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과 새 언약' 사상 이해 개요
제10과 ‘새 언약’ 사상 이해 개요
연구 범위: 렘 31:31~34, 마 5:17~28, 호 2:18~20, 사 56:6, 7, 히 8:7,8, 히 10:4,
기억절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 בְּרִית חֲדָשָׁה׃을 맺으리라”(렘 31:31).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체결할 새 언약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핵심이 된다. 이는 구원의 대 약속이다. 신약 기자들은 이 새 언약이 갈보리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말하고 있다(마 26:28; 막 14:24; 눅 22:20; 고전 11;25). 히브리서 기자는 이루어진 구원의 적용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천상성소에서 일하고 계신 것을 말하고 있다(히 5:14-16; 9:23-24).
I. (일) 예레미야의 새 언약- “보라, 날이 이르리니...”
[렘31:31~3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 언약을 주도자- 여호와 하나님
2. “나의 법”의 정체- 여호와 하나님의 법.
3.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과 맺기를 원하시는 관계의 강조점- 신부로 영접, 자기
백성 삼고자 하심, 심장이식(심비각인)
4. 하나님의 어떤 행위가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언약 관계의 기초를 이루는가?
언약의 4대 DNA인 죄 용서(칭의), 하나님 법의 심비각인(성화), 화해 및 선교가 새 언약 관계의 기초 사상을 이루고 있다.
II. (월) 새 언약의 역사적 배경 및 목적-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
1. 북방 이스라엘 멸망 시기에 한 언약 약속
예레미야 때 보다 약 150년 전에, 북방 이스라엘의 열 지파가 멸망하려 할 때 호세아를 통해 다른 언약을 말씀하셨다.
[호2:18~20]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 유다 망국의 위기, 절망의 시대에 예레미야 새 언약 소망의 약속
렘 31;33-34 새 언약: 남방 유다가 거의 멸망에 이르고 그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 로 잡혀갈 절망적 상황에서 체념하고 있을 때 자비의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새언 약을 약속하셨다.
3. 렘 31;33-34과 호 2:18-20에 나오는 언약의 기본적 본질 및 공통적 표현
(1) 하나님과 자기백성과의 관계 비유-주인/남편(לעב 바알) 하나님과 아내 선민의 결 혼 언약관계를 맺고자 하신 것이다.
이 언약관계 재건은 하나님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에게 당신의 충성된 백성들과 맺으신 언약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선포하게 하셨다.
(2)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아무리 불충실하고, 배도와 반역과 불순종의 길을 간다 할지라도, 기꺼이 회개하고 순종하며 그분의 약속을 주장하기를 원하는 자들과 여전히 언약 관계에 들어가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선언하신 것이다.
4. 새 언약 체결 이유
(1)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시내산 언약 파기 때문(렘 11;10; 31:32)-백성들이 반 역과 불신으로 다른 바알(주인/남편) 선택하였다.
(2) 히브리서는 옛 언약의 흠결(‘실패’) 원인을 그들(백성)의 잘못으로 지적(히 8:7,8) 하여 백성들의 반역과 불신을 함축시키고 있다. 인간 편에서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히8:7,8]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5. 새 언약의 각인 방식 - 石碑가 아닌 心碑, 즉, 일종의 심장수술 같은 것으로 돌 같은 굳은 심장 제거하고 살 같은 부드러운 심장을 이식하는 것이다. 심장 속에 언약 의 법을 각인하여 새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도록 마음 자체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마음에 새겨진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사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율법의 정신이 그의 무의식이 되었기 때문에 이 정신이 삶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6. 새 언약 각인의 주동자-성령 하나님, 의문(문자)에 집착한 옛 언약을 탈피시키는 주동자는 성령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새 언약은 각 개인이 성령의 인도 아래 하나님을 아는 직접적인 체험으로 세워지는 성령의 언약이다.
겔 11: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겔 18:31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는 마음’을 주실 것이다(렘 24:7). 그분께서는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실 것이며(겔 11:19),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실 것이다(겔 36:26). 또한 ‘내 영을 너희 속에 두겠다’고 말씀하신다(겔 36:27).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이러한 일이 바로 새 언약의 기초이다.
7. 개인적 변화 체험에 역점을 둔 새 언약 - 새 언약은 인간적인 중재자, 제사장이 야훼에 대한 지식을 가르칠 필요가 없는 개인적인 직접적 회심 체험과 신적 교제(렘 31:34; 호 2;20-모두가 나를 알 것)이다. 그렇다고 본문은 선교의 불필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닌 개인적 체험적 변화를 강조하고 있는 점을 읽어내야 한다.
III. (화) 옛 언약과 새 언약
A. 새 언약 파트너의 확대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 56:6,7).
새 언약의 파트너는 인종적 육적 선민이나 종족주의 탈피하여 영적 선민까지 포괄하고 있다.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집’에 세워질 것이라고 한 진술은(렘 31:33) 문자 그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혈통과 출생에 의해 유대인이 된 자들만이 언약을 받게 된다는 종족주의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약속에 참여하도록 초대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언약에 들어가기로 동의해야만 했다. 이 사실은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B. 안식일 포함- 새 언약의 요구 사항에는 하나님과 연합한 이방인까지도 안식일 성 수 요구하고 있다(사 56:2).
C. 새 언약과 옛 언약의 관계
새 언약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체결했던 옛 언약과 크게 다르지 않 고 그 내용이 같다. 같은 내용에 다른 제목을 붙인 것이다.
1. 언약의 기초의 동일- 옛 언약이나 새 언약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모두 인간 의 약점과 실패를 초월하여 사랑에 기초한 언약이다.
2. 언약의 본질 동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히 8:10, 출 19:5).
3. 인간을 향한 언약의 기본적인 소망의 동일 - 구원의 복음
성경은 오직 하나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신약이 새로운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갈라디아서 1:6-9과 히브리서 4:2은 오직 하나의 복음 밖에 없음을 천명한다. 디모데후서 3:14, 15에서 바울은 힘 있게 주장한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성경은 구약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가 구원에 기초가 된다(딤후 3:16).
4. 언약의 조건의 동일 - 율법에 온전한 순종, 새 언약에서는 무력하고 연약한 인간 에게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의 은혜 엄호(능력) 하에 순종이 가능하다. 완전한 순종은 예수께서 하셨고 우리가 그분을 믿음으로 그 순종이 나의 순종으로 여김을 받는다. 주님이 완전하게 지킨 율법이 내가 지킨 것으로 여겨진다. 염려하지 않고 믿어야 한다.
“이 평화의 언약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죄인이 회개하고 죄에서 돌아설 때에 너무나도 풍성한 용서의 자비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8:12)고 주님은 회개한 자에게 선언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시기 위하여 공의를 저버리시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죄를 묵인하여 넘기심으로써 당신의 율법을 모욕하실 수 없으시다. 새 언약에서는 완전한 순종이 생명의 조건이 된다. 만일 죄인이 자기 죄를 회개하고 자백하면 그는 용서를 받을 것이다. 죄인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용서를 보장받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하고 믿는 모든 죄인들을 위해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셨다”(엘렌 G. 화잇,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138).
“새 언약 아래서도 영생을 얻기 위한 조건은 옛 언약 아래서와 마찬가지로 온전한 순종이다. 옛 언약 아래서는 율법에 명시된 대로는 속죄할 수 없는 대담하고 참람된 성질의 죄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새롭고 더 나은 언약에서는 그들이 믿음으로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면 율법을 범한 것에 대해 율법을 충족시키신다. ‘그분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자신들의 죄를 제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하여 그분께 나아오는 모든 자들에게 자비와 용서가 보상으로 주어진다. 더 나은 언약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에서 정결함을 입는다.’(Letter 276, 1904년).
5. 두 언약 모두 중보자의 필요성-그러나 새 언약에서는 원형이 되는 그리스도의 중 보가 있어 더 낳은 언약이다.
6. 하나님의 동일한 은혜와 자비의 언약
D. 예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점
1. 새 언약은 옛 언약의 완성과 성취
시내산 언약의 문제점은 그것이 오래되었거나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데 있지 않다. 진짜 문제는 백성들이 그 언약을 파기하였다는 데 있었다(참조, 렘 31:32). ‘새 언약’은 어떤 의미에서 ‘새로워진 언약’이라 할 수 있다.
(1) 새 언약은 첫 번째 언약의 완성이며 성취이다.
(2) 예레미야 31;32에 나오는 히브리어 “새 chadash” (갱신하다, 회복하다, 신선한 fresh)은 히브리서 8;13에 나오는 헬라어 “새”(καινός 갱신된)와 상통하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에서 ‘새’의 반대는 ‘옛’이다. ‘옛’이라는말은 먼저 존재했거나 오랫동안 계속하여 사용된 것을 말한다. 또한 그것은 흔히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나 낡은 것이라는 의미에서 오래된 것을 가리킬 수 있다. 그러나 성경 언어의 의도, 목적 등을 이해하려 할 때 현대적 의미를 성경 본문에 덧씌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카이노스 καινός는 질적으로 새로워져 과거의 것보다 더 훌륭한 것이라는 뜻을 지녔다. 그리하여 이전에는 같은 성질과 같은 방식으로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어떤 것을 의미한다. 히 8:13에 나오는 새 언약은 καινός 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반영하여, ‘새 언약’은 단순히 ‘갱신되고’ ‘회복되었’으나 지금은 전과 동일한 성질 및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은 질적인 차이를 갖게 된 것을 말한다. 고린도후서 3:6에서 사도 바울은 의문으로 된 ‘옛 언약’과 대조하여 ‘새 언약’은 영의 언약임을 시사한다.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롬 7:6).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점은, ‘의문’(고후 3:6)은 율법의 글자를 말하는데 이는 각 개인의 안이 아니라 밖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의문’이 외부에 남아 있고 성령을 통해 마음에 기록되지 아니하면 정죄만 불러올 뿐이다. 마음에 기록된 율법은 구원을 주는 마음의 변화를 가져온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이 생명을 부여한다. 성령은 율법을 마음에 기록함으로써 그것을 각 개인 속에 내면화한다. 따라서 이 언약의 새로움은 히브리서 8:6에 나온 대로 ‘더 나은’이라는 말로 그 특징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언약과 관련하여 ‘옛’과 ‘새’라는 말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의 서로 다른 방식들이 아니라 백성들의 반응과 경험을 가리킨다.
(3) 비록 새 언약이 ‘더 좋은’ 언약으로 일컬어지긴 하지만, 언약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건에 있어서는 옛 언약이나 새 언약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통해 구원을 제공하시고(출 34:6, 롬 3:24),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용서의 약속을 주장하는 자들을 찾고 계시며(렘 31:34, 히 8:12),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간에 믿음의 관계를 통해 그분을 따르기로 하는 자들의 마음에 당신의 법을 기록하시기를 원하신다(렘 31:33, 히 8:10).
신약에서는 유대인들이 은혜의 택하심에 반응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받아들였다. 한동안은 “우둔하게”(롬 11:7) 된 자들과 달리 “은혜로 선택받은 남은 자”(롬 11:5)인 그들이 교회의 중심이었다.
동시에 전에 믿지 않던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에게 접붙인바 되었다(롬 11:13~24). “한 때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었으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까워진 이방인들(엡 2:12)이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구원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해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다(히 9:15).
2. 비준방식의 차이- 옛 언약에서의 동물의 피가 아닌 새 언약에 있는 완전히 새로운 점은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언약이 비준되었다는 것이다. 언약에 들어 있는 약속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엔 성취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제자들과 함께 떡과 포도즙을 나누심으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구주가 되심을 서약하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새 언약을 선포하셨는데 이를 통하여 그분을 영접하는 모든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을 얻는다. 이 언약으로 금생과 내생을 위하여 내려 주실 수 있는 모든 축복은 그들의 것이 되었다. 이 언약의 행위는 그리스도의 피로 비준(批准)될 것이었다. 그리고 성만찬의 집전은 타락한 전 인류의 한 부분으로서 개별적으로 저희 각 개인을 위하여 희생하신 무한한 희생을 제자들 앞에 항상 생각나게 할 것이었다”(시대의 소망, 659).
3. 선민 개념의 특수화와 보편화 차이- 옛 언약에서의 언약 파트너는 아브라함 자손이었다. 그들을 구원의 통로가 되는 선민으로 삼았지만, 그들이 실패하자 새 언약에서는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개방된 공동체에 접붙여져 영적 이스라엘로 선민이 되어있다(롬 11:13-24; 엡 2:12-19). 그리스도는 유대인이든 이방이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갈 3:28) 모든 믿는 자를 위해 ‘새 언약’을 중보하신다(히 9:15). 이스라엘 민족과 맺어진 구약의 언약이 신약에서는 전 인류를 위해 보편화되었다.
4. 표상과 원형의 차이 - 옛 언약이 표상 제도 위에 구축되었지만, 새 언약은 표상이 지향하는 원형인 더 좋은 언약, 그리스도의 성취와 대제사장 중보 위에 구축되었다.
5. 인간편의 잘못된 개념에서 오는 차이점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점으로 구원을 이루는데 두 가지 별개의 방법이 있는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즉, 세대주의 신학에서처럼 옛 언약은 율법을 통해서, 새 언약에서는 은혜를 통해서 구원을 이룬다는 차이를 주장하는 자들이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본래 의도가 아니다.
E.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연속성
옛 언약이나 새 언약이나 언약의 기본 요건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진다. 이러한 용서의 결과로 우리는 그분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 안에서 믿음과 순종으로서 그분께 복종하게 된다.
1. 동일한 하나님. 성경의 언약 개시자는 모두 하나님이시다.
2. 동일한 언약의 대상. 선지자는 새 언약이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체결(렘 31:31, 33). 그러나 천연계와 이방인이 배제되는 것 아니다. 노아 언약은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구원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제공된 것은 ‘모든 족속이 복을 … 얻’(창 12:3)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3. 동일한 율법. 아담, 아브라함 등과 맺은 이전의 언약들, 특히 시내 산에서 고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나타난 공통적인 요소는 하나님의 율법이다. 예레미야에서 적절하게 ‘나의 법’이라고 불린 하나님의 율법(렘 31:33; 참조 시 89:30; 사 51:7; 렘 6:19; 겔 22:26; 호 8:12)은 시내 산에서 돌비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참조 출 24:12; 31:18; 34:1, 28)을 가리켰다. 돌비는 사실상 ‘언약’이라 불리기도 했다(참조 왕상 8:21).
4. 마음에 기록된 법. 옛 언약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의 제2 세대들에게 율법을 반복하여 설명 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라고 말한다(신 6:5, 6; 참조 30:6, 11-14). 백성들은 마음에 할례를 받고 더 이상 목이 곧은 백성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진다(신 10:16). 하나님의 법을 인간의 마음에 기록하기 위한 하나님의 활동은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그분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말한다. 이것은 성령을 통해 마음에 법을 기록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옛 언약’과 ‘새 언약’ 공동체의 일원 사이에 있는 연속성은 아브라함의 육신적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음에 그분의 법을 기록하도록 선택하고 그것을 전적인 의지의 일부로 만들어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신자 각자로 말미암는다. 마5:17~28에 나타난 대로 죄인이 완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생활이 그렇게 나타나 죽을 생명이 예수님의 생명으로 회복되는 것을 뜻한다.
[롬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5.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는 화해가 언약을 맺는 목적이다(렘 31:33; 참조 7:23; 32:38). 시내 언약도 같은 공식으로 묘사되었다(출 6:7; 레 26:12; 신 26:16-19 등).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그분의 목적은 고대 이스라엘에겐 단명했던 이런 약속의 관계가 새롭게 되고 회복되어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당신의 백성과 맺은 언약은 우리의 보호벽과 방책이 되어야 했다…이 언약은 주께서 고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던 때만큼 지금도 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다.” (God’s Amazing Grace, 142).역사를 통해 줄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제안하신 언약은 동일하게 영원한 언약이었다. 예레미야는 개인이 새 언약의 경험으로 산다면 하나님의 율법이 마음에 새겨진다고 강조한다. 율법은 더 이상 외부에 있는 돌비에 기록된 것이 아니다. 각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그것을 마음과 성품에 내면화시켜야 하는데, 그럴 때 그 언약은 새롭게 된 개인 및 세대와 더불어 새로운 것이 된다.“바울이 옛 언약 새 언약의 개념을 논할 때 자주 구약과 신약으로 대표되는 영적 역사의 두 역사적 기간이 아니라, 매우 다른 두 개의 종교적 경험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Skip MacCarty, In Granite or Ingrained? [Berrien Springs, MI: Andrews University Press], 81).
Ⅳ. (수) 더 좋은 언약 - 새 언약의 DNA
히브리서는 새 언약을 일컬어 ‘더 좋은 언약’이라고 하였다. ‘더 좋은 언약’이란 무슨 의미인가? -원형이 되는 그리스도의 피로 비준되고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으로 현재진행형으로 일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히 8:6). 원형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언약의 DNA를 이루시고 천상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중보와 중재하시는 사역으로 더 좋은 언약이 된다.
히 8:8-12까지는 렘 31:31-34의 인용이다. 저자는 이 인용을 통해서 옛 언약을 대체한 새 언약의 진수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Skip MacCarty는 In Granite or Ingrained?에서 새 언약의 DNA를 칭의(J), 화해(R), 성화(S), 선교(M)라는 네 가지 하늘의 염기물질로 설명하고 있다.
1. 칭의(용서)(Justification)--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리라.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8:12; 렘 31:34).
언약의 첫 번째 신학적 DNA는 칭의이다. 칭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이다. 회개를 전제하지 않고 모두를 초청하는 용서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용서에 뿌리를 둔 새 언약의 신앙으로 들어갈 때 의롭게 여기신다.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인 채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용서의 은총을 의지하며 종말론적 용서를 기대하는 소망 속에서 살아간다.
2. 화해(Reconcliation)--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 8:10; 렘 31:33). 이 말씀은 언약 계시의 중심에 계속되는 후렴구로 나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모든 언약의 목표의 기저인 하나님과 화해를 말하고 있다. 관계의 변화와 회복이 이 화해 속에 담겼다. 소외관계, 분리관계, 적대관계가 끝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관계로 진입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3. 성화(Sanctification)--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히 8:10; 렘 31;33). 하나님의 손가락이(성령께서) 불칼로 화강암 바위에 도덕률을 새겨 넣었던 것처럼,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이 DNA를 입력하여 두셨다. 그리하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4).
여호와께서 그들의 악행과 당신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리라는 렘 31:34의 마지막 부분을 주목해 보라. 여호와께서 비록 그 법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시고 그것을 우리 속에 두실지라도, 그분께서는 여전히 우리 마음에 새겨진 법을 어기는 우리의 죄악을 사하실 것임을 강조하고 계신다. 그리하여 롬 2:15에 표현된 것과 같이 우리 양심에 새겨진 율법이 악한 행실에 대하여서는 고발하고 유죄 선고를 내리기도 한다.
4. 선교(Mission)
“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히 8:11; 렘 33:34). 새 언약의 마지막 DNA는 자기 백성을 온 세상에 영원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는데 있다(출 19:5-6). 이 시내언약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창 12:3)이란 아브라함 언약의 연속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그 얼굴 빛으로 우리에게 비취사 (셀라) 2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소서”(시 67:1-2).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 사명에 실패하였다. “우리가 잉태하고 고통하였을지라도 낳은 것은 바람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사 26:18).
옛 언약의 문제점은 언약 그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믿음으로 그것을 붙잡지 못한 데 있었다(히 4:2). 새 언약이 옛 언약보다 더 나은 까닭은, 옛 언약에서 동물의 희생을 통해서만 계시되었던 것을 이제는 예수께서 친히 오셔서 몸소 죽임을 당하시고 대제사장의 직분을 맡으심으로 더 밝은 계시를 주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옛 언약에서 제공된 구원과 새 언약에서 제공된 구원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새 언약에는 타락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이 더욱 풍성하고 완전하게 나타나 있다. 구약에서 성소 봉사를 통해 상징과 표상을 통해서만 가르쳐져 왔던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죄 없는 생애와 죽음과 대제사장의 직분을 통해 그분 안에서 완전한 성취를 보게 된 것이다(히 9:8~14).
이제 우리는 상징과 표상과 모형 대신에 우리 죄를 위해 친히 당신의 피를 흘리신 어린양이 되실 뿐만 아니라(히 9:12),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제사장으로 서 계신 예수님(히 7:25)을 모시게 되었다. 비록 그분이 제공하신 구원은 동일하지만, 새 계명에 나타난 그분 자신에 대한 더 완전한 계시와 그분 안에서 발견되는 구원이 새것을 옛것보다 더 나은 것으로 만든다.
Ⅴ. (목) 새 언약의 제사장
히브리서는 하늘 성소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에 대해 많은 강조점을 두고 있다. 사실상 신약에서 새 언약에 대한 가장 명쾌한 해설은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강조하고 있는 히브리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봉사는 새 언약의 약속과 정교하게 얽혀 있다.
구약의 성소 봉사는 옛 언약의 진리를 가르치는 방편이었다. 구약 성소의 중심은 희생과 중보였다. 동물이 희생되고 그 피는 제사장에 의해 바쳐졌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는 구원의 표상들이었다. 그 자체에 구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대로 히브리서는 표상적 제의의 성취이며 완성인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상의 대제사장이 되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을 적용시키는 일을 하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히 10:4을 보라. 왜 동물의 죽음 자체에는 구원이 없는가? 동물의 죽음이 구원을 가져오기에 충분치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히10: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황소와 염소의 피는 일반적인 제사를 총칭하는 관용적 어구이다(시 50:9-13; 65:15; 민 28-29장).
예수께서는 희생제물도 되고 제사장도 되신다.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린 후 이어지는 제사장의 중보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다. 예수께서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새 언약을 위한 피의 근거가 마련되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새 언약을 비준하였고, 시내산에서의 언약과 그 희생제물들을 ‘낡은 것’ 또는 무익한 것이 되게 하였다. 참된 희생이 단번에 드려진 것이다(히 9:26).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더 이상 동물의 희생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지상 성소의 봉사는 그 역할을 마치게 된 것이다.
동물로 바쳐진 희생제물과 그 제물을 바치고 중보의 역할을 하던 레위인들의 제사장 봉사는 서로 결합되어 있었다. 제물을 바치는 일이 끝나면 제사장의 봉사도 끝이 난다. 모든 것은 지금 하늘 성소에서 자신의 피로 봉사하고 계신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참조, 히 8:1~5) 히브리서는 당신 자신의 피로써 속죄를 이루시고(히 9:12)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에서 우리가 갖게 되는 소망과 약속의 기초이다.
[마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 지상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 휘장이 찢어지고 그때까지 지극히 신성하게 여겨지던 장소가 드러난 것은 표상적인 제사가 종식되었다는 것과 표상이 원형을 만났음을 알리는 하늘의 신호였다. 이 신호는 다음 몇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1) 대속 제물로서 죽음의 고통을 맛보신 예수의 찢겨진 육체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이 열렸음을 상징한다(히 10:19, 20). 이로써 그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의 이 대속(代贖)의 죽음을 의지하고 담대히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2) 혈통적/종족적 선민의 울타리가 무너지고 옛 언약의 신비가 벗겨지는 동시에 구속의 온전한 성취를 이루게 되었음을 상징한다(5, 17-20, 히 6:19, 9:6).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다 같이 생명의 떡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편지 230, 1907).
(3) 새언약의 파트너는 대언자 그리스도의 중보/중재의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의 시은을 받으며 친교 관계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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