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ed, Belief 및 Doctrine에 대하여
Creed, Belief 및 Dotrine에 대한 관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는 그 머리말에서 기본 신조(beliefs)와 성경 사이의 관계에 관한 재림교회의 기본적 이해를 다음과 같이 펼치고 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성경을 우리의 유일한 신조(creed)로 받아들이고,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분명한 기본교리(fundamental beliefs)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제시하고 있는 이 교리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교회의 이해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교리(beliefs)들은 교회가 대총회 회기 시 성령의 지도를 받아 성경 진리에 대한 더 깊은 이해에 이르거나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가르침에 대한 더 나은 언어적 표현을 찾아냈을 때, 개정될 수 있을 것이다.”(p. 8).
위 번역문 중 'Creed'와 'Belief' 어휘가 ‘신조’라는 동의어로 번역되어 있다. 또한 'beliefs'를 ‘교리’로도 번역하고 있다. 틀린 번역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본래 함축하고 있는 의미의 뉘앙스에는 차이가 있다. 여기 이글에서는 그것을 밝혀보고자 하는데 있다.
1. Creed, Belief 어의
Creed, Belief는 교회의 신앙 고백 진술이다. 라틴어 ‘credo’는 헬라어 pisteuomen("We Believe") 번역어이다. ‘Credo'는 '내가 ...에 관하여 내 마음을 정하였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이 creed는 신뢰와 충성 및 헌신이 풍기는 어휘이다. 여기에서 ‘belief'는 ’creed'의 변형적 표현으로 보인다.
베라르드 마르탈러에 따르면 ‘믿는다는 것(To believe)’은 ‘소중히 여기는 것(to hold dear)’을 담고 있다. 독일어 ‘belieben’은 ‘선호하는 것(to prefer)’ 또는 ‘충성을 다하는 것(give allegiance to)’을 뜻한다. 혹자는 Belief에서 lief는 ‘dear,' 'willing' 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풀이를 하고 있다. 따라서 belief는 ’기꺼이‘ ’소중한‘ 의미를 풍기고 있다.
‘Belief’는 ‘creed’가 지닌 경직된 이미지를 탈피하면서도 성경 기본 교리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재림교회는 ‘Creed'를 변형시킨 ‘We Believe’에서 ‘We' 대신 <Seventh-day Adventists Believe...28>이라는 표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 표제를 해설하는 <기본교리들에 대한 성경적 詳說(A Biblical Exposition of Fundamental Doctrines)>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러므로 재림교회는 성경 기본교리 해설이라는 시각에서 Belief를 사용하므로 예전의 信經이라는 표현을 탈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본교리와 그 해설이라는 함의를 담아내고 있다.
2. 신앙 규범의 필요성 및 특징
성경의 핵심이 되는 가르침(신앙의 내용, Contents of faith)을 ‘신앙의 규범(rule of faith)’이나 ‘진리의 규범(rule of truth)'으로 요약 정리하여 신앙공동체의 기본적 입장을 나타내는 일은 인간 지성의 요구이며, 어느 시대에나 이 지성적 요청은 이어져 내려 왔다. 이것은 교회가 교리적으로 일치한 입장을 간명하게 천명하여 신자 교육의 지침으로 삼아 그 사명을 다하는 일에 요긴할 뿐만 아니라, 대내적인 이설, 분파 내지 이단의 혼란을 예방, 극복하여 일사불란하게 전진하는데도 필요하다. 또한 교리적 구원의 체계에 있어서 일치하는 일은 사도적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이른바 교회의 보편성과 통일성을 기하는 일에 관건이 된다.
제1세기에는 신앙 규범의 일치성을 추구한 신앙 고백문의 형태가 거의 필요 없었다. 이런 문제가 대두될 때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비하(卑下)와 승위(勝貴)에 관한 빌 2:5-11에서처럼, 또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처럼 재림 임박에 관한 질문에 곧 응답하는 일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전도는 곧 선포하는 것이다(κηρύσσω)(참고, 마 4;17; 막 1;38). 그리고 오순절 때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성령의 강림으로 자기들이 본 것, 들은 것, 및 감지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 내용의 개요(행 2:14-40)를 큰 소리로 선언하였다(apophtheggomai, 행 2:14). 이 선언(kerygma)의 핵심은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에 담겨 있다. 초기교회에서 이 기독론적 선언은 “예수를 주시라”(고전 12:3)는 슬로건으로 압축된다. 이 기독론적 고백이외에도 성경 도처에는 여러 종류의 Credo, 내지 고백, 또는 신앙의 핵심 개요가 나오고 있다(신 6:4-5; 6:21-25; 26;5-9; 딤전 3:16; 고전 15:3-7; 마 28;19 등).
초기 교회 지난 다음 이 케뤼그마 형태의 선언의 신조는 입교를 위한 침례 시문 시 문답 또는 성찬 등 교회 제의 행사에서 고백하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주후 2세기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삼위 하나님에 관한 색다른 입장들이 대두됨에 따라서 제기된 이슈들에 대한 일치된 입장을 추구하면서 신앙 규범에 대한 신조(creed)가 “I Believe' 또는 “We Believe' 신앙 고백 형태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조들이 생겨났다. 신조는 믿음에 앞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전제로 한다. 이 신조는 그리스도 위에 서 있으며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신조는 하나님의 물으심에 대한 인간의 답변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성령의 지도하에서의 인간의 해석이며 수납
이다.
신조는 신앙 규범을 간명하게 요약 표현하는 것을 그 생명으로 한다. 신앙공동체가 그 내용을 암송할 수 있는 언어적 표현이 간명하여 숙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니케아 신경과 사도신경에서처럼 초기의 신조들은 매우 간명하였으나, 복합적 신학적 이슈 제기에 따라 이에 대한 응답을 첨가하므로 좀 더 길어지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 다른 시대와 다른 환경에 따른 신학적 제반 이슈 등장은 이에 상응하여 응답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3. 신조의 권위와 그 한계
프로테스탄트 체계 안에서 신조가 갖는 권위에는 한계가 있다. 한 때 ‘Creed’를 信經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리하여 신경에 어긋나는 주장이라면 이단으로 판정하는 잣대 같은 경전(canon) 수준으로 여기는 시각이 있었지만, 이는 잘못된 이해가 된다.
“경”을 뜻하는 Canon이라는 말은 헬라어 kanon에서 나왔다. kanon은 (1) 갈대, 막대기, (2) 잣대, (3) 측량하는 "규칙," “규범,” 이나 "표준," “기준,” (4) 교회법(Canon Law)에서처럼 교회의 권위 있는 결의, (5) 권위 있는 책으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6) 성경상 규례(갈 6:16), 한계(고후 10:13-14)의 뜻으로 알려져 있다.
Canon을 성서에 적용하는 이유는 (1) 성서가 하나님이 주신 규칙, 규범 또는 지침이 되기 때문에, (2) 성서가 영감의 표준에 일치하기 때문에, (3) 교회가 성서를 하나님께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인정하고 다른 책과 구별하기 때문에, (4)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천을 결정하는 규범적인 권위(normative authority)를 가진 책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성서에 사용되는 canon을 인간의 결의 사항에 적용하여 ‘신경’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성경만이 우리의 경(Creed)이 되어야(1SM 416)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새 빛을 받은 신앙 공동체를 이른바 자기들 신경이라는 것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 이단으로 배척 내지 정죄하는 것은 용납될 수도 없다.
신조는 고정적이거나 불변적인 경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생성한 것이어서 때로는 잘못된 이해의 소산물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여 예컨대, ‘니케아 신경’이나 ‘사도신경’ 내용에 오류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 내용을 성경에 따라 풀이하면 수용 가능하다. 그러나 신경이나 신조는 성경과 같은 수준 권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모든 교회는 성경보다 교회의 신조와 교리에 신앙을 두도록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 아닌가? 찰즈 비처 씨는 개신교회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마치 교부들이 그들이 장려해 온 성도 숭배와 신조(creed)에 대하여 공격을 받을 때에 싫어했던 것처럼 오늘날 개신교도들은 그들이 받들고 있는 신조(creeds)에 대하여 무례한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 개신교의 모든 복음 교파들은 자기 교단과 남의 교단을 물론하고 피차에 손을 붙들어 매어 놓고 성경 이외의 어떤 다른 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도, 또 어디서나 전도자가 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 오늘날 신경(信經)의 능력이 비록 교활한 방법이기는 하지마는 일찍이 로마가 한 것과 똑같이 성경을 방해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말 가운데 결코 상상적인 것이 없다.”(GC 388-389).
프로테스탄트 교계가 로마가톨릭교회의 전승 우위론에 입각하여 성경보다 교회의 권위를 강조해 온 것처럼 이른바 교회 신경의 권위를 성경 권위처럼 내세워 성경 해석권을 가진 것처럼 취하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
“로마교회는 성경을 해석하는 권리를 성직자들에게 맡기고 있다. 성직자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할 수 있다는 이유로 성경은 일반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고 있다.* 종교 개혁은 모든 사람에게 성경을 주었으나 로마교로 말미암아 지지된 그와 같은 원칙은 개신교에 속한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을 스스로 상고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의 교훈을 교회에서 설명한 대로만 받아들이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 아무리 분명히 계시된 것일지라도 그들의 신조나 그들의 교회가 확립해 놓은 교훈에 반대되는 것은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다.”(GC 596).
4. 재림교회의 기본교리(신조) 특징
재림교회가 간행한 <재칠일안식일 기본교리>는 기본적 신조와 각 신조별 교리에 대한 성경적 해설을 담고 있다. 이는 재림교회가 성경적 기본 진리에 관한 현재까지의 전 교회적으로 일치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권위는 성경의 권위를 넘어설 수 없다. 성경은 장차 있을 수 있는 교회의 기본 신조의 표현이나 해설을 지배하여야 한다. 성경은 기본 교리에 대한 최종적 권위를 지녔다.
재림교회는 <We Believe...28> 서문에서 지적하였듯이 내용에 담긴 개념에 대한 표현을 불변적으로 묶어두지 않고 장차 연구 및 표현 보완 및 수정의 가능성 및 새 빛에 따른 발전적 여지를 남겨 놓고 있는 개방성 및 진취성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belief를 신앙 체험과 동떨어진 진리에 대한 지적 승인 정도로 보는 일을 피하고 있다.
Belief의 동사가 지닌 의미는 이렇다.
교리(Doctrine)는 라틴어 'doctrina'에서 전래한 말로 ‘가르침’이나 ‘교훈’을 뜻한다. 교리는 신앙공동체가 종교적, 신앙적으로 믿고 있는 주제들에 관한 공식적 신앙 규범 및 원칙의 신념 체계를 논리적으로 심도 있게 펼친 것이다. 어느 한 독트린의 상술 내용이 책 한 권 또는 그 이상으로 긴 분량이 될 수 있으며 다루고 있는 주제 내용을 신학적, 철학적, 내지 역사적 자료들을 통섭적으로 체계화시켜 그 현대적 의미까지 펼친 일련의 교의서적 특성을 지녔다.
신앙 공동체가 종교적 신앙적으로 믿고 있는 것을 선언한 도그마(dogma)는 흔히 증거가 결여된 선언 형식이라면, 독트린(Doctrine)은 증거를 보완하여 구체적 증거나 원리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나가면서
성령의 지도를 받고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는 Belief, Creed와 성경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Doctrine은 구원사를 담아내고 있으며 아멘의 신앙고백 반응을 요청하고 있다. 신앙 고백을 한다는 것은 자기의 신앙적 헌신을 천명하는 것이다. 믿음을 고백한다는 것은 믿음을 인치는 일이며 신앙을 용기있게 하는 일이다.
구원의 역사에 근거를 두고 현세적 시간을 넘어선 미래를 초점으로 한 신조와 교리는 개인 신앙을 건실하게 하는 구원의 맥박이며 교회 발전의 척추가 된다. 철저하게 성경적인 신조 각 부분이 서로 조화롭게 체계를 지닌 구원을 향한 신념 체계 내지 신앙 규범을 비하하는 일은 자해 행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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