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a Scriptura 원리
A. 종교개혁의 원리
종교개혁자들은 권위의 원천으로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의 기치를 내 걸었다. 그들은 성경만이 신앙과 실천 문제에 있어서 배타적이고 최고의 궁극적인 권위가 된다고 보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성경에 체현되어 있는 신적 계시에 토대를 두고 있다. “sola scriptura 는 종교개혁의 형식원리가 된다. 이 형식 원리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서 신앙과 삶의 전체를 개혁하려는 교회의 사활이 달린 원리가 된다. 성서는 모든 진리의 척도이며, 궁극적, 절대적 권위를 지녔다. 루터는 자신의 영적 갈등과 고민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연구함으로써 믿음의 시련과 좌절을 극복하고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교황의 수장권을 바탕으로 한 교회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와 대등하게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보아 왔다. 이런 시각은 교회가 성경의 경전성을 결정하였다고 보아 교회의 권위가 성경의 권위를 압도하는 것이 된다. 종교개혁자들은 이같은 주장이 성경의 권위를 절대적인 권위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성경의 권위는 다른 어떤 권위와 동일시하거나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재림교회는 개혁자들이 내 세운 이 성경의 궁극적 권위를 고양하며 성경을 사랑하는 책의 백성이다.
종교개혁의 내용원리는 ”오직 믿음만(sola fide)"의 원리, 즉, 칭의론이다. sola gratia, solo Christo는 그 오직 믿음의 원리의 천적 원천과 방식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오직믿음”의 원리는 지상의 신자의 입장에서 표현으로, 입혀주신 의를 체험하는 일은 칭의의 기저가 된다. 종교개혁자들은 영적 각성과 체험을 추구하는 교회부흥 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루터의 개혁의 출발은 무엇보다도 개인의 심령 자각과 자아의 영적 각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서원한 바대로 수도원에 입문하였으나, 인간이 의로워지고 구원을 얻는 데 인간의 노력과 열정이 무익함을 깨달으며, 극도의 두려움과 절망의 상태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 절망 가운데 루터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철저하게 부인하는 영적 경험을 한다. 이러한 영적 시련과 좌절감에서 루터는 자신이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과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며, 결국 의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러한 스스로의 영적 자각과 회심이 루터의 개혁의 사상의 근저가 된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한 루터의 영적 각성은 그 이후 수많은 ‘회개’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성경이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궁극적인 권위를 지녔다고 보는 종교개혁자들의 이 입장과는 달리 Roman Catholic 교회(RC)는 전승과 교회의 교도권의 권위를 성경과 동등한, 또는 그 이상의 권위를 지녔다고 본다. RC의 입장은 소위 교권계승이라는 사도적 계승(Apostolic succession)에 토대를 둔 sola ecclesia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RC는 거룩한 전승이 기록된 책과 기록되지 않은 전승으로 구성되었다고 본다. 또한 동 전승은 사도적 계승에 의하여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보수적 입장에서는 성경과 전승에 각각 부분적으로 신적 계시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 왔으나 새로운 시각에서는 성경은 명시적으로 전체적 진리를, 전승은 암묵적으로 전체적인 계시체계를 지녔다고 본다.
사도적 전승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고전 11:2; 살후 2:15) 사도들이 잠든 이후에는 기록된 성경이야말로 그 전승을 사도적 전승인지 여부를 판단할 기준이 된다. 성경에는 사도적 전승이 체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 이외의 전승 자료는 그 불완전성과 권위성에 문제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성경에 전승을 추가하는 방식은 성경의 유일한 권위를 훼손하기 마련이다. 성경이 교회에 의하여 보완될 때만 완전하다(perfectio implicita Scripturae Sacrae)는 RC의 입장에 대하여 종교개혁자들은 ACES의 원리를 제창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신구약 성경 그 자체 안에 하나님 말씀이 됨을 스스로 입증(自證)하는 autopistos (self-authenticating)한 것으로, 그리고 성령의 내적 증거(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the internal testimony of the Holy Spirit)로 보았다. 성경의 확실성은 인간의 이성과 판단이 아닌 성령의 내적 증거에 있다. 또한 개혁자들은 Vox Scriptura, vox Dei (the voice of scripture is the voice of God)의 입장을 취하였다.
위대한 시인은 자기가 시인임을 입증하지 않는다. 시인의 시가 스스로 그 위대성을 입증한다. 또한 천재는 스스로 입증되는 것과 같다. 성경은 인간의 혼을 밝히는 빛을 담고 있다. 성경 없이는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가 무의미하여진다. 성경은 영을 담고 있는 영원한 책이다. 성경은 말로 나타난 성스러움이다(holiness in words).
성경은 성령께서 선언하신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성령께서 성경을 통하여서만이 교회를 통치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교회는 성경을 통하여서 존재하게 되었지 성경이 교회를 통하여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다. RC는 성경 그 자체로는 하나님 백성의 권위로서 불충분하다고 한다. 그래서 RC는 전승과 교회의 가르치는 권위를 성경에 첨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시대에 RC는 개혁자들이 전승을 배척하는 성경관에 대하여 저주를 선언하였다(‘anathematized').
B. Sola Scriptura 원리의 의미
Sola Scriptura 원리란 성경만이 그리스도인 구원 신앙과 실천 문제에 있어서 최고의 궁극적인 권위가 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것은 성경이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궁극적인 권위를 지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성경에 체현되어 있는 신적 계시에 토대를 두고 있어야 한다.
Sola Scriptura 원리란 그리스도인 구원, 신앙 및 삶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성경에 명확하게 다 들어 있어 평범한 신자라 할지라도 그것들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곧 이해할 수 있다는 사상이다. 우리는 이런 사상의 예를 신명기에서 찾을 수 있다.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신 31:9),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 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신 31:12).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에게 명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47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인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신 32:46-47).
위 성경절들에는 다음 몇 가지 요인들이 함축되어 있다.
(1) 모세는 말한 것을 기록하였고,
(2) 백성들은 듣고 배웠으며,
(3) 백성들이 그 말씀에서 생명을 찾을 수 있었다.
백성들에게 말씀을 풀어줄 더 이상의 다른 기관이 필요하지 않았다. 제사장, 선지자, 및 이스라엘의 서기관들이 목회적 봉사 활동을 통하여 백성들을 도울 수 있었겠지만, 그런 시스템은 백성들의 구원을 위한 결정적,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만으로 생명의 구원을 위하여 충분한 것이다.
오직 성경의 원리 의미는 디모데후서 3-4장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프로테스탄트와 RC 측의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된 것 몇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성경은 감독과 장로 작책이 동일하다고 가르치고 있다(행 20:17, 28; 딛 1:5-7). 그러나 RC 전승은 각각 다른 직책으로 본다.
(2) 성경은 예수 이외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가르친다(롬 3:10-12; 히 4:15). 그러나 RC 전승은 마리아에게도 죄가 없다고 가르친다.
(3) 성경은 그리스도가 단번에 희생제물을 드렸다고 가르친다(히 7:27; 9:28; 10:10). 그러나 RC 전승은 신부가 미사드릴 때 제단에서 그리스도를 희생시키고 있다고 가르친다.
(4) 성경은 우상과 형상을 만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절을 못하게 한다(출 20:4-5). 그러나 RC 전승은 그것들에게 절하게 한다.
(5)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도들이며 제사장이라고 가르친다(엡 1:1; 벧전 2:9). 그러나 RC 전승은 성인들과 사제들을 특별 계층으로 치겨세운다.
(6) 성경은 예수께서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라고 가르친다(딤전 2:5). 그러나 RC 전승은 마리아가 공동 중보자가 된다고 가르친다.
(7)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영생을 가진 것으로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요일 5:13). 그러나 RC 전승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생을 가질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고 가르친다.
예수께서는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 15:6)고 전승의 문제점을 부각하셨다.
C. Sola Scriptura 원리의 근거
성경의 규범적 특성은 그 자체가 독특한(sui generis) 규범이다. 성경은 ‘경(canon=norm, rule)이란 표현이 시사하듯이 규범 중의 규범(Norm of norms)이며 그 이상 다른 규범이 없는(without norm) 최고의 규범이다,
1. 성경이 이 Sola scriptura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다.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표현이 없어도 그 사상은 나와 있다. 마찬가지로 sola scriptura 라는 표현이 성경에 나와 있지 않지만 그 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theopneustos)으로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전승은 그런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 성경이 의로 교육하기에 충분하기(능히) 때문에 다른 권위 있는 자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칠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 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신 31:9-12).
이미 전에 언급하였듯이 위 성경절에는 모세가 말한 율법이 기록되었고, 백성들은 그것을 듣고 배웠으며, 이 말씀 속에서 생명을 발견한 점에 제시되었다. 곧 구원을 위하여 성경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점이 함축되어 있다.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에게 명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인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신 32:46-47).
위 본문은 모세가 증거한 말이 기록되었으며, 백성들이 그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하며, 그 말씀 속에 생명이 있다고 한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구약을 성경으로 보았으며, 바울은 구약을 성경으로 인용하였고, 베드로는 바울의 저술을 성경으로 보았다.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눅 10:7).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딤전 5:18; cf. 신 25:4; 24: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5-16).
성경은 구약도, 신약도 모두 성경으로 보고 있는 증거를 보여 주고 있다. 성경은 계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강조하고 있다(갈 1:12; 고전 2:11-13).
사도 바울은 다른 교훈을 배제시키라고 하면서 부단히 성경에 집착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딤전 1:3; 딤후 2:15; 3:15-16; 4:2 등).
2. 예수께서는 계속하여 시험을 당하여 성경에 호소하고 계신다(마 4:4, 7, 10). 그는 유전(전승)의 문제성을 지적하고 있다(마 15:3-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
3. 바울은 하나님 말씀 밖으로 넘어 가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전 4:6)
4. 성경 첫 부분에서 모세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말을 가감치 말라”고 하고(신 4:2; 12:32) 성경 맨 끝에서도 말씀에 더하지 말도록 당부하고 있다(계22:18-19). 이 가감금지 명령을 축소해석하여 요한계시록이나 신명기로 국한시키는 주장은 옳지 않다. 계시-영감 없는 허구적인 글이나 기존 성경 내용과 불일치하는 글들을 성경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
성경은 그 속에서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기 때문에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모든 인간의 지혜는 성경의 권위에 복종해야만 한다. 성경 진리는 규범으로서, 이에 의하여 모든 사상은 시험을 받아야만 한다. 유한한 인간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것은 막대자로 별들을 재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성경은 인간의 규범에 예속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모든 인간의 지혜와 문예보다도 우월하다. 우리가 성경을 판단하는 대신 모든 사람이 성경에 의해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품성의 표준이요, 모든 체험과 생각의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D. “오직 성경”의 4대 원리-ACES원리
1. 성경의 권위성(Authority)
(1) 성경의 주장
성경의 권위에 호소하는 표현 “It is written"이 46회, "성경이 말하기를" 7회, According to the scriptures 3회, To the law and prophets 38회 등 79회가 나온다.
성경 기자들은 그들의 기별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온 것이라고 증거한다.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등등의 인물들에게 임한 것은 다름 아닌 "여호와의 말씀"이었다(렘 1:1, 2, 9; 겔 1:3; 욜 1:1; 욘 1:1). 주님의 기별자로서(학 1:13; 대하 36:16)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그분의 이름으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겔 2:4: 사 7:7 참조)라고 말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신적 신임장이요 권위가 된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사용하고 계시는 인간 대리자들은 뒷전으로 물러난다. 마태는 "이 모든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마 1:22)라는 말과 함께 구약을 인용하면서 구약 선지자의 배후에 있는 권위를 시사하고 있다. 그는 주님을 직접 매개자요 권위자로 보고 있다. 선지자는 간접 매개자인 것이다.
베드로는 바울의 저작들을 성경으로 분류한다(벧후 3:15, 16).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기록한것에 대해,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2)고 증거한다. 신약 기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성경으로 받아들였으며, 그것들이 구약의 글들과 같은 권위를 가진 것으로 간주하였다(딤전 5:18; 눅 10:7).
(2)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의 권위
예수님은 공생애 전반에 걸쳐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셨다.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나 반대자들과 논쟁하실 때에 "기록되었으되(It is written)"라는 말씀으로 응수하시었다(마 4:4, 7, 10; 눅 20:17).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해야 영생에 들어갈 수 있을지에 관한 질문을 받으셨을 때, 그분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눅 10:26)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성경을 인간의 전통과 의견들보다 위에 놓으셨다. 그분은 성경의 권위를 제쳐놓는 것에 대하여 유대인들을 책망하셨으며(막 7:7-9), 그들에게 "너희가 성경에... 함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고 말씀하심으로 성경을 좀더 자세히 연구하기를 권하셨다(마 21:42; 막 12:10, 26 참조).
그분은 예언적 말씀의 권위를 강하게 믿으셨으며, 그것이 당신을 가리킨다고 밝히셨다. 그는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한다고 말씀하셨다.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 5:39, 46). 당신이 신적 사명을 갖고 있다는 지극히 확신에 찬 단언은 구약의 예언을 당신이 성취시킨 데서 나온 것이다(눅 24:25-27).
그와같이 그리스도는 성경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의 권위 있는 계시임을 주저함 없이 받아들이셨다. 그분은 성경을 진리의 본체요 객관적 계시라고 생각하셨으며, 인류를 거짓된 유전과 신화로부터 구원의 지식의 참 빛 속으로 인도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보셨다.
(3) 성령과 성경의 권위
예수님의 생애 동안 지도자들과 부주의한 대중들은 그분의 진정한 신분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어떤 이들은 주님이 침례 요한,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 곧 단순한 인간일 뿐이라고 느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그의 고백이 가능하도록 한 것은 신적 조명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마 16:13-17). 바울은 이 진리를 강조한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主)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이것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조명해 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결코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으며, 심지어 성경을 하나님의 권위 있는 뜻으로 인정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전 2:11)기 때문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결과적으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고전 1:18)이다.
오직 "하나님의 깊은 것"(고전 2:10)을 통찰하시는 성령의 도움을 힘입어서만 인간은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대한 계시로 성경의 권위를 확신하기에 이를 수 있다. 그 때에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고전 1:18)이 되고, 그는 바울처럼 다음과 같이 증거할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2).
성령과 성경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성령은 성경 진리의 저자시요 계시자이시다.
영감에 관한 우리의 개념에 따라 우리 생애속에서 성경의 권위는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인간적 증언들을 수집해놓은 것에 불과한 것으로 믿는다든지, 혹은 우리의 느낌이나 감정에 따라 성경의 권위가 좌우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애 속에서 그 권위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들이 아무리 연약한 인간이었다 해도 우리가 그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인식한다면,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일에 절대적 권위가 된다(딤후 3:16).
종교개혁자들이 성령의 내적 증거(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the internal testimony of the Holy Spirit)를 강조한 것은 말씀을 성령의 증거로 읽고 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4) 성경적 권위의 범위
성경과 과학 사이의 마찰은 추상적 사변의 결과인 경우가 자주 있다. 우리가 과학과 성경을 조화시키지 못할 경우에 그것은 "과학 혹은 계시에 관한 불충분한 이해 때문"이며 "올바르게 이해하면 이 둘은 완전히 조화된다."
모든 인간의 지혜는 성경의 권위에 복종해야만 한다. 성경 진리는 규범으로서, 이에 의하여 모든 사상은 시험을 받아야만 한다. 유한한 인간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것은 막대자로 별들을 재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성경은 인간의 규범에 예속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모든 인간의 지혜와 문예보다도 우월하다. 우리가 성경을 판단하는 대신 모든 사람이 성경에 의해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품성의 표준이요, 모든 체험과 생각의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방언을 말하는 것이나 예언의 은사를 통해 인도받는 것을 포함한 성령의 은사들보다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전 12, 14:1; 엡 4:7-16). 성령의 은사는 성경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사실상 그것들은 성경에 의해 시험을 받아야 하며, 만일 성경과 조화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참된 것이 아니므로 배제되어야만 한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본서 17장을 보라)(기본교리 27, 18-20).
2. 명료성 (Clarity, perspicuity)
로마가톨릭교회는 성경이 교회의 도그마에 따라 명료하다고 하지만, 성경은 본질적 진리에 있어서 자기 해석적 명료성을 지녔다. 이 명료성을 증거하는 성경본문은 다음과 같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눅 16:29)
“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 1:19)
이 성경 명료성은 성경에 해석하기 어려운 난제가 있거나 주석상의 문제가 도무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또한 성경 연구 시 언어학적 숙련성이 필요 없다는 뜻도 아니다.
우리는 은사갱신운동을 하는 사람들처럼 개인적인 내적 빛에 따라 성경이 명료하여진다는 사상을 배척한다. 또한 자유주의신학자들이 성경에는 진리와 오류가 혼합되어 있다는 주장도 배척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이 명확성의 원리를 성경이 그 자체가 해석자가 된다는 원칙(the principle of the "Scripture its interpreter")으로 표출하였다. 예수께서는 엠마오 도상에서 이를 실증하셨다(눅 24:27).
바울은 이 원리를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엘렌 화잇은 이 종교개혁의 원리를 확인하였다.
“성경은 그 자체의 해설자이다(The Bible is its own expositor).”(교육, 190).
화잇은 “성경 자체가 성경의 해석자인 사실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억설을 성경의 가르침인 양 설명”(쟁투, 521)하는 태도를 경계하였다.
3. 효험성(Efficiency)
성경은 생명의 책이다. 여기에 타 종교의 경전과 차이점이 있다. 다음 성경절들은 성경의 생명을 변화시키는 권능과 효능에 관하여 진술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시 19:7)
“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11)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성경에 대한 다음 상징적 표현들은 이 성경의 효험성을 잘 부각시키고 있다.
(1) Lamp -- 말씀은 빛을 비추고 있다(시 119:105). 말씀은 영적 조명, 이해, 및 지도의 원천이 된다. 자연인은 영적 어둠에 쌓여 있다. 말씀이 그 어둠을 몰아낸다.
(2) Hammer--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렘 23:29). 말씀에는 죄를 깨트리는 권능이 있다. 에베소에서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9-10).
(3) Sword -- 엡 6:17-18 인간의 심령을 해부하는 외과의사의 손에 들린 칼
(4) Seed -- 벧전 1:23; 눅 8:11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명력을 지닌 말씀
4. 충분성(Sufficiency)
성경은 영생을 위한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모든 것을 충분하게 내포하고 있다. 성경은 영적 진리에 대한 완전하고도 유일한 표준이 된다. 성경은 신앙과 실천에 관한 모든 문제에 있어서 오류와 진리 사이에서 재판관 역할을 할 수 있다. 성경은 교회의 해석으로 보완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다른 모든 자료를 해석 검증하는 렌즈 역할을 한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인간 지식의 백과사전은 아니다. 또한 성경은 모든 신적 계시를 다 수록하고 있지도 않다(고전 13:12; 롬 11:33-34). 물론 성경에는 우리의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는 주제들도 있다. 그렇지만 성경은 영생을 얻기에 충분한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이 성경의 충분성의 원리는 신약성경 경전 확립 이후 성경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는 계시-영감의 가능성을 배척하지도 않는다.
“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신 4:2)
“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신 12:32)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 30:5-6)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E. Sola scriptura 원리의 이해 한계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신앙과 실천의 유일한 규범으로 본다. 그들은 성경의 궁극적인 권위를 지녔다고 본다. 재림교회 기본신조 제1항 성경에 관한 선포에는 ‘오직’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이는 ‘오직’ 개념이 ‘예언의 신’과 상치되지 않나하는 문제 제기를 의식한 탓일 수 있다. 그러나 제1항 the infallible revelation," "the standard of character," "the test of experience,' "the authoritative revealer of doctrines," "trustworthy record of God's acts in history" 표현에 나오는 ‘the(only)'에 함축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오직 성경’이라는 구호가 AD 1세기가 지난 다음에 예언적 선물의 등장을 막거나 새로운 빛의 출현을 막아서는 안 된다. ‘오직 성경’이라는 구호는 66권 경전이외에 다른 경전이 없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고 동 원리가 신약성서 시대 이후에 예언적 선물의 출현을 막는 것은 아니다. 신약 기자들이 예언의 선물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림교회의 소위 ‘예언의 선물’은 영감 받은 비정경적 저술에 속한다. 비정경적 저술들은 “큰 광명”이 되는 성경을 반사하는 “작은 광명”이 되기 때문에 ‘오직 성경’ 원리에 반하지 않는다. 발광체와 반사체의 논리가 전제된 예언의 선물은 가능하다. 성경은 절대적, 궁극적 권위를 지니고 있어 아직도 Sola scriptura 표현은 유효하다. 혹자가 으뜸 성경론(prima scriptura) 적 관점에서 오직 성경의 권위성을 유연하게 한다면 이해는 하되 그 사용 문맥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EGW이 “성경과 성경만이...우리의 신앙의 규범이 된다고 언급하였을 때 그것은 인간의 말과 행위에 대비시키면서 한 표현이었다(Counsels on Sabbath School Work, 84). Sola scriptura 표현은 인간의 전승과 이론에 대비하여 사용되었다. “성경 말씀, 오직 성경만을 설교단에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선지, 626).
“오직 성경만이 우리들의 유일하신 경이 되고 연합의 유일한 증서이다. 거룩한 말씀에 굴복하는 자들은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들 자신의 견해와 사상이 우리들의 노력을 지배하여서는 안 된다. 인간은 오류에 빠지기 쉬우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오류가 없다. 서로 논쟁에 휘말리는 대신에 사람들은 주님을 높여야 한다. 우리들은 주님께서 “기록하였으되”라는 말씀으로 반대의 세력을 물리치신 것처럼 우리들도 말씀으로 모든 반대의 세력들을 대처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성경은 우리 신앙과 교훈의 표준이다”라고 기록된 깃발을 높이 쳐들어야 한다(리뷰 앤드 헤랄드, 1885년 12월 15일).”(1기별, 416).
‘오직 성경’을 앞에 내 세우고 성경의 어떤 부분을 개폐한다면 이는 ‘오직 성경’의 원리에 반하는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로마가톨릭의 논객 Eck는 교회가 성경 보다 시간적으로 오래되었다고 하고 성경은 교회의 권위 없이는 존재할 수없었다고 보았다. 그 증거로 교회가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한 권위를 제시하였다. 오직 성경이라는 구호로 종교개혁의 힘을 발휘한 개혁자들에게 Eck 는 교회가 성경을 변경한 권위를 내세워 그들의 오직 성경이라는 구호의 문제성을 제시하면서 Lutherans를 Luciferians로 비방하였다. 안식일을 배척하고 오직 성경 구호를 내 세우는 모순성을 파고 든 날카로운 논박이라고 볼 수 있다.
F. 근대 급진적 Sola Scriptura 개념을 넘어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원칙 역시 예수와 성경, 그리고 자연을 어떻게 연결하는가라는 문제에 관해서 기독교인들을 분열시키는 심각한 원인을 야기시키고 있다.
데일 무디(Dale Moody)는 신학자들과의 대화에서 기독교를 연합시킬 수 있는 유일하고 충분한 기초는 성경을 향한 기독교인들의 공통된 관심임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도로시 죌러(Dorothee Sölle)는 모든 기독교인은 성경을 단순히 하나의 자료로만 보지 말고, 묶고 제한하고 기준을 만드는(norma normans) 표준으로 인식해서 신학의 다른 모든 기준(normae normatae)의 사용을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재림교회 신학자인 리차드 데이비슨(Richard Davidson)도 모든 기독교인은 우리의 모든 편견과 선험적 지식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로 하여금 기준점이 되는 성경의 전제들과 조화되도록 인도할 것을 기대하며 성경으로 나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급진적인 개신교신학은 재림교회 신학과 매우 달라 서로 양립되지 않는다. 현대 자유주의적, 급진적 기독교 신학에 있어서 성경의 역할은 그 자체가 문제투성이로 전락되었다. 성경을 신학의 잣대로 정하는 것을 동의하는 학자들 중에서도 그 잣대가 무엇이냐에 대하여는 일치되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이 논쟁의 핵심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원칙에 관한 것이 되어 있다. 이 오직 성경 원리에 관한 불일치가 기독교 분열의 가장 큰 원인 되고 있다. 로마가톨릭교와 개신교 모두가 경험과 이성, 그리고 전통의 맥락을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는 흐름에 편승하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도들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구호를 경험과 이성과 전통을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성경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로마가톨릭교인들 역시 성경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경험과 이성과 전통을 다르게 평가한다.
G. 성경을 읽는 자세
1. 열심이 읽는 자세
2. 지혜 활용 자세--읽는 시간, 읽는 장소, 읽는 순서, 주제 선택 등에 있어서 지혜롭게
3. 적당한 준비-하나님 말씀에 대한 외경심, 그리스도 신앙, 배우고자한 마음(잠 17:16)
4. 명상의 자세-명상 없는 단순한 독서는 열매가 빈약(시 1편)
5. 성경연구 모임 활용--올바른 신앙을 지닌 경건한 지도자와 신자들과 함께
6. 신앙적 자세(히 4:2)
7. 실천 (순종)의 자세--실천은 믿음의 열매
8. 기도하고 읽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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