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 확인하신 자기 정체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16:13-19).

 

I. 때와 장소

A. 때와 상황- AD 30 세 번째 유월절로부터 AD 30 가을 사이인 여름철 중간 때 쯤, 공중 봉사활동에서 물러나시어 반년동안 주로 제자교육에 전념하시는 상황

그리스도의 봉사의 이 국면은 봄 유월절(6:66) 무렵 가버나움에서 거절당한 때부터 가을 초막절(참조 요 7:2)까지 계속되었다. 예수는 유대 지도자들과 따라다니는 첩자들(7:1)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갈릴리 변방 너머 베니게와 데가볼리에서 이미 수 주일을 지냈다(15:21, 22; 7:31). 그러나 그가 갈릴리로 돌아오자마자 산헤드린에서 임무를 부여받은 첩자들이 예수에게 다시 도전했으며(16:1), 따라서 그는 갈릴리를 떠나 헤롯 빌립의 영토인 율리아 벳새다로 갔다(참조 막 8:22 주석; 222). 그 첩자들은 따라 오지 않았다. 원수들이 없는 지역에서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의식을 가지게 하고자 찾으셨다.

B. 장소 - 가이사랴 빌립보. 팔레스타인 외곽 헬몬산 고산 기슭 지역, 깎아지른 바위와 계곡으로 떨어지는 물소리, 요르단 상수원 지대, 천혜의 자연환경, 주로 이방인들이 거주, 바알신과 아스타르 신을 섬기는 곳 인근에 팔레스타인 북쪽 경계 단 소재, 헤롯이 아우구스투스를 존숭하는 기념관 건축, 16;16에서 교회를 요지부동의 반석으로 비유한 배경

https://image.kmib.co.kr/online_image/2020/0414/612212110014473215_2.jpg

갈릴리호수 북쪽 40km 헤르몬 산 2,814m

예수와 제자들은 율리아 벳새다를 떠나서 북쪽의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을 향하여 또다시 40킬로미터를 여행했다. 이 빌립보는 이두래의 수도이며 갈릴리의 분봉왕(참조 222) 헤롯 안티파스의 형제인 빌립의 관할 아래 있는 곳이었다. 원래는 파네아스(Panea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가이사랴 빌립보는 오늘날의 바니야스(Ba^niya^s)라는 동네와 동일시되어 왔다. 파네아스라는 이름은 양떼와 목초지와 숲의 헬라 신이며 목자와 사냥꾼의 수호신인 판(Pan)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

 

II. 베드로 고백의 진의

본문의 말씀을 RC 측은 교황권 권좌를 위한 근거로 삼고 있으나 본문 어디에도 그런 것을 찾을 수 없다. 본문은 유대와 팔레스타인 배경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계신 하나님,’ ‘시몬 바요나’ ‘음부의 문,’ ‘천국의 열쇠,’ ‘매고 품같은 메타포 그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A. ‘반석에 대한 해석들

1. 세 가지 견해

a. RC-베드로 반석설

본문 어디에도 교황의 수위권을 옹호하지도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무류성이나 다른 사도들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구주께서는 복음 사업을 베드로 한사람에게 맡기지 않으셨다. 그 후에 베드로에게 하셨던 말씀을 반복하시면서 예수께서는 그 말씀을 직접 교회에 적용시키셨다. 그리고 대체로 같은 말씀을 신도 단체의 대표자인 열 두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만일 제자들 중 하나를 다른 제자들보다 높여서 그에게 어떤 특별한 권위를 위임하셨다면 그들이 종종 누가 가장 크냐고 다투는 것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소망, 414)

베드로는 작은 돌(Πέτρος)을 뜻한다. ‘이 반석’(πέτρᾳ) 요지부동의 암석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그리스도 반석 위에 교회 세우겠다는 말씀이다. 앞의 페트로스는 남성이고 예수 그리스도 페트라는 여성이어서 혼동할 여지가 없는데도 RC는 혼동하였다. 그리고는 예수께서 아람어로 말씀하셨다고 둘러댄다. 그러나 성경 본문을 등진 둘러대기에 불과하다.

b. 개신교- 예수 그리스도 반석 위에 교회 세우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가 그리스도 되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는 교회가 반석 위에 세운 교회가 된다. 세상을 휩쓸고 있는 인본주의 홍수가 나고 세상이 아무리 공격해도 요지부동한 교회가 될 것이다.

c. 교부들 - 사도들의 신앙 고백의 돌 위에 교회 세우겠다. 위의 예수 반석설과 같은 범주에 속한다.

2. 교회 메타포로서 건물

a. 예수 - 모퉁이 돌(2:20), 유일한 터(기초)(고전 3;11), 그리스도는 교회의 열쇠가 되는 돌이다. 모퉁이 돌은 건물 전체를 세워주는 역할을 한다. 코너스톤은 건물마다 연결시켜주고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교회는 어떤 압박에도 견디어 내게 하는 응력이 된다. 교회 모든 것은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소망이며 교회 구원이며, 교회 신앙과 표준이 되신다. 그리스도 반석 위에 다른 교회의 모든 것이 세워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의 반석이다(95:1; 참조 신 32:4, 15, 18; 시대의 소망, 413). 그만이 홀로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고전 3:11)이며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4:12)기 때문이다.

b. 사도와 선지자 - 교회의 터(2:20). “(거룩한)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21:14).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교회의 기둥들이 된다(2:9). 12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의 증인들이다. 역사적 예수께서 계속하여 부활하신 예수라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독특한 역할과 보증을 해 준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에서 초기교회 생성하는 일에 있어서 특별한 기여를 하였으며(2), 그 외연을 사마리아 (8;14)와 이방인들에게 (10)까지 확장시킨 큰 일을 한 설교자이었다.

c. 신자들 - 베드로는 모든 신자도 각각 교회의 산돌들(living stones)이 된다고 한다(2;4) 이런 사상은 바울에게도 나타난다(2:21).

 

III. 그리스도의 약속

A. 음부의 권세πύλαι δου - 음부 ᾅδης(hades) 는 무덤(죽음)을 뜻한다. 본문은 지옥문을 의인화 시키고 있다. ‘권세는 힘, 권능을 상징한다. 성문은 도시의 생명 수호 역할을 한다.

B. 천국의 열쇠 - 구원에 관한 지식

천국의 열쇠는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이다(1:12; 17:3; DA 413). 그리스도가 친히 여기서 말한 열쇠는 어떻게 하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관한 지식의 열쇠를 가리키는 것임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참조 11:52). 예수의 말씀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자에게 이요 생명이다(참조 요 6:63).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이다(참조 요 6:68). 하나님의 말씀은 새롭게 거듭나는 경험을 열어 주는 열쇠다(벧전 1:23).

천국은 지금까지 이야기되고 있는 교회, 곧 광의적인 의미에서의 그리스도 교회를 가리킨다. 실로 예수께서는 바른 신앙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장차 세워질 교회에서 어떤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C. 매고 푸는 것- “매고 푸는권세는 그리스도의 온몸 곧 교회에게 주어졌지, 교회 안의 특정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대표자들에게 하늘에서 매인것들을 매며, “하늘에서 풀어진것들을 풀 의무와 특권이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말은 영감된 말씀이 명백히 계시한 것들만을 명하거나 금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이상을 넘어가는 것은 인간의 권위로 그리스도의 권위를 대신하는 것이다. 교회의 징계 조치,

교회는 범죄한 자들을 경고하고 교훈해서 할 수 있는 한 회복시킬 의무가 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잘못은 성실하게 다루라. 위험에 빠진 영혼들을 경고하라. 그들 스스로가 속임을 당하도록 버려 두지 말라. 거짓말과 안식일을 범하는 일과 도둑질과 우상 숭배와 다른 모든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말해 주라. 왜냐하면 일반에 퍼져 있는 메시야에 관한 잘못된 개념이 복음의 선포와 영접을 좌절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시대의 소망, 30, 414, 414, 415; 참조 눅 4:19 주석). 예수의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21:5, 5; 6:15) 때 나타난 것처럼, 사람들이 이러한 선포를 정치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DA 805-806)

 

IV. 메시아의 비밀

1.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 대중들의 인기 영합을 경계한 말씀이다. 예수는 봉사의 마지막 순간 즉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이 있기까지는 자신이 메시야임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기를 피했다. 그분은 결코 자신이 메시야라고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메시아로 널리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1:24, 25) 거듭해서 악한 영들에게 자신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참조 막 1:24, 25, 34; 3:11, 12; 4:34, 35, 41)로 부르지 말라고 명한 것으로 보인다.

2. 제자들의 욕망에 찬 생각들을 잠재우시기 위해서였다. 비록 당시 예수께 대한 신앙 고백이 되어졌다 하더라도 제자들은 아직 예수의 고난받는 메시아 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메시아 도래의 선포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했다.

3. 제자들은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들로서 그들은 스승이 스스로를 나타내신 방법과 한계성 안에 머물러야만 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을 회심케 하고 천국 시민으로 만드는 결정적 요소는 이같은 예수에 대한 믿음과 그분의 뜻에 절대 순복(順服)하는 것이다.

4.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칭호를 빌미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참람죄를 씌어 십자가에 달 것인데 아직 그 시기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V. 예수에 관한 칭호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칭호가 다양하게 나온다. 그 이유는 하나의 칭호로는 전 인격과 전 사역을 모두 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단일 칭호로는 계시된 무한하신 분의 충만함을 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칭호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 안에 연합되어 있다. 혹자는 700여개의 칭호가 있다고 한다.

A. 기본적 시각

1. 모든 칭호들은 그리스도의 선재, 탄생, 공중 봉사, 죽으심, 부활, 승천, 천상 봉사 및 재림 에 이르기 까지 계속적 활동을 하는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모든 칭호들은 상호 연 계 시켜 이해하여야 한다. 따라서 한 칭호의 의미를 이해하자면 전체적으로 다 보아야 한다.

2. 그리스도의 칭호들은 그의 신적인 면과 인적인 면을 포괄하고 있다. , 예수와 하나님의 일치성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인간과의 일치성(동일성)과 불일치성(차별성)을 나타내고 있다.

3. 본문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한 고백은 주 예수에 대한 고백 중 가장 완벽한 것 가운데 하나로서 기독교 신조(信條)의 핵심을 이른다. 이 고백 가운데에 예수의 인성(’그리스도’)과 신성(’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예수의 본질적 신분 등이 담겨 있다. 메시야 및 Kyrios 칭호는 그리스도의 역할과 기능적 차원에서 하나님의 목적 수행에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칭호는 존재론적 차원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4. 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 칭호는 주주 (Lord, kyrios)와 구주(구주 σωτήρ, saviour, deliverer (2;7))되심의 근거가 된다.

B. 메시아 칭호

구약에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은 제사장, , 선지자들이었다(29:29, 30:30, 삼상 16:13, 26:11, 왕상 19:16, 89:20, 45:1). 따라서 예수께서는 대제사장. ,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실 참 메시아이셨던 것이다(1:1, 1:32, 33, 3:22, 23, 4:15, 5:6,10).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행위의 도구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1:18)이다. 아버지의 존재의 어떤 것이 아들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A. Messiah/Christ: 구속 기능적 칭호, 구속자, 구원자

1. 그리스도란 히브리어 마쉬아흐(Massiach)의 번역어이다. 히브리어 마쉬아흐나 희랍어 Christos기름 부음을 받은 분(受油者, the Anointed One)"를 뜻한다. 그 어근은 기름 붓다(to anoint)’이다. 메시야는 하나님 백성들에게 새 시대의 왕국을 열 하나님의 대리자, 구원자로 기다리던 분이었다. 기름부음 받은 분, 메시아 시대 이상적 왕이다.

2. 구약성경은 민족의 구원자. . 제사장, 선지자에게 사용되었다. 이방의 왕 고레스에게도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은 메시아 상을 고난의 종으로 부각하고 있다.

2. Christos는 신약성경에서 500회 이상 나오고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이 칭호를 사용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구약 예언의 성취 곧, 자기 백성들의 영적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대리인이라는 의식을 하였다.

3.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정치적 구원자로 기대하였다. 예수께서는 메시아 되심을 단순히 정치적 측면에서 받아들이려 했던 대중들의 기대를 회피하시기 위해 그러한 신앙 고백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으셨다. 하지만 이제 예수께서는 메시아의 신분과 사역의 특성 및 목적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오류들(14)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메시아가 아닌 고난 받은 종으로 메시아 상, 즉 종으로서 메시아 상을 부각하였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런 바른 신앙 고백 요구하시게 된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9:41).

4. 이 메시야/그리스도 칭호는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칭호이다. 초기교회 제자들에게 이 칭호는 약속된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뜻하였다.

 

5. 그리스도의 부활은 메시야 칭호를 확증하는 사건이 되었다. 부활과 성령 강림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베드로는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2:36)고 선언하였다. 초기교회의 전도 대 주제는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5:42)에서 보듯 예수는 그리스도라이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예수에 대한 고유명사가 되었다.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되었다(1:1).

6. 당대 이스라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들도 구원자 메시아의 오심을 대망하였다. 사마리아 여인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4:25)고 하였다.

 

B. 하나님의 아들: 신성의 존재론적 칭호

이 칭호는 마가가 선호한 칭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 앞에 관사 이 붙어 있는데 이는 예수, 바로 그분이 일반의 기름부음 받은 자들을 능가하는 오랫동안 대망해 오던 구원자, 곧 메시아가 되심을 힘주어 강조하는 표현임과 동시에 그분의 절대 유일성과 초월성을 강조해 주는 표현이다. 이와 더불어 살아계신’(토 조온)이란 내재적 생명이 충만하신’, ‘영원히 생존하시는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1. 기본적 의미 - 예수의 신성에 대한 존재론적 차원에서 명명한 칭호다.

이 칭호는 오직 영원 자존적 존재이신 하나님께만 사용될 수 있는 칭호다(5:26, 살전 1:9). 과거와 더불어 지금과 미래에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신적 탁월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 보이고 있다. 또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 그분의 神性을 강조하는 말로서 그분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보냄 받으신 분(7:28, 29, 8:18,19)이요, 하나님과 하나 되신 하나님의 본체시라는 점(5:17,18, 10:29,30 33)등을 나타낸다. 예수는 종종 사람의 깊은 내심과 그들의 생애의 숨겨진 비밀들을 읽으심으로써 자신의 신성에 대한 증거를 그들에게 주셨다(참조 막 2:8 주석).

2. 십자가 처형으로 정죄한 참람죄 근거가 되는 칭호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근거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난미과 동등으로 삼았기 때문이다(5;18). 예수님께서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 것은, 특수한 의미에서 아들이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만이 그런 특수한 아들,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하셨고, “우리 아버지라고는 하지 않으셨다.

빌라도 법정에서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19:7)고 주장했다. 그만큼 하나님의 아들 칭호주장은 유대인들에게 결정적인 배척 근거가 되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참소를 듣고 초자연적인 존재인 분을 죽이는 일에 더욱 두려워 하였다(19:8). 이는 일찍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하는 시험에서 보듯이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대결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3. 이교도들의 신의 아들 칭호와 차이

헬레니즘 세계의 자연종교에서 신의 아들들과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사이에는 연관성이 없다. 신의 아들이 죽은 후 소생하나 그들은 선재성도 없다. 또한 그 죽음이 구원과 상관이 없다. 우리나라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인의 아들 환웅은 죽은 후 부활이 없다. 바울이 아테네 선교에서 신의 소생을 사용하나 이교도 개념과 다르다. 그들에게는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의 수치와 고난을 당하는 하나님의 아들 구속 사상이 없다.

4. 이 칭호는 그리스도의 생애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할 때 천사가 통보한 칭호다(1:35). 이 칭호는 그리스도의 구속자적 주요 사건에서 반복되고 있다. ,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 받으실 때 하늘 소리로(3:17), 변화산상에서 선포하신 칭호로(17:5)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 (참고, 2:7; 42:1)로 선포되었다. 이 칭호는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참람죄로 비난한 근거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27:43; 참고, 19:7)가 보여주듯 이 칭호 사용에 있다.

이 창호는 로마의 사형 집행관 백부장 (15:39)의 신앙고백으로 이어진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27:54).

5. 인간에게 적용된 하나님의 아들 칭호와 차이점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구약성경 용례에는 천사(1:6; 38:7), 및 왕(삼하 7:14; 2:7), 집합적으로 이스라엘(4:22; 11:1)이 나온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들은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나타내기도 한다(6:2).

신약성경은 구약의 이런 용례들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적 신성을 함축시키고 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3:17).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1:1).

침례자 요한의 증거-“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34).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2:15). 여기서 마태는 호세아 11:1을 인용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는 고백을 수용하시고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6:17)고 신적 계시로 돌렸다(16:17). 공관복음서가 예수께서는 이 칭호를 사용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하셨다(11:27; 13:34)는 점을 밝히고 있지만 요한복음에서 사용 빈도와 농도가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예수께서 이 칭호를 사용하시므로 인하여 원수들은 예수가 아버지 하나님과의 동등성을 주장한다고 비난하였다(5:18).

 

아들이나 독생자라는 표현은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사랑 받는 자. 가장 귀중한 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1:3)을 반사하고 있는 분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하나님의 아들 표현에는 아버지와 같은 신적 속성을 지녔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5:21).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일을 하신다(9:2; 5:24-29). 하나님의 아들 개념에는 신성이나 신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 칭호는 부활의 권능과 연계되어 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1:4). 따라서 부활 이전에는 이 칭호 사용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시비 대상이 되었지만 부활 이후에는 그런 의혹을 말끔히 씻어 냈다고 볼 수 있다.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