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운동 선구자들의 종말론적 비유 이해
재림운동 선구자들의 종말론적 비유 이해
I. 재림운동 선구자들의 종말론적 비유 이해
공관복음에 나타난 비유는 '파라볼레(parabolē)'는 어떤 도덕적 영적인 진리를 제시하기 위하여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통상적인 사건들을 사용하여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한 예화, 비교, 또는 유비이다. 고대로부터 비유 해석 원리에 관한 여러 이론들이 제시되어 왔다. 근대에 이르러 아돌프 율리허(Adolf Jülicher)는 예수의 비유(Die Gleichnisreden Jesu) (1857-1938)에서 비유를 두고 오직 하나의 요점을 가지고 있는 비사(比辭, similitude)라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비유는 하나의 대상이나 실체를 묘사하려는 하나의 그림이다. 따라서 비유의 세부적 묘사 사항은 그 자체로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고 비유 그림이 묘사하려는 하나의 요점이나 실체를 위한 배경이나 요점에 색깔을 덧칠할 뿐이다. 비유에는 오로지 하나의 교훈이 잠재되어 있을 뿐이다.
율리허는 1840년대의 대실망이 지난 지 40여년 후 (1888/1889년) 이러한 비유 해석 원칙을 제시하였다. 그의 이 비유 해석 시각이 널리 관심거리가 되거나 수용되었다. 어떤 재림교인 학자까지도 율리허의 시각을 원용하기도 했다. 그것은 이러한 비유 이해 방식이 비유에 대한 알레고리식 이해를 극복하게 하고 ‘부자와 나사로 비유’ 이해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비유 이해는 맞는가? 율리허는 영감 받은 학자가 아니다.
로버트 존스턴(Robert Johnston) 박사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랍비들 비유 325개를 분석 검토한 후 비유 80-90%가 최소한도 두 가지 의미(요점)를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또 다른 비유들은 두 가지 의미 이상이 잠재되어 있다고도 하였다. 이리하여 예수의 비유는 단 하나의 포인트만 잠재되어 있다는 율리허의 비유 이해는 독단적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필자는 그의 비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 오늘날 영미계의 학자들은 율리허의 비유해석 방식으로부터 탈피하는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일찍이 재림운동의 선구자들은 비유에 잠재된 종말론적인 다의적 의미를 부각시켰다. 엘렌 화잇은 <Christ's Object Lesson>에서 이 다의적인 영적 진리들을 영감적으로 잘 풀이하였다.
재림운동 선구자들은 10처녀의 비유, 기다리는 종의 비유 및 혼인예복으로의 비유를 자기들의 상황을 역사화시키는 설명을 하였다. 밀러주의 재림주의자들은 10처녀의 비유에 빗대어서 신랑 되신 예수께서 1844년 봄에 아직 도착하지 않는 것으로 설명하는 근거로 삼았다. 그리고 자기들의 정체성을 비유에 나오는 처녀로, 또한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 25:6)를 밤중소리(외침)로 보았다. 밀러주의자들은 자기들이 다가오는 10월 22일에 영적으로 준비하여 “혼인잔치에 들어가”(마 25:10)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1844년 대 실망 후 재림신도들은 기다리는 종의 비유(눅 12:35-40)에서 지적한 대로 재림신도들은 예수께서 혼인예식으로부터 돌아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혼인예복의 비유(마 22:1-14)에서 혼인예식에 예복을 입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것으로 보았다.
II. 종말론적 비유 개요
예수의 종말론적 비유에는 율리허의 하나의 포인트 그 이상의 영적 의미들이 담겨 있으며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사건들이 함축되어 있다.
1. 10 처녀의 비유(마 25:1-12)
오늘날 재림교회는 신랑의 오심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선구자들의 기치를 이어 받았다. 이 기치를 이어 받은 재림신도들은 소수이었으나 1844년 이후 주류 재림교도들이나 서부 재 림교도들, 그리고 영해파 재림교도들의 빗나간 시각을 따르지 않았다.
a. 10처녀의 비유는 종말론적 비유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1) 예수께서는 재림 준비를 가르치기 위하여 이 비유를 주셨다.
(2) 지연되어 온 신랑이 드디어 도착한다.
(3) 혼인 개시는 재림이 아니다. 혼인예식 시작 후 밖에 남겨 있는 사람들은 아직 살아 있 으며 입장을 호소하고 있다.
b. 1844년 적용 - 신랑은 혼인예식에 가신다. 이 사건은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에서 대제사 장으로 오시는 것이다(단 7:13-14). 여기에는 심판 기간 끝자락에 그리스도께서 왕국을 받으시는 것으로 나온다.
2. 기다리는 종들의 비유(눅 12:35-40)
a. 종말론적 비유가 명확하다.
누가복음 19;11-27에 나오는 므나의 비유 역시 종말론적이며 기다리는 종들의 1844년 이 후의 경험에 적용 가능하다.
(1) 예수께서 재림 준비를 가르치고 있다. 눅 12;36은 마 25;10과 맥락을 같이 한다.
(2)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자기의 충성스러운 종들을 종말론적인 혼인 잔치에 데려가신다.
b. 그리스도께서 깨어 있는 자기 종들에게 하신 약속은 악한 종들의 기대와는 상반된다. 그 약속은 통상적인 비유라고 볼 수 없는 순결한 약속이다.
(1) 종들은 통상적으로 자기 주인들을 섬긴다(눅 17:7-8).
(2) 그리스도는 인류의 종이 되신다(눅 22:27)
(3) 구속 받은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서 잔치를 먹을 것이다(눅 22:30; 계 19:9).
c. 1844년 이후 조사심판 기간에 적용 - 그리스도의 백성들은 1844년에 가신 혼인예식으로 돌아오기기를 지금 기다리고 있다
3. 혼인 예복의 비유 (마 22:1-14)
a. 명백히 종말론적이다.
(1) 복음의 초청은 침례 요한,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1차 초청을, 오순절 때 2차 초청 을, 이방인들에게 3차로 베풀어진다. 초청은 먼저 유대인들에게, 다음에 방인에게로 향하여 베풀어진다.
(2) 초청복음의 초청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것을 거절한다.
(3) 왕은 혼인예식장에 믿음으로 입장한 자들이 혼인 예복을 입었는지를 검사한다.
(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22:14). 이는 10절에서 손님들이 가득한(10절) 사실에 비추어 잔치를 맛본 사람이 소수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스라엘 모두를 먼저 초청했는데, 그들 거의가 거절하여 택함을 입지 못한 비극적인 현 실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b. "동네를 불사른 것“(22;7)에는 최소한도 예루살렘 파멸이 포함된다.
c. 조사심판 기간 적용 - 혼인 예복 왕의 검사 및 기다리는 종들의 준비 태세에 그 강조점 이 있다.
III. 나가면서
마태복음 25:1-10의 신랑의 혼인잔치 입장, 다니엘 7:13의 인자 같은 이가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 앞에 나가는 사건, 다니엘 8:14의 성전 정결 사건, 그리고 말라기 3;1의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사건은 모두 같은 사건들이다.
10처녀의 비유에는 1844년을 중심으로 슬기로운 처녀들, 신랑의 혼인 예식에 임함, 그리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믿음으로 혼인예식에 참석하는 일이 일어난다. 신랑이 오는 사건은 잔치에 앞선다. 신부는 개별적 신자가 아닌 그리스도 왕국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이다(계 21:9-14). 모든 구원 받을 신도들의 총체인 그의 왕국이 된다. 각 개별적 신자들은 혼인 예식에서 손님이 된다. 이들은 순결한 처녀들이고 신뢰 받은 종들이다.
혼인 잔치의 비유에는 조사심판 기간 중에 예복과 기다림, 왕의 검사 및 종들의 준비 태세가 확실하다. 므나의 비유에는 종들에게 보상해 주는 주인의 모습이 나온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주님이 혼인 예식으로부터 돌아오고 기다리는 종들이 잔치에 참여한다. 그러면 다니엘 7:14에 나오는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는 때가 언제인가? 누가복음 19:12~15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손수 나라를 받으려고 먼 나라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귀인으로 묘사된다. 아직 하늘에 있는 동안 성소에서 제사장 봉사를 마치실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나라를 받으시고 자신의 성도들을 위해 이 땅으로 돌아오신다(참조 GC 428; EW 55,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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