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Sahmyook 강의 자료>

성경 무오론(inerrancy)의 역사적 논의 개요

 

I. 들어가는 말

20세기 개신교 신학의 최대 이슈는 성경의 권위에 관한 것이었다. 성경의 권위 문제는 성경 영감과 무오성이 있느냐 여부에 달려있었다. 성경에 관한 논쟁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부터 진행된 근대주의자들(moderists)과 근본주의자들(fundamentalists) 사이의 싸움이었고, 그 다음에 주로 20세기 후반에 성경 영감과 무오에 관한 복음주의 자들과의 싸움이었다.

성경 계시를 만남(encounter)으로 보는 신정통주의 등장으로 인하여 그 논쟁이 가열화되었다. 전통적으로 명제적(propositional) 계시를 중심으로 이해하여 근본주의와 신정통주의 사이의 논쟁은 치열했다. 명제적 계시에서는 성경의 무오가 중요하였지만, 비명제적 계시에서는 성경 무오는 중요한 개념이 아니다.

성경에는 명제적 계시와 만남으로서의 계시가 혼재한다. 예컨대, 다니엘 2:19, 28, 28, 29에는 계시 내용(contents)와 만남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성경이 신적 계시에 대한 인간의 증거에 불과하다는 신정통주의의 계시 개념은 명제적 계시를 무시하는 한계가 있다. 두 형태의 계시 중 어느 하나의 계시만으로는 설명이 다 안 된다. 특히 명제적 계시 내용을 기록 전달하는 영감이 어떤 형태인지에 관한 논쟁이 있어 왔다. 영감에 있어서 신적 개입이 어떤 형태이었는지에 관한 논의가 치열하였다. 근본주의 5대 교리에 속하는 축자영감과 성경 무오론이 지닌 한계가 무엇인지 그 개요를 여기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계시 내용의 언어, 논리, 사상 구축에서 성서 기자의 어휘 선택에 있어서 어떤 지도를 받았는가? 성경 기자의 어휘 선택 구사가 무오인가? 혹자는 성경의 무오(inerrancy)를 기계적, 구수적이어서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으로 성서기자가 단어 구사에 있어서 선택의 자유가 있었다면, 무오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오늘날 신학계에서는 이 논의에 있어서 문제 많은 무오라는 표기보다는 신뢰할 수 있느냐(trustworthy)’는 점을 부각시켜 이해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필자는 R. Dederen 박사의 <계시 영감> 클래스에서 이 점을 강조하는 강의를 들었다. 오늘날의 시각 포인트는 이 신뢰성 여부에 두고 있다.

성경은 신적 요소와 인적 요소의 분리할 수 없는 연합으로 된 살아 있는 말씀이다. 그런 연합을 성육신 모델이라고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의 연합으로 되신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두 요소의 결합을 절단시킬 수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두 요소를 분리시킬 수 없다. 성경은 틀릴 수 있는 인간에 의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無謬(infallible) 진리의 말씀, 영감을 통하여 인간에게 주어진 신적 사상이다.

 

. 성경 무오론 역사적 개요

1. John Calvin(1509-1564)

칼뱅은 기독교 강요(Institute of the Christian Religion)에서 점진적 계시관을 펼쳤다. 그는 유아기 유대인으로부터 成人 그리스도인에까지 발전적 계시로 이어져 왔으며 그리스도가 성경 계시의 가장 충만한 형태라고 보았다. 그는 성경을 하나님의 거룩한 입으로부터 口授되어 무오하다고 보았다(Institutes 64 (1.6.10, 123(1, 13,15). 성경은 성령의 내적 증거로 되었다. 성령께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심령을 꿰뚫어 그들은 거룩하게 위탁된 기별을 신실하게 전달했다.(Ibid. 72(1.7.4).

칼뱅은 성경 영감의 근거로 다음 성구를 인용하였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59:21).(Ibid. 72(1.7.4).

칼뱅에게는 성령의 내적 증거가 되는 내적 말씀과 전달된 외적 말씀이 일치한다는 시각을 펼쳤다.

그러나 위 본문으로 성경을 무오한 구수로 보는 시각 보다는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20)를 포함한 구속함 받은 자들에게 주신 약속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약속은 성령을 그들에게 계속 임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성령은 계시의 근원이자(2:28), 권능과 은사의 원동력이다(3:8).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계속 머물게 하신다는 약속이다. 말씀은 계시의 결정체요, 신령한 은혜의 방편이요, 성도의 행할 바를 알려주는 삶의 지침서이기도 하다. 이 두 약속은 오순절 성령 강림과 신구약 66권의 완성을 통해 일차적으로 성취되었다.

 

2. Francis Turretin (1623-1687))

투레틴은 무류하신 하나님의 작품이어서 신뢰성과 진정성과, 무류성, 및 역사적 정확성을 지녔다고 보았다. 그의 정교하게 다듬어진 Institute of Elenctic Theology에서 성경 口授론을 펼치면서 매 단어가 영감받았다고 주장했다. 최고의 無謬(혹자는 不誤라고 표기)하신 재판관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시므로 판단에 있어서 과오가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성경 본문은 믿음과 실천의 경전이 된다. 히브리어 사본에서 傳寫 과정에서 부주의하여 사소한 과오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사소한 문제로 믿음과 실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또한 상호 모순되어 보이는 기사가 있다고 해도 그 것은 실재가 아니다.

성경은 역사적 진정성을 지녔다. 그래서 성경 기자들이 인간이어서 과오를 범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으므로 그들의 기록 본문은 참된 진정성과 신적인 것이다.

투레틴의 이론의 배경은 당대 로마 가톨릭교회가 성경 해석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과 트렌트회의에서 신앙과 실천의 규범으로 성경과 전승이 각각 권위를 지녔다고 하여 성경 그 자체의 불완전성을 저변에 깔고 있는 성경관에 대한 비판적 대응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성경무오론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경관에 대한 날카로운 배척 사상의 칼날이 되었다.

 

3. 프린스톤 신학자들(1812-1912)

1812-1872년 사이에 투레틴의 Institute of Elenctic Theology는 프린스톤대학 신학부의 기본 교제가 되었다. 100년 이상 프린스톤은 성경무오론을 지지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따랐다. 찰스 핫지(1797-1878)의 조직신학은 투레틴의 방법론을 따랐으며 성경 무오론을 지켰다.

 

4. Charles Augustus Briggs 의 성경 무오론 배척(1891/1893)

뉴욕 소재 Union Theological Seminary 의 성서신학 교수 Charles Augustus Brigg는 성경이 성령에 의하여 천상에서 기록된 것이 아니고 천사의 손에 의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라고 보았다. 틀리기 쉬운 불완전한 서기관이 본문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과오는 사기와 거짓으로 한 것이 아닌 지식의 결핍으로 발생한 것이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불일치 본문들을 그 증거로 예시한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신앙과 실천의 무류한 규범이 된다. 그는 흔히 주장하지만, 증명이 안 된 원전의 무오론도 배척한다. 성경 귄위의 원천은 그런 무오론이 아닌 복음의 핵심인 구속의 메시지에 있다.

 

5. 근본주의자들(1917)

로스앤젤레스 성경연구소가 1917년에 근본주의의 기본신조를 담은 <근본주의자들(The Fundamentals)>이란 책을 출판하였다. 이 책은 성경 원본의 사상과 어휘의 무오성을 주 장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기자들에게 자기의 단어로 된 사상을 펼치는 것을 허용치 않았다. 사실상 하나님깨서 십계명을 기록하실 때처럼 기자들로 하여금 각 단어를 기록하게 하였다. 영감이란 성서기자 인간 영감이 아닌 성서 기자들이 기록하는 단어들에 성경의 감동이 주어졌다. 하나님깨서 기자에게가 아닌, 책 즉 기록 언어에 영감을 베푸신 것이어서 성경 기록 언어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원전에 나오는 본문은 사실상 하나님의 사상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언어가 된다.

 

6. Francis Pieper(1917-1950)

Pieper는 루터파의 무오론 사상을 담고 있다. 동서는 성경 축자영감론에서 영감이란 주제, 인간, 단어를 모두 감동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는 성령께서 축자적 구수를 하시어 무오하다는 입장을 펼쳤다. 성경적 근거로 신 4:2; 12:32; 30:5-6; 5:17-19; 22:18-19를 들고 있다. Pieper의 주장은 칼뱅의 주장과 별반 다를 바 없다.

 

7. 바티칸 2차 회의1963-1965)

근대 복음주의 노선에서는 성경 원전의 과학적, 역사적, 및 지리적 기사에 대한 무오와 절대적 진리를 주창하였다. 바티칸 2차 회의 이전에는 아우구스투스 이래 비교적으로 이런 무오적 사상에 지배를 받았으나 바틴칸 2차 회의에서는 계시에 관한 긴 논의 끝에 근대 복음주의 노선에서 취하고 있는 무오론을 피하면서 결론을 도출하였다. 도출한 문서가 계시(Revelation)” 다음에 오는 신적 계시의 교의적 헌장(Dogmatic Constitution on Divine Revelation)”이다.

신앙과 과학은 상호 반대된다(p. 234 <4.3.36>). 인간의 문화와 특별히 과학은 적법하게 자율적이다. 바티칸 2차 회의는 역사비평 방법을 공인하였다. 복음의 역사적 진리, 구원의 진리는 무오하다는 시각도 펼쳤다. 모든 과학적, 지리적,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기사를 배제하였으나 일부 복음주의자들이 주장한 구원의 진리의 무오성을 표면한 것이다.

계시헌장 2은 하느님 계시가 성경과 성전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음을 제시한다(7~10). 흔히 '기록되지 않은 하나님 말씀'으로 불리는 성전(聖傳)은 사도들이 계시의 완성이자 충만인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에서 얻고 배운 것을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7) 그 후계자들에게 전달해 준 것이다. "하나님 백성의 삶을 거룩하게 이끌고, 신앙을 키우는 데 기여하는 모든 것이 포함되는"(8) 성전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교회 안에서 계속 발전해 나간다전통과 성경은 밀접히 같이 매여 있고, 서로 공통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곧 성전과 성경은 하나님의 꼭 같은 샘에서 흘러나오며, 같은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다(9)”라고 한다.

개신교에서는 하나님 계시의 원천으로 성경만을 들며 성전을 성경에 의하여 판단한다.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성경과 함께 성전도 계시의 원천으로 "똑같이 경건한 애정과 존경으로써 받아들이고 공경해야 한다"(9)고 가르친다. 교회가 성경을 정경으로 인정하게 된 것도 성전을 통해서라고 한다. 이러한 시각은 프로테스탄트의 오직 성경4대 원리(ACES원리) 즉 성경의 권위성, 명료성, 능력성, 및 충분성의 원리에 배치된다. “성경은 그 자체의 해설자이다(The Bible is its own expositor).”(교육, 190).

바티칸 2차 회의 이전에는 성경과 성전이 각각 합하여 완전한 성경으로 보았던 시각이 바티칸2차 회의 ㅣ후에는 성경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른바 聖傳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는 이해의 변이가 일어났다.

 

8. 성경의 무오에 관한 시카고 선언 (The Chicago Statement on Biblical Inerrancy,1978)

성경 무오성에 관한 국제협회(The International Council on Biblical Inerrancy)가 후원한 공의회에서 약 300명의 복음주의 학자들이 회동하여 성경무오에 관한 선언문이 작성되었다. 성경에 관한 자유주의적인 견해와 경향 그리고 성경에 대한 고등 비평 그리고 로마가톨릭의 주장에 거슬러 성경의 무오성에 관한 진리를 보호하려고 고안된 선언이다그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성경을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성경이 교회, 전통 또는 다른 어떤 인간적인 원천으로부터 권위를 부여받는다는 주장을 거부한다(1).

(2) 교회의 권위는 성경에 종속되며, 교회의 신조들, 회의들또는 선언들이 성경의 권위보다 더 크거나 동등하다는 주장을 거부한다(2).

(3)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전부가 하나님이 주신 계시이며, 성경이 그저 계시에 대한 증언이라 는 주장이나, 만남을 통해서 비로소 계시가 된다는 주장이나 성경의 유효성이 사람의 반 응에 달려있다는 주장을 거부한다(3).

(4) 언어가 피조물의 속성으로 인한 제한 때문에 신적인 계시를 위한 수단으로서 불충분한 것 이 되어버린다는 것과 죄로 인하여 야기된 사람의 문화와 언어의 부패함이 하나님의 감동 하시는 역사를 좌절시켰다는 주장을 거부한다(4).

(5) 성경은 전체적으로 그리고 축자적(축어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6). 그 모든 가르침 에 오류(error)나 틀림(fault)이 없다(11).

(6) 성경 전부와 각 부분이, 원본의 바로 그 단어들에 이르기까지, 신적인 감동에 의해서 주어 졌으며 성경의 사본들과 번역본들은 원본을 충실하게 기술하고 있는 한도까지 하나님의 말 씀이며, 원본의 결여가 성경의 무오함에 대한 주장을 무효한 것이나 부적절한 것으로 만든 다는 주장을 거부한다.(10).

(7) 성경 안의 하나님의 계시가 점진적이었으며, 신약 책 완성 후 규범적인 계시가 주어졌ㅆ다 는 것을 거부한다(5).

(8) 성경 전체의 무오에는 역사와 과학의 영역에 있는 주장들을 제외하고, 영적인 주제나 종교 적인 주제나 구속적인 주제에만 한정된다는 주장을 거부한다(12). 현대의 기술적인 결핍, 문법과 철자의 불규칙성, 자연을 관찰하는 묘사들, 거짓말들을 공표하는 것, 과장법의 사용 과 대략적인 숫자들, 자료의 주제적인 배열, 유사한 보고에 있는 자료의 상이한 선택그리 고 자유로운 인용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성경적 현상들에 의해서 (성경의) 무오성이 부정 된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 성경 무오 반대 대처 방식들

A. 남침례교 성경 무오연구회(The Conference on Biblical Inerrancy, 1987)

198754-7일 사이에 북 캐롤리나 주에서 남침례교 성경 무오연구회에서 밀도 있는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Inerrancy 용어 문제

무오(inerrancy)라는 단어가 함축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절대적 무오로부터 여러 의미가 거론되었다. 무오라는 표현이 문제가 있긴 하지만, 사용하는 것이 더 해로운 면을 막을 수 있다고 보아 사용키로 한다. 그러나 발표자들 중에는 무오가 부정적 표현이어서 전체적/전면적 신뢰성이나 무류(infallible)’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자들도 있었다.

 

2. 무오의 의미

근본주의자들과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에게 무오란 원전의 무오에 국한된다. 복음주의 신학회에서 매년 서명한 발표한 하나가 바로 이 무오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사본이나 번역에 나오는 과오를 두고 인간적인 것으로 본다. 예수께서 인용하신 구약성경은 원본이 아닌 전수된 사본이다. ‘Inerrancy’라는 표현을 오늘 현대적 표현으로 하면 신뢰할 수 있는(trustworthy)”, “믿음직한(reliable),” 그리고 전체적으로 진실한(totally true)”으로 대체 사용하고 있다.

 

3. 성경의 인간적인 것

복음주의 신학 권에서 패커(J.I. Packer)와 에릭슨(Millard Erickson)의 기여가 크다. 패커는 성경의 이중 저작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간의 말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하실 때 인간 저자들의 개성, 문학적 양식, 자료 활용에 있어서 창의성, 및 문화적 배경이나 시각을 무시하지도 않는 방식으로 말씀하셨다. 사람들의 재능을 자유롭게 사용하되 신적인 메시지를 파괴하지 않는 것은 물론 왜곡하지도 않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받아 말했다.” 그는 이런 원리를 일종의 성육신 모델과도 같이 보아 그리스도와 성경은 둘 다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조화로운 결합의 작품으로 보았다.

 

4. 에릭슨의 성경 무오 범주

에릭슨은 성경무오성의 범주를 분석하여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 현상을 요약하고 있다. (1) 절대적 무오론: 과학과 역사적 진술까지 사실로 믿고 있어 불일치 주장을 배격한다.

(2) 완전 무오론(full inerrancy): 과학적이고 역사적 기술을 현상적인 것으로 수용한다. 에릭 슨은 이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표현을 현대 과학적인 정 확성을 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3) 제한무오론: 무오란 구원의 진리에 국한시키며 당대의 역사적 과학적 이해를 반영하는 것 으로 본다.

(4) 목적 무오론: 성경 계시의 목적은 인간을 그리스도와의 실용적 친교 목적에 있다고 보아 진리를 교류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시실 기술의 무오란 부적합하다.

(5) 적응 무오론(accommodated revelation): 성경 영감은 인간을 통하여 주어지고 있어서 인간 본성의 제한을 받는다.

(6) 비명제적 계시: 칼 바르트와 에밀 부르너는 명제적 계시를 외면한 만남(encounter)에 역 점을 두어 사실의 무오에 초점을 둘 필요가 없다.

(7) 용어 부적절론: 무오 용어가 부적절하다. 예시하면서도 성서적 가르침과 성서적 현상에 토 대를 두고 있다. 성서적 현상이라는 것을 수용한다는 것은 성경의 인간적인 것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 그는 무오라는 것이 신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의 결합이면서도 인간적 인 것들이 지닌 난해성을 함축하고 있으나 이에 매몰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성경을 강 조하고 있다.

에릭슨이 무오의 여러 유형을 보여주듯이 복음주의 신학자들 사이에는 무오 문제 이해에 있어서 스펙트럼 같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에릭슨과 패커 두 신학자는 인간적 요소를 인정하면서도 무오를 인정한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B. 난해 본문 연구

복음주의 신학자 중에는 난해 본문에 관한 집중적 연구를 하는 기류가 나타났다. 에릭슨 같은 학자도 난해 본문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연구의 필요성에 부응하여 여러 학자들의 연구가 나왔다. 그 예를 들면 Archer Gleason의 성경 난해 백과사전 같은 책과 John WW. Haley의 성경 불일치 본문 풀이 책 같은 것들이다.

에릭슨은 난해 본문 풀이 접근 방식을 몇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1) Benjamin B. Warfield의 추상적 접근: 고도로 높이 평가된 성경에 비하면 난해 본문이란 극히 일부로 무시해도 된다.

(2) Edward J. Young의 조화적 접근: Louis Gaussen과 함께 성서영감의 무오성이 추상적 접근으로는 난점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다른 각도에서 난해 구절들의 모순을 어느 시점 인지에 따라 그 선후를 배열함으로 조화시켰다. 예컨대,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27::5)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1:18) 기사가 모순되는 것이 아닌 시간상 선후관계에 있어 조화되는 것 으로 보았다.

(3) Everett Harrison의 온건 조화 접근: 무오라는 단어가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성서영감 론에서 당연한 결과로 추론했다. 그러나 아직도 다 해결되지 않는 점을 고고학적 발국과 언어학적 연구로 조화시키는 시도를 했다. 그는 신복음주의에 속한 학자이었다. 고고학적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다.

(4) Edward Carnell의 사용된 자료 접근

성경의 저자는 기록된 문서를 사용하였으나 잘못된 문서를 사용할 수 있다. 영감이란 성서 의 저자가 활용했던 자료들을 그대로 정확하게 기록했다는 사실만을 보장하나 그 자료들 을 바로잡아 주는 일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5) Deway Beagle의 성경유오론 접근

난해 본문을 모두 해결할 수 없다는 자유주의 시각을 취했다.

 

C. Wayne Grudem의 무오론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12:6). 그루뎀은 이 본문이 성경의 순결성과 신뢰성, 그리고 완전성을 선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루뎀의 무오의 세 가지 측면

그루뎀은 성경이 무오하지만, 다음과 같은 점을 내포하고 있으나 모순되지 않는다.

(1) 일상적인 인간의 언어로 되어 있다,

(2) 자유로운 인용을 포함할 수 있다.

(3) 원전에 있어서 문법 규칙에서 벗어난 특이한 표현도 가능하다. 요한계시록이 특히 그렇다. 그럼에도 무오하다.

2. 성서 무오 6대 반론 사항들

다음과 같은 무오에 대한 반론이 있으나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

(1) 성경은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만 권위를 지녔다.

(2) “무오라는 용어는 빈약하다.

(3) 무오한 사본은 없다. 그러나 현재 전해져 내려온 사본의 90% 이상이 무오하다.

(4) 성경 저자는 당대 존재한 잘못된 세부 사항을 자기들의 메시지에 적응시켜 본의 아니게 그와 같은 사상들을 가르치고 주장했다. 성경 저자들이 더 큰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 다. 하나님은 우리의 언어로 말씀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신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하나 님이 자신이 도덕적 성품과 역행하면서 자신을 낮추신다는 말씀이 없다.

(5) 무오성은 성경의 신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인간적인 면을 무시한다.

(6) 성경에는 확실히 오류들이 있다.

 

IV. 성경 무오론에 관한 다양한 이해

복음주의 신학계에서 성경 무오에 관하여 견해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에릭슨은 완전무오론(full inerrancy)을 지지하고 있어서 당대 문화와 소통 수준에 비추어, 그리고 그 목적에 비추어 정확하게 해석할 때 완전하게 성경의 진실성이 드러나게 된다고 보았다.

반면에 그루뎀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1) 성경 무오를 부인하면 심각한 삶에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하는 도덕적 문제에 봉착하게 된 다.

(2) 성경 무오를 부인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정말로 믿을 수 있느냐는 의혹을 일으킨다.

(3) 성경 무오를 부인하면 하나님 말씀보다 인간의 마음을 더 높은 진리 판단의 기준으로 삼 게 할 수 있다.

(4) 사소한 기사에서 성경 무오를 부인하면 교리에서도 성경이 틀렸다고 전염될 수 있다.

 

Jack B. RogersDonald K. MacKim은 바티칸 2차 회의와 현대 프로테스탄트 신학계에서 주창하였듯이 1979년에 펼쳐낸 <성경의 권위와 해석: 역사적 접근>에서 성경이 구원 주제에 있어서 무류(혹자는 불오)하고, 과학, 역사, 지리에서는 반드시 무오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에 대하여 John D. Woodbridge1982<성경의 권위: 로저와 맥킴의 제안을 배척하며 과학, 역사, 및 지리에 있어서도 무오를 주장하였다.

 

V. 글을 끝내면서

A. 요약

지금까지의 역사적 논의에 비추어 몇 가지 특징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무오(inerrancy)’라는 용어가 복음주의적이라는 말처럼 다양한 의미로 넓게 사용되고 있다. 복음주의 우산 아래 그 의미의 스펙트럼이 다채롭다는 것이다. 무오 용어가 현존 본문의 문제보다 원전의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지만 논의 결과는 오히려 분열 조장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교훈과 그 해가 떠오른다라는 현상적 단어 사이에 이해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무오라는 입장이 본문에 깃든 인간적인 요소로 인해 논란거리가 되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무오라는 용어가 본문의 인간적인 것보다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어 왔다. 무오를 포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무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상응한다. 무오론자들은 성경 영감이 성경말씀에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 성경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성경 무오가 그만큼 훼손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에 비추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영감이란 성령께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인간 저자들을 통하여 감동을 주신다는 것이다. 감동을 받는 것은 인간 저자이고 인간 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꿈, 환상, 또는 메시지를 받는다.

영감이란 신적 성령과 인간의 거룩한 저자들의 연합이다. 어느 한 존재는 다른 존재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계시를 받는 것으로부터 계시를 기록하는 일까지 영감의 전 과정은 균형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에 신적 요인과 인간적 요인이 있게 하는 증거가 된다.

하나님은 무시간적인 분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교류하시는 때 인간 저자의 제반 범위, 즉 언어, 사상, 논리 사용에 있어서 인간의 인식수준에 적응하신다. 인간이 의식하는 마음을 간과하지 않으신다.

주권을 지닌 하나님은 독재자가 아니시기 때문에 또한 코란경 口授 같은 방식을 사용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성경 저자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신다. 하나님은 계시를 주도하신다. 인간 성경 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원하는 응답을 할 때 어휘 선택이나 그 표현 방식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6. 영감의 과정이란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불가분리적 연합에 있다. 즉 영감의 소산물이 란 신적인 내용과 인간적인 현상의 연합이다.

7.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균형진 입장은 분리보다는 연합 시각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신 적 계시와 영감의 과정이 없다면 저자의 기록도 없다.

8.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불가 분리적 연합 때문에 성경 본문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될 뿐만 아니라, 인간적 언어 매체를 통한 하나님의 진리의 교류 밥법이 된다.

9.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되시는 예수께서 존재론적으로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 되신 것과 마찬가지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역시 두 요소가 기록된 말씀 안에 연합하여 명각되어 있다.

10. 현재의 본문으로 주어진 성경은 완전히 신뢰할 수 있고 완전히 의지할 수 있다. 그 점에 서 성경은 무오하다.

 

B. 재림교회 시각

재림교회에서는 무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원본과 사본의 차이가 있으나 본질적인 진리는 보존되어 왔다고 본다. 필사자들과 번역가들이 작은 실수(mistakes)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학자들이 오류(errors)라고 주장하여온 많은 것들이 성서고고학적 발굴을 통하여 오해이었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으며 서구적 안목에서 근동의 고대 역사와 풍습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라고 한 점이 밝혀지고 있다. 불일치라고 한 본문들에 대하여도 그 진의를 밝혀가고 있으며 설사 다 풀리지 않을지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열왕 시대 연대 기록 본문들에 대한 혼란이 있어 왔으나 Edwin R. Thiele 박사는 거뜬하게 풀어 시카고대학교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받기도 했다. 이 박사학위 논문이 <The Mysterious Numbers of the Hebrew Kings>으로 출판되었으며 이 책자를 한국 기독교문서선교회에서는 <히브리왕들의 연대기>라는 제목으로 1990년에 출판하였다.

기본교리 제1장에서는 無謬한 계시(infallible revelation)”라는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 , 영감이 아닌 계시에 관련하여 무류(infallible)하다고 표명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이 무류하다고 보고 있다(1SM 416). 참고로 無誤(Inerrancy)無謬(Infallibility)의 용례 분석에 나타난 특징은 이렇다. 무오는 기록의 정확성(accuracy), 과오로부터의 자유, 원전의 무오성, 및 미시적 접근(minor detail)을 한다. 반면에 무류는 기록의 신뢰성과 확실성(trustworthy, reliability), 무흠한 권위, 계속하여 생명력 공급, 및 복음의 중심 진리를 강조하는 거시적 접근을 한다.

재림교회 기본교리는 제1장은 하나님 말씀을 다루고 있다. 여게 나오는 몇 가지는 이렇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의 표현 양식이 아니다”(1SM 21)라고 하여 신적 요인과 인적 요인을 구분하고 있으며,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신적 진리고 하여 복음주의권의 논의에 속하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또한 성육신하신 예수님과 성경 사이에는 유사점이 존재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어 성육신 모델을 인정하고 있다.

성경은 완전히 신뢰할 수 있고 완전히 의지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언어로 된 성경말씀을 인간에게 주셨다. 비록 인간적인 것에 있어서 제한이 있다. 성경 저자의 개성, 표현 수단, 사고방식, 언어 등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전사와 번역에 나타난 사소한 과오와 변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에 관한 넉넉한 신적 메시지, 신적 격려와 교훈 및 신적 지도를 담고 있다.

 

C. 종교개혁자들의 성경관

종교개혁자들은 권위의 원천으로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의 기치를 내 걸었다. 그들은 성경만이 신앙과 실천 문제에 있어서 배타적이고 최고의 궁극적인 권위가 된다고 보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성경에 체현되어 있는 신적 계시에 토대를 두고 있다. “sola scriptura 는 종교개혁의 형식원리가 된다. 이 형식 원리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서 신앙과 삶의 전체를 개혁하려는 교회의 사활이 달린 원리가 된다. 성서는 모든 진리의 척도이며, 궁극적, 절대적 권위를 지녔다. 루터는 자신의 영적 갈등과 고민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연구함으로써 믿음의 시련과 좌절을 극복하고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다.

종교개혁의 내용원리는 오직 믿음만(sola fide)"의 원리, , 칭의론이다. sola gratia, solo Christo는 그 오직 믿음의 원리의 천적 원천과 방식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오직믿음의 원리는 지상의 신자의 입장에서 표현으로, 입혀주신 의를 체험하는 일은 칭의의 기저가 된다. 종교개혁자들은 영적 각성과 체험을 추구하는 교회부흥 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루터의 개혁의 출발은 무엇보다도 개인의 심령 자각과 자아의 영적 각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서원한 바대로 수도원에 입문하였으나, 인간이 의로워지고 구원을 얻는 데 인간의 노력과 열정이 무익함을 깨달으며, 극도의 두려움과 절망의 상태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 절망 가운데 루터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철저하게 부인하는 영적 경험을 한다. 이러한 영적 시련과 좌절감에서 루터는 자신이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과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며, 결국 의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확신을 얻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신구약 성경 그 자체 안에 하나님 말씀이 됨을 스스로 입증(自證)하는 autopistos (self-authenticating)한 것으로, 그리고 성령의 내적 증거(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the internal testimony of the Holy Spirit)로 보았다. 성경의 확실성은 인간의 이성과 판단이 아닌 성령의 내적 증거에 있다. 또한 개혁자들은 Vox Scriptura, vox Dei (the voice of scripture is the voice of God)의 입장을 취하였다.

위대한 시인은 자기가 시인임을 입증하지 않는다. 시인의 시가 스스로 그 위대성을 입증한다. 성경은 인간의 혼을 밝히는 빛을 담고 있다. 성경 없이는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가 무의미하여진다. 성경은 영을 담고 있는 영원한 책이다. 성경은 말로 나타난 성스러움이다(holiness in words).

주 참고서: Norman R. Gulley, Systematic Theology: Prolegomena (Berrien Springs, MI: Andrews University Press, 2003), 327-357.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