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처형일과 수난 주간 일정(試案)

 

I. 들어가는 말

공관복음서는 십자가 처형이 거룩한 주간의 금요일에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혹자는 이런 시각을 요한복음 19:14과 엇갈리는 것 기사처럼 보고 있다. 그러나 개정개역판은 요 19:14을 두고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paraskeue)이요”(19:14)라고 하여 별 문제가 없다. 1세기에 랍비들의 “paraskeue” 사용 용례에 비추어 금요일을 두고 사용한 기술적 어휘라는 점이 밝혀졌다(Gleasen L. Archer, 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 1982, p. 375; 5BC 19:14 주석).

문제가 되는 것은 예수와 제자들이 함께 먹은 마지막 식사 즉 소위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 식사였느냐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 전에 있었다고하며, 따라서 그 식사는 유월절 식사가 아니었다고 풀이한다. 그런데 공관복음서는 그 식사가 유월절 식사였다고 전한다(25:17-30, 14:12-26, 22:7-23).

예수께서는 유월절 하루 전인 13일 밤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였다. 13일 밤은 명절이 시작되는 시간대에 속한다. 그 분은 14일 유월절 양잡는 시간에 표상이 예고한 대로 돌아가셨으며 구속사업을 마치고 안식일에 쉬셨다.

4 복음서 수난 주간 시간대에 속한 만찬 시간을 보는 이 일정 차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NT 시대 시간 계산 방식에 있어서 당대에 상이한 인식 견해들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여야 한다. 로마인들의 계산 방식, 유대주의 내 여러 학파(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들의 시간 계산에 있어서 견해차가 있었다. 또한 당대의 시간 계산 방식은 오늘날 방식과도 다르다. 갈릴리 지방 방식은 유대 지역 방식과도 차이가 있다, 로마인들은 오전 6시를 하루의 시작 시간으로 보았다. 19:146는 로마식 시간 표현이다. 구약성경은 해질 때를 하루의 시작 시간으로 보고 있다(1). 현대에는 자정을 하루 시작시간으로 본다. NT 시대 어떤 집단은 태양력을 사용하였으며, 다른 집단은 태음력을 사용하였다.

 

.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날

A. 현대에는 컴퓨터와 천문 지식을 활용하여 NT 시대의 월삭 시작시간을 측정하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당대 한 달의 기산점이 되는 월삭을 담당 예루살렘의 제사장이 감람산에서 보는 육안 월삭 판별에 의지하였다. 사실상 월삭은 여러 요인으로 인하여 인간의 육안으로 판정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그 분별은 쉽지 않아 월식이 하루 이틀 정도의 차이가 일어날 여지가 있었다. 춘분 측정의 어려움으로 보리 추수 때가 너무 이르면 윤달(아달월)을 추가하는 일이 있어서 십자가 처형이 윤달에 일어날 여지 때문에 현대 천무학의 계산에만 집착할 수 없는 문제점도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성경의 본문에 의지하여 역사적 자료를 판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B. 그리스도 십자가 처형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날을 놓고 다음 3가지 설이 제기되었다.

1. 수요일 십자가설

수요일 십자가설 지지자들은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으리라”(12:40)는 본문에 나오는 밤낮 사흘을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부터 부활에 이르기까지 72시간으로 계산한다. 예수께서 니산월 10일인 토요일에 예루살렘에 가셔서 그 다음 주 화요일에 배신당하고 니산월 14일인 수요일에 십자가에 처형당하였다는 것이다.

이 입장 지지자들은 그리스도께서는 수요일 저녁에 처형되어 안식일 오후 6시 전에 부활하여 72 시간 후인 일요일 아침(사실상 제4)에 부활하였다는 점에 역점을 두고 있다. W. Graham Scroggie가 제기한 방식이다. 이 계산 방식은 마 12:40의 사흘 밤낮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해석한 것이 그 특징이 된다. 이같은 접근방식은 서구화된 시각에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밤낮 사흘은 하루 24시간씩 정확히 만 삼 일간의 정확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해석 방식은 문장 자체에 대한 아집의 소산물에 불과하다. 문맥과 다른 성경절들의 표현 방식, 및 전치사의 용례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결핍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1) 그들은 만 3일을 강조하는 어법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성경 기자들은 꼭 그러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 성경 시대에 하루는 낮()과 밤(어둠)으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삼 일 낮과 삼 일 밤은 단지 삼 일을 말하는 다른 방식에 불과하다. 마태는 예수께서 사십일을 밤낮으로”(4:2) 금식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가는 사십 일”(1:13)이라고 표기한 것에 비추어 두 개의 다른 표현을 사실상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성경 기자들은 정확한 24시간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처럼 그들은 시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구절은 동의어이고 첫 번째는 시간상의 정확한 분량이 아닌 날 수를 강조한 표현 방식이다.

(2)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부활에 대해 모순되는 다른 시간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다. “삼 일 만에(μεττρες μέρας) 살아나리라”(9:31, 10:34, 27:63 참조)에서는 만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μετ메타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사흘에”(27:40, ἐν τρισν μέραις)에서 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위에(on), 안에(in)’를 뜻하는 전치사 ‘ἐν 을 사용하고 있다. ‘ἐν 은 공간적 의미로 안에’, 시간적 의미로 '~, 동안, ~때에' 등을 뜻한다. 더구나 전치사를 사용하지 않은 구절도 나온다(16:213일에 ττρίτῃ ἡμέρᾳ,’ 17:23, 20:19, 9:22, 18:33, 고전 15:4 참조).

또한 사흘 동안에(사흘에)”(26:61)라는 표현에 사용한 전치사 δι디아삼 일 안에’, ‘삼 일 이내에’, ‘삼 일 사이에’(6:2 참조)로 번역될 수도 있다. “만에”(‘후에’)라는 표현은 부활이 넷째 날에 발생했음을 암시하고 있는 듯이 보이나, 다른 구절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 결국 논쟁의 관건에 있는 메타사용 용례 관행에 관하여는 이어지는 다음 문제점에서 거론한다. 유대 문헌에서 삼 일 후에라는 구절은 모레를 의미한다.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이해했다. 마태복음 2763절에 따르면,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나서 그분이 셋째 날에 부활할 것이므로 그 무덤을 사흘까지(ἕως 헤오스) 굳게 지키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삼 일 후에는 셋째 날의 어느 시간을 말하며 셋째 날과 같은 말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가 사흘을 삼 일 밤낮으로 말한 곳은 본 절(1240)뿐이다. , 당시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을 삼 일 이내에로 이해했다는 것이다(만나 주석).

(3) 당대 유대인이 관행적인 포함식 계산을 전제로 이해되어야 다른 전치사구들과 조화되는 해석이 된다. 수요일 처형설은 하루 일부를 온 하루로 계산하는 포함식 관행에도 맞지 않는다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New Testament, p. 47).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금요일 십자가설에서 더 살펴보기로 한다.

위에 열거한 다른 표현 양식들에 비추어 보면 72시간이라는 해석은 독단적이다. 그것은 현대적 해석 방식이어서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 시간 표현 관행과는 맞지 않는다.

 

2. 목요일 십자가설

그리스 학자 B.F. Westcott이 주창하였다. 수요일 십자가설과 마찬가지로 마태복음 12:40을 이해하는 일에 있어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은 니산월 10일인 일요일이었다고 본다. 최후의 만찬은 수요일 저녁에 있었고, 니산월 14일인 목요일에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 날인 금요일은 무교절 첫날이어서 안식일이 된다고 보았다. 이런 계산 결과 준비일은 목요일이 된다. 사람들이 금요일에 쉬므로 지동적으로 목요일이 예비일이 된다는 논리를 구축한다. 그러나 수요일 십자가설과 마찬가지로 목요일 십자가설은 같은 문제점이 있어 별로 힘을 얻지 못한 주장이다.

 

3, 금요일 십자가설- 전통적 주장

대부분의 성경학자가 이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세 가지 설중 가장 성경에서 말하는 태도다 입장이다. 그리스도께서 목요일 밤에 유월절 만찬을 경축했다고 본다. 갈릴리 지방에서 하루 전에 유월절 만찬 식사를 하였다. 예수께서는 금요일에 일련의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안식일에는 무덤에 계시다가 일요일 아침에 부활하셨다.

(1) ”3일에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기록이 넘쳐나고 있다(16:21; 17:23; 20:19; 27:64; 9:22; 18:33; 24:7, 21, 46; 10:40; 고전 15:4). 4일에 부활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2)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하루가 24시간이 안 되어도 하루로 보는 관행이 지배하고 있다.

에스더가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하니라(4:16)라고 제안한 것은 단지 첫째 날 저녁부터 셋째 날 아침까지일 수 있고, 36시간을 초과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5:1; 4, 68, 69). 첫째 날 어느 시각 이후부터, 둘째 날 하루 종일과 셋째 날 아침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본문의 문맥에 맞는다. (참조: 42:7; 왕상 20:29; 대하 10:5; 삼상 30:12-13).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으리라”(12:40). 본문은 큰 물고기 배 속에서 구출된 요나의 경험은 곧 예수의 3일간의 묻힘과 3일 후의 부활을 예시하는 예언적 모형이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요셉의 무덤에서 금요일 늦은 오후부터 일요일 이른 아침까지 지낸 시간을 언급하고 있다.

 

(3) 수요일 처형설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유대 문헌에서 삼 일 후에라는 구절은 단지 모레를 의미한다. 마태복음 27:63에 따르면, 유대 관헌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나서 그분이 셋째 날에 부활할 것이므로 그 무덤을 사흘까지(ἕως 헤오스) 굳게 지키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삼 일 후에는 셋째 날의 어느 시간을 말하며 셋째 날과 같은 말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가 사흘을 삼 일 밤낮으로 말한 곳은 마태복음 12:40뿐이다. , 당시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을 삼 일 이내에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4) 포함 계산의 구약 역사적 사례들

삼 일이라는 관용적 문구에서는 하루의 일부분도 온전한 하루로 계산하는 관용적인 표현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구약에서도 유사한 용례가 나타난다. ‘삼 일 밤낮이라는 구절은 삼 일을 의미한다(삼상 30:12, 13). 에스더는 사람들에게 자신과 함께 삼 일 밤낮을 함께 금식하자고 요청했다(4:16). 그런 다음 제 삼일에그녀는 왕 앞에 나왔다(5:1). 이것이 포함 계산이다. ‘삼 일에서는 하루의 일부도 온전한 하루로 계산하여 포함시킨다. 르호보암 왕은 사람들에게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왕상 12:5, 12)고 요청했다. 이스라엘 밖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발견한다. 기원전 8세기에 메소포타미아 왕은 자신이 어느 도시에 당도한 사건을 언급했다. “짐은 아즐라야누 시에서 사흘 동안 기다렸다. 그리고 셋째 날에 그들이 도착했다.” 첫날의 한 부분도, 셋째 날의 한 부분도 삼 일에 계수되었다.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하려면 성경 기자들이 계산한 방식으로 날을 계수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금요일에 돌아가셨고 셋째 날에 부활하셨다.

이미 위에서 지적한 대로 당대 유대인은 하루 일부를 온 하루로 계산하는 포함 표현 관행을 따르고 있다(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New Testament, p. 47). 오늘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4) “예비일이라는 어구는 보편적으로 안식일 전날 금요일을 가리킨다(27:62; 15:42; 누가 23:54; 19:14, 31, 42). 특히 마가복음 15:42“”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라고 분명하게 하고 있어 이론이 있을 수 없다.

 

C. 십자가 처형 달의 날

유월절은 유대인 성력 첫 달인 아빕월 기간에 다가왔다. 포로 기간 중에 아빕월이 니산월로 바뀌었다. 이 유월절은 오늘날 우리 달력으로 3월과 4월 기간에 들어 있다.

(1) 유월절 양은 니산월 14일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에 죽여야 했다. 그리고 해가 진 후 먹어야 했다(12) 예수께서는 오후 3시경 죽임을 당했다. 이는 갈릴리 지역 유대인 시간 계산으로는 제9시에 해당된다. 로마 시간 계산 방식도 같아(15:33). 9는 유대인의 시간 단위로 오늘날의 시간과 6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 따라서 6는 오늘날의 정오(12), ‘9는 오늘날의 오후 3시를 가리킨다.

(2) 요한복음 18:2819:36에서 아직 예수께서는 유월절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이미 끝낸 것으로 나와 요한복음 기사와 모순되어 보인다. 복음주의 학자들은 이 모순을 시간 계산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본다. 갈릴리 사람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은 일출 시각이었다. 반면에 성전 권력을 장악한 사두개인들은 일몰을 하루 시작으로 보았다. 이런 시각 차이가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 사이의 시간 인식의 차이로 나타난 것이어서 양자 사이의 모순을 배제할 수 있게 한다.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이라고 하여 두 입장을 하나로 통합시켰다.

 

D.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긴 해

유월절 해당 연도를 컴퓨터와 천문학적 현상을 계산하면 AD 26년과 36년 사이로 잡힌다. 여기에다가 니산월 14일 금요일에 돌아가신 것을 더하는 천문학적 계산으로는 AD 30-33년으로 좁혀진다. 예수께서 공중봉사를 시작하신 때가 30세 쯤이었다(3:23). 그의 공중 봉사 활동기간은 3년 반으로 나온다. 그의 탄생이 4 B.C.로 하면 30세 쯤은 AD 27년이 된다. 다니엘 9:24-27절의 70이레 예언기간 해석에 따르면 그가 십자가에 처형된 해는 AD 31년이다.

 

III. 수난 주간 일정

A. 니산월 7()- 베다니 도착

예수와 제자들은 갈리리로부터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행을 했다. 그들은 요단강 줄기를 타고 남행하였다. 일행은 여리고에 들렸으며 이때 삭개오도 만났다. 일행은 금요일에 베다니에 도착하여 나사로, 마르다 및 마리아의 환대를 받았다.

예루살렘 대제사장 및 바리새파는 예수가 예루살렘 명절에 찾기를 바랐다. 그래야 예수를 체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11:55-12:1). 그들은 체포를 위한 정보제공자에게 은전 30을 준비해 두었다.

마리아가 나병 환자 시몬의집에서 매우 빘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12:2-11).

 

B. 니산월 8(안식일)

예수께서는 친구들과 함께 전통적으로 지켜온 안식일을 준수하셨다. 저녁에 마리아가 나병 환자이었던 시몬의집에서 매우 빘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12:2-11).

 

C. 니산월 9(일요일) 승리의 입성(21; 11; 19; 12)

1. 스가랴 9:9 예언한 대로 예수께서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다. 백성들은 시편 118:25-26의 말씀으로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대를 하였다.

2. 예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하여 공적으로 자신을 메시아로 표명하셨다. 유대인 월력에 따 르면 이날은 니산월 10일이었다. 순례자들은 이날 유월절 양 바치는 일을 확인할 수 있었 다.

저녁에 베다니로 물러가셨다.

 

D. 니산월 10(월요일) - 2차 성전 정결(21; 11; 19)

예수께서는 베다니에 유하시면서 이날 예루살렘에 다시 방문하시다가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고도로 상징적인 행동을 하셨다. 그런 후에 예수께서는 성전으로 가셔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므로 메시아의 권위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베다니로 철수하셨다.

 

AD 31년 니산월 10() 저녁 불법으로 소집된 산헤드린은 유월절 양이 되시는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정죄)하므로 니산월 10일 양 선택이라는 표상적 예언이 정확하게 원형과 만난다. 11:18은 대제사장들/서기관들의 예수 살해 모의(21:46 참조), 11:53은 산헤드린이 예수를 죽이기로 공식적으로 모의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날 저녁에 예수께서는 베다니로 철수하셨다.

 

E. 화요일 논쟁과 비유로 가르치심

무화과나무 말라라진 상태 발견, 성전에서 가르침(성전에서 마지막 날), 논쟁 내용은 예수 권위 근거, 악한 농부와 건축자의 버린 돌, 세금, 부활, 큰 계명, 다윗 자손에 관련된 것이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화를 선언하셨다. 그런 가운데 과부의 정성어린 헌금을 칭송하셨다.

감람산에서 종말론적 강화와 그에 대처하는 10처녀, 달란트, 및 양과 염소 비유를 강론하셨다.

화요일 저녁에 감람산에서 지내고 가롯 유다 배신 음모 결단이 있었다.

 

F. 니산월 12(수요일) - 침묵의 날

전날의 논쟁에 소모하신 것으로부터 쉬시며 친구들 방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약성경에는 이 날 활동에 관한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G. 니산월 13(목요일) - 유월절 준비

1. 유월절 준비, 모든 누룩 제거

2. 저녁 - 유원절 만찬 식사; 유대인 명절 식사 끝에 성만찬 제정

3. 만찬 후 가룟 유다가 예수를 유대인들에게 넘기는 배신(26:14-19)

4. 만찬 후 다락방 강론

5.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13:1) - ‘아시고, εδς’-> εδω의 완료형 분사, 완결적 완료.

돌아가실 때, ἦλθεν ατοῦ ἡ ὥρα”-> ἔρχομαι의 부정과거 능동태

예수께서는 그의 공생애 시작부터 끝낼 때까지 라는 말씀을 자주 언급하셨다. 사역 초기에는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자주 말씀하셨고(2:4, 7:6, 30, 8:20). 사역이 후반기에 접어들자 이제 때가 이르렀음을 언급하셨다(12:23; 17:1). 따라서 예수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늘 염두에 두고, 영원하신 섭리에 의해 미리 정해진 그때를 따라 행동하심으로써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바를 정확하게 성취하여 나가셨다,

내 때가 이르렀다는 어구는 대제사장의 기도문에도 나온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ἐλήλυθεν ἡ ὥρα)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17:1)- 목요일 밤 예수는 다락방에서 시작해 겟세마네로 가는 길에도 계속한 송별 권면을 이 기도로 끝맺는다. 이 기도는 기록된 예수의 기도 가운데 가장 길어서 대제사장의 기도문으로 알려졌다. 이 기도문에 나오는 때가 이르렀사오니(ἐλήλυθεν ἡ ὥρα)”에는 완료형 분사가 나오고 있어서 완결적 완료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그리하여 완결적 완료 시제에 비추어 볼 때 <목요일 밤낮> + <금요일 밤낮> + <안식일 밤낮> = 3일이라는 시각으로 금요일 십자가설에서도 삼일 개념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으나 엄밀하게는 이 접근방식도 포함식 계산의 범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6. 겟세마네 기도(26:36-46)

7. 겟세마네 동산에 체류 중 배신자 가룟 유다의 인도 아래 예수께서는 로마병사들과 성전 군인들에 의하여 체포되심(18:2-12).

8. 날이 새기 전 안나스와 가야바의 예비 심문 재판

 

H. 니산월 14(금요일), 예비일(19:14),

1. 안나스/가야바 예비 심문 재판들

2. 아침 산헤드린 재판들

3. 빌라도 재판

4. 헤롯 재판

5. 빌라도 재판

6. 해골 동산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준비일 처형, 23:54)

7. 정오에 하늘이 어두워지는 초자연적 현상

8. 오후 3다 이루었다선언, 유월절 어린양을 죽이는 표상 성취

9. 아리마데 요셉의 무덤에 매장

 

I. 니산월 15(안식일) - 예수의 시신은 무덤에 안치됨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해 첫 연례 안식일은 니산월 15일로서 주일 안식일(weekly Sabbath)과 겹쳤다. 그래서 이날은 큰 안식일이었다( Leslie Hardinge, With Jesus in His Sanctuary p. 441 ). 이날 예수께서는 무덤에서 쉬셨다.

 

J. 니산월 16(일요일) -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부활 ( 16:9), 엠마오 길

 

. 나가는 말

 

흔히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관심을 끄는 어리석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수요일이냐 목요일이냐 하는 손가락질에 이러쿵저러쿵하지 말고 달을 보아야 한다. 복음서 기자들의 강조점은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있지 않다. 구약 제사제도의 표상이 예기케 하는 원형 성취라는 시각에서 살펴보는 일은 금요일 십자가 시각이 올바르다.

16:9은 그리스도께서 주일 중 첫째 날에 죽으자로부터 살아나셨다고 한다. 요한이 지적했듯이 예비일(19:14)인 금요일에 돌아가셨다. 누가는 십자가 처형 후에 안식일이 왔다고 하고 있다(23:54; 24:1). 이런 전제 아래 십자가 처형일은 (1) 금요일에 일어나야 하고, (2) 빌라도의 통치기간 내(AD 26-36)에 일어나야 하고, (3) 니산월 14일에 비추어 만월 때라야 하는 조건들을 충족해야 한다. 다니엘 9장 예언의 빛에 따라 십자가 처형은 AD 30 또는 31년이라야 한다. 표상적 예언과 다니엘의 9장의 예언의 빛의 대전제 우산 아래에서 밤낮 사흘 동안 땅속이나, “삼 일 만에(μεττρες μέρας) ”를 포함식 독해법으로 풀어내는 것이 성서적이다.

보통 인간들의 경우 죽음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 이 점은 선지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에는 그분의 죽음이 더 중요하다. 그분의 죽음은 구속적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죽음은 그분의 생애 클라이맥스가 된다. 이는 복음서 기자들이 그리스도의 수난 주간에 관한 기사에 큰 비중을 두고 기록하는데 잘 나타나 있다.

수난 주간 기사는 마태복음에 28장 중에서 거의 1/3이 마가복음은 16장 중에서 1/3, 누가복음은 24장 중에서 1/4이 된다. 요한복음은 21장 중에서 1/2의 비중을 두고 기록하였다. 그리스도의 최후 3일 동안의 기사가 1/5을 점하고 있다.

그분의 모든 생애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일의 서문이었다.” (E. White, Fundamentals of Christian Education, 382).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다.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