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분별력을 잃은 제사장의 운명
영적 분별력을 잃은 제사장의 운명
레위기 10장
I. 인정과 심판의 대비
두 도시 이야기
레위기 9장과 10은 여러모로 대비된다. 그것은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는 1859년에 발표된 장편 역사소설네 나오는 대비와도 유사하다. 두 도시란 파리와 런던을 가리킨다. 모든 것을 뒤엎어버리고 무분별한 사살로 피바다가 된 파리와 합리적인 통치와 위로부터의 혁명을 성공시킨 대도시 런던 사이를 오가며 전개된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펼친 이야기이다. 즉, 최고의 시대(The best of times)이면서 동시에 최악의 시대(the worst of times), 지혜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면서 동시에 의심의 세기이었으며 빛의 계절이자 동시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2. 레위기 9장과 10장 대비
레위기 9장과 10장은 마치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처럼 축복과 심판이, 빛과 어둠이 대비되어 다가온다. 레위기 9장은 아론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천적 축복의 영광과 불이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반면에 레위기 10장에는 아론의 두 아들들이 향로에 담긴 다른 불로 제사를 드리려다가 거절당한 천적 심판 불이 최악의 어둠의 계절처럼 나온다. 9장과 10장의 불은 레위기 9:24의 제물을 태운 같은 세기나에서 나온 불이다. 같은 불이 승인과 거절을 나타내고 있다.
3. 고위직 제사장들
대제사장 아론과 그 아내 사이에는 네 아들, 곧 나답과 아비후,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있었다(출 6:23). 아론의 장자 나답과 차자 아비후는 모세와 아론 다음 고위직으로 70인 장로들과 함께 시내산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목도한(출 24:1) 위상으로 미래가 기대되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여호와께 특별한 영예를 얻은 그들은 장로 70명과 함께 산에서 그분의 영광을 보도록 허락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범죄가 사면되거나 가벼이 취급될 수는 없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한다면 그들의 죄는 더욱 심각했다. 위대한 빛과 특권에 취하여 방심하거나 부주의해서는 안 된다. 특권 의식으로 죄에 대한 고삐를 풀거나 하나님이 까다롭게 굴지 않으리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린 시절부터 나답과 아비후는 자제하는 습관을 기르지 못했다. 멋대로 하는 습관을 오랫동안 방치한 탓에 가장 신성한 직무의 책임으로도 그 습관의 굴레를 깰 수 없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권위를 존중하도록 교육받지 못했고 하나님의 요구에 성실하게 순종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아들들을 내버려둔 아론의 잘못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 직무를 잘못하여 여호와의 불로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에 셋째 아들인 엘르아살이 후일 아론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되어 레위 족속의 어른이 되었다(출 6:25, 민 20:28).
Ⅱ. 다른 불의 정체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레 10:1).
다른 불의 출처
큰 빛을 받았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처럼 산 위에 올라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빛 안에 거할 특권을 얻었다고 해서 자신은 나중에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안심하거나 또 그렇게 높임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하나님이 엄격하게 벌하지 않으실 거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이것은 치명적인 기만이다. 큰 빛과 특권을 받은 만큼 그 빛에 상응하는 덕과 거룩함을 나타내야 한다(PP 361). 큰 빛을 받은 자는 그만큼 무거운 책임을 맡은 것이다.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향로에 다른 불로 여호와 앞에 분향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번제단의 불이 아닌 회막 뜰에 있는 음식 만드는 화로에서 취한 불을 대용품으로 향로에 담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지시한 방식을 무시한 인간적 대용품 사용이 심판을 자초한 길이 되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다가올 때 존중과 경외심을 지니고 자신이 지정한 방식을 따라야만 한다고 가르치고자 하셨다. 그분은 부분적인 순종은 받아들이지 않으신다. 예배라고 하는 엄숙한 시간에 그분의 지시 사항이 거의 다 이루어진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의 계명 중 일부는 필수 사항이 아니라거나 그분이 자기 요구의 대용품도 받아 주신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PP 359, 360).
2. 오늘날의 “다른 불”
“다른 불”을 두고 엘렌 화잇은 이렇게 지적하였다. (1) 흡연/음주 입술로 설교(절제 65); (2) 세속적인 지식, 즉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혼합지식(부모 440); (3) 부모 권고에 불순종한 결과(3T 294).
3. 음주한 제사장
더 나가서 레위기 10:9은 그들이 음주한 상태에서 거룩한 일을 수행하였다고 한다(참고, Ev 20). 음주한 상태에서 하는 일은 자제력이 결여되기 마련이다. 그들은 당시 회막을 떠나서는 안 되는 기간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포도주와 독주를 거룩한 성막 경내에 반입하였을까? 놀라운 일이다.
(어느 신학도 전도사의 괴로운 고백이 지금도 귀에 들리는 것 같다. 돕고 있는 작은 교회의 장로가 음주 흡연을 하면서 예배를 인도하는데 어찌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다니엘과 세 침구처럼 거룩한 결단이 필요하다,)
4. 바벨론의 독주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7:1-4).
마지막 때 바벨론(계 17-18장)은 배도한 종교 세력을 두고 한 예언적 묘사이다. 큰 바벨론은 그의 음행의 포도주로 세속적, 정치적 권력들과 제휴하는 음녀로 각종 부정하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으로 “외형상의 장엄하고 화려한 모습과 의식”뿐이다. 속임을 당한 것을 깨달은 무리들이 지원을 철회하고 바벨론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일에 가담한다.
이미 1948년 Frédéric Hoffet이 Protestant Imperialism: Considerations on Unequal Destiny에서 미국 개신교 역시 로마 가톨릭을 간접적으로 닮아 가는 프로테스탄트 제국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마지막 하나님의 참 교회는 바벨론 독주에 취한 짐승의 우상 곧 배교한 개신교 단체들의 교회로 전락하여 붕괴되는 길로 나가고 있다.
Ⅲ. 나답과 아비후에 대한 징벌
1.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10:2).
나답과 아비후는 영적 분별력을 잃고 거룩한 책무를 등진 제사장직의 비극적 운명을 보여주고 있다.거룩과 속된 것에 대한 분별을가르쳐야 할 제사장이 그 분별을 못한 것 때문이다.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잠 20:1).
2. 금지 사항(10:6-10)
(1) 모세가 아론과 엘르아살 이다말에게 –슬퍼하지 말라,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 회 막 문에 나가지 말라.
(2)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10:9).
(3)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신성모독, 비속, 불경스러움)과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라.
이미 아론과 그의 남은 아들들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할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술을 마시면 몸이 약해지고 정신이 혼란해지고 도덕적 능력이 떨어진다. 거룩한 일들의 신성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요구 사항들을 무시해 버린다. 신성한 책임을 맡은 사람은 누구나 엄격하게 절제하면서 맑은 정신으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해야 굳센 원칙과 지혜로 공의를 실현하며 자비를 베풀 수 있다.
애당초 술을 마음대로 마시며 부분적으로 취하는 일이 없었다면 나답과 아비후는 그토록 치명적인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는 가장 신중하고 엄숙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부절제하는 바람에 거룩한 직분을 상실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하지 못할 정도로 그들의 정신은 혼탁해지고 도덕적 감각은 둔해졌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두에게 그와 같은 책임이 주어졌다. 어느 시대든지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다음과 같이 엄숙하고 두려운 경고가 주어진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7; 부조, 361, 363).
아론의 아들들에게 일어난 사건은 하나님 백성의 유익을 위해 기록으로 남겨졌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이들은 타락한 욕구를 방치하면 영혼의 섬세한 감각이 파괴되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이성 능력이 훼손되어 신령하고 거룩한 일에 깃든 신성성을 자각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불순종은 짜릿해 보이지만 심각한 죄이다(절제, 149).
아론은 부드러운 사람이었고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그를 택하여 모세의 대변인으로 삼으셨다. 그러나 아론은 집안에서도 단호하게 의를 추구하지 못한 결과 자신의 두 아들이 사망에 이르고 말았다.
물렁물렁한 훈육의 결말을 여기서 볼 수 있다. 아버지의 명령을 존중하고 받들도록 교육받지 못했기에, 부모의 권위를 무시했기에 아론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요구 사항을 분명하게 따라야 할 필요성도 인식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분명한 지시와 반대로 그들은 신성한 불 대신 속된 불을 드려 하나님을 욕되게 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했다. 그분의 존전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죽였다.
“아론은 혹독한 괴로움을 인내와 겸손한 굴복으로 견뎠다. 슬픔과 통렬한 아픔이 그의 영혼을 쥐어짰다. 그는 의무를 등한시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백성의 죄를 담당해야 했다. 그는 가정의 제사장이었으면서도 자녀들의 잘못을 쉽사리 지나쳐 버렸다. 아론은 자녀들에게 순종, 자제력, 부모의 권위에 대한 존중을 가르치고 훈련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했다. 그릇된 방임 속에 자란 그의 아들들은 영원한 것을 귀히 여기는 품성을 가꾸지 못했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론은 자식의 잘못을 내버려두는 그릇된 사랑 때문에 자식들이 하나님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단호한 제재가 따르지 않는 무른 충고, 아들들에 대한 무분별한 애정은 극도의 잔인함이나 다를 바 없었다. 『교회증언 3권』, 293-295
모세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요구는 같다. 오늘날 예배하는 성소에서 찬양, 기도, 강단에서의 진리 말씀 강론 외에 진리가 아닌 것을 가르치거나 세상 노래를 부르거나 이상한 춤을 추는 일은 다른 불들로 제사를 드리는 것과 다른 것과 다름없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는 것이 된다. 더구나 음주나 흡연을 하는 자가 강단에서 예전 집행에 참여하는 것은 다른 불로 성소를 적극적으로 더럽히는 일이 된다. 거룩한 불을 올려야 한다. 마음과 몸을 성별된 자가 예배 제사드리는 일을 주도하여야 한다.
Ellen White 여사가 1870년 위스콘신-미네소타 주 여름 캠프미팅 방문하였다가 설교자의 음성을 계시 중에 들었던 음성으로 알아듣고 “당신은 설교단에 설 자격이 없소”라고 지적하므로 不淨한 설교자는 퇴출당하므로 마치 슈베르트 8번 교향곡처럼 미완성 설교로 끝났다. 설교자가 부정해서는 안 된다.
Ⅳ. 제사장의 위상과 회막에 들어 갈 때의 규례 10:8-11
규례 ->חֻקָּה규정(칙), 법령, 법규, 관습'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제사장을 지극히 높으신 분의 종으로 여기신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야 한다(10:3). 또한 그는 온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한다(10:3). 제사장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을 때 죽음을 불면한다. 모세도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민 20:12-13),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것을 금지당하였다
1.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2.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하라.
3. 부정하고 정결한 것을 분별하라.
“부정하고”는 타메 ṭâmê'로 ‘더러운,’ ‘부정한’을 뜻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87회 나온다(레 5:2, 레 7:19, 레 7:21, 레 11:4-47, 수 22:19, 대하 23:19, 렘 19:13, 호 9:3, 암 7:17, 학 2:13-14 등). BDB (379쪽)은 부정의 의미를 의식적 부정에 국한시키고 있지 않다(2931). 부정한(unclean), 불순한(impure) 더러운(레 11:8) 용례에서 보듯 그 의미가 복합적이다.
1. 윤리적 및 종교적 不淨(우상). 사 6:5 입술의 부정
2. 의식적(ritually) 부정
3. 육체적, 성적 부정(레 13장 피부병; 창 34:5; 겔 18:8; 레 18:28)
나병 같은 피부병 환자는 “부정하다, 부정하다”를 연발하여 부르짖어야 했다. 환자가 접촉하는 것은 부정하고 공기도 호흡으로 인하여 불결해졌다(DA 262). 이 부르짖음은 일반 대중과의 경계를 유발하는 공포와 혐오의 신호가 되었다.
Ⅴ. 제사장이 거룩한 곳에서 먹을 제물 10:12-20
1. 명령: “모세가 아론과 엘르아살, 이다말에게 화제물 중 소제의 남은 것은 거룩하니 누룩 넣지 말고 제단 곁에서 먹되”(레 10:12). 제사장의 소득으로 거룩한 곳에서 먹는 일은 회 중의 죄 담당하는 일이다. 단 곁의 거룩한 장소, 곧 회막 뜰에서 누룩을 넣지 않은 상태로 먹으라는 지시다. 이처럼 누룩(leaven, yeast)이 금지된 것은 그것의 빨리 퍼지는 속성으로 인해 죄의 오염 또는 죄악 그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죄와는 근본적으로 분리된 하나님의 절대 순결하신 모습을 보는 동시에 죄는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함을 깨달 을 수 있다(살전 5:22).
2. 화제: 화제’는 속죄제, 번제 등과 같은 제사의 한 종류가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방법의 하나로 희생제물을 제단에서 불로 태워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총칭한 표현이다.
3. 여호와께 요제나 거제로 흔들어 바치거나 들어 올린 제물은 제사장의 생계를 위한 소득이 된다.
4. “속죄제 드린 염소” 문제(15-16절)
대제사장 아론에게는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 밖에 남지 않았는데, 바로 이들이 일반 제사장이 되어 아론을 도와 제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모세가 속죄제 고기를 찾다가 그것이 없자, 이를 문제시한 것이다.
염소를 속죄제로 사용할 때는 그 피를 성소 안으로 가져가지 않고 번제단의 뿔에 발랐다. 규례에 따라, 그런 경우에는 제사장들이 그 고기를 먹어야 했다(6:26). 그날에 염소는 속죄제로 드려졌으며(9:15), 따라서 그 피는 성소 안으로 가져가지 않았으므로 고기를 먹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따라서 제사의 상징적 의미는 결과적으로 훼손되었다.
모세가 제사장 임직 시 회중의 죄 사함을 위해 속죄제로 드린(9:15-21) 제물의 고기를 아론과 그 아들들의 몫으로 돌려 그들의 양식을 삼도록 하기 위해 찾은 것이다. 제사 규례상 회중의 ‘범죄’를 속하기 위해 드리는 일반 속죄제의 경우, 제사장이 그 희생제물의 피를 성소까지 가지고 들어갔으므로 그 고기는 먹을 수 없었다(6:30). 반면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으로서 첫 직무에 임하는 날, 이스라엘 전 회중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드린 속죄제물은그 희생제물의 피를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이 속죄제의 고기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했다. 희생제물로 바쳐진 고기를 먹는 행위를 통하여 백성의 속죄 사역에 상징적으로 동참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지금 바로 그 속죄제의 고기를 찾고 있었다.
5. 아론의 대답과 모세의 용납(19-20절)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제사장이 그 고기를 먹어야 할 이유가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즉 그 이유 및 목적은 제사장이 여호와 앞에서 중재자의 자격으로 이스라엘 회중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속죄하기 위함이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모세로부터 속죄제물을 먹지 않은 것에 대해 책망을 듣고, 아론이 겸손한 마음으로 진솔하게 변명하고 있는 내용이다. 학자들은 아론이 속죄제물을 먹지 않았던 이유를 다음 두 가지로 유추하고 있다.
(1) 두 아들(나답과 아비후)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도 엄중하여 자신들이 그 제물을 먹음으로써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에는 자신의 성결이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서 먹지 않았다.
(2) 갑작스런 두 아들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마음의 평정을 잃은 비통한 상태에서 감히 성물을 먹을 수 없다는 겸손한 마음에서 먹지 않았다.
여하튼 아론이 그 속죄 제육(祭肉)을 먹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고의로 어긴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이 인정되었으므로 그는 이 문제로 인해 징계를 받지 아니하였다. 인간의 신앙적 행위가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모세가 아론의 진솔한 변명을 듣고 아론의 행위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대제사장의 처신을 묵인해 준 것이다.
Ⅵ. 영적 분별력
오늘날 레위기 제10장이 주는 교훈의 핵심은 영적 분별력 提高에 있다. 이 교훈은 신약성경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엡 4:14).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dokimazo-시험하다)하도록 하라”(롬 12:2).
“단단한 음식(심오한 복음의 진리)은 장성(성숙)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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