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n G. White은 Minneapolis 회의에서 신학적 입장을 바꿨는가?
Ellen G. White은 Minneapolis 회의에서 신학적 입장을 바꿨는가?
1888년 미네소타 주 미네아폴리스에서 개최된 대총회에는 “91명의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대표 아닌 신도들도 참석하였다. 회의 장소는 새로 건축된 재림교회 교회당이었다. 동 모임 기간은 10월 17일부터 11월 4일까지 19일 동안이었다. 총회에 앞서 10월 10일부터 10월 16일까지 7 일 동안에는 목회 강좌가 열렸다. 목회 강좌에서 시작된 성경 연구는 총회의 성경 연구 시간에 할당되어 총회 기간까지 연장되는 경우가 있었다.
엘렌 G. 화잇은 목회강좌와 총회 둘 다 참여하였다. 총회 회의 그 자체는 상당히 판에 박힌 과정이었지만 건설적이었다. 지난 회기동안의 각 부서들의 활동 보고들들이 이어졌고 사업 발전 계획의 틀이 마련되고 임원진 선출과 위원회가 구성이 있었다(3기별, 156-157)
1888년 미네아폴리스 대총회 당시의 성경 연구와 토론의 초점에 관하여 노장측은 갈라디아서의 몽학선생(3:24)의 정체를 도덕률이 아닌 의식의 법에 두었고, 소장측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구원의 원리에 두었다. 엘렌 화잇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구원의 원리에 지지를 보냈다. 그것은 교회가 길보아처럼 우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3장의 몽학선생의 정체에 관하여 엘렌 화잇은 버틀러 측이나 웨고너 측 모두가 갈라디아서 3장의 율법에 대하여 모두 과오를 범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엘렌 화잇에게 무엇보다 더 중요한 점은 상당수의 목사들과 평신도들이 등한시 하여 왔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는 의에 관한 진리이었다. 총회에서 논의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본적 진리는 향 후 교회를 살려내는 메시지로 자리매김을 하여감에 따라 교회들이 부흥과 성장을 하여 가는 결과로 이어졌다.
1888년 미네아폴리스 회의와 그 직후 당대 교회 일각에서는 엘렌 화잇이 1888년에 신학적인 패러다임에 급진적인 대전환이 있었다는 비평적 주장들이 제기 되었고 그 파장은 이어져 내려왔다. 특히 혹자는 엘렌 화잇이 1888년 이전까지는 마치 율법에 집착한 반면에, 1888년 이후에는 믿음의 칭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진리로 급진적인 대 변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내가 E. J. 와그너의 견해를 처음으로 들었다는 사실을 내 형제들 앞에 진술했을 때 어떤 이들은 믿지 않았다”(3기별, 172).
“나는 논평과 비평의 대상이 되었으나 우리 형제 중의 아무도 내게 와서 묻거나 설명을 구하지 않았다.”(3기별, 173)
미네아 폴리스에서 전해진 와그너의 기별을 엘렌 화잇이 반복하여 배서하며 지지하였을 때 그에 대한 비판은 컸다. “내가 명백하게 나의 믿음을 진술했을 때 나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그들은 화잇 자매가 변했다고, 즉 화잇 자매가 그의 아들 W. C. 화잇과 A. T. 존스 장로에 의하여 영향을 입었다고 보고하였다”(3기별, 173).
오늘날도 어떤 분들은 이런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화잇이 1888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의 오류의 핵심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사리의 정곡을 올바로 판단한 것일까?
<가려 뽑은 기별(Selected Message)> 제3권 168 쪽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나온다.
“칭의와 그리스도의 의가 제시됨 ― E. J. 와그너 목사에게 율법과 연관하여 그리스도의 의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그의 견해를 제시하며 명백하게 말할 수 있는 특권이 허락되었다. 이것은 새 빛이 아니다. 오히려 셋째 천사의 기별에 마땅한 자리를 차지한 옛 빛이다…. 그 기별의 취지는 무엇인가? 요한은 한 백성을 본다. 그는 말한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요한은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14절)진 인자를 보기 직전에 이 백성을 본다.
예수 믿음은 간과되고 무관심하고 부주의하게 취급되어 왔다. 그것은 요한에게 계시되었을 때의 그 뛰어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해 왔다. 죄인의 유일한 희망으로서의 예수를 믿는 믿음은 행해진 설교에서뿐만 아니라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매우 많은 사람들의 종교적 경험에서도 널리 배제되어 왔다.“
엘렌 화잇은 1888년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메시지를 지난 44년 동안 백성들에게 전하여 온 메시지어서 새 빛이 아니라고 힘주어 진술하고 있다.
“1844년 이후 엘렌 G. 화잇이 제시해 왔던 진리 ― 이 집회에서 나는 율법과 연관된 그리스도의 의의 위대한 주제를 제시함을 통해 가장 고귀한 빛이 성경으로부터 비춰 나왔으며 그것은 죄인의 앞에 구원의 유일한 희망으로서 끊임없이 제시되어야 함을 증언했다. 이것은 내게 새 빛이 아니었다. 이는 내게 지난 44년 동안 보다 높은 권위자로부터 이것이 주어졌기 때문이며 나는 그분의 영의 증언을 통하여 펜과 목소리로 우리 백성에게 이것을 제시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한 증언에 동의한 몇 사람들 외에는 이에 대해 호응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이 위대한 문제에 대하여 말해지고 쓰여진 것이 매우 적다. 어떤 이들의 설교는 그리스도가 없는 가인의 제물과 같다고 묘사해야 옳을 것이다.”
1888년 이전부터 전한 메시지이었다는 증거는 엘렌 G. 화잇의 <믿음과 행함(Faith and Works)>이라는 단행본에도 나와 있다. 동 단행본에는 1881년부터 1902년까지의 강론과 논설문이 나온다. 동 단행본 3장안에 믿음과 행함에 관계된 중요한 진리를 결집시키고 있다. 그 첫 장은 초기부터 1888년까지 엘렌 G. 화잇에 의해 쓰여진 전형적인 진술이 나와 있다. 이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균형 잡힌 제시를 통하여 그의 명백한 입장을 보여 준다. 그 둘째 장은 그 성격이 역사적인데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의 경험과 그 총회 이후 몇 달 동안의 이 경험과 관련된 그의 역할에 대한 회상을 제시한다. 그 셋째 장은 그의 일관성 있는 선언을 보여 주는데 그의 전 봉사를 통한 가르침의 통일성을 드러내 준다. 복음의 정수인 이 중요한 진리를 제시함에 있어서의 그의 일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고자 약간의 진술이 포함되었다.
엘렌 화잇은 1888년 회의 분위기에 팽배한 와그너와 존스에 대한 감성적 인신공격성(ad hominem) 대응과 올바르지 못한 정신과 태도를 두고 다음과 같은 진술을 남기고 있다.
“나는 내가 추구해야 할 최선의 노선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내 방으로 돌아왔다. 갈라디아의 율법에 대한 기도로 그날 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것은 단지 티에 불과했다. “주께서 가라사대”에 맞는 길이 무엇이든 간에 나의 영혼은 아멘, 아멘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형제들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은 예수의 정신과는 너무나 판이했으며 피차간에 행사해야 할 정신과는 너무 반대되었으므로 나의 영혼은 고뇌로 차게 되었다.”(3기별, 175).
엘렌 화잇은 믿음의 칭의와 그리스도의 의에 관한 이론적 논쟁과 옹호하는 등 방식에 수반되는 위험성을 지적하고 진리를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화잇이 버틀러와 스미스의 주장에 강한 반대를 표명한 것은 이러한 이론적 신앙의 위험성 때문이었다. 이러한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하여서 “우리는 우리 앞에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모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 현재적 진리의 생명성은 이러한 자세에서 지속되고 강화될 것이다. 화잇이 문제의 풀이를 양자 중 택일이 아닌 중도적 포용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원천적 시각에서 실천적으로 접근하였다는 점은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율법과 복음의 관계 확실하게 천명하면서 객관적 칭의라는 구원의 문으로부터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의 내주에 의한 체험적 칭의와 성화를 지향케 하는 그리스도의 의를 강조하였다. 엘렌 화잇은 1888년 회의에서 부각된 이슈에 관하여 과오를 범하지 않았고 이미 오래 전부터 주어진 빛을 지지하며 강화시켜 교회를 부흥시켜 가는데 역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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