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신>에 나타난 육천년 이해를 위한 자료
<예언의 신>에 나타난 육천년 이해를 위한 자료
Ⅰ. 그리스도의 재림시기 설정 유형들
1844년 10월 22일 이후 많은 밀러파 재림신자들은 2,300일에 관한 예언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상당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시기 설정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다. 이들과 재림교회 내에서 일어난 시기 설정 유형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A. 1845년 유월절
1844년 10월 22일 이후 10만 내지 15만의 재림신자들중 대부분 떠나가고 잔여 5,000여 명이 있었는바 이들중 상당수는 유월절 기간 봄달력에 착안하여 1844년 유월절부터 1845년 유월절까지가 완전한 1년이 된다고 보아 1845년 유월절에 소망을 두었다.
B. 1845년 10월
뿔뿔이 흩어진 5,000명중 소수의 잔존자들은 대속죄일이 1일이며 1일은 예언적 기간으로 1년이 된다고 보아 1845년 10월 22일을 기다렸다. James White, Ellen Harmon도 이들에 속하였다. 그러나 이때는 아직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가 출현하기 전이었다. 1845년 대속죄일 전에 Ellen Harmon은 아직 최후 10재앙이 임하지 않았으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일어날 일이 아니라는 계시에서 새 빛을 받고난 후 다시는 시간 설정에 기웃거리지 않았다.
C. 일곱 때
Joseph Bates는 1850년에 대제사장이 회중의 죄를 위하여 피를 일곱 번(times) 뿌린다는 것에서 레위기 16장의 7 times를 단7:25의 때(times)와 같은 것으로 보아 일곱 번을 칠년으로 해석하고 1844년 10월에서 1851년 10월까지의 기간으로 보면서, 이 기간이 끝나는 때인 1851년에 그리스도의 지성소 사역이 끝나므로 재림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Ellen G. White(이하 EGW)은 Bates의 이 빗나간 해석을 견책하였고 Bates는 이를 받아들여 실망에 빠지기 전에 자기 제안을 포기하였다.
D. 벌레들의 밥
1850년대 초에 EGW은 소수의 무리가 참여한 한 집회에서 계시를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벌레들의 밥」이 될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 일곱재앙을 받게되나, 다른 어떤 사람들은 지상에서 살아남아 예수께서 오시는 때 승천하게 될 것이다”(1T, 131, 132)란 조건부 예언이 그 내용이다. 그런데 그 집회에 한때 참석한 사람 클라리사 본포에이(Clarisa BonFoey)에게 생애를 마감시킬 암 징후가 나타났다. 이 여인은 집회에 참석한지 삼일 이내에 잠들었다. 이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예수께서 오시는 것이나 재앙이 내리는 때가 상당히 촉박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E. 광야 40년
초기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인들 중에는 자신들을 현대 바벨론에서 출애굽한 마지막 때의 이스라엘로 보았고 더 나아가 셋째 천사의 기별을 시내산에서 안식일을 받은 것으로 여겼다. 이 출애굽 착안은 고대 이스라엘의 40년 기간까지도 자기들에게 적용된다고 보아 1844년에 40년을 더하여 1884년에 재림의 소망을 두게 되었다. 이 사상은 Hiram Edson, Uriah Smith의 반대를 받고 무산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40년 이론은 4SP에서 이월된 GC, 458에서 예수님의 재림 가능성 시사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동안 방황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는 진술을 중심으로 증폭되기도 하였다.
F. 늦은비와 일요일 법령
1888년 이후 믿음의 의의 부흥집회가 성공하던 중 H. W. Blair가 의회에 일요일 법안을 상정한 사건이 일어났다. 따라서 늦은비는 1888년 이후 교회 부흥으로 나타났다고 보고 일요일 휴업령의 등장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의 박두를 알리는 신호가 된 것으로 보았다. 이에 EGW은 1SM, 189의 경고를 주었다.
G. 상세한 말세도표들의 파동
1894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을 보여주는 말세도표가 있었다. EGW은 2SM, 113에서 이에 대한 경고를 하였다.
H. 144,000명
75,000여의 재림신도들 사회에서 입양 운동을 전개하는 자들이 있었다. 144,000명이 차면 재림이 있을 것으로 보는 무리들의 이 빗나간 활동을 HasKell이 1899년에 EGW에게 보고하였다. 후에 종말론적 하나님의 백성인 144,000이 재거론되었다.
I. 아마겟돈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아마겟돈이 아닌가 하고 당시 팔레스틴에서의 오토만 제국(터어키)의 세기적 대결에 기대를 하는 풍조에 F. M. Wilcox는 신중하도록 경고하였다.
J. 광야 40년 이론의 재등장
1888년에 40년을 더한 1928년에 기대를 거는 무리가 있었다.
K. “벌레 밥” 이론의 재등장
EGW의 “벌레 밥” 설교 현장에 있었던 가장 어린 아이가 심히 노쇠하게 된 1930년대 초에 등장하였다.
L. “이 세대”
1833년 11월 13일 낙성 징조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세대가 죽을 때까지를 “이 세대”에 적용시킨 논법이 있었다.
M. 아마겟돈의 재등장
제2차 세계대전시에 혹자는 동방왕들을 일본으로 적용하고 당시 전쟁이 아마겟돈의 전조가 아닌가 생각하였다.
N. “자정 몇분 전”
제2차 세계대전이 원자탄 투하로 끝나게 되어 원자무기의 대량학살의 절박성을 알리는 “자정 몇분 전” 시계 그림에 관심을 집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O. 노아의 때
1844년에 120년을 더하여 1964년에 재림이 있을 것으로 본 자들이 있었다. 그 기대가 무산되자 방주에 들어가 기다린 칠일을 칠년으로 보고 칠년을 더하여 (1964 + 7 = 1971) 1971년에 관심을 두는 자들이 있었다.
P. 우주시대
1950년대 NASA가 10년후 달 여행 우주계획 발표시 죄인의 우주여행 불가론으로 맞서는 헤프닝과 그 10년후 재림을 상상하는 이들이 있었다.
Q. 천사의 경고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천사들의 나타남과 경고(대부분의 재림신자들이 믿는 것보다 더 빨리 재림이 있을 것) 소문이 있었다.
R. “역사는 반복된다”
1980년대 후반 EGW의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시간예언에 적용하여 해석하면서 재림시간을 설정하는 무리가 있었다(Hauser, Wheeler, Waggerby).
S. 희년
1984년 Chet Wolfe는 1987년이 희년이므로 그 때에 재림이 있을 것을 주장하였고 여의도 신○○도 동 자료를 번역 출판하여 교계를 소란스럽게 한 바 있다. Warren T. Waggerby는 1994년 희년론을 가지고 다니엘-요한계시록 예언기간의 재해석을 한 바 있었다.
T. 6,000년설
19세기 재림신자들 중에는 세상역사 6,000년의 종료시를 재림과 연계시킨 자들도 있었다. 또한 다니엘과 요한계시록 예언 기간에 관한 오늘날의 분파주의적 재해석은 6,000년설을 옹립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995년에 정체불명의 인사가 편집간행하여 살포한 재림신도의 이정표란 책의 도표에서 1997년 9월 26일(양력 12월 25일) 0시에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같은 책 pp. 206, 214 참조). 고대에 6,000년설은 외경 Enoch Ⅱ와 바나바서신, 교부 이레네우스 등에 나타나고 있다. 창조주일의 하루를 1,000년으로 보며 제6일은 6,000년 기간으로 마친다고 보는 것이 그 특징이다.
Ⅱ. EGW의 세계역사에 관한 연대기적 자료들
탄소 연대 측정기법의 발전은 재림교회 역사가, 과학자, 신학자, 또는 평신도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지구 연대에 관한 문제를 두고 열띤 논쟁을 한 바 있다. 특히 그들은 EGW의 저술에 나오는 연대기간과 최근의 지구연대학, 편년학,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역사 연대기에 관련된 최근의 발견에 나오는 상이한 연대들을 조화시키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을 해 왔다.
EGW 저술에서 지구연대 문제(issue)는 생명창조 시간에 국한시키고 지구의 원물질창조 시간은 배제하는 입장이 있다(Warren Johns). EGW은 지구의 원물질이 언제 창조되었는지, 즉 6,000년 전이나 혹은 수만년 전에 창조되었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재림신자들중 더러는 원물질창조에 관한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RH, July 3, 1860; Sept 22, 1985; Nov. 30, 1886; July 5와 Aug 9, 1887; April 6, 1897; ST, June 18, 1896; July 7과 Aug 25, 1898). EGW이 원시창조와 창세기 1-2장의 창조주일 사이에 얼마만큼의 창조가 경과되었는지를 다루지 않았다고 한다. EGW은 Henry Venn의 인간의 완전한 의무 (Complete Duty of Man)를 참고하여 동 주제에 관한 진술을 하고 있지만 Henry Venn은 사실상 원시창조와 창조주일 사이의 기간 경과에 관하여는 취급하지 않았다(1982년 6월호 Ministry, 8. 참조). 1880년대 말과 1900년대 초에 Signs of the Times의 편집인이었던 M. C. Wilcox는 창세기 1:1의 원창조와 1:3에서 시작된 6일간의 창조 사이에 불특정 장기간의 시간대가 있었을 것으로 상정한 바 있었다. 그러나 원창조의 시간대를 산출함에 있어서 EGW의 저술을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위와는 달리 EGW이 창세기 1장의 창조가 약 6,000년 전에 있었다고 보는 주장도 있다. William Shea의 분석에 따르면 EGW은 사단의 기만, 인간 타락, 사단의 기만에서 인간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구속행위의 세 가지 방식으로 지구 연대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본다. 동 주제에 관한 EGW의 모든 진술이 보여준 것은 하나님께서 지구물질 창조시 선재물질(先在物質)에 의존하지 않았다고 하는 점이다(MH, 414; cf. 8T, 258).
EGW 저술중에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이래 지금까지 기간이 얼마나 경과했는지를 시사하는 연대기적 자료들은 다음 세 가지가 있다.
1.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 체류한 기간에 관련된 진술들
성서 연대기는 창조시부터 현재까지 연이어진 사슬처럼 보인다. 이 전체 연대기에서는 여러 연대적 사슬중 그 어느것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 체류한 기간은 이들 연결사슬중 중요한 고리가 된다. 이 체류기간을 215년과 430년으로 보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 Ussher와 19세기 대부분의 연대학자들은 단기간인 215년을, 오늘날의 보수계열 연대학자들은 장기간인 430년을 주장하고 있다. 이집트 체류기간을 단기간인 215년으로 보느냐, 아니면 장기간인 430년으로 보느냐에 따라 창조 이래의 기간 계산에 상당한 차이를 초래한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단기간(215년) 체류론(아브라함 때로부터 모세와 출애굽시까지는 430년으로 봄)과 장기간(430년) 체류론(야곱으로부터 출애굽까지) 모두가 EGW의 진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 성서연대기 이해에 갈등을 야기시킨다.
1. 단기간 체류 근거가 된 듯한 성경 본문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삭, 야곱 등)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창15:13; 행7:6 참조). 이 성경절을 단기 체류로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본 절의 이방 개념이 “a land that is not theirs”(KJV)이며 이는 창세기 17:8에 비추어 가나안으로 해석한다.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아브라함등, 행7:2)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약 사백오십 년간)”(행13:17-19) (한국어 성경의 19절 ( ) 안을 NIV에서는 20절 “All this took about 450 years"로 번역하였음).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갈3:17)
2. 장기간 체류 성경 본문
“네 자손이 이방에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400년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창25:13)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사백삼십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개역성경 출12:40,41)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산 기간은 430년이었다. 마침내 430년에 끝나는 바로 그날, 주의 모든 군대가 이집트 땅에서 나왔다”(표준새번역 출12:40,41).
출12:40,41에 관한 몇 번역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Now the length of time the Israelite people lives in Egypt was 430 years”(NIV, 40절).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땅에서 살았던 시간의 길이가 430년이었다.”
“At the end of the 430 years, to the very day, all the LORD's divisions left Egypt”(41절, NIV). “430년의 끝, 바로 그날에 모든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에서 떠났다.”
NIV와 한글 번역판들과 Hebrew texts와는 같은 내용이다.
LXX에서는 출애굽기 12:40의 “애굽” 다음에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and in the land of Canaan”이 첨가되어 있다. LXX의 이 번역은 첫 215년을 가나안에서, 나머지 215년을 애굽에서로 보는 해석을 낳았다.
그러나 출애굽기 12:40의 “이스라엘 자손(bene Yisrael)”은 문자적으로 “이스라엘의 아들들(the sons of Israel)”을 뜻하고, 이들은 곧 이스라엘인 야곱의 아들들을 상기시키고 있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자손”에는 야곱이 탄생하기 전 가나안에서 살았던 아브라함과 이삭이 포함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야곱의 아들이 탄생하기 전 야곱이 가나안에 살았던 기간도 포함될 수 없다는 의미도 된다.
3. EGW의 진술들
a) 단기 체류에 관련된 듯한 진술들
∙1864년 - “그리고 그들이 애굽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여호와께서는 이것이 성취되기 약 4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드러내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끌고 나오리라”(3SG, 229-230).
∙1870년 - 4SP, 205; 3SG, 229-230과 같은 내용임.
∙1880년 - ST, 4월 1일; 3SG, 229-230의 내용과 거의 유사함.
∙1883년 - “하나님께서는 그 무한하신 자비중에 당신의 율법을 범한 자들을 오랫동안 참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시대에 4대까지 우상숭배를 하는 아모리 족속을 살려두실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의 불법이 아직 관영치 않아 파멸시킬 명령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400년 이상 그들을 살려두셨다”(SLP, 318).
∙1890년 - “모세는 그 다음으로 풀무의 재를 취하여 바로의 목전에서 하늘을 향하여 날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행위는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400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연기나는 풀무와 타는 횃불의 모습 아래 자기 백성이 미래에 억압받을 것을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셨다. 그분께서는 저들의 압박자들을 벌하시겠고 포로들은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게 하리라고 선언하셨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고통의 풀무에서 신음하였다. 모세의 이 행위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언약을 기억하셨고 저들의 구원의 때가 이르렀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이었다”(PP, 267).
위 인용에 비추어보면 “400년 전”이 아브라함 때가 되고 그때부터 출애굽시인 여섯째 재앙이 내리는 때까지400년이 되어 보인 듯하다.
∙1891년 - Bible Echo, 4월 1일. SLP, 318과 동일 내용임.
∙1891년 - “ 그들에게 은혜의 언약이 계시되었다. 시내산에서 율법이 반포되기 430년 전에 아브라함과 체결한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확인한 언약이었다”(ST, 1891년 8월 24일). 이 기사의 430년은 출애굽사건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다.
b) 장기 체류에 관련된 진술들
EGW은 1890년 PP, 281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여러 세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예언적 이상으로 나타났던 역사가 그 날 성취되었다.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 사백년이 성취되었다. 「그 같은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군대대 로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출12:40,41,51; 13:19).
그렇다면 PP, 267의 “400년 전” 진술과 PP, 281의 “400년” 기간 완성의 기사는 상호 모순되는가? 이 상충 이유를 성경시대 선지자들이나 EGW이 봉사활동시에 성경상의 모든 지식을 완벽하게 갖추었다고 볼 수 없는 점이나 선지자가 주변 상황과 경우에 따라 진술의 다양성을 보일 수 있다는 점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레미야나 요나같은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불평하기도 했고 하박국은 왜 의인이 고난을 받고 악인이 번영하느냐고 질문하기도 했다. 모세와 욥은 하나님께 항변하기도 했다.
EGW의 경우에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재림교회 교리적 기틀이 놓인 1848년 일련의 안식일 사경회 진행시 EGW의 정신활동은 족쇄가 채워진 듯 하였다. 그러나 참여자들의 주장이 멀리 빗나간 때에 하나님께서는 취급 주제에 관하여 EGW의 마음을 열게 하셔서 성경 본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게 하고 또 그것을 밝히게 하셨다. 창세기 15장에 관한 이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마음을 여셨다. EGW이 400년 기간을 어떻게 취급하였는지 그 유형을 보면 다음과 같다.∙1894년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가서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떠날 것을 명하도록 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집트에 400년 동안 체류하면서 이집트 사람들에게 종살이를 하였기 때문이다”(RH, 1894년 1월 9일; FE, 287과 동일).
∙1898년 - “큰 어두움과 연기나는 풀무라는 상징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집트에서의 이스라엘의 속박을 계시하셨으며 그 우거하는 시간이 400년이 될 것으로 선포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리라」고 하셨다(창15:14)”(DA, 32).
∙1899년 -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로 내려가 400년 동안 그들이 이집트인들에게 노예상태로 있었다”(MS, 91, 1899).
∙1902년 -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400년간의 우거 후에 이집트에서 끌어내셨다. 그들은 노예로 취급받았으며 심한 압제를 당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그 우상숭배국의 압제에서 그들을 구출하신 역사를 지니고 있다”(일기 1902년 10월 29일, 44:139 미출판).
∙1903년 -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간 속박받은 후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실 것이라고 선언하셨을 때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그의 말씀이 성취되었다”(General Conference Bulletin, 1903년 3월 30일).
∙1903년 -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로 가 거기서 여러해동안 이집트인들의 심한 압제로 고통을 당하였다. 그들이 거의 400년동안 종살이를 한 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놀라우신 권능의 시현으로 구출하셨다”(8T, 207).
∙1903년 - Pacific Union Recorder, 1903년 12월 17일. 8T, 20과 같은 내용임.
∙1905년 - Southern Watchman, 1905년 7월 18일. 8T, 20과 같은 내용임.
c) 적용상 장/단기 체류가 논란이 되고 있는 진술들
∙1880년 - “아브라함은 묵시중에 자기가 죽은 후 자기의 씨,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낯선땅에서 낯선자 되어 400년간 고통을 받을 것을 보았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다음의 약속을 주셨다. 「네 자손은 4대만에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비록 아모리 족속이 우상숭배를 하는 백성이고 포악잔인하였어도 하나님께서는 400년간 당신만이 오직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명백한 증거를 그들에게 주시고자 그들의 생명을 살려두셨다”(ST, 1880년 11월 4일).
∙1890년 - “아브라함이 계시 가운데 자기의 후손 이스라엘 자손이 이방 나라에서 400년동안 나그네가 되리라는 것을 보았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네 자손은 4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창15:16)는 약속을 주셨다. 원래 아모리인들은 우상숭배자들이었으며 저희가 큰 죄를 범하였으므로 전멸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저들을 400년동안 아끼사 저들에게 당신께서 천지의 창조주이시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는 분명한 증거를 주셨다”(PP, 434; ST, 1880년 11월 4일).
위 첫번째 나오는 400년간은 이스라엘의 이집트 우거기간으로, 두번째 나오는 400년간은 아브라함에게 예언한 것과 관련은 되어 있으나 아모리인의 은혜기간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어 있다. 혹자는 이 후자를 단기 체류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d) 일반적 진술들
∙“아모리 족속은 아브라함으로부터 4대까지 아낌을 받았다”(ST, 1880년 6월 10일; 5T, 208).
∙“아브라함으로부터 출애굽때까지의 수세기 기간(a period of centuries)”(PP, 131,281; RH, 1906년 7월 12일; RH, 1906년 10월 18일).
∙“여러 세기(centuries)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 있었다”(PP, 240; PK, 100).
∙“여러해동안,” “아주 많은해동안” 등 이집트 우거가 지속된 기간에 대한 언급들(1SP, 180; ST, 1880년 3월 4일; ST, 1895년 11월 17일; RH, 1906년 8월 16일).
∙이집트 우거는 “길었다(long)”(3SG, 99)등.
4. EGW의 여러 진술들에 대한 통합적 이해
EGW 진술에서 215년 또는 400년(430년)의 진술 어느 한쪽을 취하여 주장하기보다는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891년까지의 EGW의 진술들은 단기 체류기간을 지지하고 있으나 1894년부터는 모두 장기 체류의 연대기를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EGW은 Ussher와 다른 연대학자들의 주장을 따라 단기 체류 견지에 있었으나 1890년대 초에 와서는 장기체류 견지로 연대를 전환하고 있는 듯 하다.
EGW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체류기간을 215년간이라고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EGW은 동 체류기간에 관하여 성경에 나오는 400년이란 표현을 사용하였다(창15:13 참조). 이 400년 기간의 기산점을 아브라함때부터라고 하는 주장이 있으나 EGW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자손들이 400년간 이방에서 객이 되어 압제받는 기간이란 예언적 시각에서 보고 있다. 이것이 EGW의 400년이란 연대 사용의 기본적 출발점이 된다.
EGW은 1864년 “주께서 성취되기 약 4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이것을 나타내 보이셨다”(3SG, 229)라고 하므로 400년 기간의 계시가 예언적임을 분명히 하였다. 위 진술이 EGW의 400년에 관한 첫 진술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 첫 진술 다음에 EGW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한 창15:13,14 예언을 인용하고 있다.
이 첫 진술을 한 지 6년 후인 1870년, Spirit of Prophecy 1권을 출판하였을 때에도 EGW은 동 첫 진술은 수정없이 그대로 하면서 서론적 문장과 창15:13,14 인용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1890년, Patriarchs and Prophets를 출판한 때에는 그 양상이 달라졌다.
“여러 세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예언적 이상으로 나타났던 역사가 그 날 성취되었다.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15:13,14). 사백년이 성취되었다”(PP, 281). 이 표현을 3SG, 229의 문장과 비교하면, “약 400년 전”이 “여러 세기 전(centuries before)”으로 일반화되었고, 또 3SG의 예언적 표현이 성취적 표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성경인용은 3SG, SP, PP 모두에서 같다. 그런데 “400년이 성취되었다”고 새로운 문장이 이전 책과는 획기적으로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400년”은 창15:13,14 인용이 전제된 점에서 애굽에서의 고난의 400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PP는 곧이어서 “그 같은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군대대로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출12:40,41,51; 13:19)란 출애굽사건을 묘사하고 있어 400년 기간이 고난받은 기간으로 출애굽까지 계속됨을 시사하고 있다.
창15장의 400년,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 | 창15장의 400년, 애굽에서의 체류와 압제로 적용 |
1864년 3SG, 229. “nearly”성취. tentative 1870년 1SP, 205. “nearly”성취. 1880년 ST, 11-4-80. 아모리인 심판. 초점: 특히 이스라엘 경험 1883년 SLP, 318. Nero. 아모리인 심판. 1890년 PP, 267. 전환 상기점: 구원이 오고 있음 (PP, 281. 유의점: 압제로부터의 구원) 1891년 ST, 8-24. 두 언약. 430년. |
1894년 FE, 287. 체류. 1898년 DA, 32. 체류. 1899년 MS, 91. 압제. 1902년 일기, 10-29. 체류. 1903년a GCB, 3-30. 압제. 1903년b 8T, 207. 압제. 1903년c 8T, 207. 압제. 1905년 8T, 207. 압제. |
위 대비에서 나타난 점에 비추어 PP, 267쪽과 281쪽의 상충적 진술은 EGW의 사상이 점진적으로 발전된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EGW은 초기에는 267쪽의 입장에서, 후기에는 281쪽의 사상으로 발전된 것이다. 그리하여 1894년 이후에는 장기체류 기사 양상이 현저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초기 사상이 후에 변환발전된 경우는 SLP, 318(1883)에서 아모리인의 은혜기간인 400년 기사가 AA에서는 삭제된 것에서도 나타난다. EGW이 1890년대 이후 임종시까지 430년 이집트 체류기간을 사용하고 있는 점에서 이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W. F. Albright의 사상이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에 달리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1940년대의 사상을 그 최종적 권위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894년 - 400년간 그들이 이집트에 있었다(FE, 287). (체류)
∙1898년 - 우거(체류) 때가 400년이 될 것이었다(DA, 32). (체류)
∙1899년 - 400년동안 그들이 이집트인의 종살이를 하였다(MS, 91). (압제)
∙1902년 - 400년 우거 후 출애굽으로부터(일기, 10-29). (체류)
∙1903a년 -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간 속박 중에 있었다(GCB, 3-30). (압제)
∙1903b년 - 거의 400년동안 그들이 종으로 있은 후(8T, 207). (압제)
∙1903c년 - 1903b와 같음(8T, 207). (압제)
∙1905년 - 〃 (8T, 207). (압제)
위 진술들은 모두 한결같이 애굽에서 받은 압제와 고난의 400년 기간을 말하고 있다. 즉 체류와 압제란 두 단어로 요약하는 기간이다.
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EGW의 저술에는 출애굽기 12:40의 430년 기사가 출애굽 주제와 관련되어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CD-ROM에는 EGW의 430년 기사가 3회 나온다. 그 모두는 PP의 부록에 나오고 있다. 부록은 EGW의 저술이 아니다. 다만 1891년 8월 24일자 Signs of Times에서 430년을 언급하고 있으나 이것은 두 언약의 비교기사(갈3:17)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EGW이 출애굽기 12-14장에서 광범위하게 인용하면서 출애굽사건을 묘사하고 있는 중 3SG, 230에서 12:38을 인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인용은 1SP, 205,206에도 있다. 그러나 430년 기사가 출애굽사건과 관련하여서는 나오고 있지 않다. EGW은 PP, 281에서 400년이 성취되었다고 하고 있다.
400년과 430년의 차이에 관하여 성서학자들은 논란을 거듭하여 왔다. 30년의 차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들어간 첫 30년의 압제가 없었던 기간이라고 보는 것이 무난할 듯 하다. 혹자는 예언과 성취 차원에서 예언은 대략의 기간을, 성취는 정확한 기간을 제시하고 있다고도 한다. EGW은 이 문제나 출애굽 연대에 관하여 침묵하고 있다.
성서 연대기에 관련된 EGW의 2,500개의 거의 모두에서 Ussher의 연대기에 일치한 점을 감안할 때, 후기의 장기체류 기간으로의 발전변환은 놀라운 일이다.
B. EGW의 6,000년 연대에 관한 진술들
EGW의 6,000년에 관한 진술은 출판된 자료에 44개가 나타난다. 이 외에 창조부터 그리스도 때까지 4,000년이란 기사가 42회, 창조때부터 출애굽때까지 2,500년이 된다는 기사가 2회 나타난다. 이 모두를 합하면 90개에 가까운 진술이 되는 셈이다(부록A 참조).
오늘날 성서 고고학의 조명으로 보다 더 세부적 정확성을 지닌 성서 연대기와 Ussher의 연대기에 집착한 EGW의 연대기 사이에는 상당부분 상치성 현상이 나타난다(Warren H. Johns, "Ellen G. White and Biblical Chronology," Ministry, 1984년 4월호, 20-23 참조). 만일에 EGW이 Ussher의 연대기에 215년을 가산하였고 다른 모든 점에서 Ussher의 연대를 따랐다면 그의 6,000년 기간은 A.D. 1782년에 마쳤을 것이다.
초기의 대부분의 재림신자들은 Wm. Miller를 따라 사사시대를 제외하고는 Ussher의 연대기를 기본적으로 정확한 것으로 보았다. 1859년 6월 9일자 RH에 기고한 J. N. Loughborough의 글에는 Uriah Smith가 쓴 듯한 각주를 달고 있다.
Ussher의 연대기(우리 성경의 그것)에 따르면, 창조는 그리스도의 초림전 4,004년에 있었다. 이로 보아 세상은 5863년 되었다. 그러나 Ussher의 입장이 사도 바울에 의하여 교정된 곳이 한군데 있다. 그것은 사사시대의 통치기간에 관계된 것이다. 모든 연대학자 들은 이 사사시대 기간 산출이 가장 어려운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Ussher는 사사시대 기간을 300년간으로 잡고 있으나 바울은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450년간) 그후에 선지자 사무엘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행13:19,20. KJV에는 「그후 사무엘 선지자때까 지 450년 기간쯤에 사사들에게 그것들을 주셨더니」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바울은 정확한 연대기간을 말한 것이 아니고 「약」이라고 언급하였다. 이 차이가 Ussher 연대기 에 첨가되면 세상 역사는 지금 약 6,000년쯤 된다.
5년후(1864) EGW의 첫 진술인 “약 6,000년(about 6,000 years)”이 나타난다. Miller는 6,000년이 1843/1844년에 끝나도록 사사시대 기간을 조정하였었다. 이 조정은 솔로몬이 성전터를 놓을 때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지 480년이요”(왕상6:1)이라는 것을 무시한 것이었다. EGW은 이 480년에 관하여서나 사사시대 기간에 관하여는 아무런 언급을 하고있지 않다. EGW은 그러한 연대 논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였다. 그렇다면 6,000년에 관한 EGW의 참된 입장은 무엇인가?
여기서 EGW이 Ussher의 연대기를 따라 이런 진술을 했는가의 여부가 근본적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4,000년과 2,500년 진술은 창조를 4,000년 전, 그리스도의 탄생을 4 B.C.로 보는 Ussher의 연대기에 부합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바탕으로 계산하면 6,000년은 A.D. 1997년에 종료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신봉한 19세기 신자들은 비록 많은 수는 아니라 할지라도 6,000년 끝과 세상 끝을 연계시켰다. 그래서 6,000년 끝에 관한 것은 열띤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1844년에 6,000년에 마친다는 입장을 반대한 사람들은 지질학자와 과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세상이 수백만년 이상 되고 또 앞으로도 수백만년 이상 지속될 것이므로 6,000년설을 가소로운 것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6,000년에 관련된 EGW의 진술은 모두 다음의 네 가지 범주로 구분된다.
1. 한정수식어 사용상의 구분
a) 6,000년이 아직 안 된 것으로 보이는 진술(less than 6,000 years)
“nearly”나 “almost” 등의 용어를 사용한 경우(# 2, 12, 13, 14, 20, 21, 35, 37, 38, 43).
b) 6,000년이 지난 것으로 보이는 진술(greater than 6,000 years)
“more than,” 또는 “over 6,000 years” 등의 용어를 사용한 경우(1886, 1887, 1890, 1900년에 진술한 # 17,18,29,44). 이 진술을 문자적으로 본다면 6,000년은 약 1세기 전에 지나간 셈이 된다.
c) 여유를 둔 진술들
“about”가 사용된 경우.
d) 수식어 없이 6,000년으로 사용한 경우
6,000년 근접으로 보이는 경우
위 네 경우와 관련하여 이집트 체류에 관한 진술에 나오는 것 같은 분명한 유형(pattern)이 있느냐와, 그것에 따라 6,000년이 아직 안되었다는 진술에서(less than 6,000 years) 6,000년이 지났다는 진술로(greater than 6,000years) 전환되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6,000년에 관한 진술들에 상당한 관심을 두고 분명한 유형을 찾아내고자 노력해 왔다. less than 6,000 years가 EGW의 모든 저술에 긍하여 나온다는 점에 비추어 그 유형을 찾기가 어려운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6,000년에 관한 EGW의 최후 진술은 1913년, “거의 6,000년동안의 인간의 계속적 범죄는 그 열매로 질병, 고통, 그리고 사망을 초래하였다”(CT, 467)인데, 여기서는 “거의(nearly)”를 중요하게 여긴다.
2. 두 개의 상반되는 주장들
a) 유형(pattern)을 추구하는 입장
1885년 후 EGW의 6,000년에 관한 모든 원문에는 형용사가 없거나 수식어 more than 또는 over가 나타난다. 1885년 후에 발간된 6,000년 진술로 형용사 nearly를 수반한 모든 진술들은 1885년 이전의 것을 그대로 정확하게 재출판한 것이 아니면 약간의 수정을 거쳐 출판한 것이다. 전에는 이런 점들에 관심을 두지 않고 방치해버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GC의 전신인 예언의 신 4권은 6,000년에 관한 진술이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다(# 13). 그러나 1888년과 1911년판 각시대의 대쟁투에는 6,000년에 관한 진술이 각각 7회씩이나 나온다. 이 일곱 개의 진술들중 5개는 선행 수식어가 나오지 않고 있다. EGW은 당대 지구가 6,000년이 더 되었는지 아니면 덜 되었는지에 관하여 단언하기가 용이하지 않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일곱 개의 진술들중 두 개에는 수식어 nearly가 첨가되어 있다. 그 첫번째는 GC, 518(# 20)에 나오는 것으로 ST, 1884년 5월 8일자의 유사진술(# 12)에서 두어 글자를 고친 것이다(# 12). 여기서 nearly 6,000 years는 1884년의 almost가 이월된 것이다. 그 두번째 nearly 6,000 years의 진술은 GC, 552(# 21)에 나온다. 이것은 예언의 신 4권 (1884)에 나오는 진술(# 13)과 똑같은 내용의 것으로 이월된 표현이다. 이전의 출판물에서 이월된 진술들은 변화된 것 없이 문형 그대로 지속되거나 최소한도의 수정만 된 경향을 보여주고 있음에 반하여 1888년에 시작된 원진술들은 한정사 nearly가 나오고 있지 않다. 이 현상은 최후의 6,000년 진술에서도 마찬가지이다(CT, 467). CT, 467에 나오는 “nearly”라는 형용사는 1875년의 Testimonies, No. 25(# 6) 또는 Health Reformer 1875년 8월호(# 7) 진술에 가필한 것이다. 그러니까 1913년의 이 용례의 원본은 EGW이 세계가 6,000년이 채 못된다고 생각한 1875년까지 소급된다.
여기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nearly 6,000 years를 사용한 1884년과 처음으로 more than 6,000 years를 사용한 진술이 발간된 때인 1886년 사이에 EGW이 6,000년보다 더 오랜 시간 개념을 인정하였을 것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밀러파였던 Sylvester Bliss의 연대기에 관한 작품 Analysis of Sacred Chronology에서 영향을 받은 결과가 아닌가 한다. 1850년에 Joshua V. Himes가 동서(同書)를 처음으로 출판하였고 1887년에는 Pacific Press가 전면 개정판으로 재출판하였다. A. T. Jones는 이 재출판된 개정판에 다방면에 걸친 부록을 달았다. 이 책은 당대 재림신자들 사회에 널리 보급되었다. 이는 Bliss의 연대기에 관한 신뢰도가 높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Bliss의 연대기를 Ussher의 연대기와 비교하면 사사시대 기간에 있어서 115년을 더 가산한 차이를 보여주며, 6,000년이 A.D. 1882년에 끝나도록 고안되어 있었다. 이와같은 일이 EGW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EGW이 4년 후인 1886년 이전에 6,000년이 끝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재림교회 초창기의 연대기에 관한 주된 관심사는 사사시대 기간이 어느 정도나 되느냐에 있었다. 물론 EGW은 이 사사시대 기간에 관하여는 어떠한 언급도 한 적이 없다. 열왕기상 6:1의 480년에 관련된 질문에 대한 무기명 답변(아마도 Uriah Smith의 기사일 것으로 추정됨)에서는 사사시대가 580년간이 될 것을 개진하여 1897년에 표적을 두어 그 때에 6,000년이 마치리라는 암시를 하기도 했다(RH, 1892년 3월 15일). RH 편집인의 통찰이 옳았다면 6,000년이 되자면 5년밖에 남지 않은 셈이었다. 재림신자 사회에 1882년과 1897년 연대가 6,000년이 마치는 해로 보는 일이 성행함과 동시에 1897년 기사로 인하여 밀러파와 그 후계자들 사이에 굉장한 논쟁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혹자는 6,000년이 끝나는 해를 1844년으로, 다른 이들은 1866년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1902년으로 보기도 했다(Dr. Godsmark, “Geology,” Youth's Instructor, 1901년 9월 19일). G. W. Holt는 당시 6,000년이라는 예언적 지계석을 향한 향수나 정서를 두고 이렇게 언급하였다. “복음의 시대가 거의(almost) 끝나가고 있다. 6,000년이 거의(nearly) 지나가고 있다. 여호와의 진노의 큰 날이 가깝고 심히 급하도다. 영광스러운 희년이 곧 시작될 것이다”(RH 1852년 3월 23일, 108). 초기 재림신자들의 지배적 의견은 6,000년이 현 시대를 끝장내는 것으로 본 것이었다. 그 때 EGW은 네 군데서 각기 다른 경우에 6,000년은 이미 과거지사가 되었다고 해, 그것으로 세상 역사의 종말을 한정시켜서는 안될 것을 함축하는 말을 대담하게 서술한 것이다. 1886년 이전 어느 때인가 EGW은 6,000년이 미래에 끝날 것이란 초기의 입장을 수정하며 이미 그것은 지나갔다고 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수정한 정확한 이유는 다 알 수 없다해도 이 수정 사실만큼은 분명한 것이다.
EGW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연대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사슬고리 원칙”에 기초를 두고 EGW의 저술에서 출애굽 연대를 확립할 자료를 탐색하지 못한다면 창조주일 연대도 마찬가지로 EGW의 저술에서 확인할 길이 없다. 이집트 체류기간, 출애굽, 사사시대 기간을 포함하여 최초의 연대기사는 전적으로 모두 후기의 연대의 정확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반론적인 차원에서 사람이 거주한 지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를 그의 영감된 저술들에서 찾는 것은 가능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위 입장은 EGW의 “6,000년” 기사 사용상 1885년을 전후하여 사상적 전환이 있었다는 시각에서 nearly, almost, more than이 연대론적 중요성을 함축하고 있다. 동시에 6,000년 기사를 지구연대 문제와 관련시키는 기사로 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1885년에 이미 6,000년이 지나갔기 때문에 종말론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b) 동의어적 해석 입장
이 입장에서는 EGW이 “more than 6,000 years”라는 표현을 1886년, 1887년, 1890년, 1900년에 사용하고 있어 어느 시기에 한정시키지 않고 들쭉날쭉 사용하고 있다는 점과 1913년에 나타나는 “nearly”의 진술에 비추어 보아 어떤 유형을 구획하기란 지난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이 어휘들은 연대론적 및 종말론적 중요성을 함축하고 있다기보다는 일반적 의미인 동의어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6,000년 기사는 창조주일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 창세기 1장의 창조주일 시간 상정이 대략 가능한 것으로 본다.
EGW의 구체적 자료를 중심으로 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ⅰ) 2,500년 기사들(창조부터 출애굽까지)
별지에 나오는 2,500년에 관한 EGW의 기사는 시간적 한정수식어가 없는 것들로, 창조로부터 출애굽까지의 대략적 연대가 되어보임직 하다. 이 입장에서는 창조는 약 B.C.4,000년 전에, 출애굽사건은 약 B.C.15세기에 있었다고 본다.
ⅱ) 4,000년 기사들
4,000년에 관한 EGW의 진술들은 창조에서 그리스도때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42개의 진술들에서 세 경우만(1874년의 TC, 33; 1874년 RH, 7월 28일자; 1874년 ST, 6월 11일자) “more than 4,000 years(4,000년 이상)”가 나오고 그 외에는 모두 “for 4,000 years”로 되어있다. 한정사가 있는 세 경우는 모두 TC, 33의 내용과 같은 것의 이월이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한 경우밖에 없다. 그러므로 절대다수인 “4,000년동안”이란 점에 해석의 역점을 두어야 마땅하다. 더군다나 1874년 7월 28일자 기사 자체에서도 4,000년 진술이 7회 나오지만 그 중에 1회만 “more than”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more than”에 연대론적 의미가 담긴 비중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ⅲ) 6,000년 기사들
① 한정사 사용 여부에 따른 횟수:
EGW의 44개의 6,000년 진술은 몇 유형들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사용한 경우 - 한정사 없는 29개 진술은 일반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정사 사용 경우 - 15개가 다음 한정사들과 함께 6,000년 진술이 나타난다.
․about 2회
․nearly 9회
․almost 1회
․more than 2회
․over 1회
총 15회
위 한정사중 about은 약(대략, approximately) 6,000년의 뜻, nearly와 almost는 6,000년이 아직 덜 된 의미, more than과 over는 6,000년이 지난 의미이다.
② 대쟁투 시리즈에 나타난 6,000년 기사:
PP(1890) p. 51. “for 6,000 years(6,000년동안)”
p. 52, ʺ ʺ
PK 6,000년 기사가 나오지 않음.
DA(1898) p. 413. “for 6,000 years(6,000년동안)”
p. 413b. ʺ ʺ
AA 6,000년 기사가 나오지 않음.
GC(1888/1911) 서문 “for 6,000 years”
p. 518. “nearly 6,000 years(거의 6,000년간)”
p. 552. ʺ ʺ
p. 656. “for 6,000 years”
p. 659a. “for 6,000 years”
p. 659b. “for 6,000 years”
p. 673. “for 6,000 years”
위 진술들을 보면 “for 6,000 years(6,000년동안”이 9/11로,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 GC의 7회 기사중 5회가 “6,000년동안”으로 나타난다.
③ 어휘 사용의 발전:
∙1864년 - 3SG, 92. “about” ∙1911년 - GC, 서문. “for 6,000 years”
∙1870년 - 1SP, 87. “about” 518. “nearly”
∙1877년 - 2SP, 93. “6,000 years” 552. “nearly”
∙1884년 - 4SP, 371. “nearly” 656. “for 6,000 years”
∙1888년 - GC, 서문. “for 6,000 years” 659a. “for 6,000 years”
518. “nearly” 659b. “for 6,000 years”
552. “nearly” 673. “for 6,000 years”
656. “for 6,000 years”
659a. “for 6,000 years”
659b. “for 6,000 years”
673. “for 6,000 years”
위 도표에서 초기에 사용된 일반적 표현어휘인 about(약)이 후기에 반복되고 있지 않다. 2SP, 93은 이후에는 “for 6,000 years”를 절대다수로 사용하고 있다. 2회의 “nearly”중 1회인 GC, 552의 용례는 4SP, 371의 이월로 보인다. 그러나 GC, 518의 “nearly” 용례는 선행 평행기사가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1888년이나 1911년 GC 출판시까지 이 nearly의 존속으로 보아 1885년에 nearly 사용의 전환이 일어났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1911년판 GC가 1888년판에 대한 정밀검토 교정을 거쳤던 점을 감안하면 nearly란 어휘의 계속 사용의지같은 것을 상정할 수 있다. 이 nearly가 for 6,000 years와 상충된다고 보았으면 삭제되었을 것이다.
요컨대, “6,000년동안”이 EGW의 6,000년 기사의 표준기사가 된다(SLP의 400년간의 아모리인 은혜기간 기사가 창세기 15:13과 조화시키고자 후에 AA에서 삭제된 것과 비교하면 흥미롭다).
④ nearly와 more than 사용의 의미:
EGW의 6,000년 기사중에 나타나는 nearly 6,000 years와 more than 6,000 years의 용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1886년 - HS(재림교회 해외선교의 역사적 개요), 133. “more than”
∙1887년 - ST, 9월 29일. “more than”
∙1888년 - GC, 512. “nearly”
GC, 552. “nearly”
∙1890년 - CTBH(그리스도인 절제와 성경위생), 154. “over”
∙1900년 - Story of Jesus, 183. “more than”
∙1909년 - ST, 12월 8일. “nearly”
∙1911년 - GC, 512. “nearly”
GC, 552. “nearly”
∙1913년 - CT, 467. “nearly”
위 용례로 보면 more than이 nearly에 연대기적으로 선행하여 나타나 상호 모순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EGW이 nearly, more than, over를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조화로운 이해가 된다.
C. EGW의 지구연대에 관한 진술들
6일 창조이래 경과한 기간이 어느 정도 되는지에 관하여 EGW의 6,000년에 관산 진술들은 얼마나 권위가 있는 자료가 되는가에 관하여 의견이 나뉘어 있다.
1. 지구연대 측정불가능론
이미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EGW의 진술들을 통해서 물질창조의 연대를 결정적으로 확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면 아담과 하와의 창조와 그들을 부양한 환경에 관한 대략적 연대를 산출할 수 있는가? 지구연대 문제에 관하여 두 가지 국면이 있다. 첫째는 물질창조 국면이고 둘째는 인간창조 국면이다. 물질창조 국면은 여기 논급에서 제외하고 인간창조 기사를 중심으로 한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하여 선행되는 질문은 EGW의 6,000년 진술들중 그 어느 하나를 가지고 지구연대 논쟁을 해결하고자 사용할 수 있겠느냐하는 것이다.
6,000년에 관한 진술들의 목적과 기능 및 의미가 무엇인지를 먼저 궁구하기 전 이 주제에 관한 44개의 진술들을 일곱 개의 범주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a) 지구연대: # 1, 3, 10.
b) 사단이 기만하고자 자기 가법을 증가시키는 기간: # 2, 8, 9, 14, 17, 18, 19, 36.
c) 인류가 타락, 저하된 기간: # 4-7, 11, 15-16, 28-29.
d) 세상 끝의 임박과 대쟁투의 절정: # 12-13, 20-25, 27, 33, 35, 37-42.
e) 인간에게 천연계 연구를 하도록 주어진 기간 및 천연계가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간: #26, 34, 44.
f) 악의 세력들 아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계속하는 기간: # 30-31.
g)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참고 기다리는 기간: # 32.
위의 일곱 범주중에서 첫째 범주만이 지구연대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머지 6개의 범주를 가지고 지구연대를 논증하는 것은 문맥을 일탈하는 것이다. 첫째 범주는 3SG, 92에 나오는 1864년의 진술 하나뿐이다. 다른 두 개의 진술들은 1864년 진술을 1870년과 1879년에 재출판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1864년의 진술은 EGW이 6,000년에 관하여 기록한 첫번째 출판된 진술에 해당한다. 이 진술의 주 문맥은 세계의 창조, 그리고 지학이 성경, 특히 창조를 재해석하게 하는 영향과 관련되어 있다.
EGW은 3SG, 92의 진술에서 “세계가 지금 약 6,000년쯤 되었을 뿐이라고 한...견해”에 동조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이것은 EGW이 지구연대에 관하여 “약” 6,000년이라고 한 유일한 진술에 해당하는 것이다. 영적선물(SG)은 절판되어 예언의 신으로 대체되었다. 이 예언의 신에서 같은 진술은 축어적으로 재판되었다(1870). 그리고 이 진술은 Signs of Times(1879)에 약간 변형된 형태로 재출판되었다. 그러나 예언의 신 1권에 개정되고 또 부조와 선지자로 흡수되었을 때, 주변의 다른 모든 자료는 살려두면서도 이 6,000년 진술은 삭제되었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1890년에 EGW은 재림교회에서 1880년대에 논쟁점이 된 지구연대 문제를 포함시키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1890년 역시 중요한 해이다. 4년 전(1886) EGW은 6,000년에 관한 입장을 변경시켰기 때문이다. 이제 창조의 실제적 연대는 모호하게 된 상태로 남게 되었다. 그후 재림교인들은 영적선물들과 예언의 신 1권이 절판되고 1879년 하나 남아있는 6,000년 기사가 들어있는 시조의 기사도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지구의 연대에 관한 EGW의 동(同) 진술에 대하여 수십년동안 접하지 못했다. 그래서 1890년 이후 재림교인들은 창조연대를 6,000년과 연계시키는 EGW의 진술을 더 이상 활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중엽 절판된 책들을 재출판하게 되자 다시 문제가 야기되었다. 1960년대 10년동안은 재림교회 학자들이 1940년대 말에 등장한 탄소 연대측정법이 침투하는 것을 막고자 6,000년에 관한 EGW의 진술들을 편집하게 되었을 때, 초기 영적선물들의 진술을 이 침투를 막는 주된 무기로 삼았다. 이 무기의 사용자들은 EGW이 대쟁투 시리즈에서 삭제한 진술이란 것을 간파하지 못했다. 그들은 저자의 최후의 진술을 사용해야 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2. 지구연대 측정가능론
EGW의 저술에는 창조주일전 지구원물질 창조에 관한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EGW의 저술에는 창1장의 창조주일이 약 6,000년 전 지상이란 점을 시사한 기사는 나오고 있다. EGW은 이 주제를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a) 사단의 기만 사역
b) 타락이래 인간의 퇴락
c) 하나님의 구속 사역
앞의 지구연대 측정불가능론은 6,000년 기사중 명시적 창조 언급에서 찾고자하고 위 3개 접근방식을 회피하므로 지질학적 장기간 가능성의 여유를 두고 있다. 그러나 EGW의 6,000년 기사는 ① 인간 타락사건, ② 타락의 영향, ③ 타락과 그 영향에서 인간을 구출하는 하나님의 사역, ④ 사단의 사역을 포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에덴에서 시작, 아담과 하와 창조와 관련된 것이다. 즉 EGW은 위 네 가지가 창1-2장과는 직접관련이 없을지는 모르나, 창3장은 창1장과 연계되어있다고 본 것이다. 고로 6,000년 기사가 창3장으로 소급된다면 1-2장과는 간접관계를 가진다. 창1-2장과 3장 사이의 기간을 ‘X’로 본다면 지구의 역사는 「6,000 + X」가 된다.
범죄하기전 에덴에서의 기간이 어느정도 되는지에 관하여는 알 수 없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이 아벨을 죽이기 전 에덴에서 추방되었다. 그들은 두 아이 탄생 이전에 추방된 것이다. 아담이 130세에 셋이 탄생하였으므로 최소한 100년간이 창1-2장과 3장 사이의 기간을 상정할 수 있어 ‘X’의 값을 100년으로 본다면 지구의 연대는 최소한 6,100년이 되는 셈이다.
Ⅲ. 결 론
지금까지 EGW의 지구연대 산출을 위한 세 가지 주요 자료선을 분석하였다.
첫째로 이집트 체류기간에 관하여는 단기체류에서 장기체류로 수정 전환하였다는 입장이 있고 이에 반대하여 장기체류로 EGW의 사상이 발전되어갔다는 입장이 있다. 어느 입장이든지 결과적으로 장기체류를 지지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Ussher의 연대기 관점에서 215년을 가산하는 형국이 되어 6,000년이 지나간 일이 된다.
둘째로 6,000년에 관한 EGW의 모든 진술을 분석한 결과 Bliss등의 연대기에 영향을 받았거나 또는 다른 이유로 1885년에 큰 획을 긋는 입장의 변화가 있었으며 1879년 이후 EGW은 지구연대에 관한 6,000년 진술을 더 이상 사용치 않았다는 주장과, 이에 대하여 6,000년 기사에는 창3장의 타락사건, 구속사건 등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중요시하여 지구연대를 간접적으로나마 대략 짐작할 수 있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입장에서도 6,000년의 종말론적 그리스도 재림시간 계수에는 반대하고 있다.
◆ 금지된 재림의 시간 계산 ◆
예수께서는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고 말씀하신바 있다. 인간에게는 재림의 날과 때를 알 능력도 권한도 없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기”(행1:7) 때문이다.
EGW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기별이 전파되어야 하고 시기 문제로 인해서 지장을 받아서는 안되며 또한 시기 문제는 결코 시험거리가 되지 않을 것을 나에게 보여주셨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시기에 관한 문제를 전파하는데서 거짓된 자극을 받는 것을 보았는데 사실상 세 천사의 기별은 본래의 주장대로 기별을 고수할 수 있으며 기별을 강화하기 위하여 어떤 시기가 필요한 것이 아님을 보았으며, 세 천사의 기별이 큰 권세로 나아가 그 사업을 완수하고 의에 이르는 지름길이 될 것을 보았다(1SM, 189).
4 B.C.에 예수께서 탄생한 것을 따르면 1996년이 지나는 때는 예수님이 탄생하신지 2,000년이 되는 해가 된다. 창세기 1-7장까지의 연대계산의 불확실성과 애굽에서의 고난과 압제의 400년 기간 이해에 따라 그 진폭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MT, LXX, ST의 연대기적 계산을 감안하면 6,000년이 이미 지나가, 그 종말론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때 두때 반때가 끝나는 1798년과 정한 때 끝인 1844년 이후에는 더 이상 남은 때가 없다(“시간(chronos)이 다시 없으리니,”(계10:6)하단 난하주 참조).
※ 참고.
Harold G. Coffin / Robert H. Brown, Origin by Design (Hagerstown, MD: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n., 1983), 291에 나오는 “세계 연대에 관한 성서적 투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기 간 | MT | ST | LXX |
1996년 현재 세계의 기간 홍수 전 세계 기간 방주기간 창조-1996년까지의 기간 |
4518년 1656년 1년 6175년 |
5108년 1307년 1년 6416년 |
5398년 2262년 1년 7661년 |
창조주일은 약 6,100년 전부터 7,600여 년 사이에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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