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의 비가

단상 : 2012. 3. 8. 11:50

I. <허사가>

20세기 중엽까지 개신교회 집회에서 애창하였던 허사가는 인생을 꿰뚫어 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일부를 소개한다.

1. 세상만사 살피니 참헛되구나
   부귀공명 장수는 무엇하리요
   고대광실 높은집 문전옥답도
   우리한번 죽으면 일장의춘몽

2. 인생일귀 북망산 불귀객 되니
  
일배황토 가련코 가이 없구나
  
솔로몬의 큰영광 옛말이 되니
   부귀영화 어디가 자랑해볼까

3. 홍안소년 미인들아 자랑치 말고.
   영웅호걸 열사들아 뽐내지 마라.
  
유수 같은 세월은 널 재촉하고.
   저적막한 공동묘지 널 기다린다.

4. 한강수는 흘러서 쉬지않건만.
  
무정하다 이 인생 가면 못오네.
   토지 많아 무엇해 나죽은 후에.
   수의 한 벌 관 한개 족치 않으랴.

II.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

성경에는 인생의 일장춘몽을 날카롭게 지적한 메시지들이 많이 나온다.

그 몇 가지를 보자.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대상 29:15).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90:9-10)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벧전 1:24).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

헛되고는 헤벨 (hebel)이다. 헤벨은 창세기 4:2에서 아벨의 이름도 된다.
그래서 전도서를 아벨의 비가또는 가을 낙엽의 노래라고 한다.

가인이란 말은 얻음이란 뜻을 지녔다(4:1 난 하 주).
전도서 2장에서는 토지를 얻고 집을 건축하여도,
세상 쾌락을 얻어도, 재물을 얻어도, 처첩들을 얻어도...
이 모두가 헛되다고 탄식하고 있다.

전도서 음조는 가인(얻음)은 헤벨(헛된)이라는 비창교향곡으로 들린다.

III. 하나님 앞에 나오는 두 유형의 마음

가인의 삶에는 땅을 저주하신 하나님의 처사에 대하여 불평불만으로 가득 찼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반역적이었고,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불순종하였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관, 세계관 및 자기 의()의 신념에 따라 살아갔다.
가인은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만 가지고 왔다. 그는 그리스도의 피의 필요를 느끼지 않고
죄를 고백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필요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가인의 철학, 종교, 역사관, 세계관, 인생관은 헛될 뿐이다.

반면에 아벨은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에 감격하였다. 그는 자기가 죄인인 것을 고백하였다. 죄에 대한 공의의 요청인 죽음이란 형벌은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의 십자가 속죄를 의지함으로 의로워진다는 것을 믿는 표시로서 그는 예표적 희생제물을 드렸다.
아벨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아니면 삶이 의미가 없고 소망도 없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11:4).

하나님께 경배 하는 사람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그 한 부류는 가인과도 같은 경배자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아벨과도 같은 경배자들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당시 성전 예배에 참석한 바리새인과 세리들을 통하여 나타나기도 했다. 가인과 아벨은 종말 때까지 이 세상에 있을 두 부류의 사람들을 대표하기도 한다.

IV. 가인의 폭력적 살인

자기가 만든 인본주의적 신앙 노선이 배척 받은 것을 두고 가인은 분노하였다.
가인의 분노는 반신적(反神的)이었다.
그것은 자기가 일생을 통하여 땀 흘려 얻은 것들이 무의미하다는데서 오는 저항이었다. 하나님은 그를 깨우치신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4:6-7).

BDB라는 히브리어 사전에 따르면 가인이라는 단어에는 이라는 뜻도 들어 있다.
가인이 창을 지닌 폭력적인 사람인 점을 함축하고 있다.
마침내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들판에서 죽여 버렸다.
아벨은 허무도 되지만 도 된다.
창이 숨을 끊어버린 비극적 살인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 가인은 자기의 종주권 박탈을 의식하고
살인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자기 권력을 얻은 자는 적수를 죽여야 자기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 정치판의 살벌한 모습은
결국 종주권을 장악(얻음)하고자 하는데서 오는 칼부림들이다.

그러나 이는 정치계의 현상만은 아니다.
그리스도교계에서도 종주권을 주장하는 작은뿔 권력은
반대 성도들을 무참하게 죽여 왔고 또 죽이려고 획책할 것이다.
가인의 창이 겨누는 대상은 하늘의 숨을 쉬는 양 같은 자들이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자들 중에도 권력을 장악한(얻은) 자는
그 권력의 창(행정)을 맘대로 휘둘러 자기 적수들을 유배 보내거나 목을 조인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그 결말은 항상 Nothing(아벨)이 될 뿐이다.
이런 원리가 아벨의 비가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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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