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신(The Spirit of Prophecy)>의 의미

 

I. ‘예수의 증거대언의 영의미

요한계시록에서 예언의 신이란 표현은 다음 구절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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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12:17).

 

마지막 때 충성스러운 남은 백성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백성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계명의 정체는 십계명이어서 문제될 것이 없다. “예수의 증거는 다음 본문에 나오는 그 짝이 되는 대언의 영과 연계되어 있다..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19:10).

 

시도 요한이 해석하는 천사에게 엎드려 경배하려고 하자, 천사가 즉각적으로 하나님만 경배하라고 하며 예수의 증거대언의 영이라고 밝힌다. 개정개역판에서는 12:17에서 예수의 증거라고 하고 19:10에서는 예수의 증언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원문(hē marturia Iēsou)이 같아 같은 뜻이지만 증거증언으로 각기 다르게 번역하여 통일성이 없다. NKJV 12:17에서는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라고 하여 그리스도가 추가되어 있다. 그리고 19:10에서는 “the testimony of Jesus is the spirit of prophecy”로 번역하고 있다. 19:10의 후단 헬라어 본문은  μαρτυρία ησοῦ ἐστιν τπνεμα τς προφητείας.(hē marturia Iēsou  ēstin to pneuȗma tēs prophēteias)이다.

<예수의 증거><예언의 신>의 의미는 무엇일까?

 

II. 예수의 증거(hē marturia Iēsou)

예수의 증거(hē marturia Iēsou) 어구가 주격적 소유격인지 아니면 목적격 소유격인지 선행적으로 규명되어야 한다.

주격적 소유격으로 본다면, 예수께서 주신 증거(증언) 또는 예수님에 의하여 전해진 증거의 뜻이 된다(NIV). 그러나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본다면 예수님에 관한 증거가 된다(RSV, Today’s International Version). 후자의 번역에 따르면 문맥상 남은 백성 모두가 예언의 은사를 받은 예언자가 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요한계시록에는 예수의 증거(hē marturia Iēsou)” 어구가 6회 나온다(1:2, 9; 12:17; 19:10; 20:4). 1:920:4에 나오는 예수의 증거(hē marturia Iēsou)” 어구는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해석, 즉 예수에 관한 증거를 하는 요한과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로 보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1:2; 12:17; 19:10에나오는 예수의 증거(hē marturia Iēsou)” 어구는 주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하여야 문맥에 조화된다. 그 이유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요한복음과 요한1서에 나오는 여러 구절들에서 증거(marturia)가 소유격 명사나 대명사로 결합되어 있는 구문에서 주격적 사상이 표출되어 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요일 5:9). 이 본문에서 앞의 사람의 증거하나님의 증거는 주격적 소유격이고, 후반부에 나오는 그 아들에 관하여(peri) 증거하신 것이니라은 목적격적 의미를 담고 있다( 참고, 1:7,8,15; 2:25; 5:31, 32, 36, 37, 39; 8:14; 요일 5:9-10).

2. 12:1719:10에서 마지막 성도들을 예수의 증거를 가진 백성들이라는 구절 자체가 주격적 소유격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동사 가지고 있다(echō)“ 가 소유격적 명사의 주격 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 백성들은 예수께서 주신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예수의 증거는 마지막 때 성도들이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아닌 예수께서 하신 증거로 보아야 한다.

 

III. “예언의 신()”(to pneuma tēs prophēteias)

먼저 예언의 신의 의미 규명이 필요하고, 다음으로 왜 예수의 증거예언의 신과 동일한지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신약성경 어디에도 계 19:10 이외 그 어디에도 예언의 신이라는 어구가 나오지 않는다. 요한 자신도 이 어구를 설명하고 있지 않아 필시 제1세기 요한계시록 독자는 이 어구에 익숙하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1세기 자료들에는 이 예언의 신어구 표현이 자주 나온다. 유대 백과사전 제2성전시대 말기에 성령에 관한 의미로 예언의 신이라는 칭호가 자주 나온다. <The Jewish Encyclopedia, ed. Isidore Singer (New York: Funk and Wagnalls, 1907), 6:449a.>. 이 점과 더불어 구약성경의 아람어 번역인 Targum에도 이 예언의 신표현이 자주 나온다(41:38-the spirit of prophecy from before the Lord; 35:31; 11:25-29; 27:18; 대하 15:11; 61:1; 3:7-8 ). 이런 여러 경우들은 하나님 백성들에게 일반적으로 임하는 성령의 임재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외에 특별하게 구별된 사람들인 예언자들에게 임하는 성령의 임재를 두고 나온 표현들인 것이다. 요컨대, 탈굼은 예언의 신이 어떤 때에 성령을 지층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성령께서 주신 예언의 선물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 하였다. 그래서 사도 요한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이러한 의미로 예언의 신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어도 하등 문제가 일어날 수 없었다.

이런 사상적 흐름에서 계 22:8, 9에 나오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가 가진 예수의 증거19:10에서 예언의 신으로 보완 언급된 것이다. Hermann Strathmann은 이런 맥락관계를 지지하고 있다.<“martu, j etc.,” TDNT, ed. G. Kittel, 4:501.> 이 것은 사도 요한의 계 22:6에서의 언급에서 확인되고 있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22:6).

3:7의 메시지에 비추어 보아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예수의 증거는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시어서 하신 역사적 증거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부활하신 이후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1:1)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1:2)를 위한 예언적 선물을 통한 증거가 된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예언자의 이상을 통하여 주신 말씀이다. 예언자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께의 증거곧 예수께서 교회에 예언의 신이라는 방편을 통하여 주신 그리스도의 증거가 된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이리하여 예수의 증거는 예언의 선물을 통하여 자기의 교회에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계시가 된다.

구약성경의 아람어 역인

 

IV. 재림교회와 예언의 신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수의 증거는 신도들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증거이다. 요한계시록 당대에 사도 요한 외에 형제 선지자들이 있었다. 성령께서는 이들에게 예언적 메시지를 주었다. 신자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예언자의 메시지, 즉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의 증거는 예언적 메시지가 그 실체가 된다.

19:10예언의 신은 신약성경 경전 이후 특별히 선택된 예언자를 통하여 마지막 때 남은 교회에 주신 메시지가 된다. 19:10은 지상 역사의 마지막 때 주님의 파루시아 직전에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과 지도를 보증하여 그 징표로 예언적 선물을 주셨다.

재림신도들은 계 12:17에 나오는 예수의 증거EGW(1827-1915)의 생애와 사역에서 19:10의 예언의 선물을 통하여 종말론적 충만한 현현이 이루지는 체험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시켜 홍해를 가르고 이끌어낸 언약 백성들에게 선지자를 통하여 인도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선지자로 저를 보호하셨거늘”(12:13. 마찬 가지지로 대실망의 쓰라림의 여파 속에서 울부짖는 영아 같았던 미약한 재림신도들에게 선지자의 예언의 은사를 적용시켜 인도하신 것이다.

어떤 분은 화잇의 글을 "예언의 신"으로 부르는 것은 비논리적이고 불경스럽기까지 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이 "예언의 신"이라는 표현은 성령을 두고 한 표현이므로 영감된 저술에 하나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 면만 부각시키고 예언의 신’(19:10) 이라는 표현이 다의적으로 사용된 면을 무시한 시각이다.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언의 신칭호 표현은 예언적 계시를 전달, 또는 기록하게 하는 성령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예언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하시는 증거, 곧 예언자의 메시지를 두고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언자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경우 성령께서 그에게 예언하도록 하므로 하나님을 대표(또는 대신)하는 입장에서 전한 메시지가 예수께서 하신 증거, 곧 예언의 신의 말씀인 것이다. 재림교회는 이런 시각에서 예언의 신을 성령의 선물 중 하나인 예언의 은사(선물)(고전12:14)]에 적용시켜 광의적 의미에서 엘렌 화잇의 문학적 저술들을 총칭하는 경우로도 사용한다. “예언의 신칭호가 엘렌 화잇의 저술 중 대쟁투 총서의 전신인 예언의 신이라는 표제가 붙은 4권의 책(1870-1884)을 가리키는 협의적 경우도 있다.

 

참고 도서: Ranko Stefanovic, “The ‘Spirit of Prophecy’ in the Revelation of John,” The Gift of Prophecy in Scripture and History, 186-197.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