가까운 미래에 당할 하나의 전조 현상 같은 것으로 보인다. 영혼불멸론 배척은 영적 바벨론의 연합 세력이 미래 하나님 백성을 배척할 여건이 될 것이다(GC 444-445, 588).

III. 1970년대 이후 동향

1. Dianne Kennedy-Pike 사건 관련 책 (1970-1971)

19702월 감독교회 감독 James Pike는 예수에 관한 책 출판을 위하여 이스라엘 광야에서 고고학적 발굴을 하다가 행방불명이 된 일이 있었다. 이스라엘 군 부대는 그 부인의 요청으로 광야 수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Mrs. Pike는 예루살렘 호텔 방에서 남편이 어느 동굴 입구에 죽어 있는 모습이 환상 중에 나타났고, 남편이 죽는 순간 그의 영이 하늘로 올라가 다른 종교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의 영들로부터 환호 받는 모습을 보았다. 수일 후 이스라엘 군은 그의 남편의 시신을 동굴 입구에서 찾았다. 그 부인의 환상과 일치되는 놀라운 이 사건 전모가 197011월호 여성 잡지 Ladies Home Journal에 소개 되어 사후 영의 세계의 존재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사건은 19711Search라는 문고판 책의 형태로 출판되어 널리 읽혀졌다.

 

2. 뉴스위크(The Newsweek)지의 폭발적 인기 기사

Kenneth L. Woodward는 뉴스위크지의 이 부활절 특집판에서 당대 저명한 세 신학자들의 영혼불멸교리 배척 이론을 소개하였다. , 하바드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장 Krister Stendahl의 신구약 성경이 영혼불멸교리에 무관하다는 견해, 남감리교대학교 신학자 Albert Outler의 영원한 영혼 사상은 성경의 몸과 영혼이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사상과 모순 된다는 입장, 및 오스카 쿨만의 사상을 소개한 것이다.

Woodward는 두 가지 갤럽 조사 결과를 수록 보고하였다. , 1968년 미국인 73%가 어떤 형태의 사후 생명을 신봉하고 있으며, 1971년에는 사후 영혼의 존재를 로마가톨릭 신부들 98%, 개신교 목사 86%, 유대인 랍비 68%가 신봉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스위크지의 기사에 대한 반응 현상이 이어졌다. 트리니티복음주의 신학대학원 John Warwick MontgomeryStendahl을 공격하였으며, 재림교회의 Herbert Douglass는 영혼 불멸론을 비평하였다.

 

3. 뉴욕 영화 제작자의 증언 (1974)

1974Reader's Digest 지는 당시 Solo Production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Victor D. Solow (당시 56)의 개인적인 증언 나는 오전 1052분에 죽었노라(I Died at 10:52 A.M.)"(pp. 178-182)을 수록하였다. Solow1974323일 아내와 함께 차 운전 중 심장이 멎었다. 경찰관이 즉시 심폐소생술과 가슴 맛사지를 시행하고 응급차로 뉴욕주 Port Chester 병원으로 이송, 검사하여 보니 생명의 징후가 없었다. 그는 응급실에서 전기 충격을 두 차례 받아 심장이 멎은지 23분 만에 심장 박동이 불규칙적으로 뛰다가 소생한 사람이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개인적 증언에서 Solow는 자기의 몸을 떠난 영혼의 체험, 즉 고통도, 기쁨도 없는 모든 것이 달라진 세계를 시공을 넘어 고속으로 진입하여 들어갔다가 나온 경험을 자세하게 묘사하였다.

 

4. 과학도들 세계의 심령학 열풍

Elisabeth Kubler-Ross 의사(1926년 생)Zurich대학교 의힉박사 학위 취득(31) 후 도미하여 16년간 임사 체험에 관한 On death and Dying, Questions Answers on Death and Dying 8권의 책을 1988년까지 저술하였다. 명예학위도 많이 받았다. 그의 책 내용들이 여러 신문 잡지들에 광범하게 소개되어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철학자 겸 의학박사 Raymond A. Moody1975Life After Life를 저술 출판하여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Reader's Digest 19771월호는 그의 책을 축약하여 출판하였다. 그는 동 서의 속편으로 Reflections on Life After Life(Bantam, 1977)을 저술 출판하였다. 무디는 임사체험의 주된 구성요소로서 다음 11가지 요소를 들고 있다.

 

(1) 체험 내용의 표현 불가능성

(2) 사망의 선고를 청취

(3) 마음의 평안과 정적

(4) 이상한 소음

(5) 어두운 터널

(6) 체외이탈

(7) 다른 사람과 만남

(8) 빛을 봄

(9) 살아온 삶 회고

(10)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이름

(11) 생환

 

5. 대중잡지의 사후 세계 글 게재 열풍

Kenneth L. WoodwardNewsweek지에“Life After Life" (July 12, 1977), McCalls지에 ”There Is Life After Death" (Aug., 1977)를 기고하여 파장을 일으켰다.

 

위와 같은 임사 체험 및 사후 영혼의 세계에 관한 증언이나 기타 글들에 대한 비평도 나타났다. 정신분석학자 C. Markham Berry 의학박사는 Kubler-Ross 이론을 반박하였으며 Leo Van DolsonWhat About Life After Life?(RH, 1976)에서 재림교회의 성서적 입장을 천명하였다.

 

6. 1980년대 이후

UCLA 심리학 연구교수 Ronald K. Siegel은 임사체험을 논박하였다(“Accounting for 'Afterlife' Experiences," Psychology Today, Jan., 1981, pp. 65-75)

경제 잡지 U.S .News & World Report 지는 격에 맞지 않는 종교문제를 다루는 기사를 게재하였다. "A New Understanding About Death," July 11, 1983, pp. 62-65에서 죽음의 문제, 임사 문제가 전국적 관심사로 부각된 점을 지적하고, 대학교에서 죽음학(Thanatology)’ 강좌가 개설되리만큼 확산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1984년 복음주의자 Mary Stewart Relfe는 남미 정글 속에서 50년간 선교사로 일한 의사Percy Collett(82) 과의 인터뷰 기사를 출판하였다. 동 기사 제목은“I Walked in Heaven 5 1/2 Days" 으로 성경 진리에 어긋난 내용은 축약되어 재판되는 등 세인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982년 갤럽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성인 800만명, 20명에 한명 꼴로 적어도 한 번의 임사체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이 비웃음을 살까 두려워 할 필요없이 임사체험을 털어놓음에 따라 사후의 삶에 대한 증거가 보강되는 듯했지만, 당시 과학자들은 죽어가는 사람의 뇌에 산소가 결핍되어 발생하는 환각일 따름이라고 일소에 부쳤다.

 

이러한 풍조는 1990년대 이후에도 이어져 갔다. 사후 세계와 임사 체험은 각종 잡지 및 방송망의 단골 메뉴로 확산되어갔다. 이 기간 동안에 천사론이 부각되기도 하였다.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