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교회와 창조신학

창조 : 2013. 1. 12. 03:29

I. 하나님의 두 책

A. 다양한 교류 방법들

인간사회의 의사소통의 방법은 다양하다. 하나님께서도 인간과의 의사소통의 방법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오셨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편들을 통하여 자기의 뜻을 알려 오셨다. 그 중에도 기본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은 방편들이다.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2)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3) 기록된 성경말씀을 통하여

(4) 천적인 메신저들을 통하여

(5) 성소제도를 통하여

(6) 천연계를 통하여

 

B. 성경과 천연계

이런 방편들을 특별계시와 일반계시로 구분되기도 한다. 특별계시 성경과 일반계시 천연계는 하나님의 두 권의 책이 된다.

하나님의 다양하신 교류 내용을 인간이 바로 포착할 수 있는가? 타락 사건으로 인한 영향은 인간 이성에도 미치고 있다. 인간은 죄의 영향으로 인하여 진리 이해에 있어서 한계를 지녔다. 이 불완전한 인간 요인은 하늘의 진리가 불완전한 인간 도관을 통과하는 이해에 있어서 변질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특별한 지도가 필요한 소이가 여기에 있다. 성령의 교정을 통한 지도는 이런 심각한 문제를 극복케 한다.

인간 이성의 권위를 성경 위에 두어 성경을 판별하며 평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위험하다. 죄의 영향을 받은 인간 이성은 하늘의 지원을 받지 않고는 객관적인 판단을 올바로 할 수 없다.

타락한 상태에 있는 연약한 사람의 지력과 통찰력으로는 하나님의 실상을 바로 알고 해석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 주시는, 그분에 대한 보다 자세한 계시가 필요하다.”(교육, 17).

그러나 인간의 이성이 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진리가 발견될 수 없다고 포기하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죄악의 비늘이 벗겨질 때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판별을 할 수 있다.

 

1. 성경 이해 방향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인간과 의사 교류를 하여 왔다. 성경의 1600절 이상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서술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기도 없는 성경 연구는 유익보다는 유해하다.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자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수용하는 자세로 말씀을 받고 성령의 비추심이 필요하다.

 

2. 천연계 이해 방향

성경을 접근하는 방식은 천연계 연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모든 피조물들은 처음에 완전할 당시에는 하나님의 사상을 그대로 표현했다. 아담과 하와가 볼 때 천연계는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를 통해서 그분을 배우는 길이 끊어지게 되었으며, 또 그분의 일을 통하여 배우는 길도 대부분 막히고 말았다. 땅은 범죄 때문에 훼손되고 더러워져서 창조주의 영광을 희미하게 반영할 따름이다. 물론, 하나님의 실물 교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연계라는 거대한 책의 매 페이지마다에서 지금도 그분의 솜씨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천연계는 여전히 그것을 창조하신 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나타내는 것들은 부분적이며 불완전하다. 게다가, 타락한 상태에 있는 연약한 사람의 지력과 통찰력으로는 하나님의 실상을 바로 알고 해석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 주시는, 그분에 대한 보다 자세한 계시가 필요하다.”(교육, 16-17).

 

개인적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얻은 사람은 자연과학을 연구할 준비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기록되어 있다(1:4). 죄가 들어오기 전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밝고 아름다운 빛, 곧 하나님의 빛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 빛은 그들이 접근하는 모든 것을 비쳐 주었다. 하나님의 품성과 솜씨에 대한 그들의 지각을 어둡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유혹자에게 굴복하게 되자, 그 빛은 그들에게서 떠나갔다. 거룩한 의복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그들은 천연계를 비쳐 주던 빛도 잃어버렸다. 그들은 더 이상 천연계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솜씨를 통하여 그분의 품성을 분별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인류는 스스로의 힘으로 천연계의 교훈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없다. 하늘의 지혜로 인도되지 않으면, 그는 천연계와 천연계의 법칙들을 천연계의 하나님보다 더 높이게 된다. 이것이 과학에 관한 단순한 인간적 이론이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과 너무도 자주 상치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천연계가 다시 빛을 비추어 준다.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통하여, 우리는 천연계의 교훈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치료, 461-462).

3. 천연계 현상에 대한 판단의 기준

하나님 말씀의 조명을 중심으로 천연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들의 유일하신 경이 되고 연합의 유일한 증서이다. 거룩한 말씀에 굴복하는 자들은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들 자신의 견해와 사상이 우리들의 노력을 지배하여서는 안 된다. 인간은 오류에 빠지기 쉬우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오류가 없다.”(1기별, 416).

 

II. 천연계의 거시적 현상과 미시적 현상

1. 우주의 거시적 조망

성서 기자들은 거시적으로 다가오는 천연계 현상들을 두고 하나님의 위엄과 위대하심의 계시로 묘사하였다. 예컨대, 다윗의 시 한 구절을 살펴보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19:1).

이는 우주의 현상을 두고 한숨에 압축시킨 시인의 찬탄이 아닌가! 별들이 총총한 밤에 보통 사람들은 육안으로 3000개 정도의 별들을 헤아릴 수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6000개 정도를 셀 수 있다고 배웠는데, 하늘 공기가 탁하여져서 인지 3000개로 줄었다. 천문가들은 은하계 안에는 2000억 개의 별들이 창조 시에 지정된 궤도를 운행하고 있다고 한다.

한 백과사전에 따르면, 은하계란 천구상에 은하수를 형성하는, 태양계가 포함된 은하를 말한다. 나선은하로서 지름 16000광년의 구형 중심부와 그 주위에 98000광년 지름에 3광년 두께의 원판이 존재한다. 태양은 은하면 위에 있으며, 중심에서 약 33000광년 떨어져 있다. 은하의 원판은 회전운동을 하며, 태양은 25천만년 주기로 은하중심을 공전한다. 우리는 이런 은하계가 우주 안에 수 없이 많다는 보도를 접하고 놀란다.

우주에서의 거리 측정 단위를 접할 때는 아연실색한다. 태양계와 비슷한 행성계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가장 가까운 별자리는 4.4광년(혹자는 5.22조 광년으로 계산) 거리에 있는 알파 센타우리(Alpha Centauri). 빛으로 4년 반을 달려가야 하는 이 거리를 지금의 로켓 속도로 달려간다면 10만년이 걸리고도 남는다. 설사 우주선발대가 그곳에서 지구와 같은 행성을 발견한다고 해도 그 사실을 전하러 다시 지구로 돌아오려면 무려 24만년이나 걸린다. 그렇다면 24만년전에 출발한 우주선발대를 기억하고 이를 기다리고 있을 지구인들이 얼마나 될까. 은하계의 직경 10만 광년, 마카리안(Markarian)은하계의 직경 1.3백만 광년 등 상상을 초월한 크기를 생각하면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라는 행성은 바다가의 모래 한 알 정도로 비쳐진다. 이토록 작은 지구 안에 사는 인간은 이 거대한 우주 구조 속에서 시인처럼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8:4)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2. 천연계의 미시적 조망

천연계를 미시적으로 접근하여도 마찬가지의 경탄을 할 수 밖에 없다. 전자현미경을 통하여 사람의 정신활동에 관계하는 신경세포는 약 140억 개나 된다고 알려져 왔다. 또한 각각의 세포에는 20,000 내지 2,5000개의 유전자가 배열되어 있다고 한다. 문화를 창조하고 인간사회의 온갖 일들을 처리하는 이러한 조직체는 살아 있는 고성능 컴퓨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름철 잘 자란 나무들은 하루에 40갈론 정도의 수분을 전기 펌프질 없이 가지와 잎사귀들에게 골고루 공급하고 있다. 나무는 흡수한 수분이 잎사귀들로부터 증발됨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줄기에서, 줄기는 본체로부터 본체는 뿌리로부터 필요한 만큼을 보충하는 정교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인간의 유한한 지력으로는 이 모든 생명의 신비한 원리들과 피조 세계의 경이로운 수학적 질서들을 모두 다 포착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정교하기 그지없는 거시적, 미시적 지적현상과 설계들을 생각한다면, 그런 것들이 수 십 억년을 거치면서 우연히 이루어지고, 설정되고 발전하였다는 진화론은 허구적 가설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과학시대에 수많은 인간들은 오히려 다윈의 진화론자들은 우연론의 거미줄에 걸려 창조론을 비웃고 있다. 그들은 진화론을 생명의 기원에 관한 유일한 설명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신학자들까지도 하나님께서도 이신론적 진화론 방식을 사용하였다는 사고의 틀 속에 갇혀 창세기 1-2장을 풀이하고 있다.

 

III. 세계 기원에 관한 제 이론들 개요

A. 이원론 (Dualistic theory)

이원론은 이 세계에 영원한 두 가지의 자존적 원리, 즉 신과 물질이 상호 병존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원래의 물질은 불완전하고 악하여 신의 뜻에 예속된다고 본다. 신은 창조주가 아닌 이 세계의 조립자이다. Plato, 노스틱주의, 마니교(Monicheans) 등이 대략 이런 시각을 지녔다.

그러나 이 입장은 몇 가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제일 원인의 작동 없이 물질이 영원 전부터 존재하여 왔다는 것은 합리적 설명이 못된다. 또한 물질이 영원하고 신과 사이에 대립적이라면, 물질 또한 무한하고 전능하여야 하나 그렇지 못하다. 더 나가서 물질의 존재를 영원한 악의 원칙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악에 대한 선의 승리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B. 유출설(The emanation theory)

이 세계는 신적 존재로부터 유출 과정을 거쳐 나타났다. 그리하여 이 세계와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물질은 신적 존재의 현현이 된다. 고대 희랍철학자들 사이에는 이 유출설이 여러 형태로 주창되었으며, 노스틱주의자들, 범신론자들도 이런 시각을 지녔다.

그러나 이 견해는 하나님을 유한하고 불완전한 분으로 제한시키고, 하나님에게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악한 현상들을 귀책시키는 문제점들을 지녔다.

C. 진화론(Evolution theory)

1. 물질주의적 진화론자들은 생명 발생(기원)을 우연 발생이라는 가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생물이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의 환경 속에서 생식을 통하여 대를 이어가는 사이에 환경의 변화에 따라 구조가 간단한 것에서 분화하여 보다 복잡한 것으로 발전하여 적은 수의 종류로부터 많은 종류로 갈라져 새로운 종으로 증가되는 진화 현상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진화론자들은 Lamarck의 용불용설(usage and disusage theory), DarwinWallace의 자연도태설(natural selection theory), Weismann 등의 생식질 연속설(New Darwinism), Eimer Cope의 정향진화설(Cope theory) 등의 이론으로 설명을 하고 있지만 각 이론이 약점을 지녔다.

2. 그들은 진화의 증거로 다음과 같은 증거들을 제시하여 왔으나 각각 문제점들이 내포되어 있다.

a. 동식물 내에서 일어난 변이(variation)의 증거-- 그러나 같은 종 내에서의 변이이지 새로운 종이 아니다. 생식질 연속설에서 획득형질의 유전을 말하나 새로운 속(genus)의 분화는 인정되고 있지 않다.

b. 공동의 조상을 추정케 하는 구조적 유사성 증거-- 그러나 생존을 위한 필요상 창조주가 유사한 구조로 만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c. 퇴화기관의 증거--그러나 퇴화하여 무용한 기관이라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

d. 혈액의 화학적 유사 성분의 증거--그러나 화학적 유사 성분의 혈액은 유사 식단의 결과일 뿐이다.

e. 특정 변이의 특정 지리적 분포의 증거--그러나 타 지역 종류와의 차이가 있는 변종은 같은 종류 내에서의 변이이지 새로운 형이 아니다.

f. 지질학적 화석의 증거--그러나 화석이 지질층에서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계로 일사분란하게 진화하였다는 화석 증거에는 단절되어 빠진 부분이 있다(missing link).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을 과학적 매춘으로 비판하고 있으나 진화론 역시 일정한 가설을 전제로 한 패러다임에 불과하다.

 

D.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ism) 대두와 그 문제점

재림신도들은 그 모두가 이 특별창조(명령창조론)를 앞세우고 진화론을 배척하여 왔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일사불란한 자세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교단 내 대학들에서 가르치는 과학자들과 신학자들 가운데는 6일 창조론에 이의를 품고 소위 과학적이라는 증거들을 내 밀면서 유신론적인 진화론적 접근방식을 옹호하는 기류를 보여주고 있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하나님께서 진화의 모델을 사용하였다고 본다. , 하나님께서는 간접적으로 천연계의 불변의 법칙을 통한 진화의 과정을 관장하여 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하나님이 이 과정에 직접적인 개입도 하시었다고 본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을 상징적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성경과 과학을 완전히 다른 구조로 보고 분리시킨다.

유신론적 진화론과 성경의 창조교리와는 배치된다. 유신론적 진화론이라는 용어 그 자체가 상호 모순되는 용어의 결합이다. 생명의 기원은 우연에 토대를 둔 자연적 진화의 소산물이던지 아니면 초자연적 창조권능의 결실이던지 둘 중의 하나일 뿐이지 그 두 가지를 모두 거친 결과는 아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기원이 간접적인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나타나도록 하셨다면 우리는 인간 구원, 즉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에 대한 확증을 지닐 수 없게 된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진화론이 채택한 '우연' 또는 '무목적성개념을 성경의 창조 신앙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를 두고 두 유형으로 나뉜다. 그 하나는 하나님이 이 우주와 최초의 생명체를 창조하실 때 진화에 따른 최종 열매를 미리 염두에 두시고, '초기조건'을 정교하게 미리 마련하여 두었다고 본다. , 오늘날의 모든 생물체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진화를 해왔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오늘날의 생태계가 조성되었기 때문에 성서적 창조신앙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두 번째 유형은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에 가까운 해석을 하는 바, 양자역학적 함의를 도입하여 진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 자체에 신적 섭리와 행위가 개입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진화의 저변에서 유전적 돌연변이가 '불확정'적인 양자적 사건에 의해 발생하고 있고, 이 불확정성은 하나님에 의해 양자세계에 부여된 본질적인 법칙이므로 하나님께서 천연법칙을 깨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의지대로 진화를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요컨대, '우연'이라는 양자적 자연법칙 안에서 하나님은 얼마든지 진화 과정을 조정하실 수 있으므로 성서적 창조신앙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의 두 유형은 어떤 경우이든지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를 인정하고 있으나, 일단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에 의한 계획과 의지를 인정한다면, 더 이상 무작위적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해 초기의 단세포 형태로부터 지금의 다양한 생물계를 이루었다는 가설적 설명 대진화적 설명을 수용할 필연성이 없어진다. 우리에게는 수백 만 번의 변이 없이 각 생물을 그 종류대로 즉각적으로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

 

과연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사랑이신 하나님의 창조의 방법으로 합당한가? 비록 유전적 변이에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하더라도 자연선택이 제 기능을 하려면 결국 수많은 변이 형태의 생물들이 생겨나야만 한다. 그러므로 수많은 변이적 생명체들은 주어진 환경에 가장 적절하게 적응될 후손 하나님이 의도하신 생물이 등장하기까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라는 지극히 잔인한 메커니즘의 '희생물' 역할을 한 셈이다. 그 수많은 생물들이 정말로 변이체의 희생 과정의 소산물이라면 그러한 것이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을까? 이러한 비평에 대하여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두 가지로 답하고 있다. 그 하나는 '사랑,' '잔인,' '가치' 등의 의미는 인간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차피 지금도 그러한 적자생존이 생태계에 존재하지 않느냐 하는 답변이다. 첫 번째 답변에 대해서는 비록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은 인간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가치 기준과 감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품성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에 답변에 대해서는 분명 지금의 생태계는 아담의 범죄 이후이고, 하나님의 창조는 그 이전이므로 그 둘을 동일시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반박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자연선택 또는 적자생존에 의한 창조라는 개념은 성서적 창조 신앙과 융합되기 어려운 논점이 될 것이다.

 

성경해석에 대하여 그리고 성경과 과학의 관계에 대하여 유신론적 진화론이 취하는 입장은 창조과학이 취하는 근본적 입장과 정 반대가 된다. 어떤 과학이론이 성경의 구절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일 때 어느 한쪽을 무시하기에 앞서서 성경과 과학을 각각의 올바른 방법론에 의해 평가하고자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계시의 우선적 권위를 살려내서 이해하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선행될 때에 모순처럼 보이던 부분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이러한 노력이 결여되어 있다.

가장 위대한 정신을 가진 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되지 않으면, 과학과 계시와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그들의 기도(企圖)에서 혼란에 빠진다. 창조주와 그분의 업적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이런 것들이 천연의 법칙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이유로 성경의 역사는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선포된다.”(8증언, 258).

참 과학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이 전혀 있을 수가 없다. 그 둘은 다 같이 창시자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 둘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면 그것들이 언제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이 판명될 것이다. 천연계에서나 계시에서나 간에 진리는 그 모든 표현에 있어서 그 자체가 조화를 이룬다. ”(8증언, 258).

 

IV. 재림교회의 창조신앙

A. 창조신앙의 성경적 기초(근거)

성경을 처음으로 여는 창세기 1: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의 선언을 하고 있다. 창세기 1장과 2장은 하나님의 특별 창조를 묘사하고 있다. 성경적 신앙의 첫 명제는 창조신앙이다. 재림교회는 그 초창기부터 6일 창조론을 신봉하여 왔다. 창조주일 사건이 과거 6,000년 내지 10,000년 전에 일어났다고 믿고 있다. 특히 네 째 계명인 안식일을 맞이할 때마다 하나님의 창조사건을 기념하고 있다. 안식일은 창조신앙의 기초가 된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20:11).

하나님의 첫 번째 기쁜 소식인 안식일은 원래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그 안의 모든 생물들을 완전하게 창조하셨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메시지가 창세기 1:1-2:3에 간결하게 그러나 힘차게 선포되어 있다.

성경은 창조에 나타난 전능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40:26-28; 4:13).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지혜를 언급하기도 한다(40:12-16; 10:12-16). 창조와 보존을 하나님의 근본적인 일로 묘사하기도 한다(고전 11:9; 1:169:6). 하나님을 피조물에 초월적인 분으로 묘사하기도 한다(17:24; 90:2; 102:25-27).

 

B. 성서적 창조사상

1. 정의-창조란 삼위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 자유스러운 뜻에 따라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만상을 무로부터(ex nihilo) 창조하신 행위이다. 아버지는 창조의 원천이 되시고(고전 8:6), 아들(1:3; 1:15-17)과 성령(1:2; 33:4; 104:30; 33:6)은 창조의 기관(수단)으로 계시되어 있다. 즉 창조사건은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일어났다.

 

C. 창조신앙의 규범화

이런 배경에서 1980년 달라스 대총회의 회기에 대표들은 6일 창조론이 포함된 공식적인 27개 신조를 결의 채택하였다.

기본신조 6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성경 속에 당신의 창조 활동에 관한 권위있는 설명을 계시하셨다. 엿새 동안 주님은 "하늘과 땅", 그리고 지상의 모든 생물을 만드셨으며 그 첫 주일의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이렇게 그분은 당신께서 창조 사업을 마친 것에 대한 영구적인 기념물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 신조에 따르면 (1)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6일 동안에 창조하셨으며, (2) 안식일은 이 6일 창조의 항구적인 기념일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 백 만년이라는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점진적 창조론 내지 수정된 유신론적 진화론 형태의 발호는 계속되어 왔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노골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총회에서는 2002년부터 2004년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국제 신앙과 과학 조직위원회 회합을 열어 창조론과 진화론의 공개적인 논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동 위원회는 2004년 대총회 추계회의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동 보고서에는 전통적인 창조신앙 고백과는 달리 성경해석을 달리하여 다른 결론을 이끌어 내는 날카롭게 대립되는 견해도 있었음을 명시하였다.

2004년 추계회의에서는 심도 있는 논의를 한 후 문자적인 6일 창조론의 역사적, 성서적, 입장을 강력히 배서 및 지지하는 문건을 채택하였다. 동시에 창조주일 하루가 24시간 이상 장기간이라는 그 어떤 견해도 있을 수 없다는 입장도 피력하였다. 교단 내 성서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은 이 입장을 더욱 연구하여 창조신앙을 견고하게 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이를 옹호하고 가르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6일 창조 신앙을 아무리 강조한다하여도 지나칠 수 없으리만큼 재림 신앙의 초석이 된다. 이 창조 신앙을 타협하거나 약화되면 안식일 메시지는 힘을 잃을 것이며 창세기 첫 11장의 역사성도 퇴색될 것이며, 인간 타락 및 구원의 진리마저도 그 지반을 잃게 되어 남은 진리들도 머리를 잃은 교리로 전락될 것이다. 일찍이 솔로몬의 다음 권고에 우리는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3:5).

D. 재림교회 명칭에 나타난 창조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명칭은 영어로 두 개의 단어 Seventh-day Adventists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명칭에는 과거로 거슬려 올라가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의 신적기원이 함의되어 있으며 미래를 지향하여 그리스도의 오심이라는 종말론적 메시지와 사명이 담겨 있다. 기원과 최초의 것들(창조)에 관한 연구인 Protology와 종말론 Eschatology는 함께 간다. 후자는 전자에 메어 있다. 따라서 창조론이 무너지면 종말론이 설자리가 없어진다. 인류를 위한 최후의 메시지에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메시지가 포함된 것은 창조론과 재창조가 그 목표가 되는 종말론과 긴밀한 맥락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창조론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라는 성경과 예언의 신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재림교회의 기조사상과도 긴밀한 관련을 지녔다. 죄와 타락 개념도 창조의 원 상태에서 빗나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창조론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라는 구원론의 출발점이 된다. 구속주는 창조주의 권능을 지녀야 구속의 경륜을 완성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교단 명칭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 있다는 점을 살려 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의 대행자(agent)가 되시며(1:1-2; 1:16; 1:1-2), 창조 세계를 유자히시는 분이며(1:17; 1:3), 구속자이시다.

 

1. 성서적 창조론의 기조

(1) 창조기사 해석태도--재림교회는 성경의 창조기사인 창세기 1-2장을 문자적, 역사적 사건으로 해석한다. 이는 창조기사를 영적으로나 상징적으로 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창조기사는 구속의 경륜의 서론이 된다. 물질세계의 창조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좋고, 기쁘고, 선한 일에 속한다. 이 점은 물질을 나쁘고 덜 좋은 것으로 보는 헬라철학에 있어서 물질관과 대조적이다. 우연한 발생에 포인트를 둔 진화론은 피조세계에 나타난 정교한 수학적 질서와 디자인, 종의 다양성, 한 생명체 내의 기관들의 상호 긴밀한 관계 등을 무시한 가설에 불과하다.

 

(2) 특별창조론(special creationism)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33:9).

 

이 말씀에 비추어 하나님의 명하심에 따라 창조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특별 창조론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명령창조론(fiat creationism)이 된다. 특별창조론 시각에서 마귀 모방창조론, 복구설, 창세기 이전의 간격 창조론, 점진적 창조론, 유신론적 진화론 및 쓰레기 이론(garbage theory) 등을 배척한다. 창조기사를 두고 이해한 Bultmann의 신화(myth)론적 접근, Barth의 사화(saga)론적 접근이나 Tillich의 실존론적 접근은 빗나간 사조들에 불과하다.

창세기 1-2장 이외에도 특별창조론 사상이 전 성경을 관통하고 있다. 성경은 창조를 하나님의 전능하신 하나님과 결부시켜 언급하기도 하고(40:26-28; 4:13), 하나님의 지혜와 결부시키기도 한다(40:12-16; 10:12-16). 또한 다른 본문은 하나님을 모든 창조의 원천으로 진술하고(1:16; 9:6), 다른 본문은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초월성을 말하기도 한다(17:24; 90:2; 102:25-27).

(3) 창조의 주체는 삼위 하나님(Elohim)이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창조는 삼위 하나님의 의지와 행위의 결실이다. 성부하나님은 때로는 창조의 원천(source)으로, 성자와 성령은 창조의 수단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창조는 아버지로부터(out of), 아들을 통하여(through), 그리고 성령 안에서(in)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 8:6)

성자는 창조사건에 참여하시고(1:3; 1:15-17), 성령께서도 참여하신다(1:2; 33:4; 104:30; 33:6).

하나님께서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n ex nihilo)하셨다. 무로부터의 창조개념은 하나님께서 창조 시 선재물질에 의존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권능으로 창조하셨다는 단순한 그러면서도 독특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참고, 1:3; 33:9). 이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방식이다.

(4) 창조의 목적

a.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피조 세계는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고 있다(19:1; 43:7; 60:21).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적 존재로 창조주를 경외하며 신실한 청지기로 서서 그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b. 인간의 행복과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나누며 삶을 향유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1:26, 28). 거처가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의 심정으로 인간이 거주할 거처를 마련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good)”, 또는 심히 좋았더라고 경탄하였다(1:31).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세계를 거부하는 사상을 갖지 않는다.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좋은 것에 속한다. 창조의 목적에 따른 육체적 삶도 선한 영역에 속한다. 창조 명령에 따른 문화의 발전, 과학과 기술의 발전도 좋은 것들에 속한다.

(5) 창조신앙의 의미와 중요성

a. 창조신앙은 참 예배의 기초가 된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창조주가 아니라면 완전하고 드릴 가치가 있는(worthy) 참 예배(worth-ship)를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b. 창조신앙은 구속과 연관되어 있다. 창조를 전제로 할 때 구속과 회복이 가능한 것이다. 즉 창조는 구속을 결정한다.

c. 처음 일(etiology)은 마지막 일(eschatology)을 결정한다. 창조론이 선행하여야 종말론이 확연하여진다. 완전한 창조는 완전한 최종적 회복을 보증한다.

d. 창조신앙은 인간은 창조주에 독립한 존재가 아닌 의존적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e. 창조의 세계는 선하다. 이는 창조사건을 진행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반복하여 선언하시는 말씀을 통하여 드러난다.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31)고 말씀하셨다. 이는 인간의 생명도 선하다는 선포가 된다.

 

'창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소순환(窒素循環 Nitrogen Cycle)  (0) 2013.08.15
세계를 보는 눈들  (0) 2013.03.29
마음을 제어하는 균(Mind Control Fungus)  (0) 2013.03.12
박쥐의 기여  (0) 2013.03.08
공룡에 관한 개요적 이해  (0) 2012.06.17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