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렌(Rick Warren) 목사의 부활절 메시지

(Keeping the faith during COVID-19 pandemic: Lessons from Easter 2020)

Tuesday, April 14, 2020. The Washington Times

(이 기사는 415일 자 인터넷 판 The Washington Times 지에 실린 것을 부분적으로 성경에 맞도록 첨삭하였습니다)

사순절 40일 기간을 지나고 부활절을 COVID-19 펜데믹이 휩쓸고 있는 중에 맞았다. 세계 각지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로 금년 부활절 행사는 취소되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보내 왔다. 많은 신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예전에 없는 생소한 일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목사님들을 격려하고자 지난 월요일 120만의 전 세계 목회자들과 온라인 부활절 기도회를 이끌었다.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도록 목자로 부름 받은 분들에게 각기 맡은 회중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영의 양식을 먹이고 인도하려고 하지 말고 그들이 부활절에 집에 머물러 있도록 권고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부활절 행사를 생략하는 것이 그들이 방역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축제를 생략하지 말고 단순하게 하도록 제시하였다.

2000년 전에 이미 일어난 예수님의 부활은 취소되지 않았다. 예고 한 대로 예수께서는 부활하셨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역사적으로 오늘날까지 달력에 B.C. A.D.를 가르고 모든 사건들을 갈라놓은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 되었다. 우리가 탄생한 사건 역시 이 분기점을 중심으로 계수되리만큼 부활절과 관련이 되어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거짓말쟁이가 아니란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하여 모든 분들이 그가 하나님이심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께서 이 일을 부활로 증명하신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24억이나 되는 신자들이 부활절을 기념하는 이유가 된다. 부활절은 우리에게 소망의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난 일요일 맞이한 부활절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가?

 

첫 째 교훈은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한 날 두려움 가운데 집 안에 머물러 있어야 되었던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는 베드로, 요한, 그리고 다른 추종자들이 첫 부활절 때 함께 지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잠갔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0:19).

제자들이 두려워서 문을 잠그고 집 안에 있었던 것은 오늘 우리 사정과 유사하지 않은가? 다른 점이 있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이러스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못 박은 로마 권세가 자기들도 잡아다가 십자가에 처형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제자들 당시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축하하는 초대형 교회가 아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께서는 숨도 제대로 못 쉬리만큼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제자들이 숨어 있는 집 안에 나타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날 베드로에게(24:34; 고전 15:5).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24:13-32), 그리고 다락방에서 10 제자들에게 자타나셨다. 부활일부터 승천 사이에도 도마가 참석한 11 제자들에게, 갈릴리 산에서 500명 앞에, 야고보에게(고전 15:7), 예루살렘에서 11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을 감람산으로 인도했다. 이렇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나신 이유는 마 18:20의 약속 때문이다. (워렌 목사 설명을 고친 부분임)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부활절에 기억해야 될 두 번째 교훈은 교회란 그냥 지나가는 이벤트가 아니고 함께 속하는 영적 가족이라는 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교회에 나가는 일은 무슨 일보러 가는 것이 아니고, 예배드리기 위하여 가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분께 순종하는 일을 위하여 선택 받은 자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가족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없어지겠지만,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은 오로지 교회뿐이다.

 

셋째 교훈은 예배드리는 것이 교회의 첫 번째 목적이 된다는 점이다. 예수께서는 이 기본적 목적인 예배에 부가하여 자기 영적 가족에게 네 가지 목적을 첨가하셨다. 그것은 곧 친교(fellowship, 신뢰할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 창출), 제자훈련(discipleship, 신자들로 하여금 영적 성숙으로 자라나게 함), 선교(mission, 하나님과 분리된 백성들을 화해시키는 일), 및 봉사(ministry, 곤궁한자, 상처 입은 자들을 섬기는 일)이다. 이런 부가 기능들이 오늘날 절실하게 요구되지만 꼭 회중들이 모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위기의 시대에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목회자들로 하여금 다음 여섯 가지 일을 하도록 교회를 양육하는 일이다. 이 여섯 가지를 그리스도의 분부를 따라 교회라는 영어 단어 CHURCH 각각의 글자를 머리글자로 하여 풀어 본다.

C.H.U.R.C.H. --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로 풀이한다.

C 염려하는 자를 진정시키시오 Calm the anxious

H 상처 입은 자를 도우시오 Help the hurting

U 낙심한 자를 일으키시오 Uplift the discouraged

R 잃어버린 자를 회복시키시오 Recover the lost

C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시오 Comfort the grieving

H 병자를 치료하시오 Heal the sick  

 

넷째 교훈은 이 위기의 시대는 자기 교회들이 하나님이 부여하신 일들을 수행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기회가 되도록 리셋 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가이사에게 납세하는 일 외에는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는 일에 관하여는 침묵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당부하신 일은 이렇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18:36).

물론 그리스도인은 나라나 정부가 하는 선한 일을 지지한다. 그러나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은 정부가 하는 일에 비해 훨씬 그 차원이 높다. 교회가 하는 일은 심령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불의를 막기 위해서는 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법이나 권력으로는 인종주의자들이나 고집불통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를 사랑하게 할 수 없다. 가장 필요한 것은 심령의 변화이다. 교회는 이 일을 해야 한다.

 

마지막 교훈은 교회가 크게 자라 로마제국의 국교까지 되었다. 그것은 용기있고 열성적인 그리스도인들이 2세기, 3세기 시대에 감염병 재앙이 덮쳐왔을 때, 환자들을 돌보았기 때문이다. 재앙이 창궐한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도시로 들어가 첫 병원들을 개설하고 환자들을 보살폈다. 이 일을 한 주체는 정부나 실업가들이 아니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회는 지상에서 가장 거대한 조직이 되어 있다. 그 어떤 다른 단체들이라도 교회를 따를 수 없다. 오늘날 24억 그리스도인들로 계수하면 전 인구 비례에서 3명 중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교 교회는 중국, 유럽, 미국을 합친 수보다 더 크다. 교회는 가장 거대한 자원봉사 군단 규모가 된다. 유엔 산하 각국 언어 수를 훨씬 능가한 언어들이 교회 안에서 사용되고 있다. 몇 년 전 다보스 세계 경제 포럼에서 세계는 더 종교화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교회는 어느 독재자들, 비평가들, 철학, 정치적 운동, 전쟁, 재난보다 더 오래 지속되어 왔다. 부활절에 예배 없이 지나갈 수 있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들이라도 영원히 계속되지 못한다. 그러나 교회는 계속 존속되어 나갈 것이다. 교회는 이 세상뿐만 아니라 하늘에까지 이르도록 존속해 갈 것이다. 부활절 축제 역시 계속하여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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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