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과 구속(Rebellion and Redemption)>에 관한 서론적 연구
<반역과 구속> 에 관한 서론적 연구
I. 어휘 정의
1. 구속(Redemption) 의미
이른바 시장 언어인 “구속”의 어원은 히브리어 ga’al 로, “속전(ransom),” ”되사다(to buy back),“ ”회복하다(to recover)“을 뜻한다. 헬라어로는 agorazo 경우 ”사다(to buy), “매입하다(to purchase)”의 뜻을 지녔고, lytroo 경우 “속전을 지불하고 자유하게 되다(to free by paying a ransom)를 뜻한다. 그리하여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은 뜻으로 적용되었다.
(1) 대가(값,속전)를 지불하고 노예나 물건을 을 지불하여 되사오는 것(레 25 25-)
(2) 값을 지불하고 신체적 구속 또는 포로에서 풀려나는 일
(3) 인간이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죄와 영적 속박에서 풀려나는 것
(4) 죄, 죄책, 오염 사단의 권세로부터 구속
(5) 율법의 정죄에서 구속
다음 성경본문은 이런 구속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막 10:45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ransom, lytron)로 주려 함이니라.”
엡 1:7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롬 3:21-25 24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 – 용서, 죄책으로부터 해방, 심판 받을 책임으로부터 해방, 죄의 종으로부터 자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구속(redemption) 오늘 날 보다도 협의적으로 위와 같이 이해하고 있었다. 현대에 와서는 이 구속을 구원하는 전(全) 행위에 관한 메타포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 반역(반란, 내란, Rebellion) 의미
상당수의 사람들이 나라의 정부나 지도자를 시위와 힘(폭력)을 사용하여 뒤집어엎어 바꾸려 하는 행위, 합법적인 권위(개인이나 집단)를 무력으로 조직적으로 전복시키려는 공개적 저항 내지 반대행위
내란은 실정법상으로는 국토 참절(僭窃) 및 국헌문란 목적으로 하는 다수인의 조직적 폭동행위이다.
II. 총론 서술
A. 창조 당시의 우주 운행 원리
모죄가 들어온 다음에라도 든 피조 세계에는 창조의 원래의 모습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즉, 자기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닌 다른 대상을 위한 봉사, 자원하는 사랑의 봉사하고 있다.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 외에는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은 하나도 없다. 공중에 나는 새나 땅위에 기어다니는 동물로서 어떤 다른 생물에게 봉사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수림의 나뭇잎이나 풀잎사귀도 다 봉사하고 있다. 온갖 수목과 관목과 풀잎사귀들은 사람이나 동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명의 요소를 발산하며 사람과 동물들은 그대신에 수목과 관목과 풀잎사귀의 생명에 도움을 준다. 꽃들은 향기를 발산하고 그 아름다움을 펴서 세상에 복을 끼친다. 태양은 무수한 세계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그 빛을 보낸다. 모든 샘물의 근원이 되는 바다는 각처에서 흘러오는 물을 받고 있지만 그것은 다시 주기 위하여 받는 것이다. 바다의 표면에서 증발되어 올라가는 수증기가 다시 비가 되어 땅에 떨어지는 것도 땅을 적시어 곡식을 싹트게 하기 위해서이다.”(소망, 20-21)
B. 죄악의 비밀
완전한 세계에서 죄가 발생 했다는 것은 신비의 영역에 속한다. 성경은 악의 기원 전말을 다 설명하지 않고 있다. 바울은 불법의 비밀(살후 2:7)이라고 하여 인간의 지성으로 다 풀기 어려운 영역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죄악의 시작은 그 존재 이유와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죄의 시작과 죄의 최종적인 처분, 악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완전히 나타나게 되는 것에 대하여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GC 492). “ 만일 죄의 원인과 그 존재 이유를 밝힐 수 있으면 죄는 죄가 될 수 없다”(GC 493).
그럼에도 불구하고“죄의 존재에 관하여 질문하면서 하나님께서 결코 계시하지 않으신 것까지 알아내고자 노력하는 자들이 있다”(GC 492).
천상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 대쟁투가 지상 역사를 통하여 확장되어 왔다. 선과 악의 큰 싸움 가운데 존재한 인간의 생존 역시 이 구도에서 벗어 날 수 없게 되었다. 산다는 것은 싸움이라는 어느 철인의 지적은 크게 틀리지 않지만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큰 싸움이라는 큰 흐름의 빛 가운데 서서 보아야만 그 진상을 바로 알 수 있고 승리자의 길을 걸을 수 있다.
C. 하늘 회의와 구속의 언약 체결
D. 사단의 하나님 품성 오도
E. 반역의 확장과 전개과정: 교과 전개(성경 시대의 대쟁투 전개 과정 개요)
하늘에서의 위기- 천상세계의 반란
에덴에서의 위기 – 인간 타락
전 세계적 반란에 대처한 믿음의 조상들
사사시대의 투쟁과 위기
왕국시대, 포로 시대, 성전 재건시대 이어지는 투쟁
예수의 광야의 투쟁과 승리
예수의 가르침에 나타난 대쟁투
대쟁투의 전우들(제자들)
초기교회 시대 대쟁투
바울의 반역에 대처케 한 메시지 - 한 몸과 갑옷
베드로의 대쟁투 경각 메시지
전투하는 7교회 시대
최후적 구속의 완성
F.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사탄의 전략과 하나님의 저지
III.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 이해 시각들
A. 고전적 승리설
(1) Origenes의 사단배상론(Ransom to Satan)
(2) Irenaeus 및 몇 교부들(Aulen은 Irenaeus를 고전적인 승리설 범주에 포함시킴)
(3) Gustaf Aulen--스웨덴
Christus Victor: An Historical Study of the Three Main Types of the Idea of Atonement. Trans. A.G. Herbert. New York: Macmillan, 1969. 그리스도의 속죄를 죄, 사망, 마귀에 대한 승리로 본다.
(4) C. S. Lewis
(5) Martin Luther: Aulen은 Luther의 속죄론을 이 승리설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B. 객관주의 속죄론-하나님 주도 및 인간 지향적 차원에서 속죄를 본다.
(1) Anselmus—하나님의 영예 만족, 하느님은 왜 사람이 되셨는가?"(Cur Deus home?)
(2) Reformed--하나님의 공의 만족, 제한속죄론
(3) Arminians(1618-1619)--하나님의 공의 만족, 보편속죄론, 주로 하나님 주도적
(4) H. Grotius--통치설
C. 주관주의 속죄론 - 인간 지향적 이론 특색을 지녔다.
(1) Abelard--도덕감화설
(2) Socinians(1605)--모범설
(3) Schleiermacher(d. 1834)--모본론 또는 신비론
(4) Ritschl 과 Kant--모본론 또는 도덕적 완전 이상론
(5) Gogarten 과 Ebeling--순수 개성론(pure personality theory)
(6) H. Wiersinga--충격효과론(The shock-effect atonement)
D. 기타 이론들
(1) Irenaeus--회복설(The recapitulation theory)(Aulen은 승리설에 포함시킨다.)
(2) Karl Barth--교환설(The exchange theory), 정교한 화해론
(3) Pannenberg--표준역전론(An Exchange via a reversal of standards theory or The Change-of-Standards)
IV. 하나님의 구원 속죄 사역에 대한 성서적 표현 방식
A. 화목제물
hilasmos어족인 hilasterion 이 힐라스테리온을 propitiation(화목제물)로 번역한 경우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를 야기시키는 죄에 대하여 희생제물로 그 분의 거룩함과 의로움을 만족시킨다. 이 만족을 위한 대책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Propitiation의 초점은 the offended God에 있다. 힐라스테리온을 속죄제물(expiation)로 번역한 경우에는 죄책 행위(offense) 제거에 역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참조: 롬 3:25; 히 2:17; 요일 2:2; 요일 4:10).
요컨대, 죄가 진노를 격발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진노 대상이 사랑의 대상이 다.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 또는 속죄제물이 되셨다는 것은 그 진노를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셨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이 화목제물 사상에는 법적인 시각에서 하나님의 공의 만족의 대속이 내포되어 있다.
B. 화해(Reconciliation katallage) - 소외, 원수 관계로부터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회복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 8:10).
C. 전쟁터의 용어 –사단, 죄 죽음에 대한 승리 창 3:15 (원복음)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 쟁투 시사
D. 제사용어- 유월절 양, 제사장, 어린양, 정결
E. 법정 용어- 재판관, 심판, 법, 정죄, 형벌, 칭의, 용서, 죄 제거
F. 시장 용어 – lytroo 어휘군, lytrosis(redemption), ransom
V. The Great Controversy between Christ and Satan
1. 대쟁투사관
성경의 갈피갈피에 배어있으며 구속사를 관통하고 있는 세계관은 그리스도와 사단, 선과 악 사이의 우주적 대쟁투라는 거시적인 축이다. 엘렌 G. 화잇은 이 거시적인 축을 중심으로 성경의 구속을 해독하고 구속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이 대쟁투 사관은 지상적인 것을 중심으로 한 사적 유물론과는 달리 그리스도 중심의 사관이다. 이는 추상적인 선과 악이라는 윤리적 대결이 아닌 그리스도(미가엘)와 사단이라는 두 인격 사이의 투쟁이다. 그리고 충성한 천사와 반역한 천사들 사이의 투쟁이다. 이 투쟁 가운데 처하여 있는 인간에게 어느 한편을 선택하고 그에 충성을 요구한다. 하나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그분께 충성하며 그 분을 증거하여야 하므로 고난의 길을 결단하여야 한다. 이 투쟁은 역사의 진전과 더불어 강화되어 가서 전 세계가 그 무대가 되어 가는 특성을 띄고 있다. 악마의 도구로 전락하여 온 세계에 큰 힘을 발휘하는 정치-종교의 세력이 상호 연대하여 역사의 방향을 잡은 것 같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와 성도의 승리는 약속되어 있다. 각 시대의 대쟁투의 주 “목적은 진리와 오류와의 대쟁투의 실상을 나타내 주고, 사단의 간계(奸計)와 사단을 성공적으로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당신의 피조물을 취급하시는 모든 일에 있어서 공의와 자비가 충분히 나타나도록 죄의 기원과 그 최종적인 처리에 빛을 비추어 줌으로 죄악이라는 인생의 큰 문제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하나님의 율법의 거룩하고 변함 없는 성질을 보여 주는 데 있다”(GC xii).
2. 대쟁투의 신학적 함의(含意).
성경과 엘렌 화잇의 메시지의 무대와 틀이 되는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우주적 대 쟁투라는 거대 담론으로서의 대쟁투 사상은 <각 시대의 대쟁투>에만 국한 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전 성경을 아우르고 있어 <시대의 총서> 모든 책의 기조가 된다.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라는 어휘가 성경에 직접 표현되어 있지는 않으나 그 사상은 풍부하게 나온다.
갈리(Norman R. Gulley)는 재림교회 27개 기본신조들을 간략히 도해적으로 분석한 후 대쟁투적 시각에서 7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즉, 성서적 우주적 쟁투의 세계관, 하나님에 대한 사단의 참소, 인간 창조, 우주적 쟁투 전개 과정에서의 하나님의 하시는 일, 인간을 구원코자 오신 그리스도, 구원의 의미, 구원 받은 자로 형성된 교회, 및 역사를 통하여 최후적 사건들의 우주적 쟁투로 향하여 나아가는 교회를 보여주시므로 대쟁투 사관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시각이다. 홀부루크(Frank B. Holbrook)는 신구약 전체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 기원, 지상에서 전개과정,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마지막 투쟁 전말, 그 이슈들, 교회사적 개요 등을 다루고 있다.
4. 대쟁투의 기초 이슈들
사단이 천상반역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오도하여 혹독한 독재자로 부각시켰다. 즉, 대쟁투의 기초 이슈들은 사단이 도전한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과 하나님의 율법 및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이다. 사단의 참소는 12가지 구체적 방식으로 펼쳐진다(Norman R. Gulley, “The Cosmic Controversy: World View for Theology and Life,” JATS 7/2(1996): 84).
◊ 아버지와 그리스도는 자기부인(self-denial)이 없다(“The Government of God,” RH, March 9, 1886).
◊ 아버지와 그리스도는 이기적이다(ST, May 16, 1900; DA 57).
◊ 하나님은 억압적이다(DA 57).
◊ 하나님은 자기희생이 없다(ST, Aug. 27, 1902 ).
◊ 하나님은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하라는 요구를 하면서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주는 것이 없다(ST, Feb. 13, 1893).
◊ “천사들은 지배받을 필요가 없으며 언제나 그들을 바르게 지도해 줄 그들 각자의 의지를 따르도록 허용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GC 499),
◊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하여 인간이 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한다(S T, June 18, 1894). ◊ 하나님의 율법이 폐지되고 범법자들이 하나님의 호의를 받을 복귀할 다른 계획이 고안되어 죄로부터 구원 받지 않는 한 인간은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ST, Feb. 5, 1894).
◊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에서는 용서가 불가능하다고 선포했다(DA 37).
◊ 그리하여 하나님은 지혜와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고 선포하였다(ST, Jan. 16, 1896).
◊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자비가 공의를 파괴시켜 아버지의 율법도 폐하여졌다(DA 762).
◊ 사단은 타락한 인간과 연합하여 일련의 거짓 이론들을 유포시킴으로 하나님께 불순종케 하여왔다. 이렇게 하므로 사단은 하나님의 인내가 고갈되기를 바랐다. 인간 대리자들을 동원 하나님의 공의 칼날을 치켜 올려 반역자들을 치는 일이야 말로 타락하지 않은 세계와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에게 자기의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한다(ST, March 7, 1895).
이런 주장들을 중심으로 아우르면서 중요한 몇 가지를 첨가하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 독재론 내지 폭군론
사단은 하나님의 품성을 오도하여 압제자로 그리고 자기부인이 없는 이기적인 분으로 오도하는 독재론 또는 폭군론을 전개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한 공의(정의)와 무한한 자비의 조화로 이해하는 것이 정당하다. 공의는 사랑의 구성 요인이어서(DA 761). 사랑으로 표출된다(DA 762) 양자를 분리하는 일은 양자를 모두 파괴시키는 것이 된다. 사단이 주장한 하나님의 품성, 즉, 공의와 자비의 충돌론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창조주와 구속주되시는 하나님의 경륜의 신비성을 다 알지 못한 소치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 품성을 대표하는 율법과 하나님의 공의와 지비의 조화를 증명한 창조주이시며 구속자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주장으로 이어갔다. 엘렌 화잇은 온 우주 앞에 사단의 반역의 특성을 밝혀내므로 하나님의 품성을 옹호하며 인간 안에 하나님의 품성을 회복케 하는데 있다. 요컨대, 엘렌 화잇의 대쟁투 사관에서는 사단이 제기한 하나님 품성의 왜곡 이슈가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2. 하나님의 율법 적대
사단은 대쟁투 주제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의도적으로 왜곡시키므로 하나님의 품성을 오도하여 왔다. 그는 하나님의 법이 마치 “이기적인 법(a law of selfishness)”이 되는 것처럼 유포시키면서 먼저 율법불필요논증(The "Need Not" Argument)을 강변하였다. 율법이 요구하는 절대적 공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專制性을 표출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하늘의 존재자들을 다스리는 율법에 관하여 의심을 심어 주기 시작하였다. 그는 다른 세계들의 거민들에게는 율법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천사들은 더 높은 존재자들이므로 그와 같은 속박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의 지혜가 충분한 안내자가 되기 때문이다 라고 암시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있는 존재자들이 아니며, 그들의 모든 생각이 거룩하며, 하나님 자신이 죄를 범하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죄를 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PP 37).
루스벨은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을 전복하고자 온갖 시도를 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완전성과 하나님께 향한 충성심을 역설하면서 다른 한편 자기에게는 율법이 해당되지 않는다는 당위성 배척 논증(The Should Not Argument)을 주장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이 완전히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정부의 안정을 위해 하늘의 질서와 율법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율법에 반대하도록 선동하고 그의 휘하에 있는 천사들의 마음에 자신의 불만을 불어넣으면서도 표면상으로는 그가 불만을 제거하고 불만을 품은 천사들을 하늘의 질서로 돌이키려고 노력하는 척 하였다. 비밀리에 불화와 반역을 선동하면서도, 그는 능숙한 술책으로 충성을 촉진시키며 조화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자기의 유일한 목적인 양 보이게 하였다”(PP 38).
“하늘에서 대쟁투가 시작된 시초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전복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 되어 왔다. 사단은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창조주를 반역하였다. 그는 하늘에서 쫓겨났지만 이 세상에서 여전히 동일한 그 싸움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인류를 기만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하는 것이 그가 꾸준히 추구해 오는 목적이다. 그 목적이 하나님의 율법을 모두 다 버리게 하거나 그 일부분을 버리게 함으로써 성취되든지 간에 그 결과는 궁극적으로 똑같다”(GC 582).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자 사단은 기뻐하였다. 루스벨은 이를 두고 하나님의 율법이 순종할 수 없는 것이라는 자비와 공의의 충돌론과 함께 순종불가능 논증(The Could Not Argument)을 부각시켰다.
“대쟁투의 초기에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할 수 없으며, 공의가 자비와 조화되지 않으므로 율법을 파기하지 않고는 죄인이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모든 죄는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만일 하나님이 죄의 형벌을 면제해 준다면 그분은 진리와 공의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사단은 주장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그분의 뜻을 대항할 때 사단은 기뻐 날뛴다. 사람은 율법을 순종할 수 없으므로 용서받을 수 없음이 입증되었다고 그는 선언한다. 사단은 자기가 반역한 후에 하늘에서 추방당했기 때문에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총에서 영원히 제거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직도 죄인들에게 은혜를 나타내고 계심으로 그분은 공의로우실 수 없다고 주장한다”(DA 761).
“대쟁투는 최초부터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것이었다. 사단은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며, 그분의 율법에 결함이 있고, 우주의 행복을 위하여 그것을 변경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써왔다. 율법을 공격함으로 그는 그 율법의 제정자의 권위를 뒤집어 엎으려고 하였다. 그 대쟁투에서 하나님의 율례에 결함이 있어 변경해야 되는지 혹은 완전하여 변할 수 없는 것인지가 나타나게 될 것이었다”(PP 69).
“아담의 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쟁투의 쟁점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의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PP 73).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확립하신 바로 그 방법을 사단은 율법을 파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놓고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마지막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 자신의 육성으로 말씀하신 율법에 결함이 있어서 어떤 특정 부분이 제거되었다고 사단은 이제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주장은 그가 세상에 가져올 마지막 대기만이 될 것이다”(DA 763).
“사단은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을 이기적인 율법으로 나타낸다. 그는 우리 인간이 그 율법의 계명들을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한다. 그는 우리 시조(始祖)의 타락과 거기에 따른 모든 재난의 책임을 조물주에게 지우고 사람들로 하나님을 죄와 고통과 사망의 창시자로 여기도록 만든다. 예수께서는 이런 기만을 폭로시키실 것이었다. 그는 우리 중 한 사람이 되어 순종의 모본을 주실 것이었다. 이 일을 하시기 위하여 그는 인성을 취하시고 우리의 경험을 몸소 체험하셨다”(소망, 24).
“하늘에서 대쟁투가 시작된 시초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전복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 되어 왔다. 사단은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창조주를 반역하였다. 그는 하늘에서 쫓겨났지만 이 세상에서 여전히 동일한 그 싸움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인류를 기만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하는 것이 그가 꾸준히 추구해 오는 목적이다. 그 목적이 하나님의 율법을 모두 다 버리게 하거나 그 일부분을 버리게 함으로써 성취되든지 간에 그 결과는 궁극적으로 똑같다. 율법의 한 조목을 범하는 자는 온 율법에 대한 경멸을 나타낸다. 그의 감화와 행동은 범죄의 편에 있으며 그는 결국 율법을 “모두 범한 자”(약 2:10)가 된다”(GC582).
“이 위기는 나라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로 만드는 일에 연합할 때 이르게 될 것이다”(5T 524). 엘렌 G. 화잇은 “안식일 문제는 전 세계가 참여할 최후의 투쟁의 정점이 될 것이다”고 하여 마지막 대쟁투의 계쟁점을 분명히 하였다(6T 352).
3. 하나님의 아들 적대
하나님의 사랑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사건이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대속적 희생을 당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현현 그 자체이다. 이 예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대한 사단의 참소가 허구라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의 정당성을 입증하였다. “예수께서 인류 가운데 사시려고 오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심으로써 이러한 몽매한 오해를 없이 하시기 위함이었다 ”(정로, 11). 그리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사단의 적개심이 대쟁투의 이슈가 된 것이다.
“그의 [사단의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비난은 순전히 그리스도에 대한 적의 때문에 생긴다”(5T 470). “사단은 하늘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궁정에서 가지신 그 지위 때문에 그를 미워하였다. 그가 쫓겨났을 때에는 그리스도를 더욱 미워하였다. 그는 죄에 빠진 인류를 구속하시기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미워하였다”(DA 49).
“그리스도의 영과 사단의 영 사이에 존재하는 적의는 세상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다. ... 그분의 극기와 결백한 헌신의 생애는 거만하고 방종한 자들에게 계속적인 견책이 되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적의를 일으켰다. 사단과 악한 천사들은 악한 사람들과 합세했다. 모든 반역의 세력은 진리의 투사이신 그리스도를 대적하고자 꾀하였다”(GC 506).
“하나님께 대한 사단의 증오는 그로 하여금 구주께서 보호하시는 모든 대상을 증오하게 만든다”(DA 356). “반역자의 괴수는 그리스도의 절대권의 증거를 바라볼 때 모든 증오와 적의를 일으킨다”(DA 470).
VI. 하늘에서의 위기(제1과)
A. 하늘 반역
완전하게 지음 받은 소위 루스벨로부터 죄가 일어난 이유는 신비의 영역에 속한다.
신약성경은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고 하며 교만으로 못 박고 있다.
“또 자기 지위(rule, domain)를 지키지(보존하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 1:6). 여기서 “지위” 즉, “아르케(arche)”는통치영역도 된다. 표준역에서는 “자기네가 통치하는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로 번역하고 있다. NIV는“did not keep their positions of authority”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천사들이 누리던 본래의 지위를 분명하게 지칭하는데, 그들은 이른바 루스벨을 따랐을 때 그것을 잃어버렸으며 하늘에서 쫓겨났다. 자기 신분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 본래의 자리는 “기름부음을 받은…그룹”(겔 28:14)이라는 자리이었다. 마귀(항상 단수)는 자기가 있어야 될 자리를 지키지 않고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사 14;14)고 하였다.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딤전 3:6). 이런 교만을 다음 성경 본문들이 극명하게 들추어 내고 있다.
B. 하늘 반역과 관련된 성경 본문들
구약성경 에스겔과 이사야는 마귀를 바벨론 왕, 두로왕으로 빗대서 말하고 있다. 이 예언자들의 구체적 묘사를 보면 문자적인 바벨론 왕이나 두로 왕의 위치를 넘어서고 있다. 교만이야 말로 두 왕 모두의 진상이었다.
1. 이사야 14:4, 12-15 사단의 상징 교만한 바벨론왕권 심판
이사야 14:4-23의 기사는 멸망한 바벨론과 그 왕들에 대한 만가(輓歌) 형태로 나온다. 그러나 이사야는 실제의 바벨론 왕 배후에 있는(14:4) 더 큰 세력인 사단을 예언적으로 투시하고 있다. 실제로 바벨론 왕은 사단의 특성과 정책들을 시행했던 것이다(12~16절). 초기 바벨론의 최고신이었던 아누(Anu)는 그 보좌가 극 지방에 있는 세 번째 하늘에 있었고 그 별자리를 중심으로 다른 별들이 그 주위를 돌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바벨론 왕의 교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사야는 바벨론 왕의 교만과 그 몰락을 사단의 타락과 멸망으로 빗대고 있다.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 14:14). 다니엘서에 보면 바벨론 왕들이 자기들의 왕권을 신격화시키는 교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교만은 하나님과 동등한 반열에까지 이른다. 고대로부터 통치권자의 신격화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12절에 나오는 계명성(helel-빛나는 자, 금성, 샛별)을 불가타역은 Lucifer(light-bearer)로 묘사하고 있다. 천주교 성경 역시 이사야 14:12을 Lucifer로 번역하고 있다.
헬렐(helel), 헤오스포로스(heosphoros), 루치페르(Lucifer) 등과 같이 사단에게 적용되는 많은 용어들은 사단이 한때 하늘에서 그리스도 다음 가는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지금까지도 그리스도의 경쟁자임을 함축하고 있다. 이 용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어느 것도 고유명사 이름으로 적합하지 않으며, 그것들은 오히려 루시퍼가 잃어버린 높은 지위의 속성을 가리키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 나타난 표현들은 그 능력과 권위 그리고 천사장으로서 그리스도 다음가는 지위에 있었던 사단에게 적용된다.
교부들 이래 Lucifer 천사장을 하늘에서 쫓겨난 교만한 사단으로 보는 시각이 이어져 왔다.
그런데 벧후 1:19에 나오는 “샛별(포스포로스, phosphoros, 빛을 가져오는 자)”역시 히브리어 helel에 해당한다. 불가타 역본에서는 벧후 1:19의 샛별을 “lucifer”로 번역하고 있다. 벧후 1:19에서 ‘샛별“은 그리스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세심한 성경학도는 사탄에게 적용시킨 lucifer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킨 lucifer를 구별할 안다.
2. 에스겔 28:2, 12-19 사단의 상징 교만한 두로왕 심판
11~19절은 두로 왕에 대한 애가 형태의 글이다. 그러나 본문을 두로 왕에게만 적용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 비유적인 다음 표현들이 두로라는 지리적 성격을 훨씬 초월하기 때문이다. (1)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13절), (2) “너는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14절), (3)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15절), (4)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멸하였도다”(16절). 에스겔은 두로 왕권을 통하여 불가시적인 강력한 존재를 예언적으로 투시하고 있다. 즉, 그는 사단의 특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이해할 때 이 본문은 후에 마귀와 사단으로 알려지게 된 천사의 기원, 최초의 지위 그리고 타락의 역사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풍요로운 두로 왕은 지혜와 아름다움이 넘쳤고 대제사장 흉패에 부착하는 보석들로 호화롭게 치장하였지만 교만하여 사단의 표상이 되기에 적합하였다. 그의 아름다움이 타락의 빌미가 된 것이다. 이 아름다움이 그에게 덫이 된 것이다.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겔 28:14)은 이른바 루시퍼 신원에 걸 맞는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했을 때 사단은 예수를 질투했다(EW 145). 그는 인간을 만드는 일에 의논의 대상이 되기를 원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특권으로 사용하는 그 능력을 가지려고 열망함으로써 그는 높은 지위에서 떨어져 마귀가 되었다. 하나님이 마귀를 창조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름다운 천사를 창조하였으나 이 천사는 스스로 마귀가 되었다.
3. 하늘에서의 전쟁 – 계12:7-16
(1) 일반적 특징
요한계시록 제12장은 성경에 나오는 어떤 역사적 기간보다 더 광범위한 구약 4,000년, 신약 1800년의 역사적 기간을 포괄하는 독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동 역사적 기간의 묘사에 있어서 초점은 루스벨의 타락으로부터 1798년까지의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과정에서 야기되는 사건들에 모아지고 있다. 본 장은 5800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쳐 전개되는 대쟁투 역사를 순간 회상법(flash-back)을 채택하여 하나의 짧은 章에 담아내는 수사학적 문학기법으로 조명하고 있다.
(2) 구체적, 역사적 특징
요한계시록 12장 본문에서는 선악 간의 최후적인 투쟁이 우주적 범위로 전개되고 있다. 이 투쟁은 실재 인물들, 사건들, 및 장소들을 배경으로 한 역사성을 지녔다. 본문을 상징적이거나 우화적 내지 신화, 서사시로 풀이될 수 없는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을 묘사되어 있다. 이 역사적 전쟁은 미가엘과 용(사단) 사이의 하늘에서의 전쟁 시작, 아이(예수 그리스도)와 용 사이의 지상으로 확장된 싸움, 여자(교회)와 용 사이의 이어지고 있는 싸움, 및 여자의 남은 자손과 용 사이의 종말론적인 싸움으로 묘사되고 있다. 세 차례의 공격 위기에서 구원이 일어난다. 참된 교회는 간혹 여자로 표상된다. 계 12장에서 여자는 참된 교회를 상징한다. 붉은 용은 9절에서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을 상징한다.
사탄 용이 태어 난 아기(예수)를 삼키려 한다.
용은 그 어머니(하나님 백성)를 박해하고자 한다.
용이 여인의 뒤에서 물을 강처럼 토해 내며 여자의 남은 자손과 종말론적인 싸움을 한다.
(3) 하늘에 전쟁
이제 요한은 하늘에서 있었던 사단과 그리스도 사이의 대쟁투의 역사를 그 기원으로부터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가 승리할 때까지(계 12:7~9; 참조 골 2:14, 15), 그때에 사단이 마침내 이 땅으로 내어 쫓긴 것(계 12:10~12) 그리고 마지막 때까지 지상에서 벌어지는 쟁투의 흐름(계 12:13~16; 참조 단 11:35 주석)으로 간략하게 제시한다. 이 간략한 개관은 마지막 시기 동안 전개될 쟁투의 광범위한 윤곽(계 12:17~20:15)을 위한 배경의 역할을 하는데, 그것으로 이 쟁투는 마지막에 성공적으로 종결된다.
a. 제한된 실험--종말론적으로 하나님과 사단은 모두 인간의 생명을 놓고 제한된 실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단은 하나님이 나쁘고 잘 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한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이 세상은 우주의 극장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 (여기서 “구경거리”는 KJV에서 “극장”으로 번역되어 있음.)
b. 대결
사단은 각 시대에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원수의 목표는 하나님의 예언자들(다니엘, 사도 요한, 엘렌 화잇)의 목소리를 잠재우는데 있다.
1260년의 예언 기간(12:6의 1260일; 12:14의 한 때, 두 때, 반 때)이 끝나는 1798년에 대 단원의 전환점이 된다.
남은 무리의 신원과 그 특징--하나님의 십계명 모두(안식일 포함)를 준수하고 예수의 증거 곧 예언의 선물을 지님.
C. 이어지는 투쟁
1. 사탄의 추방과 세상 임금(계 12:10)
사탄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아담의 에덴 통치 지배권을 장악하여 세상 임금으로 군림한다. 욥기 1장에서는 이 세상의 대표자인양 하늘 회의에 참석도 하여 욥의 가정을 파멸시킨다. 온 세상은 그리스도 아니면 마귀 두 세력의 투쟁장으로 변모하였지만 믿음의 선구자들은 이 싸움에 승리자들이 된다(히 11장).
2. 예수 그리스도의 투쟁
역사무대 배후에는 보이지 않은 세력들의 대결이 있다. 예수그리스도 지상 생애기간 중 축신 활동도 이 연장선상에 있는 사건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아담의 자리에 두셨다. 그리고 아담이 실패한 그 지점에서시험을 이겨내시어 승리자가 되셨다. 그리하여 인간이 그의 은혜를 통하여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여셨다(SD 24 참조).
죄 문제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구도에서 그 진정한 의미가 부각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애 출발 시 이 마귀와 싸워 승리를 거두신다(마 4장). 마귀가 그 분을 시험하였다(마4:1). 그분을 향하여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이 떡이 되게 하라고도 하였고, 거룩한 성으로 데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도 하였으며, 지극히 높은 산에 데리고 가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매 엎드려 자기를 경배하면 모든 것을 주겠다고도 했다(마4:2-9). 사단은 하나님의 자리에서 경배 받기 원하였다. 예수그리스도의 생애는 이 사단의 도전에 끊임없이 대결한 것이었다. 이러한 이해 없이는 그리스도의 사명의 정곡을 바로 이해 할 수 없다.
예수의 봉사 기간 내내 사단은 그를 늘 시험하고 괴롭히고자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투쟁의 연속이었으나 그는 접전 때마다 승리하였다. 그를 멸망시키고자 경주된 사단의 모든 노력은 기만자의 일을 더욱 드러낼 뿐이었다. 갈바리에서 정점에 이른 그리스도의 승리의 생애가 마귀의 파멸을 가져왔다. 사단의 가면은 찢겨졌다. 그의 활동 방법들이 천사들과 온 우주 앞에 드러났다. 예수께서는 “세상임금”의 심판을 예고하셨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요 12:31). 예수께서 갈릴리 온 회당에서 전도하매 귀신들을 몰아내셨다(막1:39). 바리세인들이 귀신의 왕의 힘을 빌어 축신행위를 한다고 몰아 부칠 때 예수께서는 사단이 사단을 몰아낸다는 비판은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하였다(마12:24-27).
3.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투쟁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마귀 세력과 접전하여 그들 세력을 굴복시키기도 한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 10:17-20). 눅 10:18에 나오는 사단은 헬라어 사타나스(Satanas)로“대적하는 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사탄(satan)에서 유래하였다. 바울은 사탄을 두고“이 세상 신”(고후 4:4) 그리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로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정사와 권세”의 정체를 밝혀내시고 승리하셨다.“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5). 그리스도는 특별한 의미에서 사단과 그의 천사들을 누르고 승리하였다. 십자가 위에서의 자기의 죽음은 사단을 하늘 세계의 동정에서 내쫓는 결과를 초래했다.
4. 전투하는 교회
지상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악의 세력과의 싸움을 싸우는 교회이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계 12:10; 욥 1:6; 2:4, 5)인 마귀가 계속하여 이어지는 각 시대 교회들을 미혹하고 공격하여 왔다. 그리하여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신약시대 각 시대의 모든 교회를 표상하는 7교회 시대는 전투하는 교회로 묘사되고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선포하신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3).
5. 신앙은 영적 전투의 삶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권세와의 영적 전쟁의 대열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탄과 그의 부하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향하여 우는 사자처럼 분노하여 삼키고자 하고 있다(벧전 5:7; 계 12:17), 삼키고자 한다.
바울은 우리의 임전태세를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2-17).
이 싸움에는 중립도 타협도 없다. 모두냐 아니면 없다는 십자가의 정병(精兵)으로서의 결연한 자세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6. 마귀와의 대결에서 그리스도의 근본적인 태세
마귀는 교만으로 인하여 타락하였다. 그의 모티브에는 위로 향하는 신분의 상승 도모에 있다. 이에 대한 예수의 대처는 아래로 종이 되는 자기 비하, 겸손(빌 2:5)의 모습으로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이것이야 말로 마귀의 근거 없는 참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바르트 신학의 강조점이 성육신 사건에 두는 이유도 이런 배경 속에서 이해하면 어떨가 한다. 그는 이렇게 풀고 있다.
(1) 그리스도 사건(Christ-event)은 성육신 사건이다. 성육신은 계시 사건이며 동시에 화해사건(Versöhnung), 또는 속죄사건의 기초가 된다. 이는 하나님이 계시와 화해를 주도하여 灣(gulf)을 연결하는 교량을 만드시므로 인간이 그 위에 올라가도록 하였다. 하나님은 das ganz Andere 이시다. 이 灣이론(gulf theory)은 S. Kierkegaard의 실존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언약은 계시적 만남 사건이다.
(2) 하나님의 비하는 동시에 인간의 승귀(exaltation)가 된다. 즉, 하나님의 비하가 인간의 승귀를 초래하는 교환 현상이 된다. Barth의 교환설의 진수는 바로 이 점에 있다. 이는 Iraeneus의 총괄갱신 개념과 유사하지만, 그 내용은 다르다. 비천한 상태는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고, 승귀의 상태는 인간과 관련되어 있다.
스토리:
엘렌 화잇은 “Press together(단결하라)”라는 어휘를 출판된 책에서 145회 이상, “press forward”를 130회 이상 사용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메시지는 1891년 대총회 회기에서 하신 말씀에 나온다. (참고로 엘렌 화잇은 unity라는 단어를 1666회, union이란 단어를 2269회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서로 분리되므로서 결국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단결이 필요하다. 아, 나 자신이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 앞에 있는 듯할 때에 얼마나 많이 천사들의 외치는 음성을 들었던가! 그 음성은 “단결하라! 단결하라! 사단이 그의 가증한 그늘을 형제들 사이에 던지지 못하게 하라. 연합하는 곳에는 힘이 있다”라고 말하였다”(2기별, 374).
“Press forward(좇아가노라)”이 표현은 바울의 빌립보교회에 보낸 메시지에 나온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dioko, press toward)”(빌 3:13-14). 이기려는 자는 목표와 상급을 분명하게 마음에 두어야 함을 그는 알고 있다. 경기자는 박수나 모욕에 주의를 돌려서는 안 되며, 긴장을 풀어서도 안 되며, 실족해서 넘어져도 안 되며, 멈춰도 안 된다. 그는 결승점에 도달하기까지 끊임없이 매진해야 한다.
나폴레옹이 한 때 자기 군대 진영에서 불만이 고조되어 공개적인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정보를 휘하 장수들로부터 듣고, 휘하 장수와 사병들을 모두 연병장에 소집하였다. 병사들을 원형 대오로 밀집하여 서로 팔을 펴 어께동무하면서 서도록 명령하고 자기는 원 가운데 섰다. 그리고 그는 “전진(march)”명령을 여러 번 반복하여 서로가 밀착되게 하였다. 마침내 더 이상 좁힐 수 없는 작은 원형 밀집 대오로 꽉 붙어 한 덩어리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군인들은 사령관을 중심으로 빽빽하게 둘러 싸 더 이상 좁힐 수 없는 원을 만든 것이다. 총사령관 지도자를 중심으로 어께에 어께를 맞댄 상황에서 사령관은 병사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고 난후 돌연히 병사들을 빠져 나와 휘하 장수들을 불러 오늘밤 프랑스에는 반역이 안 일어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밀착 연합된다면 가정도, 교회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바울의 서신서 중에 가장 즐겨 사용한 표현이 있다. “그리스도 안에”라는 헬라어 “엔 크리스토(en Christō),” “엔 크리스토스(en Christos),” “에이스 크리스톤(eis Christon, into Christ,” 또는 “엔 퀴리오(en Kyriō, in the Lord)”일 것이다. 이 어휘들은 바울의 편지서에 164회 이상이나 나온다. 그래서 바울 신학을 두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말은 그의 삶과 생활의 핵심되는 신앙고백이다.
Union in Christ야 말로 바울의 핵심 사상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예수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 사상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 까지도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내 삶이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 분이 내 삶의 중심이 되어 있다면 악령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구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원주의 사회에 살면서 (0) | 2016.01.27 |
---|---|
특사령을 거절한 사형수 (0) | 2016.01.22 |
신유 간증 (0) | 2015.10.30 |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그 이중적 현현 (0) | 2015.10.09 |
그리스와의 연합 (0) | 2015.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