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4 장과 5 장에는 하늘 보좌실의 계시가 나온다. 이 두 장의 계시는 어떤 의미에있 어서 요한계시록의 받침대(Fulcrum) 내지 도약판의 역할을 하고 있다.

 

4:1 하늘의 열린 문

하늘 성전 문, 성소와 지성소를 모두 포함한 성전이 열린 것이다. "이리로 올라오라 마땅히 될 일을 보여주리라”“이제 있는 일”(1:9), 즉 일곱 교회에시대의 메시지가 7인의 메시지로 이어진다. 하늘 보좌실 계시의 절정은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고 하는 네 생물과 24 장로의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찬송으로 표현되었다.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만물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존재한다. 우주 안에 일어나는 일 가운데 우연히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건들은 모두 하늘 보좌의 목적을 반영한다. 창조주 없는 세계는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영원하신 통치자 없는 우주란 존재할 수 없다.

만물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1:4) "알파와 오메가"(11:8) 안에 움직이고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이 사실은 하나님의 만세 전에 세우신 뜻에 의존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를 떠나서 자기 존재의 참 뜻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야말로 사람의 기원과 종말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하고 거룩한 장소이다.

 

4:2 하늘 보좌실의 계시

요한은 계시 중에서, 우주의 중심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 이끌려 올라가 하나님의 보좌실을 목격하였다. 지상의 교회는 어둠의 그림자 속에 있지만, 천상 세계 중앙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었고, 그 보좌는 광휘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여 있다. 보좌는 하나님의 주권적 위엄과 통치권을 상징한다.

 

흑암의 세력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엄습해 올 것이다. 두 번째 계시에서는 선과 악의 세력이 투쟁하는 교회사가 입체 사진과 같은 일곱 인의 계시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의 증거를 위하여 시련과 고난을 견디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며 마지막 날에 그들을 온전히 구원하시고 보상하실 큰 계획이 하늘에 있음이 나타난다. 그러한 재난의 계시들을 보기에 앞서서 그 계시의 서론으로 하나님의 보좌와 그 앞에서 진행된 일들이 먼저 요한에게 보여 주신 것이다.

 

4:3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벽옥과 홍옥 같은 눈부신 광채가 났으며 그 보좌는 비취옥과 같은 영광의 무지개가 두르고 있었다. 그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 있었다. 그 보좌로부터 번개가 번쩍이고 요란한 소리와 천둥 소리가 났다.

그 보좌 주위에는 앞뒤가 눈으로 가득한 네 생물 즉 하나님의 명령을 받으며 지상의 사건들을 인도하는 하늘 존재자가 있었다.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는 송아지 같고, 셋째는 사람과 같은 얼굴을 가졌고, 넷째는 독수리와 같았다. 그리고 그 보좌 둘레에는 24 개의 좌석이 마련되었고, 흰옷을 입고 금관을 쓴 24 명의 장로들이 앉아 있었다.

그 네 생물은 밤낮 쉬지 않고 외치고 있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그 네 생물이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리고 있을 때, 24 장로는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 경배하고 면류관을 벗어 보좌 앞에 바치고 외쳤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4:8-11).

 

하늘 보좌는 구속의 중심이 된다. 하나님의 보좌를 진술하는 데 있어서 요한은 성소제도의 표상과 용어들을 채용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 벽옥과 홍옥과 비취옥은 대제사장의 흉배에 사용된 보석들이었으며 하나님의 존엄과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보좌로부터 발산하는 번개와 음성과 천둥소리는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반포하시고 이스라엘과 선민의 언약을 맺으신 사건을 기억나게 한다. 그 보좌를 두른 무지개는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과 공의의 품성을 상기시킨다.

 

4:4 이십사 장로

1) 천사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천사를 장로로 칭하는 사례가 안 나올 뿐만 아니라, 그들은 보좌를 공유하지 않고 하나님 면전에 있는 점과 천사가 면류관을 쓰는 일이 없는 점에 비추어 천사로 보는 시각은 맞지 않다.

2) 구속 받아 영광스럽게 된 자들로 보는 시각이 성서적이다. 그들이 흰 옷을 입고, 면류관(2:10; 3:11)을 쓰고 있는 모습은 성도들 나타낸다. 이들은 구약과 신약 교회의 구속 받은 승리한 성도들, 즉 예수께서 부활할 때 무덤이 터저 나온 (27:51-53) “사로잡힌 자들”(4:8)로 보인다. 이들은 구약 성소에서 봉사한 24 장로에 상응한다. 이들은 12지파와 12 사도를 포괄하는 수이기도 하다.

 

4:5 일곱 영, 1:4 참조, 그리고 여기에 성령께서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5:6)으로 계심이 일곱 등불로 표상되었다.

 

4:6 네 생물, 에스겔은 cherubim으로 규명(10:20-22)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보좌에 근접하여 봉사하는 수호천사들로 찬양과 경배를 한다. 그룹 천사들은 그들의 성품을, 스랍 천사들은 그들의 기능을 말하여 주는 것으로 같은 존재로 보인다.

하나님의 보좌 사방으로 호위하고 있는 네 생물-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의 표상은 이스라엘의 광야 성소 사방으로 세워진 네 군단기의 그림과 일치한다. 언약의 백성들은 성소를 떠나서는 일순간도 존재할 수 없었다. 그 언약의 성소가 행진할 때에 이스라엘도 같이 행진한다. 성소가 정지할 때에 이스라엘도 행군을 정지하고 그 성소 주변에 질서 정연히 진쳤다. 레위 지파가 넷으로 나뉘어서 성막 가까이 진쳤다. 그리고 그 성소 사방으로 4군단으로 조직된 이스라엘 지파들이 진쳤다. 언약궤가 움직일 때에 4군단은 그 언약궤를 선두로 하고 각기 사자, 사람, 송아지, 독수리의 표징으로 된 자기 군단기 뒤를 따라 행군하였다. 군단기의 표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시고, 광야에서 보호하셨으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 정착케 하신다는 믿음의 기초가 되었다.

네 생물의 모습은 구세주의 품성, , 유다 지파의 사자, 인자, 희생제물이 된 송아지, 영원을 꿰뚫어 보는 독수리를 각각 표상한다. 이는 4복음서가 각기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하늘 보좌는 인류 구속 사업을 위하여 성삼위가 일하고 계시는 구속사업의 중심이 된다. 요한은 하늘 보좌에 좌정하신 분을 본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창조와 구속 사업의 근본이요 창시자로서 그 보좌에 좌정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과 대제사장으로서 중보의 일을 행하고 계신다.

4:8-11 찬양과 경배

창조의 중심이 되는 하늘 보좌를 중심으로 찬양과 경배가 이어진다. 성도들이 하늘에 가는 목적은 이 찬양에 합류하여 우주적 찬양으로 이어지게 하는데 있다. 거룩한 구원의 중심이 되는 보좌 주위에서 네 생물과 24장로의 끊임없는 창조주께 드리는 찬송과 경배가 진행되고 있다. 이 거룩한 장소에서 성도들의 기도가 그리스도의 향과 함께 하나님께 끊임없이 상달되며,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끊임없이 지급된다. 이 거룩한 장소에서 발산하는 번쩍이는 번개와 천둥 소리와 함께, 우주 세계를 지탱 하는 하나님의 에너지가 끊임없이 방출되고 있다. 이 거룩한 장소에 천천만만의 천사들의 보고가 집결되고, 또한 끊임없이 하나님의 지령이 주어진다. 하늘 보좌실 계시의 절정은 네 생물의 찬송과 거기에 화답하여 드리는 24 장로의 경배와 찬송으로 이루어진다. 24 장로는 하나님께 경배드리고 자기 면류관을 벗어 보좌 앞에 바친다. 그리고 하나님께 찬송드린다.

네 생물의 찬송1) 삼성송, 즉 거룩하신 삼위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2) 전에도 계시고 이제도도 계시고 장차 오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24 장로가 드린 찬송에는 두 가지가 강조되고 있다.

1) 참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의 위대한 업적, 즉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속을 기리는 데 있다.

2) 종말의 드라마는 창조와 구속을 다 포함하고 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14:7)는 첫째 천사의 외침과 같이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창조주 되심을 거듭 강조한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을 계시하는 책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창조주 되심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창조주만이 종말을 가져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죄악의 돌발적 침입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잠시 좌절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경륜, 즉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 파손된 창조 질서는 회복되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성취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은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와 찬송으로 관씌어졌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 이것이야말로 하늘 보좌 계시의 절정이요, 하늘 세계의 현실이요, 그리고 세계 역사의 참된 배경이 되는 것이다.

에스겔은 네 생물이 하나님의 보좌를 운반하는 환상을 보았다. 폭풍을 몰고 오는 큰 구름 속에, 그리고 번개, 불과 찬란한 빛이 있으며 네 생물이 하나님의 보좌를 운반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 생물들 아래에 여러 바퀴들이 돌고, 그 각 바퀴들 안에 또 다른 바퀴들이 서로 어긋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바퀴들의 운동은 그 선지자의 눈에 심히 복잡하게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는 그 생물들의 위에 있었고 그 생물들의 날개 밑에 있는 사람의 손 같은 것이 그 큰 바퀴의 운동을 통제하고 있었다.

우리 인간 사회의 일들은 그 어긋나게 도는 바퀴처럼 서로 어긋나고 심히 복잡하게 보일 때가 너무나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역사 바퀴들의 복합운동의 밖에 있는 큰 바퀴를 지배하고 계신다. 그의 보좌가 네 생물 위에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 역사 위에 계시고, 그 큰 역사 바퀴를 당신의 창조 목적을 위하여 지배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 사람의 눈에 어떤 국가의 성쇠가 사람의 의지나 야망, 권력이나 재능에 의존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하늘 보좌실을 주목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 목적을 위하여 인간 역사를 주도하고 계심을 확신케 되는 것이다.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