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시작
하루의 시작
하루의 시작을 저녁으로 보는 시각은 특이하다. 사람들은 보통 아침이 하루를 시작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법적으로는 밤 자정이 지나자마자 하루가 시작하여 밤 자정에 그 하루가 마친다. 그러나 창조주일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루를 저녁 일몰로부터 시작하셨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세기 1:5). 레위기 23:32에 나오는 “저녁(evening)”의 히브리어 “ereb”은 “해질녘,” “황혼”의 뜻도 들어 있다.
하루를 일몰로 계수하도록 명하신 일에는 섭리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 저녁은 어둠이 지배하는 시간대이다. 혼돈과 공허가 그 바탕이 된다. 저녁은 눈물과 쓰라림과 회한이 엄습하는 시간대다. 피곤이 몰려오는 시간대이다.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편 30:5).
한 인격이 훌륭하게 살자면 하루를 일몰로부터 계산하는 하는 것이 좋다. 하루가 밝아져서 시작하고 어두워져서 끝내는 것보다 어두워져서 시작하여 밝아져서 끝나는 것이 좋다. 이것은 낙관적인 태세를 일깨워 준다. 인간이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오는 것으로 믿고 노력하고 산다는 것은 역경을 포기하지 않게 한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희망을 지닌 존재이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은 미래라는 꼬리를 잡고 있는 셈이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elpis)에 거하리니”(행 2:26). 인간 존재는 희망에 산다. “거하리니”는 “문자적으로 “장막을 칠 것이니” 또는 “장막 안에서처럼 거할 것이니”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인간은 희망이라는 집 안에서 살아야 한다. 오순절에 베드로는 시편 16편에서 인용하고 있다. 시편의 본래 의미는 이생에서의 다윗의 안전을 말하고 있다. 즉 희망이 안전이라는 것이다. 오순절에 베드로는 이 본문을 부활에 적용시켜 그 의미를 확대시키고 있다. 죽음의 잠에서 부활하는 새 아침은 인간의 영원한 희망이다. 이런 부활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본문을 하루 시작에도 적용해 봄직하다. 바울이 “그런즉 믿음, 소망(elpis),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고전 13:13)이라고 한 의도에도 이런 점이 담겨 있지 않을까.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과 죽음으로부터 부활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인간은 창조주일에서 시사하고 있듯이 희망의 끈을 잡고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새벽 4시 반이면 창밖 어느 나무에선가 다른 어떤 새들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어 가슴을 설레게 하면서 희망으로 아침을 맞게 하는 축복을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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