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자(마 5:5)

윤리 : 2012. 6. 21. 23:20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5)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37:11)

1. 도입

A. 만델라 이야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45세에 백인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 정책)에 반대하다가 반역죄로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케이프타운 앞바다의 로번 섬에서의 27년간의 교도소생활을 한 후 72세의 노인으로 출옥하였다.

만델라는 매일 아침 채석장으로 끌려 나가 발목의 족쇄를 풀어주면 채석장의 큰 돌을 깨 석재로 만드는 일을 했다. 당시 만델라는 중범죄자였기 때문에 세 명의 간수들로부터 나혹한 감시를 받았다. 1991, 만델라가 출옥하여 대통령이 된 후, 그가 취임식에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행동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대통령은 취임사를 한 후 각국에서 온 중요한 정치지도자들에게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기쁨은 로번 섬 교도소에서 그를 감시했던 세 명의 간수들이 이 자리에 함께 해준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일으켜 세워 모두에게 소개했다.

연로한 만델라는 허리를 숙여 그 세 명의 간수에게 진심어린 경의를 표했다. 취임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물론, 전 세계가 할 말을 잃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만델라는 친한 친구에게취임식 때 있었던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젊었을 때는 성격이 불같고 자주 화를 내지 않았나. 그러나 수감생활을 하면서 자기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배웠고 그 덕분에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같아. 감옥에서의 모진 세월이 나에게는 오히려 약이 된 셈이지. 나는 더 강해졌고, 고통과좌절을 극복하는 법을 깨달았어.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과 관용의 정신을배운 거야. 고통과 시련, 강한 인내와 훈련이 없었다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일이지.”

B.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의 세상

오늘날 이 시대의 특징은 자기중심적이고 공격적이다. 사람들은 온유를 연약함으로 생각하며, 대부분의 경우 온유한 사람을 존경하지도 않고 오히려 바보로 본다. 이 세상에서 강한 자, 힘센 자가 토지를 차지하고, 세상을 장악하여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목소리 큰 자, 덤비는 자가 득세하고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런 자들은 사실상 패배자이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자는 세상의 비난과 조롱을 받는 세상이다.

약육강식의 원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1등을 하지 않으면 망하는 것처럼 되어가는 세상, 대어(大魚)는 중어식(中魚食)하고 중어는 소어식하는 세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물세계에서 멸종되어가는 것들은 강한 것들이다. 사자, 호랑이, 독수리는 사라져 가고 참새, , 피라미 같은 약하고 온순한 동물들은 살아남아 땅을 차지하며 번성한다. 오히려 번성하는 이유는 온순하기 때문이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이란 말이 있다. 온유를 연약함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온유한 자들은 거대한 권위와 힘을 지녔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힘과 권위를 사용하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진정한 승리자이다. 온유는 하늘 이 정한 적자생존의 법칙이다. 참으로 심령이 가난하고 자기들의 모습에 애통해 하는 자는 온유한 자로 이어진다.

II. 온유의 의미와 방법

온유한 자는 입양으로 하나님의 DNA를 받은 것이다. DNA에는 긍휼, 자비, 온유 오래 참는 것이 들어 있다.

온유한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라에이스(praeis). 단수형 프라우스(praüs)온화한(gentle),” “상냥한,” “유순한길들여진” “겸비한” “배려하는” “젠체하지 않는의 뜻을 담고 있다. prautesgentleness, humility, meekness의 뜻이다. 구원받은 표로 나타나는 것 같다. 즉 그것은 부름’(4:2)선택’(3:12)의 표이며 성령의 역사(5:23)이다. 이것은 사람의 도덕적인 의미에서의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진 생활과 행위의 가능성이다.

A. 온유한 자는 자기의 마음을 다스린 자다. 그는 자기의 본능과 감정을 제어하고 다스린다. 손해를 당하여도 관대하고, 억울하게 당하여도 분개하지 않고, 환난과 곤고를 달게 받는다. 그들은 남이 내게 준 상처와 해를 보복하지 않고 포기하는 자들이다. 온유한 자는 제동장치가 바로된 자이다. 완전히 자제한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통제하여야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온전히 주장할 때 가능하다.

온유한 사람이란 자아에 대해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이다. 온유는 세상이 말하는 유약함이 아닌 참다운 믿음과 용기와 인내심을 갖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는 사람은 문제를 하나님이 처리하여 주실 것을 믿는다. 온유함이란 자신의 계획을 위해 투쟁하기를 완전히 멈추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워주실 것을 믿는 것이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16:32).

원수진 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보다는 무고(誣告)를 견디는 쪽이 훨씬 낫다. 증오와 복수의 정신은 원래 사단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정신을 품는 자에게는 불행이 초래될 뿐이다. 마음의 겸비, 곧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얻는 온유는 진정한 축복의 비결이다.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시편 1494).”(MB 17)

B. 온유한 자는 규율 아래 있는 사람이다. 온유한 자는 마치 말이 제갈 물린 것처럼 하나님의 뜻의 제갈 아래 있는 사람이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고 40년동안 훈련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었어야 할 열매이다. 온유한 자는 자기의 고집을 꺾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굴복하는 것이다(MB 15).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4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4:23-24). 마음이 입술로 나간다.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25:4)

시한폭탄 같은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한번 찌르는 말을 해보고 그 반응을 보면 곧 그의 신분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

C. 온유한 자는 겸손한 자이다. 온유는 교만이 사라진 참된 겸허이다.

교만한 사람은 자꾸 변명한다. 나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등등. 온유한 자는 자족하며 겸손해 한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수고보다 내 축복이 크다. 온유한 자들은 하나님을 등지고서는 자기가 죄, 무력함, 무지와 연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에 겸손하게 된다. 그들은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가는 배우는 자세를 취한다. 사울은 스스로 작게 여겼을 때 하나님이 그를 높이셨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온유는 유약(柔弱)이나 문약(文弱)이나 비겁이 아니다. 불신 세상에서 당하는 수모와 고난 중에 자기 겸손을 배우면서 나간다.

D. 온유한 자는 용납하고 용서한다.

18사략에 고위직 형이 동생에게 우리는 세상의 시기 질시를 당할 수 밖에 없다고 하자 동생이 누가 침을 뱉으면 침을 닦고 화를 내지 않고 참겠다고 하자, 형은 얼굴에 침을 뱉으면 그 침을 그대로 놔두어도 마른다(唾面自乾)고 조언하였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hos, ~로서, ~답게)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3:12-14).

택한 백성은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 답게(‘처럼번역보다는 답게가 적당)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3:12-14)여야 한다.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이 온유의 길이다. 온유한 자는 용납하며 용서하는 자들이다. 용납은 수동적으로 양보하는 것으로 내 마음을 자제한다. 용서는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원수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온유는 성령의 열매이다. 긍휼, 자비의 마음을 지닌 자가 상대방에게 따사로운 마음으로 젠틀하게 대하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들이다. 온유는 자제가 그 중심에 있어 오래 참는다. 이런 품성은 아가페 사랑의 현현이다. 한 공동체를 온전히 메는 띠가 된다. 온유한 자는 성령의 지배 아래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간다. 이것이 성화의 길이다.

E. 온유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배우는 사람이다(11:28-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11:29)온유는 전적으로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무거운 짐을 맡기고 그분을 신뢰할 때 참다운 쉼이 이르러 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이 원칙에 관해서는 바위와 같이 변함이 없되, 그리스도와 같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신다.”(2TT 423)

삶의 염려로 인한 영혼과 마음의 수고와 바리새적 무거운 계율과 죄의 짐을 진 인간들을 향하여 예수께서는 다 내게로 와 배우고 내 멍에를 메라고 하신다. 멍에의 목적은 동물이 짐을 나를 때 더 무겁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짐 지는 일을 어렵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쉽게 해주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의 멍에는 그리스도 자신의 교훈과 삶의 방식을 뜻한다. 그리스도의 멍에는 하나님의 율법에 명시되어 있고 산상 설교에서 확대된 하나님의 뜻을 가리킨다.

III. 온유한 자의 사례

A. 아브라함-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먼저 땅을 선택케 하였을 때

B. 요셉-형들을 용납하고 용서하였을 때

C. 모세 - “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12:3).

IV. 온유한 자의 축복

원수진 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보다는 무고(誣告)를 견디는 쪽이 훨씬 낫다. 증오와 복수의 정신은 원래 사단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정신을 품는 자에게는 불행이 초래될 뿐이다. 마음의 겸비, 곧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얻는 온유는 진정한 축복의 비결이다.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시편 1494).”(MB 17)

A.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4).

B. 온유한 자가 땅을 유업으로 받는다. 현세에서는 교만하고 강한 자들이 이 땅을 일시적으로 장악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길지 못하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자아를 높임으로 땅을 잃어 버렸다. 온유의 길은 이 빼앗긴 소유권을 회복하는 길이다. 언약의 약속이 회복되게 한다. 하나님의 남은 백성은 만델라처럼 이 땅에서도 유업을 얻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종말론적으로 새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다. 온유한 자들이 받을 축복은 종말론적이다. 하나님께서 언약에서 약속하신 땅을 회복시켜 주신다.

C. 풍부한 화평을 향유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 6:10)이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많은 악인의 풍부함보다 승하도다”(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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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