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Sanctification)
성화 (Sanctification)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A. 중요성 및 사용된 용어
성화 또는 거룩함이란 성경의 핵심적인 주제이다. 거룩함은 하나님과 인간과 관계되는 주제이다. 또한 이는 예배와 도덕 과거와 현제 및 미래의 삶과 관계되어 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히브리서의 이 권고에 비추어 예수님처럼 사랑 많고 순결한 사람이 되기 위해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기독교인들의 최우선 의무가 되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거룩함을 나타내는 용어들은 당므과 같다.
히브리어 동사 qadash는 약 170회 나타난다. 그 뜻은 “(일상적인 사용에서부터) 분리하다.” “거룩하게 하다”는 뜻을 지녔다. 명사 qodesh “거룩함”은 470회 나온다. 형용사 qadosh는 “거룩한”의 뜻으로 120회 나온다.
신약성서에서 동사 hagiazō(28회)는 “거룩하게 하다,” “성별하다,” “갈라놓다”의 뜻을 전달하고 있다. 명사 hagiasmos(10회)는 거룩함(holiness), 성별(consecration), 성화(sanctification)의 뜻으로, hagiosyne(3회) 거룩함으로, 형용사 hagios(233회)는 “거륵한”으로 그리고 이 형용사의 명사적 용법으로 “성도” “거룩한 자”로 나오고 있다.
B. 정의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righteousness by faith)는 칭의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 칭의는 聖化의 삶으로 이어진다. 성화는 의롭다는 선언을 받은 백성들의 도덕성을 하나님의 의(義)의 표준에 이르도록 계속적으로 거룩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여기서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그 표준을 둔다. 따라서 성화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성화케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화는 예수께서 이루신 의를 성령께서 신자들의 생활에 적용시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인한 의의 첫 국면인 칭의 단계에서 동시에 발생하는 성화는 한 평생 이어지는 성화의 시작인 신분변화나 지위의 분리가 있다. 성령께서는 이 신분 변화에 이어지는 그리스도인 삶의 전 과정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사역을 신자의 삶에 적용하여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는 일을 하신다. 성화는 사람이나 물건이 의식적 및 도덕적으로 정결하여져 가고 하나님께 바쳐지는 행위나 과정을 지칭한다.
“성경에 나타난 성화는 개체 전체 곧 영과 혼과 몸이 모두 완전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온전한 헌신에 대한 진정한 개념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교회가 이 큰 축복을 누리도록 기원하고 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이 보존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성화, 7).
C. 성화의 본질
성화의 본질에 관하여 대표적 이론이 다섯 가지 이상이나 제기되고 있다[Melvin E. Dieter 외 4인이 각기 다른 성화관을 제시한 성화에 관한 다섯가지 견해 <Five Views on Sanctification(Grand Rapids: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87.)>을 참고하라. 이러한 여러 이론 중 개혁 교회와 웨슬리 계통의 견해를 조화시키는 것(루터의 칭의+웨슬리의 성화)이 보다 바른 이해가 된다고 본다.
“그 자체가 허위요 위험한 감화를 가진 성화의 이론이 종교계 안에 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성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 순수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다. 저들의 성화는 말과 의지적 경배에 불과하다.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품성을 참으로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결코 자기들이 죄없다고 하는 생각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생애는 비난할 여지가 없을 것이며, 그들은 받은 진리의 산 대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리스도의 품성대로 살기 위해 마음을 더욱 연마하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형상에 더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더욱 뚜렷이 홈없는 완전함을 분간할 것이며 더 깊이 자신의 결점을 느끼게 될 것이다.”(성화, 7).
성화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동시에 그분의 명령이다. 성화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우리는 선물에 감사하며 그것을 위해 기도하며 매일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성화(거룩함)의 기본적인 의미는 분리(성별)되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그 성별 분리된 목적은 하나님을 위한 특별한 봉사를 하도록 함에 있다. 신약성경은 신자들을 두고 특별한 목적으로 구별해 놓은 예수님과의 독특한 관계에 있는 성도라고 한다(고전 1:2). 그들은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갓 살기 시작한 무리들이다. 그들은 죄가 없거나 완전한 상태는 아니지만 그들을 성도라고 칭하여진다.
새로 태어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여 그분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명령법 아래 놓여 있다. 성화는 우리가 매일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갈 5:16, 22, 25)를 맺어가야 한다. 그리스도인 성장과 성화는 평생의 과정이며 우리를 구원하신 분의 흠 없는 형상으로 더욱 변화될 수 있도록 계속적인 전진을 이루어 가야 한다.
D. 성화의 기초 – 그리스도의 속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성화가 가능한 기초가 놓여졌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E. 성화의 動因 (agent)
성화의 역동적 권능은 하나님께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즉, 성화는 성령의 사역이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 1:2).
성화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뤄진다(히 11:6, 살후 2:13, 벧전 1:2).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F 성화의 특성
1.. 성령께서 하시는 초자연적인 사건이다.
칭의가 그런 것처럼 성화도 인간의 노력의 대가나 성취가 아니다. 성화는 하나님께서 한 인간 안에서 행하시는 초자연적인 역사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고 말하고 있다. 성화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여러 성경절들에 나와 있다(엡 5 : 26 ; 딛 2 : 14 ; 히 13 :20~21 등). 이런 점에서 성화는 육의 개선이나 영혼의 죄를 점진적으로 제거하여 인본적인 과정이 아니다.
성화가 초자연적이라고 할 때 그것은 성령의 은혜스러운 사역을 의미한다. 성화는 영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로마서 8장 4절). 영을 좇아 행할 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고(로마서 8장 6절)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로마서 8장 14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라디아서 5장 16절).
2. 성화는 과정적이며 영혼을 거룩함 안에서 강화시키는 점진적 사건이다.
성화는 완성을 향한 점진적 과정이다. 바울은 말한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장 6절).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은 구약 성경의 “야훼의 날”에 상응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며 심판의 때다. 따라서 그리스도 재림의 날까지 영적인 성장은 계속된다. “십자가의 도는...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린도전서 1장 18절)는 말씀에서 “구원을 얻는”이라고 한 진술은 현재 분사형으로 계속적인 활동의 의미를 보여 주고 있다. 혹자는 성화를 과정이라기보다 칭의 후에 오는 순간적 또는 즉각적 경험으로 국한시키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성화를 자라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제 2의 축복과 같은 즉각적인 것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성서적인 성화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히브리서 12장 14절)고 한 승리를 위한 명령법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이 좇는 일을 계속적인 현재 진행형으로 간증도 하고 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좆아가노라...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좇아가노라”(빌 3장 12-14절).
3. 성화는 주관적, 체험적, 실천적인 사건이다. 참된 성화는 사랑의 원칙을 실천함으로 이룩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사람들의 생애에는 실제적 경건이 나타날 것이다. 품성은 순결하고, 향상되고, 고상하고, 영화롭게 될 것이다. 순결한 교리가 의의 행위와 섞이고 하늘의 규례가 거룩한 행실과 혼합될 것이다(AA 560).
Rudolf Ott이 1917년에 『성스러움의 의미(Das Heilige)』 출판하였다. 하나님의 성스러움은 두렵고 매혹적인 신비로 신앙의 기본지반이 된다. 오토는 '누멘'(numen : 신·영혼·신성)에서 '누미노제'라는 용어를 만들어 '누미노제를 인지하는 순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 순간 우리는 ' 두려운 신비'(mysterium tremendum)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어떤 것을 다루게 된다…… 그 느낌은 때로 부드러운 파도처럼 밀려와, 마음을 예배에 깊이 몰두하는 평온한 상태로 가득 채울 수도 있다. 어떤 때는 안정되고 일관된 상태에 있는 영혼이 충만해져서 한동안 두려움으로 전율하게 한다. 피조물이 마음을 졸이며 떨고 말문이 막히는 겸손한 상태가 되는 것은 누구 또는 무엇 앞에서일까? 그것은 표현할 수 없고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는 '신비' 앞에서이다." 종교는 거룩함, 신비로움(mysterium), 경외감(tremendum), 탄복(fascinans: 오토는 종교가 가진 독특함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 종교적 감정들은 라틴어를 통해서 나타낸다)을 포함하는데 이러한 감정들은 우리의 몸 안에 내재된 신감을 통해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4. 성화는 신인 협력적 과업이다. 인간의 순종생활은 절대적이다. 성화는 하나님에 대한 의뢰, 의존은 날로 증가해 가는 삶이다. 성화는 계속적으로 자아를 포기하는 삶이다. 성화는 하나님의 주동적 사역이기는 하나 인간의 행위를 요청한다. 신자는 성령 안에서 행하고 자라가야 하고 능동적 순종을 하여야 한다. 바울은 “너희가...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장 12~13절)라 하고 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로마서 12장 1절)고 권고하고 있다. 인간은 죄된 것을 버려야 하고 거룩함을 발전시켜야 한다.
5. 은혜의 수단은 성화에 요긴하다. 말슴 연구, 경건한 예베와 진심어린 간절한 기도, 거룩한 성찬 예식과 같은 은혜의 수단들이 성화의 삶을 꼴 지어 가게 한다.
6. 성화는 하나님의 율법과 긴밀한 관계에 있다. 하나님의 율법은 거룩함의 표준이 된다.
혹자는 하나님의 율법이 성화에 있어서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보고 있으나 이것은 성경을 올바로 읽은 것이 아니다. 바울은 율법 준수 즉, 율법의 행위가 칭의를 말하는 문맥에 있어서는 무력하다거나 아무 상관이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롬 3:20 등).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인 행위 즉 성화와 관련된 문맥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율법의 가치와 정당성 또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롬 7:12, 13:8-10 ; 고전 7:19 등). 특히 그는 디모데전서 1장 9-10절에서 십계명의 순서에 따라 그리스 세계의 악덕 목록(Lasterkataloge)을 제시하므로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디모데전서 1장 8절)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7:12]. 바울의 글에서 율법에 관한 구원론적 구절들과 도덕적 구절의 용례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은 치명적 결과를 유발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구원의 방편이 아니다. 그리나 그것은 성화에 있어서 그리스도인 행위의 도덕적 표준이 된다. 바울이 하나님의 율법을 구원의 방편으로 보는 것에 대한 심각한 문제점을 지적한 말씀들을 빙자하여 율법 폐기론으로 귀착시키는 일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율법의 제3용도에 있어서 율법은 신도의 거룩함의 규범적 표준이 된다. 구원 받은 백성은 이제 감사하여 하나님의 율법의 심오하고 광대하고 높은 뜻에 따라 성화의 삶을 살아간다. 하나님의 율법의 핵심은 사랑이다. 따라서 거룩한 삶은 거룩한 율법의 기본적 정신인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구현을 하여 가는 삶이 된다. 이 거룩한 사랑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신실한 믿음의 반응과 결실로 체현되어야 한다.
7. 성화의 목적은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로마서 8장 29절) 함에 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 가는 일은 그리스도와 계속적으로 교제하는 일을 통하여서 가능한 것이다.
8. 성화되었다거나 성화되어 간다는 것은 죄없는 완전한 상태를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성화는 한 평생 지속되는 상대적인 일이다(상대적 성화).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이상은 하늘처럼 높다. 칭의는 과거의 죄에 대한 사면장이지만 죄를 또 지어도 좋다는 허가장이 아니다. 성화는 칭의로 얻는 구원을 유지하고 발전하여 가는 승리의 찬가가 되어야 한다. 베드로는 말한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5-16 ; 참고 레 11:44). 더 이상 높을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성이 제시되어 있고 이 표준에 이르기까지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은혜가 제공된다.
그러나 완전주의자(perfectionist)들의 주장처럼 죄가 완전히 근절된 완벽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뜻은 아니다. 순간순간의 삶이 죄없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오벌린(Oberlin) 학파의 찰스 피니(Charles Finney)가 이런 시각의 대표자이다.
여기에서 사도 요한의 메시지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 된다.
“만일 우리가 죄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참고 왕상 8:46).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요한일서 1장 10절). 여기에서 말한 죄 없다는 말은 매일 알려진 죄로부터 떠난 삶이다. 그것은 의도적인 죄를 벗어난 생활이다.
“성화란 한 순간, 한 시간, 하루의 일이 아니라 필생의 사업이다. 이것은 고양된 행복감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일의 결과이다. 나약하고 때때로 중단되는 노력으로는 잘못들을 바로잡을 수 없고 품성에 개혁을 단행할 수 없다. 오로지 오랜 끈기 있는 노력, 괴로운 훈련, 쓰라린 투쟁에 의해서만 승리할 수 있다. 어느 날에도 우리는 내일 우리의 투쟁이 얼마나 처절하리라는 것을 알 수 없다. 사단이 통치하는 한 우리에게는 복종시켜야 할 자아가 있고 극복해야 할 얽매이게 하는 죄악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이 계속하는 한 멈추는 데가 없을 것이며, 우리가 도달해서 내가 완전히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이 없을 것이다. 성화란 필생의 순종의 결과이다.
사도들과 선지자들 중 어느 누구도 죄가 없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생애한 사람들, 고의로 악행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생명 그 자체를 희생하고자 한 사람들, 하나님께서 거룩한 빛과 능력으로 영화롭게 하신 사람들도 그들의 본성에 죄악이 충만함을 고백하였다. 그들은 육신을 신뢰하거나 자신들의 의를 주장하지도 않았으며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였다”(AA 560-561).
“우리가 예수께 더욱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분의 품성의 순결을 더욱 분명히 알면 알수록 우리는 더욱 더 죄의 극악함을 알게 되고 자신들을 높일 마음이 더욱 더 적어질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계속적인 영혼의 발돋음, 계속적이며 열렬한 죄에 대한 마음을 찢는 회개와 그분 앞에 마음을 겸비하게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그리스도인적 경험에 있어서 진보의 매 발걸음이다 우리의 회개는 깊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의 충분함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며 다음과 같은 사도의 고백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할 것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롬 7:18; 갈 6:14)”(AA 561)
그렇다면 신자들은 거룩하게 되어야 하는 높은 이상과 죄없다고 말을 할 수 없는 현실적 자기 경험이나 죄성 사이의 긴장 관계 아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면 이 긴장 관계는 하나님 백성에게 승리의 디딤돌이 된다.
성서적 죄의 개념은 행위에 국한되지 않고 상태까지도 포함시켜 이해되어야 한다. 인간의 죄된 상태는 성화의 강도가 깊고 넓어 갈수록 더욱 심각하게 느껴지고 죄에 대한 혐오가 깊고 넓어 간다. 그리하여 죄가 자기 안에서 왕 노릇하지 못하게 된다. 인간 안에 잔존하는 죄성과 왕 노릇하는 죄와는 전혀 다르기 떄문이다. 성화가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그날까지 인간은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말씀에 따라 성령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G. 성령의 열매
참 생명의 원천되시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변화되고 자라나는 그리스도인이며 더 나가서는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다. 이는 그리스도인 증거가 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 5:22-25).
H. 성화의 종류
성화는 하나님의 선물이면서 동시에 명령이다.
1. 신분적 성화(Positional Sanctification)
신분적인 성화는 신자가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관계와 신분을 갖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최초의 성화를 의미한다(관계적 성화). 한 사람이 그리스도에게 나올 때 그의 삶의 즉각적으로 방향이 바뀌고 목적(용도)이 달라지는 신분으로 된다. 즉, 신분의 변화를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여러 지역교회 회중을 부를 때 성도(하나님을 위하여 분리된 자들)라고 칭한 것은 이를 반영하고 있다(엡 1:1; 고전 16:1; 고후 1:1; 빌 1:1).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이 본문이 보여 주고 있는 두가지 특징은 거룩함을 었었다는 과거 시제와 거룩함이 의롭다 하심에 선행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일이 일어날 때 거룩함의 축복을 동시에 선물로 받는 것이다. 이것은 용도 변경적, 관계적, 신분적 분리와 성별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화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로 말미암아 선언되는 직설법적 특징을 지녔다고 볼 수 있게 한다. 이 직설법적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1) 성별과 헌신--특정의 물건, 장소(성소), 대상 및 사람을 세속적인 용도에서 분리시켜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한 특별한 목적이나 용도로 따로 떼어 놓았다는 것이다. 즉, 성별케 하는 거룩함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뜻대로 사용하실 수 있도록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쳐지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다.
(2) 법적인 정결--“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12).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6-27).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과거 시제에 유의할 것).
먼저 성화는 특정의 물적 대상, 인간 및 장소 등의 외형적 특성으로서의 거룩성의 개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장소나 신분적, 관계적 성화(Positional Sanctification)이다. 예컨대, 성소의 기구, 제사장, 맏아들, 성소나 지성소와 같은 대상, 인간, 장소가 세속적 용도에서 분리되어 거룩한 목적이나 하나님을 위하여 바쳐진 형식적 용도 변경의 상태를 두고 성화 또는 거룩함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다. 히브리어 형용사로 “거룩한”을 뜻하는 말(qadosh)이 잘라내거나 분리를 뜻하는(to cut off, to separate) 동사에서 나왔다(Brown, Driver, Briggs, Hebrew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1987, 871). 그리고 그 명사형은 성화나 거룩함으로 번역되어지고 있다.
태의 첫아기가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되고 성별되었다는 것은(출애굽기 13장 2절)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베드로가 신자들을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베드로전서 2장 9절)라고 할 때의 “거룩한”이란 말은 야훼께 속하였다는 것이 된다.
신약 성경에서 신자들이 성별되어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상태는 믿음의 칭의가 발생할 때 동시에 발생하는 시제상의 과거성을 띈다(고전 1:2; 6:11; 행 26:18). 즉 이 용도 변경적인 성화는 인간이 회심할 시점에 발생한다. 회심할 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신분을 얻는다. 첫번째 의미의 이 성화 의미는 이 하나님 앞에서의 새로운 신분 관계, 즉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로새서 1장 13절)라고 한 상태의 변경이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하신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사도행전 26장 18절)라는 말씀에서 거룩케 된 무리는 그 과거 시제가 암시하듯 신분상의 변화를 받은 무리이다. 의롭다고 여김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이 세상 나라에서 분리되어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그 신분적 용도가 바뀌어 성도(hagioi)라고 불리운다. 바울은 여러 편지의 모두에서 신자들은 성도라고 부르고 있다(엡 1:1; 고전 1:2; 고후 1:1; 빌 1:1 등). 이 성도라는 표현은 신자들이 죄 없다는 상태를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된 말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 앞에서 변경된 신분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성도란 말은 이 세상에서 분리되어 현재 하나님께 속하거나 그를 위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된 사람이다.
2. 점진적인 성화(progressive sanctification)
성화는 도덕적, 영적인 과정이며 성장이다. 갓난 아이(new born babe)같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위한 개인적인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마음으로 매일 같이 은혜 안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까지 자라나는 체험을 한다(엡 4:15). 신자는 불의한 상태에서 매일 죄와 분리되면서 의로운 상태로 변화되어 간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더욱 선하여지고 영적으로 성숙하여 간다. 이 성화는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 평생의 과업이다. “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그리스도인의 삶은 옛 육신이 죽는 침례 의식 이상이다. 로마서 6장에는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그리스도인 생활방식이 나와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상과 행위를 본 받고 살아가는 것이어야 하는 명령법 아래 놓여 있다. 이런 삶의 모습은 역동적인 성화를 추구해 나간다. 흔히 죄를 벗어나는 일이 한평생 계속된다는 점에서 상대적 성화이다. 상대적 성화는 죄에 패배 당하는 일을 당연한 것처럼 의식하여 비판하므로 차라리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역동적 성화가 그 핵심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여 나가야 한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딤전 6:12).
회심-중생 이전에는 죄를 따라가는 삶이었으나 회심-중생 이후에는 죄를 싫어하며 배척하고 그리스도의 의의 표준을 향하여 나가는 삶이다. 죄인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 죄에서 떠날 때 구원 받는다. 그리스도인은 우는 사자와 같은 마귀와 악에 대하여 저항하는 자이다(벧전 5:8).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2-13)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19-22).
성화는 옛 바리새인처럼 어떤 선한 행위를 하는 것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과 동기의 전적인 변화이다. 성화는 순결하고 거룩한 마음에 토대를 둔 거룩한 행위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자유는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것을 위하여(for) 지향한다.
신분적으로 용도 변화가 된 사람이 도덕적으로 또 영적인 면에서 순결하고 선한 삶을 살아가는 점진적 또는 과정적 성화(progressive sanctification)이다. 신분상의 변화는 새 생활의 시작일 뿐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는 말씀이 시사하듯이 회심시의 신자는 새로 탄생한 자다. 새로 탄생한 자는 아이에 불과하다. 그들은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의 젖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야 한다(벧전 2:2). 신약 성경은 의롭다고 여김을 받고 세상과 구별된 신자들에게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자라나야 한다고 끊임없이 메타포적인 용어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밷후 3:18; 엡 4:15 등). 신분상의 변화를 받은 성도는 이제 죄의 구너세를 부실 수 있는 은혜의 권능에 힘입어서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는 명령법 아래에서 살고 있다. 수침 시 사단의 다스림에서 그리스도의 다스림 아래로 옮겨진 성화의 시작이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매일 죄로부터 분리하는 성화 과정이 연속되어 감에 따라 회개는 더욱 깊어 가고 선과 악, 옳음과 그름에 대한 판단력은 더욱 예리하여져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는 것이다. 성화는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엡 4:1)는 삶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미의 성화는 실천적 성화(practical sanctification)라고 볼 수 있다.
이 성화는 전가된(imputed) 의를 (선언)받은 죄인을 죄의 오염으로부터 건져내어 죄인의 본성 전체를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새롭게 하여 그가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공급하시는 분여된(imparted) 의로 하는 성령의 은혜롭고 계속적인 사역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빌 3:12-15).
3. 절대적 성화(Absolute Sanctification)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2). 이 그리스도의 재림 시 이루어지는 성화이다. 이른바 무죄한 성화는 영광화 때 이루어진다.
I. 칭의와 성화의 관계
칭의와 성화는 구분은 할 수 있으나 분리할 수 없는 연합성을 띄고 있다. “예수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린도전서 1장 30절)란 말씀은 이 불가분리성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복음의 진수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 안에 거하며, 그분을 따르는 것이고 그를 바라봄으로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품성처럼 변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칭의와 성화의 기능, 율법과 복음의 기능을 구분하는 것은 성서적이다. 그러나 그들 상호간에 분리나 충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율법과 복음, 칭의와 성화를 혼동해서는 안되나 분해할 수 없는 연합 관계에 있다.(Hans K. LaRondelle, "A Profile of the Biblical Doctrine of Salvation," The Review and Herald, January 6. 1977.)
칭의와 성화의 구분을 구체적으로 하면 다음과 같다.
1. 신분의 변화라는 차원에 있어서는 성화는 칭의와 동시적 사건이다. 즉, 같은 그리스도인 경험의 양 국면이라고 볼 수 있다. 논리상 칭의가 선행되고 성화는 후행된다.
2. 칭의는 그리스도와 연합 관계에 들어간 회개한 자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받는 사실에 역점을 두고 있는 반면에, 성화는 그 사람이 세상과 분리되어 있고 하나님을 위하여 성별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3. 하나님의 사역상로 볼 때, 칭의는 하나님의 율법으로부터 무죄 방면인 객관적 사역인 반면에, 성화는 그 율법과 조화롭게 사는 주관적 사역이다.
4. 시간적 측면에서 칭의는 한 순간에 일어나는 행위 내지 완결되는 사건이지만, 성화는 평생 동안 지속되는 과정이다. 칭의는 큰 값을 주고 산 다듬어지지 않은 돌과도 같지만, 성화는 그 돌을 완전하게 다듬어 완전한 제품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칭의는 하늘 항구를 향한 승선과도 같지만 성화는 목적지 항구를 향한 길고도 험난한 항해와도 같다.
5. 양적인 면에서 칭의는 의롭게 되었거나 안 되었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으나(all or nothing), 성화는 의로운 인간이 얼마만큼 되었느냐는 다양한 정도의 차이가 있다.
6. 하나님의 사역상의 차이로 보면, 칭의는 인간을 죄의 형벌에서 건져내는 법정적, 선언적 직설법인 반면에, 성화는 인간을 죄의 세력에서부터 건져내어 그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명령법적 특색을 지니고 있다.
7. 칭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하신 객관적 사역이 주가 되지만 성화는 인간 안에서 내적 인격에 역사하는 주관적 사역이 중심이 된다.
8. 칭의는 인간이 안전하게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title)을 얻게 하는 것이고, 성화는 그 천국에서 살 수 있게 하는 적합성(fitness)과 완전성을 길러 주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9. 칭의는 보혈로의 씻음과 중생인 반면에 성화는 흰 옷을 입고 걷는 것(사는 것, 행하는 것)이다.
10. 은혜차원에서 보면 칭의는 구원하는 은혜로 나타나지만, 성화는 순종케 하는 은혜로 나타난다.
11. 칭의는 죄의 구덩이에서 구출하는 것이지만 성화는 다시 그 구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심이다. 칭의는 세상에서부터 분리이지만, 성화는 세상에서 흠없이 보존되게 하는 것이다. 칭의는 치료 받아 온전하게 된 것이지만, 성화는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이다. 칭의는 치료하는 것인 반면에, 성화는 재활케 하는 것이다. 칭의는 침몰한 배를 수면으로 이끌어 올리는 것과도 같지만, 성화는 그 배를 계속하여 물위에 떠 있게 하는 것이다.
12. 그리스도의 의의 차원에서 보면, 칭의는 입혀주시는 의로 나타나고 성화는 나누어 주시는 의로 나타난다.
13. 대상의 관점에서 칭의는 십자가상의 강도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성화는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에게 하신 말씀이다. 칭의는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인 반면에, 성화는 부활과 새 생명이다.
14. 칭의는 구원의 알파이지만, 성화는 그 다음에 오는 구원의 오메가에 해당한다.
15. 사역의 주체 상으로 보면, 칭의는 우리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지만, 성화는 우리 안에서 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다.
16. 인간 노력의 관점에서 칭의는 인간이 수동적으로 받는 것인 반면, 성화는 인간은 능동적으로 나서는 것이다(빌 2:12-13).
17. 죄와 관련하여 보면, 칭의는 죄책, 정죄에서 구출하는 것이지만, 성화는 죄의 세력, 권세를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J.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 Pursuing Holiness
그리스도인이 중생하는 순간 시작된 성화의 삶이 점진적으로 계속되어 점점 성숙하여 갈 것이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그리스도인 안에는 아직도 죄의 권세가 남아 있다. 홀연히 변화되는 날까지 아무도죄 없다고 할 자는 없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 권세를 너넉히 이길 힘을 주실 것이다.
거룩함의 승리의 삶은 이는 마치 단단한 부지깽이와도 같다. 검은 부지깽이를 성령의 불 속에 넣으면 붉은 색이 되고 뜨거워지고 부드러워진다. 그러나 그 불에서 끄집어내면 다시 식어버리고 검게되며 단단해져 버린다.
또한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은 바다에 빠진 인간을 살려주는 구명대와도 같다. 그 구명대를 벗어버리면 곧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의의 구명대를 매고 성령의 법을 따르면 안전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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