母情萬里 ‧ 父情千里-어버이 날을 맞으며
母情萬里 ‧ 父情千里
동물 세계에서 새끼를 돌보는 방식은 다양하다. 무정한 부모도 있고 모정만리(母情萬里) 또는 부정천리(父情千里) 동물들도 있다. 이 단어는 자식에 대한 어미나 애비의 사랑의 은혜가 갚을 길 없이 아득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부정(父情)이 천리(千里)라면, 모정(母情)은 만리(萬里)라 한 말이 있다. 그러나 부정과 모정이 어찌 차이가 있을까. 차이가 있다고 본다. 자식을 버린 애비도 있고 어미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젖을 수유하는 모정이 부정 보다 더 크다. 부모를 버린 자식들도 점점 많아 간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그 차이가 다양하다. 여기에서는 몇 사례만 소개한다.
새끼에 무정한 장수바다 거북이
장수바다거북이는 산란하고자 높은 파도를 타고 해변으로 향한다. 그리고 해변 모래사장을 기어간다. 그리고 구멍을 둥지 삼아 그 곳에 산란하다. 산란은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리며, 주로 밤에 이루어진다. 발을 이용해 알집을 만들며, 알의 크기는 당구공 정도이다. 낳은 알은 바로 단단하지 않으며, 따라서 알들이 부딪힐 때 깨지지 않게 한다. 60에서 90개의 유정란을 낳는다. 산란 후 뒷발을 이용해 알집을 덮고 바다로 향한다. 이 때 거북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대양으로 향한다.
큰 알들을 그토록 많이 내 놓는 것이 놀랍다. 장수바다거북이는 몸길이 150~180cm로 현존하는 거북 중에서 가장 큰 종이며, 웨일스의 북대서양 해안에서 발견된 표본은 약 3m에 몸무게 900kg까지 자란 것을 보면 이런 정도 크기의 거북이라서 큰 알들 산란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최대 1,280m까지 잠수할 수 있으며, 시속 35.3 km/h까지 헤엄칠 수 있다.
부화되어 나온 새끼들은 제 어미들을 본적도 없다. 장수바다 거북이 어미는 무정하다. 새끼들은 세상에 나온 첫날부터 스스로 자기를 돌보며 살아가야 한다. 이들이 바다에 이르기까지 굶주린 약탈꾼들의 먹이 감이 되기 마련이다. 바다 속에서도 이들은 고아처럼 고달픈 삶을 이어가야 한다. 세상엔 외톨이로 대양을 헤매면서 고달프게 살아가는 인간들이 많다.
모성애가 강한 악어
거북이는 모성애가 강한 악어와 대조적이다. 생김새가 호감을 못주는 동물이지만, 새끼 사랑은 A급이다. 악어는 천적으로부터 알을 보호하며, 새끼가 태어난 뒤에는 둥지에서 부화되어 나온 새끼들을 자기 턱 안에 넣고 물로 옮겨주고 수영을 배울 때까지 함께 한다. 악어 새끼들에게 있어서 위험이 널려 있는 치열한 생존 경쟁의 지대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어미의 입 안일 것이다.
父情 千里 동사리
농어목 동사리 민물고기는부성애가 강한 민물고기이다. 산란기는 4~6월로 암컷 동사리는 돌 밑에다가 알을 낳는다. 그리고 수컷은 알들을 지키면서 지느러미로 부채질을 하면서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 준다. 그리고 새끼들이 부화하면 수컷은 몸이 쇠약해진다.
父情 萬里 황제펭귄
황제펭귄은 남극의 혹한과 정면 대결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겨울에 알을 낳은 암컷 펭귄들은 먹이를 찾아 다시 바다로 나가고, 수컷이 무리를 이뤄서 알을 품는다.
남극의 기온은 영하 50도를 넘나든다. 황제펭귄들은 서로 원모양으로 무리를 짓고 바람을 버티면서 조금씩 안으로 줄을 바꿔 간다. 부화할 때에는 먹이가 없어서 눈만 먹으면서 버티며, 새끼가 태어나면 위벽 속에 보관해둔 걸 토해 낸다. 이런 걸 펭귄밀크라고 한다.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알을 품어도 부화하는 확률은 60%밖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초보 아빠 펭귄이 알을 놓치기 때문이다. 놓쳐버린 알은 영하 50도의 추위에 얼어 죽는다.
황제 펭귄은 먹이를 찾아 365m 깊이까지 잠수한다. 이는 핵장수함의 심해 잠수보다 더 깊은 실력이다. 조류가 표면보다 40배나 더 수압을 받는 깊이까지 심해 잠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신비한 일이다. 펭귄은 고양이 시력보다 뛰어나 어둔 심해에서도 작은 구명이나 동전 사이즈 물체를 분간해 낼 수 있다. 이들은 인간이 육상에서 달리는 것보다 더 빠르게 수영을 할 수 있다. 새끼를 줄 먹이를 찾아 1,609km나 여행한다. 새끼 양육에 대한 집착이 강한 황제펭귄은 가히 父情 萬里라고 해도 될 성싶다.
오랑우탄과 침팬지 모정
오랑우탄은 모성애가 무척 강한 동물로 새끼가 죽었어도 한동안 안고 다닐 정도다. 침팬지는 사람과 가까운 동물 중 하나로 암컷이 새끼 출산 후 양육까지 한다. 수컷이 매우 공격적이기 때문에 암컷은 천적들 외에도 수컷들로 부터 새끼를 지켜야 한다. 오랑우탄처럼 침팬지는 모성애가 강한 동물로 새끼가 죽어서 악취가 나는 데도 품안에서 소중히 안고 다닌 사례도 발견되었다.
이와 반면에 고릴라는 부성애가 강한 편으로 평가 되며, 자연과 동물원에서 자신의 아이와 잘 놀아 준다. 뿐만 아니라 어미에게 버림받은 새끼 고릴라들을 혼자 키워 나간다.
부모 공동 양육 생쥐캘리포니아 생쥐(California Mouse)
이들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히는 포유류이다. 수컷과 암컷은 서로 전적으로 힘을 모아 둥지를 만들고 새끼들을 먹이고 따뜻하게 만드는 협업을 한다.
두꺼비 춤
중고 시절 집 뒤뜰에 잡초가 무성한데다가 윗 주조장 하수가 흘러가는으슥한 도랑이 있다. 몇 해 동안 매 여름 마다 으슥한 근처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큰 구렁이가 나오고 얼마 후에는 그 구렁이가 두꺼비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다. 구렁이가 두꺼비를 삼키는 데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두꺼비를 삼킨 구렁이는 배불뚝이 된다. 훗날 대학 다니며 어느 잡지에 이런 장면을 묘사한 글이 나와 있다. 두꺼비가 산란할 좋은 후보지로 구렁이 뱃속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징그럽고 보기도 흉측한 두꺼비를 보고 구렁이조차도 처음에는 피한다고 한다. 그래도 두꺼비 어미는 구렁이 앞에 다가가 날 삼키라는 듯이 유인하는 자극을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두꺼비가 뱀 앞에서 자꾸 신경을 건드리는 모습을 두꺼비 춤이라고 명명했다. 구렁이의 화를 돋워 잡아먹도록 유인하는 짓을 죽음의 춤이라고 해설한 것이다. 이윽고 두꺼비의 독이 구렁이의 뱃속에 퍼지게 되고 두꺼비도 뱀도 모두 죽는다. 두꺼비 몸속에서 나온 새끼들은 어미가 제물로 바친 몸뚱이와 구렁이 몸에서 양분을 빨아 먹고 나온다. 이 속설은 검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의 숭고한 두꺼비 모정에 대한 해석은 그럴듯한 풀이이다.
동물이나 조류들 중에 자기 새끼들을 잘 보살피고 있는 모정만리와 부정천리 사례들은 이외에도 많다. 자기희생의 법칙은 자기 보존의 법칙이다.
모유와 뇌의 발전
중일전쟁이 발발한 후 일제 강점기의 국민정신 총동원 체제 아래에서 태어난 나는 어머니 젖이 부족해 울부짖으며 헐떡거릴 때 할머니가 고모 젖꼭지를 내 입에 넣어주어 간신히 생존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당신의 입에 음식을 넣어 꼭꼭 저작하여 젖 같이 만들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를 잊지 못하며 고모님의 은혜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팍팍한 삶을 이어가든 부모님의 극진한 희생적 사랑의 시여 과정을 거쳐 나는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운피의 포유동물들의 모정은 강하다. 젖을 생성 분비하는 샘에서 나온 영양분을 먹고 자란 새끼들은 잘 자란다. 모유 수유가 뇌 해마에 새 시냅스(뇌 신경세포의 자극 전달부)가 생성 발전 촉진시킨다는 조사 연구가 있다. 강아지 모유수유 결과 연구실험에서 밝혀졌듯이, 모유수유 정도의 차이는 공간지각의 학습과 기억력 조장 및 강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모유수유가 더 많을수록 공간지각 학습 및 기억력 정도가 훨씬 높을 뿐만 아니라, 나가서는 뇌세포의 장수를 북돋는 효과도 있다. 모유 수유는 아이의 뇌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와 관련하여 모유가 분유보다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이롭다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졌다. 부정(父情)이 천리(千里)라면, 모유 수유하는 모정(母情)은 만리(萬里)라고 할 수 있다.
어미가 새끼를 먹여 키워놓고 늙으면 그 새끼가 먹이를 날라 어미를 먹여 살린다는 까마귀의 효를 일컫는 말이 있다. 이것을 두고 고사성어에서 反哺之孝(반포지효)라고 한다. 까마귀는 정성을 다해 어미를 보살피다가 어미가 죽으면 매년 그 자리에 찾아와서 슬피 운다고 전해 온다. 이처럼 반포지효는 어미를 먹여 살리는 까마귀의 효성이라는 뜻으로 부모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도를 일컫는 고사성어이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이 말씀 안에는 하나님이 자기 자녀에 대한 거룩한 사랑이 담겨 있다.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젖먹이 자식을 잊는 것은 없는 사실을 일부러 가정한 것이 아니다. 인륜이 땅에 떨어지는 오늘날의 세태에서도 가끔 볼 수 있거니와, 당시 이방 부모들 가운데는 형편상 그의 어린 자녀를 버려서 죽어가게 하는 자들이 있었다.
아이를 낳은 후 기르는 일에 쏟은 모정과 부정은 더욱 중요하다. 마리아는 이 일에 있어서 견본이 된다.
“예수의 어머니는 예수께서 능력을 발휘하시는 것을 매우 진지하게 주목하였으며 그의 품성에 나타난 완전의 표적을 보게 되었다. 그는 기쁨으로 명랑하고 감수성이 많은 그 아이의 마음을 격려하기를 힘썼다. 그녀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만을 그의 아버지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 아이를 양육하는 일에 하늘 천사들과 협력하기 위한 지혜를 받았다”(소망,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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