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I. 예수 탄생 연대
로마건국 |
749 |
750 |
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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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 |
서력기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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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C |
AD 1 |
2 |
예수나이 |
탄생 (秋)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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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Dionysius Exigus (520년 경 로마 수도원 승려)가 예수 탄생을 로마 기원(AUC) 754년으로 산출해 냈다.
1. 그러나 헤롯 대왕(34년간 통치)이 죽는 때가 750년 4월로 판명 났다. 그렇다면 헤롯 죽음 이전에 예수가 탄생해야 맞다. 이것은 베이컨이 밝힌 사실이다. 그래서 4년의 오차가 생긴 것이다.
헤롯이 죽기 직전에 월식이 AUC 750년 3월 12일 또는 13일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볼 수 있었다. 이 천문학적 현상은 헤롯 죽음의 연대 산출에 도움이 된다.
2. 눅 2:1 Caesar Augustus (BC 27~AD 14년)가 내린 첫 호적령(census, 인구조사령)은 구레뇨(Quirinius)가 수리아 총독 재임 중이었다. 아구스도 치세 동안에 로마제국의 전체 인구 조사령은 최소한 세 번(BC 28년, BC 8년, AD 14년)에 내려졌다. 이 중 BC 8년의 인구조사령이 예수 탄생과 근접한 연대가 된다. BC 8년과 BC 4년의 차이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당대 팔레스타인의 반발, 폭동 등 지역적 특수 사정으로 실시되기 까지는 통상적으로 상당한 기간이 걸렸다. 구레뇨가 로마제국의 인구조사령을 받아 실시를 시작한 때는 어떤 사정으로 BC 6년이었지만 유대의 정치 사정으로 마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RC 및 개신교 학자들은 눅 2:2의 ‘prote(첫 번)“를 ”before“로 해석적 번역을 하여 인구 조사령이 구레뇨가 부임하기 전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게 하여 역사적 인구조사령과 일치 조화시킨다. 그러나 전술한 것처럼 유대지역에서 발발한 피의 폭동으로 요셉의 베들레헴 여행이 늦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분에 관하여 앞으로 고고학적 자료가 더 나오면 분명한 이해의 길이 열릴 것이다.
3. 눅 3:1 Tiberius 통치 제 15년은 AD 27년 가을-28년 봄이 된다. 침례요한이 봉사를 시작한 때는 AD 27년 봄, 6개월 후 예수 그리스도가 공중봉사를 시작하였고 그 때를 두고 눅 3:23에서는 예수가 30세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요지는 곧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구주께서 친히 전하신 복음 기별은 예언에 기초 되어 있었다”(소망, 232-233). 그 예언은 천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알려 준 시기를 말한 것이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단 9:24). 70이레 예언기간에서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은” 사건은 AD 27년으로 산출된다. “서기 27년에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곧 이어 그의 공생애가 시작되었다. 그 때에 “때가 찼”다는 기별이 선포되었다.”(소망, 233).
예수 수침과 공중 봉사가 시작된 AD 27년 가을에서 30년을 수급하면 탄생 연대를 추론할 수 있다.
II.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 문제
Christmas는 "Christ's mass"의 축약형으로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Christus)와 "미사( missa) 합성어로서, 그리스도의 성찬의식을 뜻한다. 크리스마스 날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지켜져 왔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의 정확한 날자가 나오지 않는다. 제4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크리스마스가 경축일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그 계산 산출의 방법에 따라 다양한 일자들이 등장하여 왔다. Evangelical Dictionary of Theology 과 Daniel-Rops의 Jesus and His Time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1. 초기의 1월 2일설
2. 동방교회 1월 6일 (율리우스력의 12월 25일)
3. 3월 28일설
4. 3세기 Clement of Alexandria 4월 19일설
5. 5월 20일설
6. 12월 25일설 the feast of Mithra, 동지 전후 3일 이내
III. 크리스마스 도입의 역사적 배경과 그 준수에 대한 반대 이유
A. 역사적 배경
AD 66-70년 제1차 유대인들의 대 로마 항쟁과 예루살렘 파멸 결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펠라 피난과 로마 재국의 유대인 적대정책, 억압정책으로 안식일 준수가 유대주의의 상징으로 보이게 되었다. 예루살렘교회가 영향력을 상실하고 그 대신 이방인 교인들 중심의 로마교회가 주도권 장악하여 가다, 그 배경에는 로마의 유대인들 추방령으로 로마교회가 이방인 신도 중심으로 운영되어 가다. 이에 타협적인 로마신도들의 안식일 준수를 일요일로 대체하여 갔다.
AD 135년 유대인들의 제2차 대 로마 항쟁을 진압한 Hadrianus 로마황제의 유대주의적 잔재 청소 정책 결과로 예루살렘에서 할례 감독들의 피난하고 헬라인 감독들이 들어서 안식일을 일요일로 대체하여가는 환경이 조성되어갔다. 유대인 중심의 예루살렘교회의 붕괴로 인하여 로마교회가 주도적으로 일요일 제도를 도입하는 일에 앞장섰다.
안식일이 로마 당국의 박해를 불러오는 징표가 되어 간 상황에서 로마교회는 이교도들의 축제일과 의식들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재해석을 하면서 문화신학적, 토착화 신학적, 혼합주의적 융합을 시키면서 적 재해석을 하는 방향으로 나가갔다. 안식일에 대한 반동적 신학사상과 정책들 강화된 정치적 요인과 안식일에 예수의 죽으심을 슬퍼하며 금식하는 전승이 대중의 안식일 기피현상으로 이어지는 복합적인 사회현상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제2세기 초엽부터 등장하여 로마 제국에 만연한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 invincible Sun) 토착 종교가 잠입 대체되어 간 것이다. 기원전부터 로마, 이집트 등 이교도 지역에서는 태양 숭배 및 관련 신화에 따라 12월 25일을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 축일로 기념하고 있었다.
이 때 예수 그리스도는 “의의 태양”(말 4:2)이라고 하면서 이교도의 “무적의 태양신”을 그리스도로 대체하였다. 그러면서 니산월 14일의 유월절을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날로 지키는 의식을 로마제국 내에 만연되어 간 농신제 의식들의 여러 행사들을 그리스도의 부활절이라는 기쁨과 경축의 날로 도입, 대체하여갔다. 즉, 박해와 경멸의 대상이 된 안식일과 금식하는 고난 기념일 대신에 그 시대를 살아가는 보신책으로 일요일 예수 부활의 환희의 경축하는 날과 결합시켜 부활절 일요일 경축 준수로 자리매김해 간 것이다.
이는 로마 제국 내 만연한 미트라 민간 신앙은 “빛이 있으라”고 한 첫째 날과 잘 어울리고, 이 첫째 날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한 것과 잘 맞아 떨어져 창조와 부활을 상징하는 일요일 태양 경배와 결합으로 이어진 것이다. 12월 25일은 태양이 탄생하는 동짓날 전후 3일 안에 들어 있다. 금년에는 12월 21일이 동짓날이다. 1년 중에 해가 가장 짧아지는 동지(冬至)에 즈음하여 그 이후부터는 해가 조금씩 길어지기 때문에, 어둠이 물러나고 빛이 세력을 얻어 만물이 소생해 나갈 수 있음을 기념하기 위해서 12월 25일이 기념일로 지정되었던 것이다. 요컨대, 로마의 농신제(Saturnalia)에서의 미트라 탄생 경축제가 그리스도교에 잠입하게 된 것이다.이 날부터 해가 길어져 태양의 날로 경축해 온 미트라 신 경배 행사들을 그리스도교에 접목한 결과가 크리스마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AD 1세기 및 2세기 전반에는 크리스마스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2세기의 교부들인 이레니우스, 테르툴리아누스,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 역시 그리스도의 탄생 날짜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하지 않았다. 이는 초대 기독교회에서 그리스도의 탄생보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구원에 대한 신학적 집중이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본다.
기독교 공인 이전인 2세기 중엽이 지나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그의 저술에서 그리스도 탄생에 대한 관심과 탄생 일자에 대한 주장들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2세기 후반이 지나면서 점차 그리스도의 수난일인 유대력 니산월 14일(당시 로마의 율리우스력 3월25일을 수태일과 동일시하는 기준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로마 교황 율리오 1세가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선포한 350년부터 이 축제가 '기독교'의 축제로 인정되기 시작하였고, 오늘날까지 전통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처럼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기독교의 역사보다 훨씬 더 오래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며,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문화에 맞게 토착화됨과 동시에 이교도 문화를 정복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B. 크리스마스 경축일 준수 반대 이유
1. 크리스마스는 이교적 혼합주의 소산물이다.
2. 교회의 권위로 공식적 준수를 강요할 수 없다.
3. 소위 경축이라는 미명 아래 타락한 음주, 파티 및 갖가지 부도덕성이 결합되어 자행되고 있다.
4. 칼뱅, 녹스(Knox) 같은 종교개혁자들과 미국 청교도들, 많은 장로교도들이 경축을 반대하여 왔다.
5. 위에서 이미 제시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날이 12월 25이 될 수 없는 탄생연대기적 추론과 70이레 예언 기간을 통하여 추론한 간접적 성경 증거들을과 맞지 않다.
6. 팔레스타인에서 12월은 이른비 계절이어서 12월 25일 목자들이 들판에서 양을 돌보는 계절과 맞지 않다.
IV 엘렌 화잇의 크리스마스관
엘렌 화잇은 성경에서 그리스도 탄생일에 관한 침묵을 두고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주고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정확한 시간을 제시하여 주지 않는다. 만일 주께서 이 지식을 우리의 구원에 요긴한 것으로 여기셨다면 주께서는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서 모두 알 수 있도록 당신의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 성경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그 문제가 가장 현명한 목적이 있어서 우리에게서 숨겨진바 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명시하여 주는 것이다.”(가정, 477).
성경이 모세의 무덤을 숨기신 것은 그 무덤에 대한 우상숭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오늘날 크리스마스에 벌어지는 문제점들을 본다면 성경이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하여 침묵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에서 크리스마스 계절에 여러 가지 장식들이나 행사를 외면할 수 없는 문화적 삶의 한 부분이 된 점에 비추어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는 메시지들도 남기고 있다. 특히 서구 그리스도교 나라들에서 살고 있는 재림신도들이 유념해야 되는 기별들이다.
“자녀들은 이 날이 참으로 즐겁고 기쁜 날이라는 것을 교훈과 모본으로 가르침을 받아 왔기 때문에 이 기간을 아무런 관심도 나타내지 않고 지나쳐 버리기란 매우 어려운 일임을 그대도 알게 될 것이다. 이 날을 매우 유익한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할 수 있다.”(가정, 478).
“크리스마스 날에 그들 스스로의 허황한 오락과 쾌락의 추구 즉 그들의 영성에 해가 될 오락을 찾도록 그들을 방임해 두어서는 안 된다. 부모는 그들의 자녀들의 마음과 헌물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업과 영혼의 구원에 향하도록 함으로써 이 문제를 조절할 수 있다.”(가정, 478)
“하늘의 시여자께서 우리의 감사와 사랑의 선물을 함께 나누어 가지도록 하지 않겠는가? 형제 자매들이여 나아오라, 그대들의 자녀들과 함께 그대들의 팔에 안긴 어린 아기까지도 함께 나와서 그대들의 능력에 따라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라. 그대들의 마음으로 아름다운 가락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대들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하라<RH, 1882. 12. 26.”(가정, 480)
“동방박사들처럼 그대는 하나님께 그대의 가장 좋은 예물을 바칠 수 있을 것이며 그대의 허물로 죄많은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께 그대가 감사하고 있음을 나타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가정, 481)
“크리스마스와 새해의 축하 의식은 무력한 자들을 위하여 개최할 수 있고 또 개최하여야 한다. 부양가족이 많은 자들을 돕기 위하여 선물을 줄 때에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신다. ― MS 13, 1896.”(가정, 482)
“안식일학교 학생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상록수를 교회에다 비치해 두는 것이 죄라는 입장을 부모들은 취하지 말아야 한다.”(가정, 482).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탁하신 재물의 비례대로 선물과 헌물을 바쳐야 한다. 하나님의 사업을 받들고 그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바쳐질 기증물로 인하여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크리스마스가 하늘의 책에 기록되도록 하자.” (상게서).
엘렌 화잇은 크리스마스 계절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기념일은 아니지만 친구와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사랑의 관심을 보이는 계절로 삼는 것이 좋다(RH 1941.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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