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그 이중적 현현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그 이중적 현현
의- 구속사의 핵
유명한 구약 신학자 G. 폰 라트(Gerhard von Rad)는 인간 생활의 모든 관계에서 의(sedaqah)라는 말처럼 구약 성서에서 핵심적 개념이 되는 말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 의라는 말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동물, 자연 환경에 대한 관계에서 그 표준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 이유로 이 말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생활을 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Old Testament Theology, 1: 370, 373 참조). 사실상 구약 성서에 이 말이 나오는 빈도수로 보아도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키텔(Kittel) 본문에 동사 형태 sdq가 “의롭다”, 또는 “의롭다고 선언하다”란 뜻으로 41회, 형용사 형태 saddiq가 “의로운”, “올바른” 뜻으로 208회, 명사 형태 sedeq 또는 sedaqa가 “의(righteousness)”, “공의 또는 공평(justice)”의 뜻으로 115회와 158회가 각각 나오고 있다. 이 의야말로 야훼의 우주 질서의 관건이 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이 의가 구속사의 핵이라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지혜, 용기, 그리고 절제가 하나의 조화를 이룬 플라톤(Platon)의 정의의 덕이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평등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는 인간의 자존적, 윤리적 규범으로 절대적 이념이나 합리적 지성으로 규제되는 적법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테네의 의 개념은 추상적 관념이나 인간의 내재적 덕목인 윤리학적 단어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를 절대적, 이념적인 윤리적 규범이라는 것으로 전제한다는 것은 예루살렘의 구약 성서와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구약 성서가 하나님 밖에 있는, 또는 하나님을 초월한 규범으로서의 의를 시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약 성서의 갈피갈피에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야훼 하나님 자신이 항상 절대적인 의의 규범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의란 것도 실상은 야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만이 인간을 의롭게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이 의의 규범이 되시기에 그 분이 세우신 표준에 일치하는 것이 의의 일반적 뜻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구약 성서의 의에는 항상 종교적인 면이 윤리적인 면에 선행하고 있다. 아테네에서의 윤리적-종교적인 순서가 예루살렘에서는 종교적-윤리적 또는 법정적(직설법적)-명령법적 순서로 뒤바뀌는 것이다. 이 점은 선행되는 역사적인 출애굽 구원 행위,홍해 도하의 구원 행위 다음에 시내산의 율법 시여 행위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 총회에게 한 노래에서 야훼-의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그[야훼]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works)이 완전하고(perfect)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just) 진실 무망하신(faithfulness)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신명기 32장 4절).
위 말씀에서 “공평하며”의 문자적인 의미는 “의로우신 분(saddiq)”이다. 즉, 야훼가 의로우신 분이란 뜻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는 자기 백성과의 관계인 그의 행동 중의 완전하심과 동의어적으로 나오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 개념은 구체적인 행동과 밀착되어 있다고 보겠다.
특히 이 의라는 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인간, 즉 자기 언약 백성들에 대하여 갖는 행동적 관계를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구약 성서에 나오는 의(sedaqah)는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 개념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는 그의 말씀, 약속, 언약에 진실하시므로 의롭다. 하나님의 의 자체가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난다는 것을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수행하시는 과정에서 확연하게 감지할 수 있다.하나님의 의는 언약의 약속을 하고 그것을 이행하는 신실성이나 배약하는 때에 위협하는 행위로 나타나고 있다.
의의 이중성-구원과 심판
신명기 32장 4절이 보여 주고 있는 또 하나의 면모는 하나님의 의가 이 신실성, 즉 진실 무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체결한 은혜 언약을 신실하게 수행하신 것이 애굽에서의 구출로 나타났다.(출애굽기 2장 24절,6장 2~5절 참조). 그래서 시내 언약은 은혜 언약의 강화.확대, 민족적.지역적 특수화 또는 구체적 적용이라고 볼 수 있다(창세기 12장 2, 3절, 28장 10~15절; 신명기 7장 7~9절 참조).
하나님께서 의로운 중에 행동하신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언약 백성에게 하신 은혜로우신 약속을 구속적으로 이행하신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의 이스라엘 역사적 사건 중에서 권능으로 구원하고 인도하며 지도하시는 행위들은 이와같은 하나님의 의의 구속적 현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의의 현현은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는 구원 행위나 돕는 행위로 나타나지만, 하나님 백성의 언약이 성취되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 즉 하나님 백성의 원수들에게는 저주와 파멸의 보복적 심판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야훼가 의롭게 심판하신다(시편 9편 4, 5절, 119편 7절 참조)고 찬양함으로 심판(판단)이 의로 말미암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의의 이중적 현현인 구속적 및 보응적 의는 구약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의의 기본적 특색이 된다.
드보라가 이스라엘을 지도하여 부른 노래의 한 구절에서 이 의의 역사적, 관계적, 구속적, 언약적, 구체적, 행동적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 그의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사사기 5장 11절).여기서 “의로운 일들”(sidqot-sedaqah의 복수형)은 문자적으로 “여호와의 의들”인 바 이는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위를 뜻한다. 개정 표준역(RSV) 성경은 “여호와의 의들”을 “여호와의 승리들”로 번역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과는 반대로 이 야훼의 의가 하나님과 그 백성의 원수들에게는 심판과 파멸 행위가 된다. 하나님의 의는 마치 리트머스 시험지가 알카리성에는 푸른색으로, 산성에는 붉은색으로 반응을 보이듯이 대상이 갖는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야훼의 구원하시는 의들에 관하여는 사무엘상 12장 7절과 미가서 6장 5절에도 나타난다. 개정 표준역 성경은 이들 성경절에서 “여호와의 의들”을 “여호와의 구원하시는 행위들(the saving deeds of the Lord)” “여호와의 행동들(the saving acts of the Lord)”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신 국제역 (NIV) 성경에서는 ”여호와의 의로운 행위들(the righteous acts of the Lord)로 번역하고 있다. 개정 표준역(RSV) 성경은 이사야서 62장 1,2절의 “의”를 “옹호”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야훼의 의는 구원하는 의로운 행위도 되고 옹호하는 활동도 되며 승리를 주시기도 한다고 보아 무방하다. 이러한 구원하시는 활동으로서의 의가 이사야서 후반부(40~66장)에 빈번하게 나오고 있다.(41장 10절, 42장 6절, 45장 8절, 50장 8, 9절 등).
이러한 점으로 보아 우리는 하나님의 의란 말이 구체적, 역사적 사건들에 나타난 구속하시는 사랑의 행위들을 뜻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곤고와 압제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의를 호소하곤 한다. 예컨대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시편 71편 2절)란 호소를 들 수 있다. 이러한 호소는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시편 31절 1절)와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저희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시편 35편 24절)란 메시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결국은 자비와 은혜로
하나님의 의는 이스라엘과의 언약에서 약속하신 것을 주시고자 한 것에 대한 유일한 보증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가 인자(hesed)와 신실성('emunah-faithfulness)과 연관된 점에서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시편 103편 17,18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찬송하고 있다.“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여기서 야훼의 의는 인자(hesed)와 동의어적이다. 그리고 인자는 언약에의 충실(‘emunah)과 연관되어 있다. 훗날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이 하나님의 의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위를 깨닫게 되었을 때, 종교 개혁의 봉화불이 타올랐고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이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의의 이중적 현현은 인종, 신분, 국가 등의 차이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체결된 언약적 관계에 선민들이 충성하느냐 아니면 반역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시편 72편에서 솔로몬 왕은 하나님 왕권의 표상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이 표상적 왕권의 원형적 사건은 왕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것이었다. 야훼의 의가 이스라엘인들에게 메시야의 의로운 활동과 통치, 그 통치권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을 보증하였다(이사야서 11장 4, 9절; 스가랴서 9장 10절 참조). 그래서 예레미야는 야훼의 이름을 “여호와 우리의 의(Sidqenu)"(예레미야서 23장 5, 6절)라 하고 있다. 이사야는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이사야서 53장 10절)고 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 구원하는 행위가 언약 백성들에게 평화(Shalom)를 가져온다. 이 샬롬은 전쟁이 없는 상태란 의미 이상으로서 하나님의 임재, 번영, 번성의 축복,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상태 개념을 뜻한다. 구약 성경에서 구원성, 완전성, 온전성으로 보이는 이 샬롬은 야훼가 의롭게 하시는 행위의 열매(결과)가 된다. 그렇다면 이 역시 인간 밖에서 오는 선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야훼의 의는 구원과 동의어적인 것으로도 묘사되고 있다. 즉, 의가 구원의 개념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야는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이사야서 51장 5절)이라고 선포하고 다윗은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시편 51편 14절)고 노래하고 있다. 또 다윗은 “내가 주의 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시편 40편 10절)라고 찬양한다. 여기 시편 40편 10절에 나오는 주의 의, 성실('emunah), 구원, 그리고 인자(언약, 충성)의 네 용어가 동의어 선상에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상호간 하나의 말이 다른 말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의는 냉엄한 또는 준엄한 심판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의와 자비 역시 동의어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와 자비가 차고 넘친다. 야훼께서 자비를 베푸신 때가 곧 그가 의로우신 때인 것이다. 이사야서 53장이야말로 구약 성서상의 의 개념에 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한 열쇠가 된다. 여기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은혜는 긴장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닌 완전한 조화 관계인 것이다. 이사야서 53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무죄한 메시야의 대리적 희생이 보여 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는 하나님의 의의 현현이라는 것이다. 야훼의 칭의가 메시야의 대리사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싸구려 은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장 6절). 여기서 은혜와 의는 불가 분리적으로 구원의 행위 안에 짜여져 있다. 의는 기본적으로 구원의 맥락 안에 있기 때문에 은혜야말로 의를 해석하는 관건이 된다고 보겠다. 의에서 은혜를 제거한다면 율법 중심의 생활이 될 뿐이다.
우리가 살펴본 구약 성서의 의 개념의 기초적인 것은 이렇다.야훼 자신이 의의 규범이 되고, 그 분에게서 의가 선물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며, 단순한 심판 행위라기보다는 역동적 원칙으로 그 현현은 구속적, 보응적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 것이다.이 하나님의 의는 역사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의롭다고 하시고, 승리를 주시고, 옹호하는 은혜로운 구속적, 관계적, 언약적 활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의 의는 단순한 존재, 신분을 드러내는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 행동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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