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5장에 나오는 언약체결

창세기 15:1-21

창세기 15-17장은 12장에서 시작된 아브람 언약이라는 대 주제의 발전을 담고 있다.

 

I. 승전 후 아브람의 내적 고투

인간 세상에서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 아닐까? 평화주의를 주장하지만, 원수가 안식일에 갑자기 쳐들어와 살육을 감행하고 재산을 강탈해 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전쟁과 평화 주제는 많은 문제를 야기하여 왔다.

아브람은 전쟁을 치룬 다음에 심한 내적 동요를 겪는다. 싸움에서 맞은 자도, 때린 자도 고통당하기 마련이다.

 

아브람은 기쁨으로 그의 장막과 양떼에게 돌아왔으나 그의 마음은 괴로운 생각들로 불안하였다. 그는 가능한 한 원한과 싸움을 피하는 평화의 사람이었다. 그는 두려움으로 자신이 목격하였던 학살 장면을 회상하였다. 그가 쳐부순 군대들이 속하였던 민족들은 틀림없이 또다시 가나안을 침략하고자 할 것이며, 자신을 그들의 복수의 특별 목표로 삼고자 할 것이다. 그와 같이 민족 간의 전쟁에 휩쓸리므로 그의 평온한 생활은 깨어질 것이다. 더욱이 그는 가나안 점령을 시작하지도 않았으며, 지금은 그 예언의 약속이 성취될 후사를 바랄 수도 없는상황에 직면하였다.

 

II.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의 제1차 대화 계시 15:1-6

(개요) 밤 이상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만왕의 왕의 말씀이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제는 전처럼 의심할 수 없는 확신으로 약속을 붙잡을 수 없다는 불길한 예감에 압도되었다. 그는 그것이 성취되리라는 어떤 구체적인 증거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아들의 선물이 보류되고서야 어떻게 언약의 약속이 실현될 리가 있겠는가? 그가 말하기를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15:1-5 참고)고 하였다. 그는 그가 신임하는 종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아 그의 소유를 상속시키자고 제의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의 아들이 그의 후사가 되리라는 보증을 받았다. 그 때 그는 장막 밖으로 인도되어 하늘에서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을 쳐다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가 이렇게 하였을 때에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말씀이 들렸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4:3).

 

1. 방패와 상급(보상) 약속 15:1 -함께 하심의 약속

하나님께서 환상(vision) 중에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다. 환상은 מַחֲזֶה (makhazeh)이다. 이 환상에는 일종의 신적 현현(theophany)이 수반되었다. 이 특별한 현상은 아브람에게 전에 없었던 새로운 체험이었다. 이로 인하여 아브람은 놀랐을 것이다. 전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들었기 때문이다. 이 초자연적 현상으로 인하여 아브람은 두려워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magen)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5:1)고 하였다. 미래를 염려하고 있는 아브람에게 염려 말라고 하신 것이다. 신자들에게 하나님은 믿음의 방패, 보호의 방패가 된다. magen14:20에서 붙이다,” 넘겨주다의 뜻이.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구원(승전)의 체험을 마겐(방패)으로 삼아 미래의 방패까지 되게 하신다. 지극히 큰 상은 열매의 풍성함을 함축하고 있다. 방패의 약속은 씨-자손의 언약적 약속을 이루시는 일의 전제가 된다. 이 약속에는 늘 함께 하여 주신다(I will be with you)는 보호의 임재 약속이 함축되어 있다. 이 함께하시는 약속은 아브람의 자손에게도 계속되었다(26:3, 4; 28:15; 31:3; 3:12; 31:23; 1:9; 3:7; 7:12; 41:10; 1:8; 1:13 ). 임마누엘 되신 그리스도께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20)고 하여 아브람 언약의 약속의 계속성을 확인하셨다. 하나님이시야 말로 아브람의 미래가 된다는 것이다.

 

2. 아들 탄생 약속 대화 15:2-5

전에 큰 민족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아브람은 자식이 없다고 응답하였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미래 희망이 없는 팔자라고 한탄한 것이다. 그리고 아브람은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15:1-5 참고)라고 하여 자기 질문에 대한 답까지 내놓았다.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상속자로 삼을 것이라고 응답하였다. 그는 신임하는 종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아 그의 소유를 상속시키자고 하나님께 제의한 것이다. 엘리에셀은 경건하고 경험이 많으며 판단력이 건실하고 오랫동안 그를 충실히 섬긴 사람이었다(PP 172).

이런 아브람의 도전적 반응에 대하여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네 몸에서 나온 씨가 상속자가 된다고 보증하셨다(15:4). 이는 네 몸에서 날 자는 메시아적인 약속으로 발전된다. 이 대화에는 아브람의 내적 불신 내지 의심 동기와 하나님의 보증이 대비되어 있다, 믿지 못하는 아브람과 하나님의 보증이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하늘의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고 하셨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상기시키셨다.

 

3.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 15:6

15:6에는 대 전환점이 되는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라는 반전이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메시아적 환상을 말씀하신 것은 아브람의 미래에 대한 믿음으로 나타난 것이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들을 보여주시면서 하신 약속을 믿었다. 15:6은 신적 수동태로 나타난 문장 구조이다. 이 믿음은 감성적 믿음도 메마른 지적 동의도 넘어선 믿음이다. 그것은 신조에 대한 동의를 넘어선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역사적-관계적인 것이다. 믿으니라는 단어의 어근은 동사 아만(‘aman)이다. 기본어근 아만은 '확실하게 하다, 지지하다, 기르다, 충실하다, 신실하다, 신실하다(be faithful), 믿다, 신뢰하다'를 뜻한다. 파생어 아멘(진실로 verily)은 신약성경에서 아멘이란 말로 받아들여져서 오늘날의 영어 단어 'amen'이 되었다. 어근의 기본적인 개념은 '확고함'(firmness)이나 '확실성'(certainty)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후손들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다. 아브람에게는 선천적으로 아무 의로운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의로 여기시고 의롭다고 하신 것이다. 요컨대, 의는 관계 용어가 된다.

의의 주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 이 의는 인간의 의가 아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역사(, 공로)가 의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셨다”(yekhasheb)는 신적 수동태(niphal)로 인간의 무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레위기 7:1817:1-4에서 reckoned, imputed로 번역되어 칭의의 구약적 근거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믿으니를 체다카(צְּדָקָה tsedaqah)로 여기셨다. 체다카는 하나님의 '의로움, 공의, 의로운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체다카는 하나님의 신적 자질이다. 이것을 사람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기본 원리를 아브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으로부터 보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람과 체결한 은혜 언약은 구원의 전역사 과정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사도 바울의 복음 이해의 주축이 되었다.

아브람의 믿음 이야기(15)는 성경상의 구원의 믿음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보증을 담고 있다. 하나님의 행동의 순서가 의미심장하다. 하나님은 먼저 약속을 믿는 믿음을 인해 아브람을 의롭게 여기셨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주께서는 하늘의 셀 수 없는 별을 가리키며 그의 약속의 예증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5)고 하셨다.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아브람을 두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모델로 삼았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을 위한 믿음의 의의 모델이 된 것이다. 바울은 아브람과 체결한 언약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구원에 연관시키고 있다.

 

만일 아브람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4:2-4).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람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4:23-24).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람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람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람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3:6-9).

 

이 약속들은 아브람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람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3:16-18).

 

III.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의 제2차 계시 대화 15:7-21

1. 아브람에게 제물 준비 지시

이 단계에서는 땅 제안(7), 지시(9), 하나님의 주도권과 사랑의 순종(13-15), 언약의 비준 의식((17)이 나온다. 주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언약적 연대의 장엄한 비준을 위해 동물 희생을 준비하라고 명하셨다. 아브람은 자기 문화에서 언약을 체결할 때의 관행을 따라 동물들을 두 조각으로 나누어 각각 반대편에 나열하였다(15:8-10).

2. 아브람의 표징 간구

아브람은 아직도 자신의 믿음을 확증해 주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목적이 성취되리라는 사실을 후세대들에게 증거해 줄 눈에 보이는 어떤 표징을 간구하였다. 주께서는 자신을 낮추시어 당신의 종과 언약을 맺기로 하시고 엄숙한 계약의 비준(批准)을 위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행하여지던 형식을 채택하셨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아브람은 각각 3년 된 암소와 암염소와 숫양을 희생으로 드리고, 그것들을 쪼개어 그 조각들을 조금씩 떼어 놓았다.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는 쪼개지 않고 그대로 드렸다. 아브람은 제물 사이로 지나갔다.

3. 땅의 약속과 자손 약속 발전

아브람과 하나님 사의 대화는 자손 약속으로부터 땅에 관한 주제로 바뀐다. 그것은 아브람의 자손이 유업으로 받을 땅이다. 땅에 관한 그의 약속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 때 아브람은 그가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所有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15:8)라고 물었다. 이 아브람의 질문은 불신이나 의심의 징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기 원하는 간절한 염원의 표현이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공식적인 언약 체결 의식을 이행케 하심으로 답하셨다. 이제 하나님의 약속은 새 언약 즉 아브람 언약에 통합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는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12:7; 13:16; 15:18; 17:8에 반복)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손에 대한 약속을 가나안 을 위한 약속과 연결시키셨다.

사도는 아브람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4:13)고 한다.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다는 것을 성경은 명백히 가르친다.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사람들은 아브람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3:29; 벧전 1:4)을 이을 자들이 된다.

그 유업은 죄의 저주에서 해방, 정화된 이 지구로 발전된다.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7:7; 37:11)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PP 169).

이 약속은 회복될 낙원에 대한 상징적 서약과 예언적 표상의 기능을 한다. “아브람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선물은 다만 가나안 땅뿐 아니라 온 지구가 포함되었다. 예수님과 바울은 모두 원형적 성취에 있어서 이 약속의 지리적 한계를 제거하고 그 을 확대하여 전 세계를 포함시켰다(5:5; 4:13 참조). 맥코미스키(T. McComisky)마치 아브람의 첫 후손들이 땅의 약속을 받은 것처럼, 그의 미래의 후손들은 언젠가 평화의 왕이 정복한 세상을 아브람의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고 적절하게 결론을 내렸다.

 

4. 약속 성취 지연 이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명백하게 지연된 데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첫째, 아브람의 씨가 나라를 받을 수 있는 지점에 이르도록 증가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다. 둘째, 아모리 족속을 멸하고 그들의 나라를 빼앗는 때가 올 때까지 은혜의 기간을 연장해 주어야 했다. 이는 아모리 족속이나 다른 족속들이 하나님을 불공정하고 편파적이라고 비난할 근거를 없도록 한 배려였다. , 아모리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그들에게 은혜의 날을 연장해 줄 것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5. 하나님의 임재

사람들과 더불어 세우신 하나님의 이같은 언약의 보증으로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연기 나는 풀무와 타는 횃불이 쪼개진 희생 제물 사이로 지나가며 그것을 모두 태웠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음성이 아브람에게 들리며 애굽 강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까지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실 것을 확증하셨다. ”(부조, 137)

아브람과 그의 아내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데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었다. 아브람은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낳을 수 없었다. 엘리에셀을 입양하여 양자로 삼기도 하고, 여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기도 한 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을 성취하는 데 무엇인가 공헌하려는 인간적인 노력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적 시도들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사라로 하여금 자기들의 아들을 얻을 수 있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창조 능력에 의한 것이었다. 아브람 언약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음을 가리킨다. 아브람은 이삭의 탄생이라는 하나님의 기적의 권능을 목도하였다.

 

IV. 아브람 언약 체결 의식 15;9-11

아브람 언약을 개시한 의식은 상징적 의미로 가득 차 있다.

1. 아브람의 영구적 순종 서약

주께서는 자신을 낮추시어 당신의 종과 언약을 맺기로 하시고 엄숙한 계약의 비준(批准)을 위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행하여지던 형식을 채택하셨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아브람은 각각 3년 된 암소와 암염소와 숫양을 희생으로 드리고, 그것들을 쪼개어 그 조각들을 조금씩 떼어 놓았다. 이것에 더하여 산비둘기 하나와 집비둘기 새끼 하나를 드렸는데, 그것들은 쪼개지 아니하였다. 아브람은 이 일을 한 후에 영구적 순종을 하나님께 엄숙히 맹세하면서 그 제물 사이를 경건하게 지나갔다. 조심스럽고 끈기 있게 그는 해가 질 때까지 짐승들의 주검 곁에 머물러서 맹금(猛禽)들이 그것을 더럽히거나 뜯어먹지 못하게 하였다. 해질 무렵에 그는 깊은 잠에 떨어졌다. 그리고 캄캄함이 임함으로 심히 두려워하였다(15:7-18). 초자연적 깊은 잠 - 수동적 행위 및 안전을 상징한다. 잠을 자고 있는 동안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 후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는데, 약속의 땅을 즉시 점령하리라고는 기대하지 말라고 명하시며, 가나안에 정착하기 전에 그의 후손들이 당할 고통을 지적해 보이셨다. 위대한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분께서 영광 가운데 오시는 모습을 통해 여기서 구속의 경륜이 그에게 제시되었다. 또 아브람은, 이 땅이 약속의 최종적이요 완전한 성취로 그에게 영원한 유업으로 주어지기 위하여 에덴의 아름다움으로 회복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과 더불어 세우신 하나님의 이같은 언약의 보증으로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연기나는 풀무와 타는 횃불이 쪼개진 희생 제물 사이로 지나가며 그것을 모두 태웠다. 이것은 후에 십자가를 표상하는 번제단으로 이어지는 의식이 되었다. 다시 하나님의 음성이 아브람에게 들리며 애굽 강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까지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실 것을 확증하셨다. ”(부조, 136-137).

 

2. 십자가 대속사 표상

제물들: 3 년 된 암소, 3년 된 암 염소, 3 년 된 숫 양,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 대속죄일에 드린 제물을 예기케 한다(16:3, 5). 비둘기는 너무 적어 그대로 진열하였으나 동물들은 쪼개 진열하였다. 쪼갠다는 것은 죽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제물공여자가 그 가운데로 경건한 심정으로 영원히 순종할 것을 다짐하면서 걸었다. 이러한 행위는 제물공여자와 제물을 동일시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제물이 되어 죽으시는 대속사가 예표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쪼개지는 것을 표상한 의식이었다. 이 의식의 또 하나의 강조점은 하나님이 주도하시고 있다는 점이다.

 

3. 언약의 비준

의식적인 희생을 드리던 날, 아브람은 한 놀라운 현상, 즉 하나님의 보증과 임재의 상징인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비준(문자적으로 자르는”)하는 의미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것을 목도하였다(15:17-18; PP 137). 이 의식에서는 하나님만이 행동하고 계시며, 아브람은 수동적으로 있을 뿐이었다(15:12). 이제부터 심지어 희생 자체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할 때에라도 희생은 언약의 중심이 되었다. 하셀은 이 같은 동물 제의를 언약의 인증행위로 보았다.("The Meaning of the Animal Rite in Genesis 15" JSOT 19(1981):61 ff).

연기 나는 풀무는 애굽 체류의 고통스런 삶을 상징한다.(pp 266). 하나님의 심판이 큰 흑암과 두려움으로 예표되었다(15:12)

 

이 언약 의식의 의미는, 짐승의 희생적 죽음이 상징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그의 약속을 성취시키려는 그의 계획의 조건 없는 확실성을 스스로에게 서약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책임을 스스로 지신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런 개념에서 모타이어(J. A. Motyer)창세기 15장에는 갈보리의 날이 암시되어 있다. 그 때에 그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셨다고 하였다.

4. 쌍무적이면서도 편무적 언약

아브람 언약이 본질적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진행된 편무계약처럼 보이지만, 아브람의 제의 참여로 보아, 록 수동적이기는 하지만 쌍무계약 요소도 담겨 있다. 아브람은 제물을 죽였으며, 제물 사이로 걸었다. 그리고 그는 시체를 먹으려고 달려드는 맹금류들을 쫒았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지시를 이행했다는 사실은, 그가 시체를 먹으려고 하는 맹금류들을 쫓아야만 했다는 사실 가운데 암시되어 있다. 만일 그것들을 쫓아내지 않으면, 동양의 콘도르나 다른 새들은 쓰러진 짐승이 죽자마자 먹기 시작하여 짧은 시간 내에 그것들의 뼈만 말끔히 남기고 만다.

 

V. 정확한 예언 15:12-16

자손들이 이방의 객(거류자, strangers)으로 지내는 삶이 예고되었다. 그 기간은 4400년간이다. 이 예언의 성취는, 실제적으로는 4세기에 걸친 각 세대를 추적해 보아야 한다.

사백 년 동안을 두고 제기되는 질문들이 있다. (1) 이것이 괴로움당하는 기간이냐, 아니면 체류 기간이냐, 아니면 양자 모두냐 하는 것과 (2) 400년은 출 12:40, 41과 갈 3:16, 17430년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재림교회 주석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이해가 둘째 질문에 대한 해결의 열쇠로 보고 풀이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 삼십 년이라고 한 출 12:40의 언급은, 야곱이 들어갈 때부터 출애굽 때까지 히브리인들은 실제적으로 430년을 그곳에서 보냈다는 의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런 의미일 수는 없다는 사실이 3:16, 17로부터 분명해지는데, 그곳에서는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의 언약이 있은 지 430년 후에 시내산에서 율법이 선포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바울이 하란에서 아브람과 체결한 첫 번째 약속을 언급하는 것이라면(12:1~3), 430년은 아브람의 나이 75세 때(12:4)에 시작된다. 그리고 400 년간의 괴로운 기간은 30년 후, 곧 아브람이 105세가 되고, 그의 아들 이삭이 5세가 되었을 때(21:5)에 시작될 것이다(?). 이것은 이스마엘,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이삭)를 핍박한”(4:29; 21:9~11) 즈음이었을 것이다. 아브람을 부르셨을 때로부터 야곱이 애굽으로 들어간 정확한 기간은 215년이었고(참조 21:5; 25:26; 47:9), 430년 가운데 나머지 215년은 히브리인들이 실제로 그곳에서 보낸 기간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출 12:40430년은, 아브람이 부름 받은 때로부터 출애굽까지의, 가나안뿐만 아니라 애굽 체류 기간도 포함해야 한다. 70인역은 출 12:40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체류, 그들이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체류한 기간은 430년이더라.” 이미 지적한 대로 부조들의 시대에는 가나안 땅이 거의 애굽에 의존했기 때문에 애굽 왕들은 가나안을 그들의 땅으로 간주했고, 또 실제적으로 그렇게 언급했다. 18대 왕조 중에, 그 왕들은 팔레스타인과 아람을 함께 지배했는데, 모세가 출 12:40에서 사용한 것처럼, 애굽이라는 말 가운데는 가나안도 합당하게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아브람의 아들 이삭은 이스마엘에 의하여 괴로움을 당했다(4:2; 21:9 주석 참조). 야곱은 그의 목숨을 위하여 에서로부터 도망쳤고(27:41~43), 후일에는 라반으로부터 도망쳤다(31:2, 21, 29). 요셉은 자신의 형제들에 의하여 노예로 팔렸으며, 후일에는 부당하게 투옥되었다(37:28; 39:20). 마침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셉의 죽음 후에 애굽인들에 의하여 심하게 괴로움을 당했다(1:8, 12).

그러나 이런 풀이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다. (1) 400년 기간은 대략적 기간이다. 400년 기간은 4대를 포괄하는 대략적 기간이다(15:16). 당대에 한 세대는 100년간이다. 평균 100년을 살았던 점을 감안하라. 아브람이 이삭 새 세대가 나타났을 때는 100살이었다(21:5). 레위의 4대손이 모세이었다.

(2) EGW1864-1891년 사이에는 단기간(215)으로 적용하였으나, 1894-1904년에는 장기간(400)으로 적용하였다. 400년과 430년의 차이에 관하여 성서학자들은 논란을 거듭하여 왔다. 30년의 차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들어간 첫 30년의 압제가 없었던 기간이라고 보는 것이 무난할 듯 하다.

(3) 혹자는 예언과 성취 차원에서 예언은 대략의 기간을, 성취는 정확한 기간을 제시하고 있다고도 한다. EGW은 이 문제나 출애굽 연대에 관하여 침묵하고 있다.

성서 연대기에 관련된 EGW2,500개의 거의 모두에서 Ussher의 연대기에 일치한 점을 감안할 때, 후기의 장기체류 기간으로의 발전변환은 놀라운 일이다.

 

아브람이 이상적인 꿈을 꾸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의 약속이 실현되기 전 사백년의 기간 동안 일어날 일들을 그에게 선포하셨다(15:12-16). 아브람에게는 장수하다가 평안이 죽을 것을 예언하였다(15:15). 4400년간의 기간 안에는 아직 아모리인들의 죄악이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15:16). 창조주는 아모리 인들이 그들 자신의 시험 기간을 갖도록 허락해 주셨다(15:16). 이는 가나안 족속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의 기간이었다. 아브람은 그의 자손과 땅에 대한 약속이 성취되도록 그 계획적인 지연에 대해 끈기 있게 기다려야만 하였다.

 

F. 연기 나는 화로와 타는 횃불 속에서의 언약 체결 15:17-21

일몰과 어둠 중에 있었던 환상과 신적현현은(5;12) 다시 이어진다. 이제 해는 졌고 완전히 어두워졌다. 불은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이다(3;3-6). 횃불이 쪼갠 제물 사이로 지나갔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언약을 체결하셨다(15:18). 이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의지해야 했다. 이 언약의 성취는 내적으로는 아브람의 믿음과 외적으로 가나안인들의 도덕적 타락과 연관되어 있었다. 일종의 조건화라는 요소가 잠재되어 있는 셈이다. 15;18의 상속자 및 땅에 관한 궁극적 성취는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 내용상 바벨론, 이집트를 포함한 범세계적 인류와 지역적 법위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15:18-21까지는 10 족속의 목록이 나오고 있다. 10은 전체를 아우르는 수이다. 이는 메시야의 원수 세력 전체를 말하고 있다. 따라서 아브람 언약의 완전한 성취는 그리스도의 초림, 십자가를 넘어 재림과 맞물려 있는 형국을 껴안고 있다.

Posted by KAHN0211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7월 10일이 무슨날인지 아시나요?
    https://youtu.be/4ZPwd19hn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