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장 안에” (수정)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 6:19-20).
1. “휘장 (카타페타스마, καταπέτασμα)” 용례
히브리서 6:19-20에 나오는 “휘장 안에 (εις το εσωτερον του καταπετασματος, 에이스 토 에소테론 카타페타스마토스)”는 문자적으로 “휘장의 안쪽으로”를 뜻한다. LXX의 유사한 번역이 레위기 16:2에 나온다.
구약성경 70인역 번역의 용례는 다음 세 가지로 나타난다.
(1) 뜰 입구 문을 위한 휘장(출 38:18; 민 3:26)
(2) 첫째 칸 성소 입구의 휘장(출 26:37; 36:37; 민 3:26)
(3) 지성소 앞 휘장 휘장(출 26:31, 33),
2. 의미
6:19 “우리기 이 소망을 가지고 ... 휘장 안으로 들어가나니”는 그리스도인이 가진 소망은 영혼의 닻 같아서 종말론적 구원의 성취가 확고한 것을 풍기고 있다.
여기에 나온 “휘장”의 정체에 관한 이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시각들이 있다.
(1)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설- 非재림교 학자들 중에는 예수께서 승천 후 지성소에 들어가신 것으로 보고 1844년 지성소 봉사를 시작했다는 해석을 비판하였다. 예수께서 승천 후 지성소로 직행하였다는 주장을 펴 온 것은 재림교회 안에서도 파장을 일으켰다.
SDA를 떠난 Albion Foss Ballenger, D.M. Canright, W.W. Fletcher, Desmond Ford 등은 개신교 비평가들의 시각에 동조하여 교단 내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은 “휘장 안에”라는 어구를 70인 역에서 네 번 나오는 (출 26:33; 레 16:2, 12, 15) 경우 항상 지성소를 가리킨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재림교회는 이에 대하여 본문의 “휘장”이 지성소 휘장이라는 주장은 위의 LXX에서 보여 주듯이 세 가지로 번역되고 있어서 지성소 휘장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응수하였다. 그 근거로 본문은 속죄일과 무관한 문맥이어서 무리한 주장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본문의 “휘장‘을 속쬐일 제의라고 보는 시각은 매일봉사와 연례봉사의 이중 제의 구분이나 속죄일 제의라는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고 있는 문맥을 무시하고 있다. 더구나 본문이 위에 나오는 3가지 휘장 중 어느 휘장으로 특정하고 있지도 않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또한 “휘장 인에”가 지성소 휘장으로 보는 시각은 히브리서의 다른 곳에서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을 “둘째 휘장”(9:3)이라고 특정하여 묘사하고 있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더 나가서 “휘장 안에”가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는 휘장을 가리킨다면, 레위기 대속죄일 표상에서 연례 제의를 전제로 한다면, 매일 봉사가 제사장, 중보자로 활동한 표상 단계가 실종되어 버린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승천 직후 지성소에서 그의 심판 사업을 수행하기 시작했다면, 다니엘 8:14의 2300주야 예언 기간을 과거주의 해석 패턴으로 빠지게 된다.
(2) ‘휘장 안에“는 하늘 성소 안의 어느 특정 구역을 지정하지 않고 전체 성소로 들어가신 것을 의미한다는 시각이다. 이 입장에서는 ’에소테론(ἐσωτερον)‘이 명사로 사용되고 있어서 레 16:2의 용법과는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각은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 반차에 따른 왕 및 제사장이 되시는 취임 목적 또는 하늘 성소 봉헌 제의와 연관시켜 풀이한다. Elmer E. Andross는 이를 모세가 성소 봉헌식(개관식)을 위하여 지성소로 들어가셨다고 본다.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제사장에 임명하기 위하여 들어갔듯이 그리스도께서 봉헌 목적 차 전체 멜기세덱 반차에 따라 성소로 들어 가셨다는 것이다. 이 시각은 앞에서 지성소 휘장으로 보는 시각을 결과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그 인정이라고 해도 곧장 중보, 중재 및 심판 사역이라고 보지 않고 천상 성소 봉헌 및 개시라는 기능적 차이로 보고 있다.
앤드로스의 분석은 1844년 10월 23일 하이럼 에드슨이 옥수수 밭에서 스쳐가듯이 본 환상 이래 재림교회가 그리스도의 천상성소 봉사를 이분하여 1844년10월 22일 이전은 성소 첫째 칸 봉사, 그 후에는 지성소 중재 및 심판 활동이라는 단순한 해석을 더 정교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하여 레위기 대속죄일 표상적 제의의 원형이 되는 최후 심판 활동 개시라는 주장의 시작단계를 보다 더 클로스업 시켜 세밀한 구분을 하는 변화가 일어나게 한 물꼬를 튼 것이다.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는 큰 소리와 더불어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이 둘로 찢어졌다. 이리하여 거룩한 임재를 가르는 휘장이 찢어짐은 타락한 인류에게 ”새로운 살길“(히 10:20)이 열렸다는(Signs, 1898. 12.8.) 의미가 부각되어야 한다. 하늘 성소의 기능적 실재론의 시각에서 표상이 원형을 만난 상황에서 앤드로스의 표상적 성소의 지리적 구획에 집착하기 보다는 천상의 전체 성소로 보면서 천상성소에서의 왕과 제사장 취임 및 개관식, 이어지는 중보자로서 봉사, 그리고 1844년의 최후 심판 활동의 기능적 변화를 감지하여야 할 것이다.
(3) “휘장 안으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임재 안으로(존전 앞에) 들어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보여주고 있다. 본문이 영혼의 소망의 닻이 되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신자는 예전 여러 분리 휘장이나 구약의 의식적 율법의 신분적 제제를 받지 않고 “더 좋은 소망”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히브리서 7:19 평행절이 이를 뒷받침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히브리서 10:19-22도 이런 이해에 빛을 더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은 하늘성소로 나아가는 길을 마련해 준다. 그러므로 “휘장 안에”라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히 4;16)있게 된 것이다. 이런 풀이는 앞의 개관/봉헌식 취임 시각을 보완하는 풀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서:
Angel Manuel Rodriguez, "The Sanctuary," Handbook of Seventh-day Adventist Theology (Hagerstown, MD: Review and Herald Publ. Assn., 2000), 416-417.
마빈 모어(Marvin Moore), 재림 전 조사심판의 성경적 기초(The Case for the Investigative Judgment: Its Biblical Foundation) (서울: 한국연합회 선교전략연구소, 2014), 35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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