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리더십을 희구하며
I. 그리스도의 리더십
우리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각 분야에서 새 시대를 열어갈 리더십 모습이 그립다. 국가의 100년 대계를 위하기보다는 당리당략에 매인 정상배들(politicians)이 대중에게 사탕발림 인기전술이나 쓰고 있는 정치 분야는 차치키로 한다. 교회 내의 바람직한 지도자상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함량미달 리더십으로 인한 탄식 소리가 커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추종자들을 아우르는 참된 지도력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우리는 문제의 답을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의 실상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추종자들과 제자들을 말씀과 교훈으로 격려하고 강화시키셨다. 그는 추종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권한을 나누어주는 리더십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권한을 독점하고 있지만, 추종자들을 강화시키지 않고 능력을 부여하지 않는 리더십은 권력 전횡가가 되거나, 추종자들의 고통과 문제를 외면하면서 그들의 짐을 같이 지려고 하지 않는다.
온전한 마음으로 지도하시는 예수께서는 자기의 인격적 모본을 보여주시므로 따르는 자들의 마음을 이끄셨다. 존경 받는 지도자들은 자기가 설교하고 말한 대로 살아간다. 또한 그들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원칙에 입각하여 문제를 풀어간다. 예수 그리스도도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절호의 기회들을 몇 번씩이나 맞았지만,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오늘날 정치가들의 모습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셨다. 영적 지도자의 길은 세속적 지도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예수께서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비전을 심어주었으며 그 비전에 따라 행동하도록 촉구하셨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는 권위가 실려 있었다(막 1:22). 또한 자기가 전하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신봉하고 있었고 그 것을 구현하고자 생명을 바쳤다. 자기가 전하는 말에 대한 확신이 결여되어 있고 자기 지위나 직책 유지에 급급해 하는 오늘날의 지도자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참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제시한 메시지에 담긴 비전을 지향케 하는 행동을 촉구한다.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행동으로 나서게 하는 열정은 참 지도자상의 열쇠가 된다. 오순절 놀라운 일들의 배경에는 그리스도의 이런 지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완전한 품성을 지니신 그리스도께서 최고의 원칙들을 치켜세우고 그것들에 따르도록 독려하였을 때 그의 지도력은 힘을 발휘하였다. 사랑을 구체화시킨 그 고차원의 원칙들은 산상보훈에 잘 나타나 있다. 사랑이 바탕이 된 리더십이다. 그의 리더십에서 사랑이 역동적인 추진력이 되었다. 사랑의 인격이 바탕이 된 그의 리더십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의 진상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랑과 행동을 연계시킨 종으로서의 리더십 모델이 아닌가 한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그의 섬기는 리더십은 구속의 경륜을 이루는 기조가 되었다.
제자들에게도 섬기는 리더십을 내세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1-28)
그리스도의 사람들에 향한 동정은 희생하는 사랑(아가페)으로부터 흘러 나왔다. 겸비한 중에 그는 사람들이 현재 처한 상황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당장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기도 하셨다. 질병들을 치유하셨고 먹을 것들을 공급하셨으며 그들에게 가장 필요로 한 것을 가르치셨다. 예수께서는 육체와 마음이 약하고 병든 사람들을 그 질고에서 해방시키시고 새 삶을 살아가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스도인 리더십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자세와 동정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이것이 결여된 리더십은 겉도는 리더십으로 전락된다. 동정하고 겸손한 태도를 약함의 징표쯤으로 보는 지도자들이 많은 세태이다. 사랑의 인격체를 지닌 지도자가 겸손하게 섬기는 종의 리더십이야 말로 그리스도인 리더십의 핵심이 된다. 그리스도의 겸손의 열쇠는 자기가 아닌 하나님에게 토대를 둔 확신의 원천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으며 사람들을 끌었다.
리더십의 힘은 기도로부터 나온다. 이런 리더십은 끊임없이 하늘로부터 자기 충전을 하는 시간대를 쪼개냈다. 그래서 성별 헌신하는 시간을 가졌고, 또한 계획을 세우고 다듬는 시간을 가졌다. 어려운 일들이 예기 되는 때에는 물러가 기도하고(마 14:13, 23; 15:21), 중요 이슈를 앞두고 그 결단을 내리기 전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눅 6:12). 갈보리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그는 겟세마네 동산을 찾았다(눅 22:39-41).
II. 인사이동 사례를 들어 보며
매년 2월에 한꺼번에 발표되는 교회 담임 목회자 변동을 보노라면 개인적 사정들이 감안되지 않은 무슨 합격자 발표를 보는 것 같다. 물론 상부기관에서 각각의 사정들을 사전에 미리 조사하여 참작하였겠지만, 임지 변동에 충격을 받은 어느 사모가 누워버린 사례도 있고, 부임하여 목회한지 수년이 되지도 않았으며 목회자에게 어떤 문제점도 없어 보이는데도 새 교회로 전임하는 경우가 있어 교회 직원들의 항의가 잇달아 일어난 면면을 보면 편의주의적 행정발상이나, 군사 문화적 잔재가 아직도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지금 필자의 판단이 잘못되었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한 칼로 무 자르듯이 휘둘러 행정을 하는 것은 인간사회생활의 복잡 다기성에 눈감아 버리는 일이 된다.
미국 재림교회 합회 목회부장 직은 목회자 전보나 배치에 그의 모든 시간을 다 바치는 것에 전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 합회 마다 목회자 임지 변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다르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사회의 얽히고설킨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어떤 모델의 인사이동이던지 간에 최소한도 그 프로세스의 공정성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과 새 목회자를 수용해야 하는 교회에 찾아가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교회 사정을 십분 감안하는 섬기는 자세가 수반되고 있다는 점이 간과되는 일이 없다는 것은 돋보인다. 미국에서도 70년대까지는 대체적으로 합회주도적인 인사행정을 하였지만, 일방적 지시 행정으로 인한 폐해나 부작용이 커서 80년대부터는 합회와 지교회 사이의 쌍방 협의를 거친 인사행정이라는 방향전환을 하였다.
쌍방 간 협의 인사행정 제도가 구현되자면 목회자의 질적 수준이 도마 위의 현안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수용 교회가 어느 목회자 배치를 반대할 경우 목회자는 갈 교회가 없기 마련이다. 따라서 한국의 현재의 제도가 가진 이점은 이런 어려운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이런 모델은 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막아 기피해야할 모델이 되어 언제까지나 계속 될 수 없는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는 합회와 지교회 쌍방 간의 협의를 거친 인사행정으로 나가는 것은 어느 때 쯤이냐 하는 시간이 문제이지, 불원한 미래의 인사 행정의 주축이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은 그 사이에 목회자로서의 자질을 구비하는 일에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상부기구 리더십은 다가올 인사행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여가는 준비에 박차를 가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목회자를 청빙할 만큼의 일정 수준의 십일조 헌금 표준에 미달하는 작은 교회들은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낼 수도 없다는 한계점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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