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1:18-23).

 

I. 동정녀 탄생의 의미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은 인간 아버지에 의한 탄생이 아닌 동정녀를 통하여 성령으로 낳으신(begotten) 것을 일컫는 말이다. , 동정녀 탄생은 영원 전부터 계신 그리스도께서 초자연적으로 탄생하심 점에 그 역점이 있다. 성육신을 통하여 인간의 육신의 모습을 취하셨지만 하나님 되심을 중단하신 것은 아니다.

 

II. 동정녀 탄생 비평과 반대론 근거

A. 동정녀 탄생사건에 대한 예수 당대의 비판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야의 동정녀 탄생에 관한 전승이 없었다. 그리하여 이적적 탄생 그 자체를 수용할 수 없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13:55-57).

그 형제들도 이런 시각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7:5).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6:3).

유대인들은 예수의 탄생을 혼외 출생으로 폄하하였다.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8:41). 여기서 우리은 강조어법이다.

 

B. 자유주의신학의 반대

인간은 동정녀 탄생을 증명할 수 없다. 성경은 이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그리하여 19세기 후반 및 20세기 초에 동정녀 탄생 문제를 두고 근본주의자들과 근대주의자들 사이에 일련의 논쟁이 있었다. 자연주의적 성서 비평가들과 자유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이슈를 끊임없이 비평의 타깃으로 삼아 왔다. Old Question에서도 동정녀 탄생을 배격하였다.

1. 종교사학파에서는 동정녀 탄생 이야기가 제2세기 저술가들이 이교 신화(처녀 수태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석한다. 이들은 동정녀 탄생 사건을 비본질적인 것으로 처리한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개입을 배격하는 입장은 모든 생명의 탄생을 이적으로 본다.

2.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무한한 분을 낳을 수 있느냐는 힐난도 한다.

3. 대부분의 NT가 침묵하고 있다. PaulJohn은 동정녀 탄생을 모르고 있다(Emil Brunner).동정녀 탄생은 NT의 케뤼그마에도 들지 못한다.

4. 그리스도의 선재성 교리와 어긋난다.

5. 자연법칙에 어긋난다. 동정녀 탄생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6. 동정녀 탄생 이야기는 saga에 불과하다(Karl Barth). Barth는 이 동정녀 탄생에 대한 Brunner의 생물학적 반대론을 배척하고 그 의도한 것이 진실한 정도이지 무용담 범주에 속한다고 본 것이다. 즉 동정녀 탄생은 존재적 요소(ontic element)를 지닌 것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고도 주권적인 하나님의 활동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싸인이 된 다는 것이다. G.C. Berkower 역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주권적인 활동 을 하는 싸인으로 보았다(Work 102-108).

7. 동정녀 탄생은 실존적 해석을 하여야 하는 전설이나 신화에 불과하다(R. Bultmann, Kerugma and Myth 1-44). VB는 종말론적 사건이지 과거 사건의 일정을 설명하려고 의도 한 것이 아니다. David Strauss는 동정녀 탄생을 후기에 발전된 신화로 해석한 원조였 다.

8. 동정녀 탄생은 비역사적 사건으로 전설(legend)에 불과하다(W. Pannenberg, Jesus, God and Man, 141-150). PannenbergBarth 입장을 반대하여 전설 즉 비역사적 사건으로 본 것이다. 그는 VB가 선재성 교리와도 모순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동 교리가 반가현론적, 반양자론적인 점에서 그 의미를 찾고도 있다. 요컨대 동정녀 탄생은 송영이나 예전적 의 미 정도로 국한 시키고 있다.

 

III. 동정녀 탄생의 증거와 가능성

A. 동정녀 탄생의 주 자료의 증거

성경은 동정녀 탄생을 가공의 이야기로 증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 실화사건으로 전하고 있다. 동정녀 탄생 이야기는 가브리엘 천사의 전언, 성령의 개입, 믿음의 수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1. 누가복음 1:26-38 누가는 마리아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2. 마태복음 1:18-24; 2:12-22 마태는 요셉의 입장에서 동정녀 탄생을 전하고 있다.

 

B. 신학적 증거

1. 동정녀 탄생은 이적이다. 하나님은 이적을 행하실 수 있다. 오늘날 인간들도 유전자 조작에 의하여 양성 결합 없는 생명체 탄생 가능성을 전망하고 있다.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

2. 성경이 예기(豫期)하고 있다 (3:15). 성경이 일반적으로 남자 중심의 족보를 나타내고 있는 점과 다르게 여인의 후손()로 말하고 있어 여자로부터 나오게 되었지 자연적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3. 마리아가 가브리엘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까?”(1:34)한 전후 문맥에서도 확인 된다.

4. 7:14 해석 문제--히브리어 “almah”는 처녀로 볼 수 있느냐는 비판이 있다. 이 입장에서는 알마를 결혼 적령기에 있는 젊은 여자(young woman)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이사야가 처녀를 가리키는 bethulah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베둘라 용례-에스더 2:17; 이사야 23:4, 12; 37:22; 47:1; 62:5; 에스겔 23;3; 요엘 1:18). 그리하여 이사야가 동정녀를 강조하였다면 7:14에서 베둘라를 사용하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는 창세기 24:43에는 알마가 처녀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점과 누가복음 1:34남자를 알지 못하니를 간과하고 있다. LXXalmah를 처녀를 뜻하는 parthenos로 번역하고 있으며 마태복음 1:21에서는 이 parthenos를 사용하고 있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알마의 정체를 비 메시야적으로 해석하는 입장(the nonmessianic interpretation)은 이사야 당대 알려지지 않은 으로 어느 여인으로, 메시야적 해석을 하는 입장(the strictly messianic interpretation)에서는 마리아로, 이중 성취 시각에서는 이사야 당시 어느 여인과 미래 마리아로 해석하는 입장이 나뉘어 있다. 이사야 당시의 여인의 정체는 이사야의 둘째 아내, 아하스 왕의 부인 또는 미지의 여인으로 보는 시각들이 있다.

5. 동정녀 탄생에 관한 신약 기자들의 침묵을 문제 삼는 것은 저간의 사정을 무시한 것에 불과하다.

동정녀 탄생 예고를 받은 마리아와 요셉은 당황하였지만 지시를 받고 함구하였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2:19). 마리아가 예수 탄생의 이적을 사람들에게 전하였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더구나 요셉은 약혼녀의 임신을 사람들에게 알릴 그런 위인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우리는 음란한데서 나지 않았다는 조롱을 받았으면서도 이에 대응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성령 잉태의 비밀에 관하여 어떤 말씀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이해에 한계가 있는 신비한 사실을 꼭 확산시켜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요셉이나 마리아가 어느 시점에서 예수께 탄생의 초자연성을 설명하였음직하다. 후에 마리아가 몇 신약 기자들에게 동정녀 탄생 이야기를 전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가 일반화 되지 않았다는 점이 초기교회가 신봉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

성육신 그 자체가 이적인 점에 비추어 보면, 성육신을 수용한다면 동정녀 탄생을 못 믿을 이유도 없다. 성육신사건과 동정녀 탄생은 함께 서 있는 사건이다. 어느 것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것 역시 무너지게 되어 있다.

 

IV. 성령의 수태와 Virgin Birth의 신학적 의미

성령에 의한 수태와 탄생은 예수 탄생의 동력적 원인은 인간에 있지 않고 성령에게 있다는 뜻이다. 그의 탄생은 인간의 성적 관계의 결과가 아니고 초자연적인 성령의 잉태로 탄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Dale MoodyRCVirgin birth 라는 표현 대신 이적적 잉태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이적 사역, 하나님 자신의 역사라는 것으로 보았다. 후에 로마가톨릭교회가 역점을 둔 동정녀 마리아론(mariology) 교리는 이 성령론적 의미를 무시 내지 간과하고 있다. 물론 마리아는 믿음이 있는 여인으로 귀한 모본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수태고지(annunciation) 기사는 마리아에 대한 찬양의 기사라기보다는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양이다. 이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1:35)는 선포가 초점을 아기 예수에게 두고 있는 점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 성령에 의한 수태와 탄생으로 성육신한 사건은 그리스도교의 기초석과도 같은 교리가 되었다.

 

1. 동정녀 탄생 없이 신성과 인성의 완전한 결합이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성적 결합의 결과라면 예수는 인간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2. 예수의 무죄성 확보책이 된다. 성령의 수태는 그리스도를 죄의 오염으로부터 보호한 것 이다(9:14 참조).

3. 인간의 구원은 초자연적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4.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5.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V. RC의 마리아론(Mariology) 발전

1. Protoevangelium of James(2세기 말)

2. A.D. 431 Ephesus 회의 Theotokos (The Mother of God)

A.D. 451 Chalcedon 회의 Theotokos

성경에는 하나님 어머니라는 말이 나오지 않고 예수의 어머니라는 표현만 나온다.

3. 중세 마리아 경배

5. 1854 Pius IX The Immaculate Conception

1870 Vatican Council 무원죄회태론 결의

19세기는 마리아의 세기

6. 1950 The Assumption of Mary

 

역사적으로 RC에서는 예수보다 마리아론에 더 역점이 놓여 있어(The Marian Pope, Queen of Heaven) 성령론이 약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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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