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예수 문제

 

I. The Old Quest and Liberalism

 

OQ는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이성주의적, 자유주의적으로 접근한다. 교부시대 기독론은 그리스 철학의 소산물에 불과하다고 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초자연적 신적 본질을 무시한다.

성경 연구에 있어서 역사비평 방법(historical-critical method)의 도입으로 인하여 기존 성서연구나 공식적인 교리에 대한 비평적 사고가 등장하였다. 이 방법은 진리발견 탐색을 위한 목적으로 자연, 역사, 경험의 자료에 대하여 인간의 판단 능력을 적용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회의 전통이 더 이상 자명하고도 집적적인 진리의 권위를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성경비평학의 발전과 더불어 대두한 가장 신학적 이슈는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찾는 <예수 생애의 탐구>가 되어 왔다. Hermann Samuel Reimarus(1694-1768)는 계몽주의 시대 이후 소위 자유주의 신학에서의 복음서의 증언을 조사 평가한 예수관 연구의 주류를 제시한 것이다. Reimarus의 책자가 그의 사후에 익명으로 출판된 1778년에 이른바 Old Quest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설교)과 사도들의 가르침(신앙)을 구분하였으며 복음서의 초자연주의적 기술들을 배척하고 예수의 십자가 죽음도 실패로 보았다. OQ에서는 예수의 기적, 동정녀 탄생과 부활 및 재림의 교리를 포기하였다.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은 삶의 의무에 관련된 도덕적인 가르침에 있다고 보았다.

계몽주의 역사가 Edward Gibbon(1737-1794)Nicea 결의를 조소하고 동일본질론과 유사본질론은 중모음의 이변에 불과하다고 비평하였다.

튀빙겐학파의 창시자 F.C.Bauer의 문하생이었던 David Friedrich Strauss(1808-1874)R. Bultmann의 비신화화의 선구자로 Das Leben Jesu에서 복음서의 초자연적 기사를 허구의 신화로 보고 실재적 사건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부활 이야기를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문화적 의식과 종교적 관념의 표현(유대인들의 메시야 신앙 문화)으로 보며 과학적인 것으로 보았다.

Adolf von Harnack(1851-1931)What Is Christianity?에서 예수 시대에 건전한 통찰력의 결여로 이적 신앙을 한 것이라고 하고, 그리스도교가 도그마의 그리스도로부터 하나님 아버지 되심과 모든 인간이 형제라고 가르친 예수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여 예수의 복음을 강조하였다. 그는 복음서에 예수에 관한 전기적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예수의 메시지의 핵심을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천국이라고 보았다.

A. Ritschl (d. 1889)은 종교사학자로 예수의 신성에 관한 형이상학적인 진술을 배척하고 가치판단과 그리스도교의 윤리적 특성을 강조하였다. 예수의 신성에 관한 본문을 역사적 사실에 관한 진술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을 하나님에 관한 신앙의 표시로 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인격보다는 사역 봉사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의 강조점은 사랑과 천국이다.

Martin Kaehler(d. 1912)The So-Called Historical Jesus and the Historical-Biblical Jesus (1892)에서 도그마화된 그리스도를 역사적 예수로 보고 있다고 비평하면서 선포된(설교된) 신앙의 그리스도(kerygmatic Christ)와 역사적 예수를 구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기록은 역사적 사실의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참고: 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는 그리스도의 양성 연합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신다는 것을 의미하고, 예수의 하나님 의식(God-consciousness)을 그의 독특성의 근거로 보았다.]

 

OQ의 특징은 곧 그들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1) 역사의 예수(Jesus of History)가 교회의 신앙의 그리스도(Christ of Faith)에 대립시켜 다르다는 점을 부각하였다.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가 다르다는 주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실 예수에 대한 많은 부분이 윤색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그 진실을 다 모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그런 의미에서 다른 것을 다 양보한다 하더라도 역사적인 예수를 빼놓고 기독교를 말하는 건 그건 기독교라고 말할 수가 없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오늘 한국 개신교 교회 신학자들 중에는 신앙의 그리스도에 기초해서 기독교가 만들어진 그 자체를 잘못된 역사라고 한 칼에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것이 역사적인 예수의 삶에 터를 둘 때 그 고백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예수라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거나 혹은 하나님 자신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고, 자칫 인간을 신격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연세대 한인철 교수). 이들은 이 역사적인 예수를 외면하거나 덮어두고, 예수에 대한 어떤 신앙고백적인 언어만 난무한다면, 그것은 좋게 말하면 왜곡된 소문, 더 나아가서는 종교체제를 만들기 위한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다고 본다.

 

(2) OQ는 초자연주의를 배척하므로 예수의 이적의 가능성을 배척한다. 인간의 이성에 입각한 윤리적 예수 그리스도 상을 구축하고 있다. 예수는 대속자이라기 보다는 모본자이어야 한다.

 

(3) 역사비평 방법은 성경의 계시-영감을 인간의 주관적인 것으로 전락시키며, 신앙을 약화시키고 성경의 근본진리 특히 묵시문학적 예언들을 평가절하시키는 것은 물론이며, 경전 안에서 경전을 탐색하며, 해석에 앞서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점 등에 비추어 재림교회는 배척하고 있다.

 

해부하고 추측하고 재구성하는 고등 비평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는 신앙을 파괴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간의 생활을 제어하고 향상시키고 감명시키는 능력을 빼앗고 있다.”(AA 474).

 

성경을 전설과 인간의 추론의 희미한 빛으로 읽을 필요가 없다. 성경을 전설과 인간의 사상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마치 태양 빛을 횃불로 더욱 환하게 하려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영광스러운 빛을 더 밝게 하기 위해 횃불과 같은 희미한 세상의 빛은 필요치 않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에 빛이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 계시되어 있다. 그 외에 다른 모든 빛은 희미할 뿐이다.”(실물, 111).

 

Albert Schweitzer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1906)OQ의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역사적 예수를 탐색하는 일을 끝내는 역할을 하였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 예수의 활동과 메시지의 초점은 윤리적인 것이 아니고(윤리적 기독론 배척) 초자연적, 종말론적인 대망에 있었다고 보았다.

 

II. The No Quest and Neo-orthodoxy

 

유럽에서 자유주의 신학은 WW I 발발과 Karl Barth(1886-1968) 등장으로 끝났다. 미국에서는 좀 더 늦게 1930년대 대공황과 유럽의 신정통주의 물결로 자유주의 신학의 종언이 일어났다. Barth19세기의 OQ 같은 예수의 생애 연구방식의 목적과 결과에 문제성을 인식하고 역사는 신앙의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Carl BraatenBarth의 이러한 입장은 고린도후서 5:16 말씀, 우리가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에 나온 것처럼 역사적 예수 연구를 뛰어 넘었다고 평가하였다.

Barth는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무한대의 질적인 차이를 상정하였다. 인간은 아무리 정확한 역사적인 방법을 동원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전달할 수 없다. 두 사이에는 시간적으로 영원성과 한시성이라는 질적인 차이가 가로 놓여 있다.

Barth는 제1차대전으로 자유주의 신학에 환멸하였다. 포탄이 작열하는 가운데 수많은 인간들이 참혹하게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인간성에 대한 신뢰나 낙관주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93명의 쟁쟁한 교수들이 Kaiser의 전쟁 프로그람에 동조한 사실에 전율하면서 새로운 신학으로 방향 선회를 하였다. 인간에게 절망을 안겨준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탈피한 것이다. 그는 인간의 죄성을 절감하는 중에 전적인 타자로부터의 계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바르트는 정통주의에서 말하는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부활 등 위로부터의 기독론적 면모를 풍기는 설파를 하여 오랫동안 잊혀진 성서적 그리스도를 제시하였다.

 

하나의 언약개념처럼 하나의 계시 사건밖에 없다. 계시 사건은 곧 그리스도 사건이다. 그의 신학의 축대는 그리스도 일원론(Christomonism) 또는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centricism)인데 있다. 바르트는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보아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그리스도교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그리스도 사건이 하나님의 순수한 임재가 된다. 역사적 트랙이 없는 신적 현현이 진정한 계시 개념이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 사건은 나사렛 예수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의 잔재는 남아 있다. 만일 나사렛 예수가 역사상 화육한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은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나사렛 예수는 그리스도 사건의 한 예시에 불과하다. 나사렛 예수는 보통 역사의 범주에 드는 Historie에 속하나 그리스도 사건은 하나님의 특별한 행위가 있는 초역사인 Geschichte에 속한다(Kant 의 현상계와 예지계 구분 방식 원용). 그리스도는 참 역사가 된다. 계시의 비역사성(Historiesche) 때문에 No Quest라는 특징을 지닌 것이다.

 

바르트의 이런 역사구분은 M. Kaehler(d. 1912)의 방식을 차용 발전시킨 것이었다. Kaehler는 더 나아가 케류그마적인(kerygmatic) 그리스도, 신앙의 그리스도를 강조하였다. 케류그마는 예수의 직접적인 말씀이 아니라 예수에 관하여 선포한 말씀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가가 연구하는 2000년 전의 예수가 아니라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선포되어 왔고 지금 하나의 현실로 경험하는 신앙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바르트는 키엘케골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무한대의 질적 차이 사상을 원용하여 구원론을 전개한다. 죄로 인하여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깊은 심연(gulf)이 생겼다. 타락사건을 하나의 전설, 史話(saga)로 보면서도 심연을 연결하는 화해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간은 처음부터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본 때문이다. 하나님의 무한성과 인간의 유한성 사이에 있는 심연을 화해사상으로 해결한다. 심연에 다리를 놓는 화해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이 화해(reconcliation, Versőhnung)라는 용어로 자기 신학 사상의 지반으로 삼고 있다. 그의 화해론은 기독론, 죄론, 객관적 구원론, 교회론, 주관적 구원론, 및 화해 윤리를 결합하여 상호 관련시키고 있다(CD IV/1, 2, 3a, 3b,4).

 

바르트의 화해론은 비법정적인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교환론적이다. 하나님의 비하로 인간의 승귀가 일어나는 보편적 화해론, 보편적 칭의론 및 보편적 성화론을 포괄하고 있다. 이 화해 사상에서는 죄에 대한 만족론적 속죄 사상은 배척되고 있다. 속죄란 인간 지향적이다.

 

그리스도는 선택하신 하나님(the elective God)이면서 동시에 선택된 인간(the elected man)이다. 하나님은 이 그리스도 안에서 전 인류를 선택하셨다. 그리스도는 참 역사가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능동적으로 교류하는 참 역사가 있게 된다. 화육을 통하여 인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구원 받은 상태로 존재한다. 그리스도는 버림 받은 인간이자 동시에 선택된 인간이다. 그의 성육신은 모든 인간에 대한 화해의 산실이 된다. 바르트는 Chalcedon“very God and very man"이라는 결정을 요한복음 1:14의 주석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말씀이 인간으로 변했거나 신과 인간의 중간자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고 보았다(CD I.2 p. 132). 삼위일체에 대한 고전적인 교리를 수용하고 있으나 아버지를 계시자(Revealer), 아들을 계시(Revelation), 성령을 계시됨(Revealedness)이라고 하는 내적 존재에 있어서의 삼위일체로 보는 내재적 본질론으로 접근하였다.

 

바르트의 기독론이 양태론적이라는 비평이 있어 왔다. 그의 속죄론에서 만족론 개념이 배척된 점, 역사비평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 원 타락 사건과 예수에 대한 초자연적 사건들을 참역사 개념에 넣었지만 역사적 예수의 지평에서 제외시키는 답습을 한 점 등은 문제시 되고 있다.

 

신정통주의 또 다른 학자 Rudolf Bultmann은 비신화화된 그리스도로 급진 선회하였다. 그는 실존주의적인 케류그마를 강조하여 실제 역사와 구분하였다. 그는 역사적 사실로서의 그리스도 역사를 서술하지 않았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불가지론을 펼친 것이다. 바르트에 비하여 더욱 급진적, 비평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였으며, 인간론적인 범주에서 실존론적으로 신화를 재해석하였다. 그리하여 예수의 원 역사에 신화적 요인이 덧칠하여 진 것으로 보고 이를 재 해석한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이 문자적 성육신, 문자적닌 속죄, 문자적인 부활, 문자적닌 승천을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인류학적인 재해석을 한다. 그리하여 신약 기자들이 그러한 신화적 요소들을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종교적 진리와 체험을 오늘의 인간 실존의 범주와 관련시켜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III. The New Quest and Neo-Liberalism

 

NQ1953년 이후 R. Bultmann 제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E. Kaesemannkerygma 화 하지 않은 요소도 있다고 보아 복음서에서 역사적 예수를 찾을 거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역사적 예수와 케류그마 사이에 연속성과 동일성이 있다는 것이다. 산상설교는 그 예증이 되는 것으로 본다. 지상의 주님과 승천의 주님 사이에 동일성이 있다는 것이다.

 

James M. RobinsonG. Bornkamm은 케류그마 안에서 역사를 찾고, 역사 안에서 케류그마를 찾는 모습을 보여 준다.

D. M. Bailie는 그의 책 God Was In Christ (1948)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신비를 다루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의 신비를 역설적인 신비로 알고 수용하여야 한다는 역설적 기독론을 펼쳤다. 이 역설을 배척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성육신을 상실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Oscar CullmannChrist and Time (1951)에서 불트만이 경시한 역사에 대한 신뢰를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은 시간 속에서 일어났다고 보았다. 그리스도 사건은 실존적 신화적 해석을 해야 하는 사건이 아닌 구원사적 해석을 하여야 하는 사건이다.

그는 The Christology in the New Testament (1959)에서 그리스도의 칭호들을 다루고 있다.

 

* 참고: Friedrich Gogarten Gerhard Ebeling의 순수 개성의 기독론(The Christology of pure personality). 인간의 존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person으로 보았다. 이 그리스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Thou에서부터 존재한다. Gogarten은 이것을 롬 8:14과 갈 4:5이하에 나오는 아들 됨으로 보았다.

* 참고: Ernst Fuchs, Hans Conzelmann

 

IV. The Now Quest and Wolfhart Pannenberg(1928- )

 

판넨베르그는 그의 Jesus-God and Man (1968)에서 그리스도론을 전개하고 있다. 하나님의 관장 아래 있는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계시가 된다. 그러나 이 계시는 해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학자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종말론적이고 묵시문학적인 저술들에 나타난 단서들을 동원하여 그 해독을 할 수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판넨베르그의 기독론의 중심 위치에 있다.

2000년 전 팔레스틴에 살았던 예수가 우리 신앙의 근거가 된다. 신앙은 먼저 과거의 예수와 관계된다. 그는 바르트나 불트만 식의 역사-초역사 구분을 배격한다. 예수의 부활이야 말로 역사의 예수와 케류그마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을 말해 준다. 케류그마의 그리스도는 역사적 예수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케류그마는 역사의 예수 안에 이미 포함된 것에 대한 역사적 진술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이 시공간적으로 실제 사건이었느냐가 종래 역사적 예수론 상 문제시 된 점을 감안하여, 판넨베르그는 이 문제를 현재의 문제로 의식하였다. 그래서 그의 예수관을 Now Quest라는 범주에 넣는 일이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부활을 그의 신성에 대한 열쇠로 강조하였다. 그는 바르트와 불트만이 비역사적 사건이라고 하여 배척한 사건을 역사적 사건으로 본 것이다, 만족할만한 것이 아니라 하여도 빈 무덤과 예수의 나타나심은 부활을 역사적 사건으로 보게 한다.

그에게 역사와 교의학적 전통은 모두가 중요하였다. 역사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가장 포괄적인 지평이 된다. 시대의 끝에 일반적인 부활을 기대한 유대 후기 묵시문학적 조류를 부활론의 기초적 접근으로 삼기도 하였다. 그는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신성을 확인하는 것이 되고 또한 하나님과의 연합의 기초로 보고 있다.

예수에 관한 현재의 경험만을 취급하지 않고 과거의 예수로 돌아간다. 그는 역사의 루트를 통하여 아래로부터 예수를 추적하는 방법론을 사용한다. 그러나 예수에 관한 신앙고백은 우리를 위한 예수의 중요성으로부터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그러나 기독론이 구원론을 결정하는 것이지 구원론이 기독론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V. Jesus Seminar

지난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소위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에 이르러서는 그의 역사성에 대한 부정적 담론이 만개한 모습이었다.

 

<예수세미나> 소개

예수세미나(Jesus Seminar)>1980년대 중반에 200여명에 달하는 신, 구교 신학자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약 15년여에 걸쳐 행한 역사적 예수찾기 연구 운동이었다.

(1) 예수가 다른 종교의 성인과 또는 모든 인류와 존재론적(ontological)으로차별성이 없 으며 선한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라며 자신과 하나님을 명확히 구분했다.

(2)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와있음을 직접 깨달으라고 촉구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3) 예수가 임박한 종말을 선포한 종말론적 예언자라는 오랜 인식을 배척하였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종말론이 아닌 새로운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4) 예수세미나에 따르면 예수는 종말론적 예언자가 아니라 전복적(顚覆的)인 지혜 (subversive wisdom)’의 교사였다.

(5) 예수세미나는 역사적 예수와 선포된 자로서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해 일치된 의견을 갖 고 있지 않다.

(6) 대다수 예수세미나 학자들은 예수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매개해주는 유일한 중보 자라는데 대해 부정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예수는 중보자나 중개자(브로커)가 없는 하느님 나라를 선언했으며, 하나님을 직접 깨 달으라고 촉구했다고 강조한다.

유일한 중보자 그리스도는 그 배타성으로 말미암아 종교간 대화에 큰 걸림돌로 작용 해 왔다.

 

VI. 역사적 예수 연구사의 단계 요약

 

1단계--Reimarus에서 시작하여 Harnack 이르기 까지(1800년 중반 이후 약 100년 간)

사도들이 기록한 것과 예수 자신이 말씀한 것 구분 시도

성서적, 교의학적 그리스도론 배후에 숨어 있는 역사적인 예수 탐구

예수의 삶의 연구가 그 중심

슈바이쳐와 켈러로 인하여 종언

2단계--역사와 초역사 구분 방법을 추구한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과 불트만의 비신화 작업 에서 역사적 예수에 관한 질문을 거부

1960년대 초반부터 한10여년 가까이 주로 유럽에서 또 한번 역사적 예수 연구가 활발 1985년부터 미국에서 다시 한번 붐이 일어남. 도미닉 크로산, 로버트 펑크, 마커스 보그 같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라는 모임

3단계--불트만의 제자들이 케류그마 뒤에 숨어 있는 역사의 예수를 새롭게 연구

선포하는 예수와 선포된 예수 사이에 연속성 인정

복음서는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건들 취급하고 있다.

성서의 기록을 기초로 신학자들이 전통적으로 믿어 온 그리스도가 아닌, 실질적으로 2000년 전 이스라엘 땅에서 구체적으로 살았던 예수에 역점을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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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역사적 예수 가능성

 

1. 성서적 자료의 신뢰성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 이슈 전개 과정에 노출된 문제점들은 매우 심각하여 왔다. 그러나 역사의 예수(Jesus of history)는 확연하다.

1세기 초기교회에 있어서는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예수는 하나였으며 같았다. 신앙을 반대하는 자들은 무존재의 예수를 믿는다고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지 않아 왔다. 그들은 다른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하였다. 시간이 경과되어 여러 세기가 지난 다음에 계몽주의적, 근대적 사고 방식의 등장과 함께 예수의 역사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태와 요한은 예수의 제자들로 역사의 증인들이었다. 마가는 예수 채포 시 홑이불을 두르고 도망한 역사적 증인으로(14:51, 52) 사도 바울, 바나바의 선교여행에 참여하였으며 베드로의 조력자로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였다. 누가는 바울의 선교 동역자였다. 바울은 복음서가 기록되기 전 예수의 행적을 구두전승을 전하였다(고전 15:3-9).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성령의 지도를 약속하였다. 복음서에서 역사적 예수에 관한 기록을 폄하하는 시각은 계시-영감의 신적 권위성과 신뢰성을 무시하는 입장이 바닥에 깔려 있다. 인간의 전승을 보는 눈 위주로 거룩한 전승을 의혹의 눈으로 보고 그 신뢰성을 탈색시키고 있다. 거룩한 전승이 기록되는 때 성령의 특별한 지도가 있었고, 선별하여 필요한 것만 기록케 하였으며, 확실한 것만을 기록케 하였다는 점이 다음 성경 본문에 나와 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14:26).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21:25).

누가는 역사가적 시각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련된 사건을 기술하고 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1:1-4).

 

2. 역사적 증거

(1) 2세기 말엽 TatianDiatessaron4복음서에 의거 예수의 생애를 도출하였다.

(2) Flavius Josephus(Joseph Ben Matthias) (37-100) 유대인 역사가가 예수 사건의 역 사성 인정

Jewish War 2.9.2.--빌라도 부분에서 왜곡된 , 폄하된 표현

Jewish Antiquities(bk. 20)--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율법 파괴자 로 석살형 당하다.

Testimonium Flavianum (Antiquities bk. 18)--빌라도 통치 때

현자 예수는(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면) 놀라운 일을 행하였고

그는 그리스도였으며

십자가 처형하였으나 거룩한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제 3일에 살아났다.

(4) The Talmud (AD 200)

Sanhedrin 43a에 유월절 저녁에 예수를 매 달았다. 마술행하고 이스라엘사람들을 배 도케 하였다.

(5) Mara bar Sarapion 편지 (AD 73)

Mara3 현인을 언급,

아테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죽여 기근으로 죽었고,

Samian 사람들은 피타고라스를 죽여 바다 해일로 죽었으며,

유대인들은 현인 왕을 죽여 나라를 빼앗겼다.

 

(6) 2세기 초(AD 112) 비두니아와 본도 총독 Pliny의 그리스도인에 관한 보고서

그리스도인으로 시인 한 사람들 처리 문제 언급에서 그들의 도덕성과 Christus를 신 으로 섬기는 일 지적

(7) 로마 역사가 Cornelius Tacitus (c. AD 55-c. 117)

그리스도인 이라는 칭호가 Christus에서 유래, 네로가 화제의 귀책을 그리스도인들과 Christus에게 돌림. 그리스도에 향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점 지적

(8) 로마 황제 Hadrian의 장관 Suetonius

AD 125년 저술한 기록 중에 AD 49Claudius 통치 하에서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한 사건 기술에서 Chrestus를 전한 이유로 인한 유대인 사회의 혼란 상 지적 (18:2과 일치), ChrestusChristus의 또 다른 표현으로 보임.

(9) SamosataLucian(2세기 풍자가)

팔레스타인에서 십자가 처형을 함축한 용어 '처형된 자 impaled one‘ 사용, 그리스도 인들이 그를 경배하고 영생불멸을 신봉하고 있다고 하고 있으며 죽음을 불사하고 신앙한다 고 지적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