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소망-몸의 부활

종말 : 2021. 12. 8. 07:24

인간의 소망-몸의 부활

 

<평화스러운 삶에 닥쳐오는 비극>

구태여 실존주의 철학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에덴을 등진 인간은 죽음에의 존재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은 무()의 심연(深淵) 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사람은 흙집에 살며 마침내 티끌로 전락하는 절망적인 존재이다. 인구 많은 성중에서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다(24:12). 어느 날인가 단란하고 평화로운 가정에도 짙은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비극적 사건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비극은 멀리 남에게만 일어나는 일아 아니라 불원간 나에게도 찾아온다는 불안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인간의 희망은 바람과도 같다. 각고의 노력을 기우려 이룬 업적이 한 순간에 날라 가기도 하고, 설령 그 성취와 업적을 간직하고 있더라도 죽는 순간 살아온 삶이 허무하다는 깨달음이 밀물처럼 다가온다. ‘아벨의 비가라고 일컬어지는 전도서는 1-2장에서 가인은 아벨이 된다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가인얻었다는 것을, ‘아벨헛되다는 것을 각각 뜻한다. 권력, 재산, 학식, () 또는 명예를 얻었다는 것(가인)이 마지막 숨결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아벨)으로 비쳐진다. 전도서는 그런 모든 것에다가 인생을 걸만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자기 삶이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는 신체적 신호가 다가올 때는 숙연하여진다. 이런 때에 이르러서야 이간은 진실된 고백과 기도를 드릴 수 있다. 39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 선고를 받은 개혁의 기수 히스기야는 내가 중년에 음부의 문에 들어가고 여년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 나의 거처는 목자의 장막을 걷음같이 나를 떠나 옮겼고 내가 내 생명을 말기를 직공이 베를 걷어 말음같이 하였도다”(38:10-12)라고 하는 기도를 하였다.

<영혼불멸론의 허구>

죽음은 스올의 길, 곧 사망의 방으로 간다(7:27). 죽음은 수면과 같다(13:3; 11:11).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른다(9:5). 그러나 이 죽음 이후의 세계를 영혼불멸론으로 풀이하는 시각이 있어 왔다. 플라톤은 이런 사상을 공화국(The Republic)에서 펼쳤다. 죽음이라는 것을 유폐된 육체의 감옥에서 영혼이 해방되는 친구처럼 보았기 때문에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도 독배를 태연스럽게 마셨다. 이 교리는 1950년대 이래 계속하여 주요한 신학적 이슈로 부각되어 왔다. 하버드대학교는 19554월 프랑스 칼뱅주의 신학자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을 청빙하여 영혼불멸문제에 관한 특별강의를 의뢰하였다. 그는 영혼불멸인가 몸의 부활인가? 신약성경의 증거(Immortality of Soul, or Resurrection of the Body? The Witness of the New Testament)"의 제목으로 강의도 하고 책도 출판하여 그 파장이 컸다. 사도 바울의 몸의 부활 사상과 플라톤의 영혼의 자연적 불멸론은 상호간 어긋나 그 조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그의 결론이었다. 그 어느 하나를 수용하면 다른 하나를 배척하여야 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영혼불멸론자들은 쿨만을 통렬하게 비평하였다. 이런 비평가들은 그 누구도 신약성경으로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였다. 인간은 제 요소(영혼과 육체)의 합성이 아닌 분리할 수 없는 완전한 통일체(unity)이다. 인간의 영적 상태는 신체적, 심리적 상태와 독립하여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혼은 생명력을 가진 몸(animated body)이다. 인간은 마음, 영혼 또는 몸으로 각기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전인적으로 존재한다. 몸을 떠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소위 인간의 영혼과 몸은 불가분리의 관계를 지녔다.

<몸의 부활>

희랍 사상의 영향을 받아 사람이 죽으면 영혼만이 영원하고 육체는 영원히 소멸되어 부활할 수 없다고 하는 사조가 고린도교회에 잠입하여 문제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들은 부활을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혼이 부활한다는 영적 부활로 보았다(2:1; 딤후 2:17-18). 이에 대하여 바울은 몸의 부활 사상을 저들에게 가르쳤다(고전 15:12). 성경은 죽음 이후 몸의 부활의 기별로 차있다. 복음서의 절정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묘사에 있다(28; 16; 24; 20-21). 초기 교회의 복음 선포의 초점은 부활에 있었다(2:24-32; 3:14-16; 4:10; 5:30; 10:39-43). 부활은 바울서신에 있어서도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5:17-19절에서 사도 바울은 신자들이 받은 구원은 주님의 부활과 더불어 일어서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고 주장하였다(17:31; 8:11; 고전6:14; 1:1; 1:20; 2:12).

비평가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문자 그대로 살과 뼈를 갖추고 있는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배척한다. 그들은 초자연적 부활 사건을 입증할 수가 없으며, 원시 전승을 후대에 윤색한 것으로 풀이를 하기도 하고, 톨스토이의 부활에서처럼 정신적 쇄신과 각성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들은 성경의 메시지와는 거리가 멀뿐이다.

<나사로의 부활>

그리스도에 향한 믿음과 사랑이 확고하였던 나사로가 중병에 걸렸다(11:1).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받고도 서두르지 않고 나사로를 죽도록 내버려 두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친구 나사로의 죽음을 두고 우셨다. 그는 인간의 슬픔에 동참하였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여 온 무서운 결과 다가온 각 시대의 모든 슬픔의 무거운 짐이 그의 위에 놓여졌다.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을 앞두고 아벨의 죽음 이래 선과 악의 투쟁이 이어져 오면서 고통과 슬픔, 눈물과 죽음으로 이어진 인간의 운명을 보셨다.

나사로를 병으로 죽도록 허락하시고 이어서 부활시킨 이적 사건으로부터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신성을 명확하게 드러내시었다. “최초부터 있고 빌려오지 않고 다른 곳에서 파생(派生)되지 않은 생명”(DA 530)이 그의 안에 있었다. 그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죽을병이 임하더라도 부활의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확신을 주셨다. 예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신 일로써 자기가 부활의 창시자이심을 선언하셨다. 사망의 열쇠를 잡으신 그는 장차 무덤의 정복자로 서셔서 재림의 때에 무덤을 터뜨려 죽은 의인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낙담하고 실의에 빠진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실의에 빠져 믿음의 시험을 격렬하게 받을 것을 내다보셨다. 인간이 가장 큰 낙담의 순간을 만날 그때 바로 하나님의 도움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인간에게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당신은 만물의 회복자시요 생명과 불멸을 가져올 수 있는 분이시라는 또 하나의 확증을 주신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라고 보아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허무주의 아니면 물질주의주의 전락하기 마련이다. 바울은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며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전 15:32)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다. 성경은 죽음 후에 부활의 때가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부활을 빼면 그리스도교는 없어진다. 부활은 그리스도교의 핵심 진리에 속한다. 부활 이 없는 정의, 자유, 평등, , 진리, 사랑, 인내는 무의미하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의인의 부활을 대표하는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통하여 모든 죽은 의인의 부활에 대한 보증과 구주의 능력이 이를 이루시리라는 확신을 주셨으며 자신의 부활 사건을 통하여 몸의 부활 사상을 확증하셨다. 이 부활의 소망이 인간을 사로잡는 때에 비로써 인간은 죽음이 주는 허무와 공포를 벗어나며 삶을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주님 오시는 날 소망의 부활을 조건으로 하는 수면이며 멸절이다.

 

***다니엘기도회에서 질문하신 분은

<순례자의 여로> 또는 <ockam.kr>에 게시된 글들: “영혼불멸인가 죽은 자의 부활인가?”/ “죽음과 그 이후을 찾아 읽으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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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