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탄생과 그 의미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그리스도 탄생 기사

신약성서 <마태복음><누가복음>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기록이 나오지만, 그 탄생 날짜에 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마태는 왕가 계보인 요셉의 눈을 통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메시야-왕이라는 구약 예언의 성취라는 역사철학 관점을 비치고 있다. 누가는 구속자의 탄생 기사에서 하늘과 땅의 기쁨을 찬양과 감사로 진술하고 있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아예 그리스도의 탄생 사건을 언급조차도 하지 않는다. 특히 요한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을 소개하므로 그리스도의 무시간적 기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두 복음서와 바울 서한에 결여된 탄생 기사 때문에 현대 비평가들은 동정녀 탄생을 비판한다. 침묵을 부정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논리적 비약에 불과하다. 바울은 빌 2;5-8; 1:16; 1:1-9에서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225일이 탄생일인가?

그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은 여러 세기가 지나서 행해진 것으로 보이며 축제의식은 4세기 후반에야 교회 내에서 일반화되었다. 현재 기념일 지켜지는 그리스도의 탄생 날짜는 교파에 따라 다르다. 서방교회(로마 가톨릭, 성공회, 개신교)에서는 매년 1225일을, 동방교회에 속하는 Armenian Apostolic Church16일을, 러시아 정교회를 포함한 동방정교회에서는 율리우스력의 1225일보다 13일 늦은 17일을 크리스마스로 지킨다. 그 외에도 321(춘분), 418, 529, 1225일 등 다양한 날짜 추론들이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419일을 탄생일 보았다. 로마 교회(서방교회)1225일을 성탄절로 지키게 된 것은 221Sextus Julius Africanus 주장으로부터 기원된 것으로 보이며, 354년경부터는 더 확산되었으며, 조금 뒤인 379년부터 다른 지역 그리스교회들이 이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교 축제일의 변환

1225일은 동지가 지난 다음으로 태양이 소생하는 날이라고 하는 민간 농신제 전승과 결탁시켜 기념일이 되었다. 로마와 그리스에서 1225일은 태양신 예배인 미트라 종교에서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 축일이 바로 이 날이었다. 미트라는 본래 페르시아인의 신으로서 태양과 동일시된 인도·유럽 민족의 옛 신성(神性)이었다. 역사적으로 전개되어 온 태양신 경배가 황제 숭배와 결합되었고, 유럽 각 나라에서 농경신 등 이교 신을 경배한 의식을 흡수하여 크리스마스로 발전되어 왔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농경력(農耕曆)상의 성대한 제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신을 혼합시켜 크리스마스로 변환시킨 것이다. , 그리스도교회에서는 이런 이교 관행을 재해석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의의 태양(the Sun of Righteousness)이 되므로(4:2) 태양신 (Sol Invictus) 대신에 그리스도로 대체시켜 이 날을 경축하는 방향으로 나간 것이다.

 

크리스마스 축제 행사에 관한 화잇의 메시지

건전한 그리스도인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행해지는 많은 이교적 관행들을 피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탄생 경축이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화잇 여사는 다음과 같은 권면을 하고 있다.

 

“1225일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켜지는 까닭에, 또 자녀들은 이 날이 참으로 즐겁고 기쁜 날이라는 것을 교훈과 모본으로 가르침을 받아 왔기 때문에 이 기간을 아무런 관심도 나타내지 않고 지나쳐 버리기란 매우 어려운 일임을 그대도 알게 될 것이다. 이 날을 매우 유익한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할 수 있다”(AH 478).

 

만일 크리스마스 날에 각 교회가 예배하는 집을 위하여 크고 작은 헌물들을 걸어 놓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워 놓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워도 좋을까요? 이것은 세상을 닮는 일이 아닐까요?” 라고 묻는 편지들이 우리에게 왔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만일 그대에게 세상과 같이 되고자 하는 성질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을 닮게 만들 수 있을 것이나 할 수만 있으면 세상과 닮지 않게 그것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향기 있는 상록수를 골라서 그것을 교회에 세워 두는 것은 무슨 특별한 죄가 아니다. 그러나 죄는 행동하게 한 그 동기와 나무 위에 둔 선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 나무의 크기와 그 가지들의 넓이를 그 경우에 가장 알맞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나뭇가지들에는 그대의 자비심에서 나온 금과 은의 열매가 열리게 하고 이것을 크리스마스의 선물로 그분께 바쳐라. 그대의 기증하는 것을 기도로써 성결하게 하라. RH, 1879. 12. 11.”(AH 482).

 

탄생 계절과 연대

1225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아니라는 성경적 추론이 가능하다. 예수께서 탄생하신 때 베들레헴 목자들이 밖에서 양 떼들을 지켰다(2:8). 추운 겨울 우기인 1225일에 들판에서 양 떼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계절 상황에 맞지 않다. 빌라도가 유월절 특사 대상으로 유대인의 왕을 내가 놓아 주기 원하느냐고 물었다(18:39). 그리스도의 공적 봉사 기간은 3년 반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공적 봉시 시작 때에 30세쯤 되었다(3:23). 그렇다면 마지막 유월절을 기점으로 하여 33년 반을 소급 역산하면 그리스도의 탄생 계절이 나올 것이다. 그 때가 계절적으로 12월이 아닌 가을로 추정된다.

 

이 추정은 예언에 비추어 풀어볼 때 분명해진다. 다니엘 9:24-27에 나오는 70이레 예언기간에는 그이 공적 봉사 시작에 관한 때가 나온다. 70이레의 기산점은 2300주일 예언기간의 시작과 같다. 2300주야 예언기간의 시작은 민력에 따라 B,C. 457년 가을이 된다(William H. Shea, Daniel, 158). 70이레 끝 부분인 한 주일의 시작 때에 기름 부음을 받은 이 일어난다(9:25). 예수께서 침례 받으신 때는 A.D. 27년 가을이다. 이 때로부터 공적 봉사 시작 시의 나이 30년을 소급하면 가을 탄생이 된다. 이 때 예수께서는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3:13-17). 1주일 중간, 3년 반을 지나 봄 계절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지는 제사와 예물을 폐하는 십자가 사건이 일어난다.

 

AD 6세기 때 로마의 수도원장 디오나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는 로마기원인 754A.U.C.를 그리스도의 탄생한 해로 보았다. 그러나 후에 R. Bacon이 헤롯 대왕사망이 750 A.U.C.인 것으로 밝혀 그의 계산에 과오가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예수께서 헤롯 대왕 죽기 전에 탄생해야 성경 기록과 조화되기 때문이다(2:1).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탄생 연대를 가늠할 수 있는 역사적 인구조사 사건이 나온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을 내려 天下로 다 戶籍하라 하였으니 2 戶籍은 구레뇨가 수리아 總督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2;1-2).

아구스도 황제의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Gaius Octavius)이다. 그는 B.C. 27-A.D. 14 년까지 로마 황제로 재위하였다. 구레뇨(Quirinius) A.D. 6-9년 사이에 수리아-길리기아(Syria-Cilicia)에서 총독을 역임하였다. 아구스도가 자신의 치세 동안에 로마제국의 전체적인 인구 조사를 최소한 세 번, BC 28, BC 8년 그리고 AD 14년에 실시하였다. 이 세 번 중 하나도 누가가 언급한 것과 연대적으로 일치하지는 않으나, 팔레스타인의 긴장된 상황과 로마의 과세에 대한 유대인들의 격렬한 저항 때문에 이 지역에 대한 왕실의 칙령을 실시하는 일이 지연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렇다면 BC 8년의 인구조사가 지연되어 변방인 팔레스타인에 실시된 것이 BC 6/5년 가을에 실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는 눅 2;2에 나오는 처음(protos)”을 소유격 앞에서 이전의로 번역한다면, 본 절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 되기 이전에라고 번역해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레뇨 이전에 있었던 인구조사를 실시하게 되어 연대의 차이를 해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예수 탄생의 신학적 의미

예수께서 탄생하신 정확한 날짜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탄신일이 구원사에서 본질적인 것으로 중요시하였다고 하면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정보를 주셨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시체 매장지를 감추시어 우상숭배가 되지 않도록 하신 것처럼 당신의 탄생일을 감추시므로 백성들의 우상숭배나 죄악을 막고자 하셨다(AH 477).

 

크리스마스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태어나셨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스도의 탄생의 신학적 중요성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성육신(The Incarnation)

그리스도의 탄생은 선재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눈데 거하셨다는 사건이다(1:2, 14). 하나님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지성의 한계를 넘는 신비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신성의 충만함이 무력한 육신을 입은 유아 안에 거하는 모습으로 탄생을 하셨다는 것이다. “신성과 인성이 신비하게 결합되었으며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로 되었다”(Ellen White, Signs, July 30, 1896). 그리하여 그가 십자가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하늘 성소에서 중보하실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물로 죽으시고 대제사장이 되어 중보하시는 이런 구속사적 큰 사건들은 모두 그의 성육신 탄생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하와이에서 다섯 번째 섬 몰로카이의 성자 다미앵 신부(Father Damien,1840-1889)는 벨기에 출신의 삶에서 성육신하여 인간 가운데 사신 주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다미앵 신부는 철저하게 버림 받은 한센병자들의 비참한 삶에 마음이 아파 몰로카이 섬에서 한센인들에게 을 지어주고, 별세하면 을 만들어 장례를 치러 주는 등 11년간 봉사하다가 자기도 한센병자가 되어 사랑의 순교자로 죽었다.

 

(2) 동정녀 탄생(The Virgin Birth)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권능을 통해서 동정녀였던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성육신하셨다(1;26-38에 나오는 Ave Maria; 1:18-21에 나오는 천사가 요셉에게 말한 지시). 동정녀 탄생은 타 종교에서 찾기 어려운 그리스도교의 독보적 사건이다. 단성생식 또는 처녀 생식 이야기가 Hermes, Dionysius, Heracules 등에 나오지만, 그것들은 불순결한 결합이나 음란이 판치는 것들이어서 복음서 기록과는 공통점이 없다. 이 동정녀 탄생은 이사야가 오래 전에 예언한 일의 성취(7:14)이다. 2세기에 Ignatius와 순교자 저스틴 같은 교부들의 지지를 받은 동정녀 탄생이 사도신경에 교리로 들어가는 길을 닦았다.

성령께서 혼돈과 공허를 가르고 운행하므로 첫 창조가 개시되었다. 마찬가지로 인간 재창조를 위한 메시아의 탄생에 있어서 성령의 잉태가 있었다. 성령의 권능에 의한 그리스도의 이적적인 탄생에는 신성이 인성과 결합하는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무죄성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계시로 알려 주시고 친히 구속주로 오심을 예고하셨고 그 약속대로 여인의 후손으로 베들레헴에 탄생하시어 인간 가운데 사신 임마누엘이 되셨다. 그리하여 인간이 삶을 가치있게 영원을 향하여 살 수 있는 길을 여셨다.

 

마지막 퍼즐 맞추기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여러 예언들을 남기고 있다. 예컨대, 여인의 후손(3:15), 만국을 위하여 선포된 구원의 축복(12:3), 다윗 왕가 혈통을 따라 오실 구주(삼하 7:12-15) 등등이다. 그런데 여기 하나의 퍼즐 조각이 빠져있다. 메시야가 나실 곳이 베들레헴인데(5:2), 지금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에 거주하고 있지 않는가! “예수의 어머니는 다윗의 혈통인데 다윗의 자손은 다윗성에서 탄생해야 했다”(DA 44).

누가는 이 마지막 빠진 퍼즐 조각을 맞추는 이야기를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령에 따라 베들레헴에 갔다는 사건으로부터 찾아 연결시킨다. 그래서 누가는 예수 탄생의 마지막 퍼즐을 꿰맞추는 기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구스도(Caesar Augustus) 황제를 통한 인구조사 칙령을 반포하므로 이 들 부부가 살던 곳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가게 했다는 것이다(2:1-4). 외적으로 보면 인구조사는 제국의 황제가 내린 듯하지만, 하나님께서 역사의 배후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구속의 역사를 이끄는 구원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고 계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요셉과 마리아는 피곤하고 쉴 곳이 없어 성문에서부터 성 동편 끝까지 좁은 길을 모두 헤매며 그날 밤을 위한 휴식처를 찾았으나 얻지 못했다. 붐비는 여관에는 그들을 위한 방이 없었다(2:7).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구유(phatne)에서 탄생케 하셨다. 그리하여 아기 예수가 누워있는 구유는 성경과 인류 역사의 중심이 되도록 하셨다.

 

그의 영광이 가리워졌던 것은 그의 외양의 위엄이 주목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는 모든 외적 장식을 피하셨다. 재물, 세상의 명예, 인간적인 위대함은 결코 영혼을 사망에서 구할 수 없다”(DA 43).

 

루터가 성경을 두고 아기 예수가 누운 구유라고까지 한 유명한 말을 남겼다.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비천한 신분으로 보잘것없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이 세상에 오셨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구유는 세상 구속주의 비천한 탄생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당시 세계의 주관자인 아구스도의 영광과 대조된다(1, 11, 14). 그리고 짐승의 밥그릇인 이 구유는 아무데도 머리 둘 곳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자이신 예수의 겸손과 고난을 상징한다(9:58).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구속의 마스터플랜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적 이끄심에 경탄할 수 밖에 없다. “베들레헴의 이야기는 다함이 없는 주제이다. 그 속에는 깊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11:33)이 숨기어 있다 ”(DA 48).

 

그리스도 탄생의 소식을 전한 사람들

소년 다윗이 양을 쳤던 들에서 목자들이 밤을 지새우며 여전히 양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고요한 시간에 약속된 구주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하며 다윗의 보좌에 즉위하실 왕께서 오시기를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비천하고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택하시어 이 천상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많이 배워 교만한 자들이 아닌 보통 사람들 중 겸비한 자들을 통하여 큰일을 하게 하셨다. A.D.가 시작될 어간에 천상의 메시지를 전한 두 그룹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신분이 낮기 때문에 법정에 증인으로 설 수도 없는 계층이었다. 이 두 계층은 목자들과 여자들이었다.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첫 증인들로 목자들을 소개하고 있다(2:8-10).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첫 증인들은 여자들이었다(24:1-12).

 

목자들은 최초의 복음 전도자들(evangelists)가 되었다. 목자들은 경건한 신앙의 사람들이었고, 메시아를 기다린 소망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메시아의 위로를 기다린 시므온과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린 안나 같은 깨어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 속하였다(2;25, 38). 이런 갈급한 무리들에게 빛과 진리가 주어진다.

 

天使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百姓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消息을 너희에게 하노라”(2:10).

 

그들이 가브리엘 천사로부터(DA780)  좋은 소식을 전하(euaggelizo)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유앙겔리조"는 “좋은 소식을 선포하다” 또는 “반가운 소식을 알리다.” 영어의 “evangelist”(복음 전도자), “evangelize”(복음을 전하다), “evangelism”(복음 전도)라는 말은 이 헬라어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여기서 좋은 소식이란 곧 구주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가리킨다(2:11).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사실 자체가 기쁜 소식이며,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곧 복음(euaggelion)이라 할 수 있다. 큰 기쁨(megas)의 좋은 소식에 천군이 화답 찬송을 한다.

 

至極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榮光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平和로다 하니라“(2:14).

 

목자들은 마음속에 가브리엘이 전한 기별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받고 믿었다. 그들은 즉시 행동으로 옮겨 결국 천사가 목자들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전하여 그 소문이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랍비들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오늘날이라면 목자들은 교차로 길가에서 구걸하던 테드 윌리엄스가 노숙자에서부터 황금 목소리로 여러 방송국에서 황금 목소리로 일한 것 같이 유명세를 탔던 것 같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목자들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비천하게 탄생하신 주님을 경배하므로 살아온 삶을 의미 있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 소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최초의 복음전도자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의 대속사  (0) 2023.03.08
천상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중재 사역 내용 개요  (0) 2021.06.09
케노시스주의  (0) 2020.10.09
부활절 메시지  (0) 2020.04.15
“예수님 이름으로”  (0) 2019.05.06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