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서뷰 모임을 되새겨 보며
글래시어뷰 모임을 되새겨 보며
재림교회의 현대사 중 중요 사건중 하나는 1980년 8월 10-15일 사이에 콜로라도 주 덴버 북서쪽 로키 마운틴 기슭에 있는 글래시어뷰(Glacier View) 캠프에서 열린 <성소리뷰위원회(Sanctuary Review Committee) 모임일 것이다. 이 회합에는 115명(교단 최고 급 행정지도부 인사들, 성서학자들, 편집자 등)이 참여하였다.
이 모임의 주 목적은 재림교회가 가르쳐 온 것과 다른 내용을 가르쳐 온 포드(Desmond Ford)에게 그 주장 내용을 소명하도록 6개월의 기간을 주었고, 그 결과 그가 제출한 소명 연구자료(991쪽 분량)인 “다니엘 8:14, 대속죄일, 및 조사심판(Dan 8:14, the Day of Atonement, and the Investigative Judgment)"을 검토하는 일이었다. 방대한 분량이었으므로 참석 인사들을 7개의 분과별로 나누어 각기 배정된 분량을 검토하고 장차 본격적 연구 검토를 위환 기초 작업 문건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이 작업 문서는 포드의 주장을 축소시켜 열 가지로 요약하고 포드 박사에게 본인의 사상을 바르게 요약하였는지도 확인까지 받았다. 이것을 두고 코트렐은 마치 회의에서 나오지 않는 것처럼 부정적 시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회의 전모를 코트렐 (Raymond Forrest Cottrell (1911-2003)이 Spectrum지 1980년 11월호에 ‘성소 리뷰 위원회와 그 새로운 합의(The Sanctuary Review Committee and its New Consensus)“라는 제목으로 기고하였다. 코트렐은 이미 은퇴한 분이었다. 그는 재림교신학자, 선교사, 교수, 저술가, 편집자로 활동한 인사이었다. 그는 재림교회가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역사주의(historicalism) 성서 예언 해석 방법을 배척, 다니엘 해석에서 저자 당대 역사적 환경으로부터 본문의 진의를 탐색해 내는 이른바 역사적 방법(historical method)을 사용, 본문의 뜻을 저자의 시각으로 보고 해석하는 이른바 내재적 접근 방법을 고수, 2300주야도 예언자 당대에 일어난 일로 해석하였다. 또한 그는 성서 시대를 벗어난 역사주의 해석은 무리한 해석이며, 다니엘서의 예언은 조건적 예언, 조사심판 교리 해석에 있어서 단 8:14이 속죄일 원형 또는 1844년과는 아무 연관성이 없다고 한 사상을 견지한 분이었다. 그의 이런 해석 방법은 예언해석에서의 역사주의 해석을 벗어난 오로지 예언자 당대에 일어난 문제로 보는 시각을 취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후의 예언자가 전의 예언에 기초하여 더 발전시키는 연관성을 무시한 폐쇄적 시각에 불과하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은 역사주의적-매시아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 일어날 사건들이 평행 반복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코트렐은 은퇴 후 Adventist Today 지를 창간하였으며, Spectrum지의 편집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런 잡지들은 재림교회의 공식적인 간행물이 아닌 사전(私的)인 출판물에 불과한 것들이다. 이런 출판물을 재림교회의 공식적 간행물로 선전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페이크 뉴스 급에 속한다. 코트렐은 글래시어뷰의 모임 전모를 소개하는 글에는 자기의 해석 방법을 중심으로 하는 채록이 잘 배어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그는 포드에 동조한 어떤 학자들의 발언에 방점을 찍는 식의 채록을 통하여 문제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당시 아말렉 족속이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하듯 한 그런 잡지들의 글들이 재림교회에 혼란을 일으켜 온 것을 교단은 여러 매체를 통하여 경계하였던 적도 있었다. 코트렐의 글래시어뷰 회의 발언 채록을 읽을 때는 이런 한계를 의식해야 할 것이다.
성소 재평가 위원회에서 다룬 작업문서 내용을 스펙트럼 지 글 출현 이전인 1980년 10월호 Ministry지에 게재된 글래시어뷰 회의 전모를 다루고 있는 정밀한 연구를 거쳐 나온 “데스먼드 포드 문건에 관한 성명서(Statement on Desmond Ford Document)"를(Ministry 1980년 10월호 pp. 20-25)에서 읽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글래시어뷰의 모임에 관한 재림교회의 공식적인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동 성명서에서는 포드의 방대한 연구 자료에 나오는 상당한 빈도의 원래 문맥에서 빗나가거나 무분별한 것들이 인용들, 히 9:23의 적용을 부활 승천하여 곧장 지성소로 진입하였다는 시각의 문제성, ”휘장 안으로“의 진의, 연-일 원칙의 타당성, 예언의 다중적용 해석의 문제성, 단 8:14의 ‘니츠닥(נִצְדַּק)의 의미, 단 7장, 8장, 및 9장의 상호연관성,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엘렌 화잇의 이해 방향, 성도가 심판의 대상 인지 여부를 다루고 있다. 이런 이슈들은 향후 DARCOM 시리즈에서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우리의 힐난자는 이런 후속 연구를 섭렵한 후 ’다시로 가는 배‘를 타고 있느냐고 힐난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의 교리가 형성되는 일에 몇 백 년의 논의가 지속된 경우도 있다. 삼위일체 교리 등 상당한 교리들은 성경을 정교하게 연구한 결과들이어서 단답식으로 풀리는 주제가 아니다. 귀납추리에 따라 도출되어야 할 주제에 단답을 요구하는 것은 함정을 파 놓고 몰아넣으려는 의도로도 비쳐진다. 질문자가 제시한 성경절들에 대한 이해가 같은 방향이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지난 2000년의 그리스도교 교리사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조사심판 교리는 다른 여러 주제들과 서로 엉켜진 복합적 특성을 지닌 주제가 된다. 포드 자신이 1,000쪽에 가까운 문건에서 그토록 많은 진술을 하였다는 것 자체와 그가 제시한 20여개의 질문 그 자체가 이런 복합성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글래시어뷰 모임 이후 주요 논의 주제들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 물꼬가 봇물처럼 터졌는데, 그것을 도외시하면서 단답을 요구하며 다시스 운운하는 것은 신학적 이해의 한계성을 스스로 들어내는 것에 불과하다.
호주 어느 목사가 회의에 한 발언을 두고 마치 로마가톨릭교회가 종교개혁자들에게 강압하듯이 재림교회가 포드에게 대한 것처럼 비쳐지는 표현은 빗나간 성토에 불과하다. 어느 학자가 자기 성서 이해 시각을 양심이란 말로 포장 고집하는 것을 두고, 재림교회가 성서적 역사주의적 연구에 회귀할 것을 촉구한 일을 강압으로 보면 안 된다. 근본 문제는 성서해석의 원칙을 두고 전개된 논의 중에 재림교회의 성경 해석 원칙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권고라는 점에 있었다. 연구자는 당시 대총회장이 포드 박사에게 호소한 채록 대목과 그 전말을 Ministry지 1980년 10월호 서두에 나오는 "A Letter from the President(대총회장의 서한)"을 읽어야 할 것이다.
재림교회가 얼마나 신사적으로 포드에게 대하였는지는 코트렐 채록에도 나오고, Ministry 지 1980 10월호 20쪽에도 나온다. 동 글래서뷰 모임에 참석한 Leslie Hardinge 박사는 수요일 오후 전체 총회에서 "저는 우리의 메시지가 참되다는 증거를 성경으로 증거를 찾을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접근 방식을 적절하게 설명하자, 온 회중의 '아멘‘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나는 1980년 그래서뷰 모임에 참석하고 오신 하딩 박사의 강의를 통하여 성서적 접근방법을 배우는 기회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하고 있다. 하딩 박사께서는 재림교회가 자기(포드 박사)에게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五 里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十 里를 同行하라“(마 5:42) 예수님 말씀처럼 자기를 대접해 준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고백하였다는 말을 전했다. 글래시어뷰 모임에서 윌리엄 쉐이 박사의 명쾌한 다니엘서 예언 상의 연일 원칙 논증은 포드가 배워야 할 새로운 지평도 열었다.
근래 박 00 전직 목회자가 유튜브로 유포한 “다시스로 가는 배"를 발간하게 된 배경으로 ”재림성도님들에게 호소합니다”를 교회 신자로부터 접하였다. 동 영상에서 전체적으로 구도자로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몸부림을 솔직하게 표출하고 있지만, 앞에서 진술한 것처럼 이미 제시된 대답을 보지 못한 자기 한계를 먼저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그는 “성경 하나만 찾으면 답이 다 나오는데”라고 하며 조사심판 이슈는 성경에 한 줄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폄하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재림교회가 이중구원을 펼치고 십자가의 구원을 다 믿지 않는다는 식으로 단정적 표현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개신교 신학자들도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물(victim)로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것과 대제사장(priest)으로 중보하시는 일을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2대 영역으로 보는 그 내용을 펼쳐 가고자 애쓰고 있는 점을 간과한 소치에 불과하다. 재림교회 학자들은 개신교 학자들이 인정한 천상의 중보 사역을 다니엘 예언과 연계시켜 몇 발자국 더 앞서 나가고 있는 광의적 속죄관을 지향하고 있다. 그 광의적 의미의 속죄 개념을 축소시켜 십자가로만 이해하고 하늘성소에서 중보사역을 통한 그 적용, 혜택을 배제하는 것은 오히려 십자가의 속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부추기는 것이 될 것이다.
재림교회는 종교개혁의 구호 ‘쏠라 스크립투라’ 원리에 입각, 교리의 성서적 근거를 밝히는 일에 심혈을 쏟아 왔는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다시스 행 배에 승선한 요나에 재림교회를 빗댄 것은 바람직한 주장이나 책명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분히 부정적으로 보도록 각인시키는 선동적인 구호를 표제로 내건 저의가 무엇인지 의아스러울 뿐이다. 국수주의 내지 종족주의자 요나는 세계 선교의 거룩한 뜻을 저버렸다. 반면에 재림교회는 세계를 교구로 삼고 그 어떤 교단이나 교파보다 더욱 선교적 교단인데 이에 맞지 않는 주관적, 편파적 표현으로 폄하하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이다. 누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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