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도 제1기 안식일학교 교과 ‘세상의 기원 (Origin)’에는 세 가자지 세계관(Worldviews) 이야기, 곧 세상의 기원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관을 유물론적으로 접근하거나 범신론적으로 접근하는 일은 성서적 신관에 배치된다. 일부 교단 내 타락한 신학자들이 유신론적 진화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이는 성경과 조화되지 못한 빗나간 시각일 뿐이다.
1. 성서적 유신론(Theism)
하나님은 모든 실재하는 것들의 근원과 기초가 되신다. 인간이 타락하여 죄악 중에 사는 존재로 전락되었지만, 회복의 길, 구원의 길이 열려졌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성경과 성령의 지도 그리고 천연계 중에 나타난 섭리의 손길을 통하여 무엇이 참의 길인지 알 수 있다.
2. 유물론(Materialism)
물질과 자연법칙은 존재하는 것의 전부이다. 인간은 바이오 로봇(biorobots) 복합체일 뿐이다. 절대적 도덕 표준이란 없다. 선과 악이란 인간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행동을 위한 단순한 꼬리표(labels)일 뿐이다. 그것들은 인간의 취향을 나타내는 것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모해 간다. 우연의 기회와 자연법칙이 오늘의 세계를 만들었다. 지식이라는 것은 인간의 체험으로부터 생성되는 것으로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변함 없는 절대적 지식이란 알 수 없다.
3. 범신론(Pantheism)
범신론은 합성수지와도 같다. 우주는 영이다. 인격적 하나님은 존재하지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보편적이고 비인격적인 영이 모든 물질 안에 현존하다. 인간은 신성을 향하여 진화해 가고 있으며 우주적 영과 연합되어가고 있다. 正邪(right or wrong)와 善惡이란 없다. 인간이 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다할지라도 종국적으로는 우주의 영과 합일을 향하여 진화되어간다. 인간은 자연과 조회되도록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목적은 자연계의 영과 하나가 되게 하여야 한다. 어떻게 선한 삶을 살아가느냐는 것을 측정하는 길은 얼마나 우리가 행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물이 영의 진화를 통하여 연합을 이루는 일을 향하여 매진하고 있다. 어느 것이 참이냐 거짓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주와 합일하게 되자면 지식을 넘어서야 한다. 서로가 충돌하거나 모순된다는 것이란 없다.
유물론과 범신론은 우주의 기원을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런 세계관들은 세상에 선과 악이 현존하는 일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의 명령으로 6일동안세상을 창조하셨다. 이 명령 창조론이 성경의 인간 창조와 세계 창조의 기원이다. 창조 당시 모든 것이 선하였다(‘좋았더라’). 그러나 이 선한 창조는 죄로 더럽혀졌다. 현재의 세상 모습은 본래적인 모습도 아니어서 규범적인 것이 못된다. 에덴은 회복될 것이다.
4.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ism) 대두와 그 문제점
진화적 사고는 하나님의 세계 창조 방식이 아니다. 진화론적 방식을 창조와 결합시킨 유신론적 진화론은 성경에서 탈선된 사고일 뿐이다.
재림신도들은 그 모두가 이 특별창조(명령창조론)를 앞세우고 진화론을 배척하여 왔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일사불란한 자세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교단 내 대학들에서 가르치는 과학자들과 신학자들 가운데는 6일 창조론에 이의를 품고 소위 과학적이라는 증거들을 내 밀면서 유신론적인 진화론적 접근방식을 옹호하는 기류를 보여주고 있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하나님께서 진화의 모델을 사용하였다고 본다. 즉, 하나님께서는 간접적으로 천연계의 불변의 법칙을 통한 진화의 과정을 관장하여 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하나님이 이 과정에 직접적인 개입도 하시었다고 본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을 상징적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성경과 과학을 완전히 다른 구조로 보고 분리시킨다.
유신론적 진화론과 성경의 창조교리와는 배치된다. 유신론적 진화론이라는 용어 그 자체가 상호 모순되는 용어의 결합이다. 생명의 기원은 우연에 토대를 둔 자연적 진화의 소산물이던지, 아니면 초자연적 창조권능의 결실이던지 둘 중의 하나일 뿐이지 그 두 가지를 모두 거친 결과는 아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기원이 간접적인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나타나도록 하셨다면 우리는 인간 구원, 즉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에 대한 확증을 지닐 수 없게 된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진화론이 채택한 '우연' 또는 '무목적성’ 개념을 성경의 창조 신앙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를 두고 두 유형으로 나뉜다. 그 하나는 하나님이 이 우주와 최초의 생명체를 창조하실 때 진화에 따른 최종 열매를 미리 염두에 두시고, '초기조건'을 정교하게 미리 마련하여 두었다고 본다. 즉, 오늘날의 모든 생물체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진화를 해왔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오늘날의 생태계가 조성되었기 때문에 성서적 창조신앙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두 번째 유형은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에 가까운 해석을 하는 바, 양자역학적 함의를 도입하여 진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 자체에 신적 섭리와 행위가 개입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진화의 저변에서 유전적 돌연변이가 '불확정'적인 양자적 사건에 의해 발생하고 있고, 이 불확정성은 하나님에 의해 양자세계에 부여된 본질적인 법칙이므로 하나님께서 천연법칙을 깨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의지대로 진화를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요컨대, '우연'이라는 양자적 자연법칙 안에서 하나님은 얼마든지 진화 과정을 조정하실 수 있으므로 성서적 창조신앙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의 두 유형은 어떤 경우이든지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를 인정하고 있으나, 일단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에 의한 계획과 의지를 인정한다면, 더 이상 무작위적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해 초기의 단세포 형태로부터 지금의 다양한 생물계를 이루었다는 가설적 설명 ―대진화적 설명― 을 수용할 필연성이 없어진다. 우리에게는 수백 만 번의 변이 없이 각 생물을 그 종류대로 즉각적으로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
과연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사랑이신 하나님의 창조의 방법으로 합당한가? 비록 유전적 변이에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하더라도 자연선택이 제 기능을 하려면 결국 수많은 변이 형태의 생물들이 생겨나야만 한다. 그러므로 수많은 변이적 생명체들은 주어진 환경에 가장 적절하게 적응될 후손 ―하나님이 의도하신 생물― 이 등장하기까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라는 지극히 잔인한 메커니즘의 '희생물' 역할을 한 셈이다. 그 수많은 생물들이 정말로 변이체의 희생 과정의 소산물이라면 그러한 것이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을까? 이러한 비평에 대하여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두 가지로 답하고 있다. 그 하나는 '사랑,' '잔인,' '가치' 등의 의미는 인간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차피 지금도 그러한 적자생존이 생태계에 존재하지 않느냐 하는 답변이다. 첫 번째 답변에 대해서는 비록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은 인간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가치 기준과 감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품성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에 답변에 대해서는 분명 지금의 생태계는 아담의 범죄 이후이고, 하나님의 창조는 그 이전이므로 그 둘을 동일시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반박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자연선택 또는 적자생존에 의한 창조라는 개념은 성서적 창조 신앙과 융합되기 어려운 논점이 될 것이다.
성경해석에 대하여 그리고 성경과 과학의 관계에 대하여 유신론적 진화론이 취하는 입장은 창조과학이 취하는 근본적 입장과 정 반대가 된다. 어떤 과학이론이 성경의 구절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일 때 어느 한쪽을 무시하기에 앞서서 성경과 과학을 각각의 올바른 방법론에 의해 평가하고자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계시의 우선적 권위를 살려내서 이해하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선행될 때에 모순처럼 보이던 부분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이러한 노력이 결여되어 있다.
“가장 위대한 정신을 가진 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되지 않으면, 과학과 계시와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그들의 기도(企圖)에서 혼란에 빠진다. 창조주와 그분의 업적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이런 것들이 천연의 법칙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이유로 성경의 역사는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선포된다”(8T 258).
“참 과학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이 전혀 있을 수가 없다. 그 둘은 다 같이 창시자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 둘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면 그것들이 언제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이 판명될 것이다. 천연계에서나 계시에서나 간에 진리는 그 모든 표현에 있어서 그 자체가 조화를 이룬다 ”(8T 258).
인간은 진화론이 말하는 진화된 존재가 아니라 창조된 존재이다. 인간이 피조적 존재라고 하는 명제에는 인간이 은혜의 빚을 지고 있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당위적 존재라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즉, 은혜의 바탕에서 당위가 인간 존재를 선도하고 있다. 당위적 존재는 세계를 향하여 책임적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유물론, 진화론, 범신론적 세계관에는 이런 인간의 자기 정체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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