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비결을 가진 자

단상 : 2011. 10. 23. 20:17

서양철학사를 공부할 때 플라톤 이후의 철학은 모두 타락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이는 플라톤 이후 철학의 흐름에서 새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의미가 함축된 표현으로 보인다. 플라톤 이후의 철학이란 결국 플라톤까지의 철학을 반복 내지 짜깁기하거나 그 어느 하나의 사상적 골조에 페인팅을 새로 하는 정도라고나 할까?

 요즘 그리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형이하학적인 이슈를 내걸고 반정부시위를 하는 양상이 고대 그들의 조상들이 추구하였던 고매한 형이상학적 열정과 매우 대조적인 모습으로 문 듯 다가왔다. 악법도 법이라고 하면서 독배를 태연스럽게 들었던 소크라테스, 철인정치 사상을 펼친 플라톤, 학도들과 산책하면서(페리파테인) 생각하고 관찰하며 논의한 페리파토스(산책길)에서 유래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 등등 찬란한 유산을 내 동댕이친 듯 한 거리의 소란스러움이것이 오늘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의 실상이다.

  물질적으로 가난하게 된다고 하여도 다 불행한 것이 아니다.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된다고 하여도 행복이 보증수표로 오는 것이 아니다. 많이 가졌다고 하여서 다 부자 되는 것이 아니다. 지나간 역사의 페이지를 열어보면 가난한 시절이 많았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시를 읊었고, 가무를 즐겼으며, 행복의 보금자리를 꾸몄다.

  부자에는 물질적인 부자도 있고 도덕적, 영적인 부자도 있다. 물질적으로는 부자이지만 정신적, 영적인 삶에서는 형편없이 가난한 경우가 많다. 돈이 많아지면 유혹도 많아진다. 그리고 대부분이 그 유혹에 넘어간다. 부정직하게 번 돈은 정신적인 공황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물질적으로 풍부하나 윤리적으로 가난하면 그는 비참한 가난뱅이에 불과하다. 돈은 있지만 베풀지 못하는 삶은 가난한자이다. 내가 가졌다고 하여 모두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노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 성경이 부자 되기에 힘쓰지 말라(23:4),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23:5)란 메시지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윤리적, 영적 부자는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고결한 품행을 유지하면서 사랑을 풍부하게 나누어주는 사람이다. 진정한 부자는 이런 사람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우리 역사를 조금만 거슬려 올라가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길에 살았던 선비들이 많았다.

  보화와 같은 복음을 발견하고 진주 같은 그리스도를 자기 안에 모신 신앙인은 전도자 바울의 다음 고백에 동조할 것이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1-13).

아, 이런 믿음의 비결을 배우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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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