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창조
구약성서는 세계창조에서부터 시작한다. 세계 창조의 언어 구조는 시적인 면모를 풍기고 있다. 야훼의 영은 암흑의 깊은 곳 위에서 날개 치며 창조의 놀라운 일을 하신다.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4)는 하나님의 화음이 계속하여 장엄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창 1:4, 10, 18, 21, 25, 31).
인간 창조에서 아담은 시인의 모습으로 나온다. 아담이 눈을 떠 보니 아름다운 여인이 보였다. 그는 곧 찬탄하는 말을 토설한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이는 시적 표현이다. 이런 시어(詩語)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인간을 시인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구약성서의 약 40%는 시적 언어로 구성되어 있어서 시가로 기득 차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예언자들의 혈맥에는 시인의 피가 끓고 있다. 예언자들은 시인들이다.
번역 성경을 읽을 때 그들의 시적 언어를 살려 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사람에게 심장이 있는 것처럼 성경에는 시편이 있다. 칼뱅이 지적하였듯이 시편은 인간 영혼의 해부학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마음에 슬픔, 환난, 공포, 의심, 고뇌가 폭풍의 노도처럼 몰아쳐 오지만 희망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신뢰는 더욱 영롱하여진다.
詩(poem, poetry)라는 말 어원은 ‘poieō’ (내가 ~을 만들다)라는 동사에 두고 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을 묘사하는데도 사용되었다. 이 동사에서 파생한 poiēsis는 예술가의 창조적 활동의 의미도 내재되어 있다. 그 명사 형태인 poiētēs는 ‘만드는 사람’ 또는 ‘시인’을 뜻한다. 사도행전 17:28에 나오는 ‘시인’은 poiētēs의 복수형인 poiētōn이다.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시인은 주전 6세기 Epimenides 시인인 것으로 보인다.
에베소서 2:10에 나오는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에서 ‘만들어 진 것’은 poiēma로 ‘작품’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에베소서 2:10의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는 “우리는 그의 작품이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어원 풀이를 통하여 드러난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은 하나님의 작품, 곧 시가 된다는 사실이다. 여호와께서는 인간을 시적 존재로 창조하셨다.
일찍이 Emerson이 “인간은 모조리 위인이다”라고 갈파하였다. 이 말을 빌려 ‘인간은 모조리 시인이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作詩에 능숙한 시인은 많지 못하지만 詩心이 약동하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Clyde Kilby가 Poetry and Life에서 “시라고 하는 것은 사태의 의미를 밝히고 동물적 육체를 넘어서 존속되어가는 삶과 그 이유를 탐색하는 것”이라고 갈파하였다. 이는 시가 삶의 현장에서 본질로 향한 직관성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이 직관성은 영감성에 그 토대를 두고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골격이라면 시는 그 골격을 감싸 덮고 있는 살과 같다고나 할까!
<不學詩 無以言> 시를 '읽지 않으면 남과 더불어 말을 할 수 없다'고 한 공자도 해골과 이야기 하고 싶지 않어서였던가!
에스겔의 해골 골짜기에서 일어난 기적은 그 뼈다귀들에 살이 붙어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페북에 자주 뜨는 詩歌를 보면서 느끼며 생각한 것을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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