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 이는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그의 저서 <법철학>에서 남긴 경구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이 저물어야 날개를 편다는 의미는 철학은 앞날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현상이 일어난 뒤에야 그 역사적인 조건을 고찰해 그 뜻을 분명하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철학자는 아니지만 온 나라의 관심의 초점이 된 교황이 시복식 행사를 끝낸 다음이니 날개를 펴 그 의미를 파헤쳐 보고자 펜을 들어본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2014816일 오전 프란치스코 로마가톨릭 교황은 서울시청부터 제단이 설치된 광화문 광장까지 1.2km구간을 흰색 퍼레이드 차량을 타고 신도들과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퍼레이드 도중 잠시 차를 멈춘 뒤 경호원의 손에 안겨 자신에게 다가온 아이들의 머리에 살며시 입을 맞추기도 했다. 교황의 몸짓 하나하나가 화면을 통해 전해질 때마다 시민들은 비바 파파(교황만세)’를 외쳤다. 환한 미소를 보이며 웃던 교황은 124위 시복미사 때에는 엄숙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미사포를 쓴 채 지긋이 교황을 바라보는 신도들도 있었고 일부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광화문광장 시복식(諡福式)100만(?)의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서울뿐 아니라 제주교구까지 공식 초청된 천주교 신자만 17만여 명이 모였다. 동원되는 전세버스 및 승합차는 1660대 내외. 16000여명 참석 예정인 대구대교구가 286대로 가장 많고, 그 뒤를 부산교구(262·1만여명), 광주대교구(217·8000여명)이다고 한다. 이날 새벽 4시부터 시작해 오전 7시까지 입장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대구대교구와 마산교구, 안동·부산교구 등은 전날 밤 10시부터 전세버스를 이용해 이동하였다. 그 외에도 KTX나 개인 차량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 광화문 광경이 다음의 예언적 메시지와 오버랩 되어 나타나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은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는 짐승으로 묘사된 세력이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표범과 비슷한 짐승으로 표상된 교황권을 경배하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두 뿔 가진 짐승은 또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할 것이며, 더욱이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13:11-16) 하라고 명령할 것이다.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는 짐승으로 표상된 세력은 북미 합중국임이 이미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이 예언은 로마교가 그의 최상권에 대한 특별한 인정의 표로 주장하는 일요일 준수를 미국이 강요하게 될 때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만이 교황권에게 이러한 경의를 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때 로마의 지배권을 인정한 모든 나라에 있었던 그의 영향력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예언은 그 세력이 다시 회복될 것을 알려 준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13:3)리라고 한다. 치명적 상처를 받은 타격은 1798년에 발생한 법왕권의 몰락을 가리킨다. 그 일이 있은 후 선지자는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더라고 말한다.”(쟁투, 578)

정의로운 시복식(?)

시복(諡福)이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신앙과 덕행으로 공경할만한 사람들에게 복자(福者)’라는 칭호를 주는 것이다. ‘복자는 성인 전 단계 품계에 들어간다. 시복식의 절차를 거쳐 복자로 인정된 사람 중 로마 가톨릭의 공식 검증을 받아 성인으로 추대되기도 한다.

이번 시복식은 한국 천주교 사상 세 번째로 첫 시복식은 일제강점기인 192579위가 이뤄졌고, 두 번째는 196824위였다. 이들 시복식은 모두 로마 바티칸에서 행해졌다.

이번에 복자(복녀) 명단에 오른 이들이 참수형 등으로 이렇게 공경의 대상이 된 이유가 가 무엇인가? 신앙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조 15(1791) 신해사옥으로 순교한 첫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를 비롯해 124위가 된다. 교황은 시복미사 강론에서 순교자들의 유산은 선의를 지닌 모든 형제자매들이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이룰 수 있다, “서로 화합하여 일하도록 영감(靈感)을 불어 넣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시복은 과연 정의로운가?

전라도 진산(현재의 충남 금산·논산)의 양반가 출신인 윤지충 바오로는 고종사촌 정약용 형제를 통해 처음 신앙을 접했다. 조상 제사 문제는 초기 천주교인들에게 어려운 이슈였다. 그래서 1790년 베이징에 있던 프랑스 출신 구베아 주교에게 물어본 결과 제사는 안 된다는 답변이 왔다. 그러자 윤지충은 이종사촌인 권상연과 함께 집안에 있던 신주들을 불살라 버렸다. 또 이듬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는 조상 제사가 당연시된 유교국가에서 스캔들이 되었다. 곧 체포된 윤지충은 전주감영으로 이송돼 처형됐다. 윤지충을 시작으로 1만명(?) 이상의 순교자들은 대부분 제사 문제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당대 朝鮮의 관습법을 어겨 처단된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번에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던 임금의 집무실인 경복궁의 앞 광장에서 정의로운 자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사형령을 내린 궁궐 앞에서 그 사형령이 잘못된 것이라는 역설적인 암시가 담긴 행사가 치러졌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교황의 권위가 세속 권위를 뒤집어 엎어버린 형국으로 비쳐진다. 교황이 마치 점령군 수장 같은 느낌도 든다. 로마가톨릭교회 영세를 받은 대통령의 지원 아래 정부가 이 모든 행사를 하게 적극적으로 나섰으니 만약 옛 조선왕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교황의 권력 앞에 무릎을 꿇은 카노사의 굴욕을 것이 아닐까?

[카노사의 굴욕 (Gang nach Canossa)10771월경,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교황 그레고리오 7세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의 카노사 성으로 가서 관용을 구한 사건을 말한다. 교회의 성직자 임명권인 서임권을 둘러싸고 분쟁하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와 로마 교황의 대립의 정점에 있었던 사건으로 이후 교회의 권력에 세속 권력이 굴복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지칭 된다.]

이종윤이 편집한 <한국교회와 제사문제>(도서출판 엠마오, 1996)에서 김명혁은 제사에 대한 역사적 이해에서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진술하고 있다.

베이징 사절단이었던 이승훈이 1784년 세례를 받고 조선에 돌아와 전교를 하였다. 이승훈의 신앙 노선은 마태오 리치식 문화포용 전교와는 대립적인 문화와 각을 이룬 도미니칸 선교사들과 프란치스칸 선교사들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이들 선교사들이 조상제사 문제를 두고 교황청에 진정서를 보냈다. 이에 대해 교황청은 1715년과 1742년 두 차례에 걸쳐 교황이 교서를 발표하였다. 특히 1742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는 유교적 조상숭배는 성경의 교훈과 어긋나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로 인해 조상제사를 거절한 중국교회가 박해를 받았다.

이승훈이 천주교로 개종하고 조선에 들어와 전교한 이후 조선천주교회는 1790년 경 베이징 알렉산더 고베아 주교에게 조상 제사에 관한 문의를 하였다. 동 주교는 조상 숭배는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모순되기 때문에 금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조선천주교 신도들이 신주를 불태우며 조상 숭배를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그 유명한 신해박해이 일어났고 1791년 전라도 윤지충과 권상연 등이 참수, 순교를 당하였다. 1801년에는 중국인 신부 주문모도 순교 당하였다, 이후 이 땅에서는 80여 년 동안 만여 명이 순교 당하는 역사로 이어졌다.

그런데 교황의 종전의 지시와는 상반되는 교서가 등장한 것이다. 2차 대전 중 동맹관계인 이탈리아 정부를 꼬드겨 일제가 조상숭배나 신사 참배는 종교적 의식이 아닌 시민적 행사라고 교황청에 압력을 가하였다. 이런 정치적 영향을 받은 피우스 12세 교황은 19391218일 유교에서 조상숭배는 시민의식이라고 선언하였다. 이 교서를 따라 조선 천주교는 전통적인 조상숭배를 허용하였다.

그렇다면 지나간 80년 동안 전국적으로 무참하게 참수된 신자들의 죽음은 어찌 되는가? 천주교의 조상숭배 허용은 1965년 이래 개최된 바티칸 2차 회의에서도 용납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엔 그 당시 죽은 자들을 성인 반열 다음 단계인 복자라고 선언하여 본 받고 공경하는 대상으로 선포한 것이다. 이야말로 로마가톨릭의 교황무류 교리가 근본적으로 뒤흔들리는 사건이 된다. 이번에 거행된 시복식은 로마가톨릭 지도층의 과오를 확인하는 자충수가 되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시복식에서 순교자들의 유산은 선의를 지닌 모든 형제자매들이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이룰 수 있다, “서로 화합하여 일하도록 영감(靈感)을 불어 넣는다고 말했다. 누가 정의로운가? 순교자들은 교황의 권위 있는 가르침을 따르다가 억울하게 죽은 꼴이 된 것 아닌가? 교황이 조상 제사 금지 교서를 철회하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교황의 진솔한 고백이 선행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교황은 한없이 낮추는 교황의 더없이 큰 野心”(조선일보 강천석 칼럼 제목)을 지녔다면, 군중들의 스타가 되기보다는 선대 교황들이 잘 못 가르친 결과 서소문, 절두산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그 많은 신자들이 죽임을 당한 일에 대하여 회개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의 울부짖음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훌륭한 인품에 비하면 조무래기에 불과한 나는 그의 인품에 흠집을 내기보다는 역사적 맥락이라는 큰 그림이 잘 이해가 안 되어 이렇게 써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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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