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높아만 가는 건축물들

어릴 때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제일 높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911 때 무너진 세계무역센터는 111층에 417m이었다. 인간 심성은 은 높고, 크고 넓은 것에 매료되어가는 것인가? 고층 아파트가 뜨는 세상이다..

1. The Burj Khalifa UAE (두바이)2010년 세워진 버즈 타워가 162862m, 2020년까지 1400m의 수퍼 빌딩 전망

2. 대만의 101타워 빌딩, 2003년 완성된 이 빌딩은 449m(안테나 포함 509m)

3.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다. 건물 위 안테나를 포함해 534m(안테나 제외 442m)

4. 상하이 세계 파이낸셜 센터 2008101492m

5. 상하이 월드 파이낸셜 센터, 첨탑이 없는 빌딩 중에는 상하이에 있는 474m

6. 2013년까지 세워질 부산의 Lotte World II110층에 510m 예상

7. 평양 류경호텔은 330m 피라미드 모양;

8. 가장 높은 교회당은 독일 우름에 있는 루터 교회는 162미터 계단 수 768,

II. 산골에서 평야로(11:1-9)

노아의 자손들은 한동안 방주가 안착한 산중에 정착하여 살았다. 그러나 그들의 수효가 증가하면서 배도가 일어났다. 농사 경작이나 일상생활에 있어서 산골 생활은 불편하다. 이 일에 실증이 난 무리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들은 창조주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옆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들의 형제들이 옆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주는 교훈과 모본을 늘 귀찮게 여겼다. 얼마 후에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과 분리하기로 결정하였다. 드디어 저들은 아라랏산을 등지고 동쪽으로 옮겨 가 유프라테스 강변의 시날 평야에 정착하였다. 이 곳 메소포타미아 저지대 토지가 아름답고 비옥한 데 마음이 끌렸던 것이다. 여긴 후대에 바벨론제국이 건설된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문자를 사용하여 수메리아 문명을 꽃피운 곳이기도 하다.

III. 바벨탑 건축의 목적

반역적인 무리들이 시날 평야에 도시를 건설하고, 그 도시 안에 세계의 경이가 될 굉장히 높은 탑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바위나 돌이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흙으로 벽돌을 구워 만들어 건축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스팔트를 진흙의 대용품으로 사용하였다. 고도를 하늘에 닿게 하는 목표를 세웠다. 엄청난 도전이었다. 굉장한 높이까지 건축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그 작은 축소판 모델 탑들이 고대 바벨론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 --Ziggurat 지구라트(하늘의 언덕)으로 햇볕에 말린 벽돌로 만들었다. 뱀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피라밋 구조 지구랏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32여개나 발견되었다. 큰 것은 저변이 122m 높이 46.7m, 7층으로 된 계단식 탑이다(seven multicolored tiers, topped with a temple of exquisite proportions.). 혹자는 어떤 지구랏의 높이가 100m 가깝다는 계산도 하고 있다.

A. 창조 때 하나님의 원 계획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생육 번성하여 온 땅에 흩어져서 땅에 충만하고 그것을 정복하도록 명하셨었다(1:28). 이는 하나님 나라 건설이다. 반역의 무리들은 이 하나님 나라 건설을 반대하였다. 사람들이 세계 각처에서 나라들을 건립하기 위하여 나아갈 때에, 그들이 그분의 뜻에 관한 지식을 지니고 가서 진리의 빛이 대대로 밝게 빛을 비추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충실한 의의 설교자 노아는 홍수 후 350년간 살았고 셈은 500년간 살았다. 그리하여 그들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을 취급하신 역사에 정통하게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진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다. 언어의 혼란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빛을 그들에게 줄 수가 있었을지 모를 사람들과의 왕래를 거의 차단당했다.

B. 바벨탑 건축 의도

1. 안전 확보와 반역의 길

한번 부패해 버린 인간은 결코 에덴 동산에 있었던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시날 평야의 거민들은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구름 속에 나타난 무지개 언약을 믿지 않았다. 엘렌 화잇의 예언적 통찰에 따르면 (PP 118) 경건한 사람들은 지존자가 계심을 믿고, 홍수 전 세상을 멸망시키신 분이 바로 그분임을 믿었으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홍수를 자연적 원인의 결과로 돌리면서 가인의 길을 걸었다. 탑 건축한 또 다른 목적은 대홍수가 또 일어날 경우에 그들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홍수의 물결이 닿은 높이보다 훨씬 더 높은 건축물을 만듦으로 그들은 어떤 홍수의 쓰나미 위험도 미치지 못하는 안전한 프로젝트를 추구한 것이다. 그리고 구름이 있는 층에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되면 홍수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다고 보아 영적-도덕적 차원을 제켜두고 자연과학적 차원에서 보는 시각으로 문제로 축소시켰다.

2. 인간나라 건설-인간의 독립선언(4)

바벨탑 건설자들은 온 세상을 연합시켜할 한 왕국을 세울 것을 획책하였다(4-흩어짐을 면하자). , 하나님으로부터 자주 독립한 공동체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백성들이 각지에 널리 흩어지는 것을 막고자 도시 건축을 시작한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선언이다. 그들은 세계적 제국을 건설하고 자기들의 도시가 그 수도로 삼고자 하였다. 그들의 프로젝트는 단순히 바벨탑이라는 기념탑을 세우는 정도를 넘어서, 지상에 통일 제국을 건립하는 데 초점이 있었다. 그들은 바벨탑을 쌓기 위해 위로 총 감독자인 지도자를 세워야 했고, 그 아래로 각기 필요한 조직을 세우고 그 책임자를 지휘자로 세워야 했으며 나아가 그에 따른 법령도 만들었다. 그 결과 그 땅을 기점으로 한 영토와 백성과 법률을 갖춘 완전한 국가를 지향한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주체가 되어 인간의 이름을 위하여 인간에 의해 세워진 나라를 추구하였다.

3. 인간의 명성고양(4)

바벨탑 건축의 영광은 온 세계의 칭찬과 존경을 자아내 건설자들이 명성을 얻게 할 것이었다. 하늘에까지 닿을 굉장한 탑은 이 탑 건설자들의 명성을 후대에 길이 보존시키면서, 저들의 능력과 지혜의 기념비 역할을 하고자 하였다. 바벨탑 건축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기 이름, 명예를 높이는 일이 그 기본적인 모티브가 된 것이다. 도시건축은 하나님의 창조의 원래 계획과 맞지 않는다. 도시는 범죄의 소굴이 되고 온갖 혼잡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다. 바벨탑 건축은 인간이 자기들의 힘으로 하늘을 올라가는 루스벨의 길이었다.

4. 우상 경배 신전 건설

지구랏 신전 구조는 뱀이 감아올리는 것처럼 올라가는 모양이었다. 탑의 일부가 완성되었을 때, 층별로 피조 행성들을 기리는 방으로, 그리고 그 꼭대기 층에는 자기들의 신정을 두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고, 우상숭배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계획되었다. 지구랏 각 층을 호화찬란하게 장식하여 7 행성을 기리는 색칠을 하고 꼭대기 층은 수호신 방으로 꾸며 봉헌하였다. 다른 방들은 백성들은 그들의 성공을 기뻐하고 금·은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고, 천지의 주재를 대적하였다.

III. 하나님의 역사 개입과 심판

A. 하나님의 참으심과 자비로운 대책 (선택)

하나님께서는 반역적 무리들의 자주 독립 운동을 참으셨다. 주님을 두려워한 경건한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개입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11:5). 이는 일종의 현장검사이면서 조사심판이다. 그분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탑 건설자들의 목적을 좌절시키시고, 그들의 대담성의 기념비인 그 탑을 파괴하셨다. 이 정도 심판 개입은 매우 자비로운 심판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충분한 기회를 주시고 그들의 외고집을 오래 참으신다. 그러나 그분은 공의롭고 거룩한 그분의 율법의 권위를 거역하는 그들의 모든 간계를 주목하신다. 때때로 통치의 홀을 잡은 보이지 않는 손이 불의를 억제하기 위하여 뻗쳐진다. 우주의 창조주, 지혜와 사랑과 진리가 무한하신 하나님은 천지의 최고 통치자이시며, 그분의 권력에 도전하고서 형벌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분명한 증거를 주신다.

B. 언어의 변질

같은 언어는 사상과 행동의 연합과 통일성을 증진시키는 본드가 된다. 이때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해 왔었다. 전에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왔던 공사가 언어의 장벽으로 인하여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 프로젝트의 중단을 초래하였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사회에서는 함께 살 수 없는 것이다. 각각 다른 위치에 배치되어 필요로 하는 재료들의 주문을 하면 엉뚱한 것이 배달되는가 하면 공사에 관한 원래의 지시들이 다르게 전달되는 혼란이 일어난 것이다. 위의 지시에 정반대되는 필요 없는 건축자재가 전달되는 일이 잦았다. 대 건축공사에서 조화와 협력은 사라지고 혼란과 낭패, 분노와 비난하는 일이 일어났다. 소통의 마찰 파열음이 커갔다. 건축자들은 이상한 오해들의 이유를 도무지 밝힐 수 없었고, 드디어 프로젝트는 투쟁과 유혈로 종말을 고하였다.

천사들이 건축자들의 목적을 수포로 돌아가도록 파견되어 꼭대기에 있는 일꾼들이 아래에 있는 자들과 직접 말할 수 없도록 언어를 혼잡스럽게 변질시켰다. 언어혼잡과 무질서 그리고 소통의 부재--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저들의 반역적 의도를 좌절시키신 것이다.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 집단으로 뭉쳐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언어의 장벽은 반역과 범죄의 운동에 쐐기를 박는 제어 장치가 되었다.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의 증거로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 탑의 상부를 파괴하여 땅에 떨어뜨렸다. 사람들은 하늘에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11:8)셨다. 이 분산은 창조명령이면서 복음 명령으로 온 땅에 사람들을 살게 하는 하나님의 구원 수단이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려고 했던 바로 그 방편을 통하여 당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

C. 우상숭배자들의 궁극적 목적

바벨탑 건설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불평의 정신에 빠졌다. 아담에게 베푸신 그분의 긍휼과, 노아와 맺으신 그분의 은혜로운 언약을 기억하면서도 감사하기는커녕 그들은 하나님을 정죄하여 최초의 부부를 에덴에서 추방하시고 세계를 홍수로 멸망시킨 가혹하며 독단적인 존재로 부각, 불평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폭군 중에도 가장 잔인한 폭군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하는 희생 제물에 치욕을 끼치려고 애쓰고 있었다. 백성들의 마음이 우상숭배로 어두워지자 사단은 그들로 하여금 제물을 모조(模造)하게 하여 그들의 우상의 제단에 자신들의 자녀들을 제물로 드리게 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공의, 순결, 사랑 등과 같은 하나님의 속성들은 압박, 폭력, 잔인에 밀려났다.

그들 중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불신자들의 주장에 속아 그들의 술책에 말려든 사람들도 있었다. 주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있는 충성스러운 자들을 위하여 그분의 심판을 지체하시고, 그들의 참된 품성을 나타내도록 백성들에게 시간을 주셨다. 백성들의 참된 본성이 드러나게 되자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들에게 그들의 목적을 단념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들의 대담한 사업에 완전히 연합되었다. 저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버려두었더라면 그들은 세계를 그 여명기에 타락시켰을 것이다. 그들의 동맹은 반역에 기초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이나 영광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을 높이고자 왕국을 건설하려고 하였다. 만일 이 동맹이 허용되었더라면 그것이 한 강대국이 되어 지상에서 의로움평화와 행복과 안전도 함께을 몰아내는 데 그 통치력을 사용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한”(7:12) 하나님의 율법을 그들 자신의 이기적이며 잔인한 마음의 의도와 맞는 법으로 대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IV. 현대 탈 바벨론 길

A. 바벨론 문화와 질서

바벨은 섞다’, ‘석이다의 뜻을 지닌 발랄이라는 동사에서 파생한 것으로 혼잡’, ‘혼란의 뜻이다. 이는 사단의 영토와 계보가 있는 곳의 특징이다. 바벨론은 무너져 내린다. 니므롯은 반역과 배도의 상징인 이 혼잡한 바벨을 도시로 건설하였다(10:9, 10). 바벨과 바벨론은 같은 사단의 계보에 속한 말이다. 훗날 느부갓네살왕이 신 바벨론 제국을 건설하였다(4:30). 이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파멸시켰고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 사도시대에는 이런 반신적이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에게 고난과 박해를 가하는 로마제국을 바벨론으로 보았다(벧전 5:13). 바벨탑 건설자들의 계획은 수치와 패배로 끝났다. 그들의 교만의 기념비는 그들의 어리석음의 기념비가 되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동일한 노선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배척하는 노선을 따르고 있다. 그것은 사단이 하늘에서 실천에 옮기고자 하던 원칙이요 그의 제사를 드리는 데 있어서 가인을 지배했던 원칙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바벨론을 참 하나님에 대하여 적대적이고 그 분의 백성을 핍박하는 세력으로 그들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하였다(18:5).

바벨론은 1)교만과 인간 영광을 상징한다. 2) 반역적-반신적이다. 3) 타락-배도와 혼잡의 세력이다. 4) 음녀-기생이다(17:1). 5) 짐승(국가)을 탄 세력이다. 6) 물질과 돈에 중심 관심을 둔 종교 비지네스업자들이다(18). 7) 성도의 피에 취하는 박해 세력이다(17:5).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에 따르면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교계 내에는 바벨탑 건설업자들이 등장한다. 둘째 천사의 기별(14:8; 18:2)의 핵심은 바벨론이 (1) 신학적 타락(진노의 포도주가 된 거짓교리)(14) (2) 도덕적 타락(18)의 특성을 지녔다.

바벨론에서 나오라”(18:4)는 메시지는 1. 그릇된 구원신학에서 탈출하라. 2. 말씀에서 빗나간 교회에서 나오라는 것으로 압축된다.

큰성 바벨론이라는 말이 요한계시록에는 6회 나온다(14:8; 16:19; 17:5; 18:2, 10, 21). 17:5에서는 큰 바벨론을 두고 비밀’(mystery)라고 하고 있다. 신비한 것은 계시에 의존하지 않으면 그 뜻을 알 도리가 없다.

무신론자들은 과학의 상상적 추론(推論)으로 학설을 만들고,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배척한다. 그들은 몹시 주제넘게도 하나님의 도덕적 정부를 비판하고 그분의 율법을 멸시하며 인간의 이성(理性)으로 충분하다고 자랑한다. 그리하여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8:11)하다.

소위 그리스도교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단순한 가르침에서 떠나서 사람의 이론과 재미있는 우화로 신경을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그 탑이 하늘에 올라가는 길이라고 가리킨다. 범법자는 죽지 않을 것이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지 않고도 구원이 확보될 수 있다고 가르치며 능변을 토하는 입술에 사람들은 경탄하면서 집착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표준을 받아들인다면, 그들 가운데 연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가 그분의 거룩한 말씀 위에 높임을 받는 한, 분열과 분쟁이 있을 것이다. 이한 신조와 교파로 이루어진 작금의 그리스도교계의 혼잡과 혼란은 바벨론이라는 말로 적절히 표현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은 그 용어를 세상을 사랑하는 마지막 때 교회들에게 적용하고 있다(14:8, 18:2).

많은 사람들은 부귀와 권력을 얻음으로 스스로 천국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하게 말하며”(7:8), 인권을 짓밟고, 하나님의 권위를 멸시한다. 거만한 사람들이 한동안 큰 권력을 휘두르고 그들이 경영하는 모든 사업에 성공할지는 모르나 결국 그들은 실망과 불행만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임박하고 있다는 시대의 진동이 감지되고 있다. 지존자께서 인간들이 건축한 것을 보시려고 곧 강림하실 것이다. 그분의 주권이 드러날 것이며 교만한 인간의 사업들은 낮춤을 당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33:13, 14, 10, 11).

B. 큰 바벨론은 무너진다.

인간은 바벨탑 문명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이 바벨탑은 무너져 내렸다. 우리 시대에 사회적 건실한 도덕적 축대가 무너져 내렸다. 탈근대주의 시대에는 오순도순 신뢰하면서 살아온 미풍양속이 급속하게 사라져간다. 인간의 집단적 반역과 반신적 항거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폭력과 이 나무하는 사회로 전락된 지 오래다. 예전에는 못 보던 참혹한 사건들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신학적 터전이 흔들리고 변질되어 가고 있다. 교회들은 말씀의 진리 지반으로부터 떠난 지 오래다. 교회가 바벨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얼마 전 한기총의 총회장이 돈을 써서 당선된 것이 이슈화된 일이 있다. 요한계시록은 진리의 보루와 성채가 되어야 할 교회가 타락한 음녀가 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대형 교파나 교회들 안에서 일어난 취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진다. 교회가 가장 험한 시기에 처하여 있다. 현대진리는 말씀의 진리를 등진 교회에서 대 단위 탈출하는 운동을 종말론적 현상의 하나로 다루고 있다. 영원한 복음을 거절한 바벨론 교회는 바벨탑처럼 무너지게 되어 있다.

바벨론 탈출 메시지는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에게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 재림교회는 탈 바벨론 운동과 무관한가? 하나님 백성들은 무기력해 가고 있다. 타락하고 혼탁한 문화와 흙탕물 같이 도도히 흐르는 죄의 기류 속에 허우적거리는 백성들을 향하여 외칠 영적 힘이 없는 것처럼 비쳐진다. 이는 자기 마음에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지 못하면서 사는 결과가 아닐까? 그래서 남은 백성들이 선행적으로 이 혼잡하고 반신적 기류에서 탈출하여야 한다. 탈출하라.

C. 그리스도의 비하

높아지고 잘난 체 하면서 하늘을 오르려는 루스벨 정신의 화현인 바벨탑과는 대조적인 사건은 하늘의 영광을 버린 하나님이 이 땅의 구유에 탄생하신 사건이다. 그는 종으로 사시면서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셨다. 바벨탑 사건에서는 인간이 아래에서부터 위로, 하늘로 올라가는 일이 중심 과제였지만, 그리스도는 이와는 반대로 지존하신 위에서부터 겸손하게 낮은 데로 내려오셨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길이다.

D. 오순절 성령의 역사

창세기 11장과 사도행전 2장은 대칭을 이루고 있다. 교회는 오순절에 탄생하였다. 오순절은 교회의 생일날이다. 오순절 날 지중해 연안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사도들이 강론하는 메시지를 알아들었다. 사도들이 국제 언어인 헬라어로 말한 것이 아니다. 히브리말이나 아람어로 이야기 할 때 각지의 언어로 알아들은 것이다. 바벨탑 사건에서 언어가 혼잡스럽게 되어 언어 장벽으로 서로가 상대방을 미워하고 오해한 사건으로 갈라진 사건이 이 오순절에 치유되어 말씀으로 하나된 것이다. 성령의 침례와 충만은 언어를 순화시켜 서로를 묶는 본드가 되게 한다. 갈라디아서 3:28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이, 성별, 신분, 출신지역, 다른 문화 등 모든 것을 뛰어 넘어 하나 되는 일이 일어나는 일은 성령의 역사로만 기능하다. 자기의 언어로 하나님의 위대한 사업에 헌신하여도 모두가 알아 듣고 하나되는 사건-이것이 오순절 사건이다.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비로서 창조명령과 복음명령 대로 각지로 흩어져 그 사명을 다하는 하나님 나라 건설을 하는 일이 가능하다.

바벨탑 사건에는 자기 이름을 고양하고 집단적 항거가 난무하였지만, 오순절 사건에서는 자기는 침묵하고 남을 정죄하는 혀가 없어지고 남의 허물을 보는 눈이 사라지고 악한 소리를 듣는 귀가 없어진 것이다.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형제들에게 창 50:22에서 요셉처럼 간곡한 말을 한다.

무질서 대신 복음의 신령한 질서가 교회를 다스리고 자기말만 일방적으로 하는 무소통 대신 새로운 성령의 언어의 소통이 차고 넘치는 교회가 된다. 성령의 파도치는 은혜를 받아야 바벨론교회에서 탈출한다.

V. 여호와 이름은 견고한 망대(A strong tower)(18:10)

바벨론은 크고 재물이 넉넉하고 찬란하다. 그러나 그것은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다. 죄인은 바벨탑으로 나가지만 의인은 강력한 탑(A strong tower)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가 의존할 것은 무너져 내릴 바벨탑이 아니다. 의지할 수 있는 강한 탑은 여호와뿐이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18:10). 이 탑은 어떤 쓰나미에도 요지부동하는 안전한 탑이다. 견고한 망대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