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통하여 바라다 보이는 나지막한 효자산 한 자락은 우리 집 정원이라고나 할까. 1년 4계절 풍광을 달리 하는 앞산은 하나님의 비디오로 보인다. 이 하늘 비디오는 우리에게 마음의 안식을 날마다 선물한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아침, 창문을 열면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앞산 뒤 높은 산 위에 뭉게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감상하곤 한다. 우리 부부는 거의 매일 앞산을 오른다. 그 오솔길을 따라 오르는 길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걸어간다. 그 길은 때로는 감람산이 되고 때로는 축복의 산이 되기도 한다. 물론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오르지만 우리처럼 <Tree> 같은 노래들을 부르면서 거니는 것을 본적이 없다. 우리는 나무들과 풀들, 야생화들에 마음을 주며 감사와 경이로 찬 마음으로 걷는다. 잣나무 숲에서는 태극기공도 하면서 호흡훈련을 한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만의 세계에서 시련의 언덕을 넘기도 하고 슬픔의 계곡도 건넌다. 그러면서 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그리움으로 쳐다보기도 한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오솔길 여기저기에 천상병(千祥炳 1930.1.29∼1993.4.28) 시인의 시(詩) 게시판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거기 적힌 시들을 읽어보며 시인의 마음을 더듬어 보곤 한다. 그는 1952년 서울대 상과대학 재학 중 [문예(文藝)]지에 데뷔한 후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다가 1967년 7월 동베를린 거점 문인간첩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어렵고 불행한 생활을 하면서 삶의 어두움, 외로움, 죽음 등의 문제를 다루는 시를 많이 지었다. 특히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들을 남겼다.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또는 ‘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으로 불리던 그는 지병인 간경변증으로 고생하다가 아침 식사 도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의정부 송산시립묘지에 묻혔다.
그의 시는 현란하거나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사물을 맑고 투명하게 인식하고 담백하게 제시한다. 시에 배어 있는 순진무구(純眞無垢)성 은 곧 손에 잡힌다. 죽음을 말하지만 허무나 슬픔에 빠지지 않고, 가난이 묻어나지만 구차스러움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선 오솔길 초입에 걸려 있는 귀천을 보기로 한다.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사람은 죽음에의 존재(Sein zum Tode)이다. 그래서 자기의 유한성, 자기 존재의 밑바닥에 잠겨 있는 절망의 무(無)(Nichts) 심연(深淵)을 불안해하며 허탈과 절망에 빠진다.
천상병은 <귀천>에서 우리는 그러한 일반적 태도와는 전혀 다른 한 사람의 모습을 본다. 그는 세 연의 서두에서 똑같은 어조로 말한다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은 물론 죽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죽는다고 말하지 않고 하늘로 돌아간다고 한다. 셋째 연의 말처럼 이 세상의 삶이 마치 한 차례의 소풍인 것처럼 그는 선선히 `돌아가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늘로 돌아갈 때 그가 동반하는 것이란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과 `노을빛' 같은 것들이다. 시인은 언젠가 있을 죽음을 선선히 받아들이기로 한 듯이 보인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삶 속에서 누리는 소유물들에 별로 미련이 없다. 미련이 없으므로 집착이 없고, 집착이 없으므로 죽음을 억지로 피해 보려는 안타까운 몸부림도 없다.
오히려 천 시인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소풍가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삶은 소풍이란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한껏 즐겁게 누렸기 때문에 소풍으로 본 것은 아닐 것이다. 그토록 가난하게, 고통스럽게 살았으면서도 이렇게 삶을 소풍으로 관조하고 있는 점이 놀랍다. 지나온 삶의 자취 속에서 소중한 기억들을 더듬으면서 그래도 자기는 아름다운 한 세상을 살았노라고 고백한 것을 통하여 우리는 지나 온 삶의 괴로움과 회한을 지그시 다스리며 아름다움을 읽어 내는 그의 맑은 눈을 본다. 이 세상의 삶은 하늘에서 잠시 지상으로 떠난 아름다웠던 소풍의 여정이다.
더욱이 그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자기의 순수성을 비친 내적 결심으로 비쳐진다. 죄를 범한 인간은 하늘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어느 누구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기에 하늘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자기 안에 작동한 영감이 이런 고백을 가능하게 하였음직하다. 하늘에서 왔으니 하늘로 돌아간다. 귀천-이 말 속에 자기의 정체성과 목적성이나 사명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렴풋한 일반계시의 빛 속에서 읊은 <귀천>을 통하여 그에게 역사한 영이 가르치는 것은 인간이란 결국 전능자 앞으로 가는 존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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